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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스펜서 존슨 지음, 이영진 옮김 / 진명출판사 / 200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몇 권이나 팔렸을까? 아마 전세계적으로 몇 백만권 정도 팔렸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이제서야 읽어보았다. 사실, 안 읽어봐도 거의 뻔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었으나 보통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괜한 호기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면 기웃거리다가 까치발을 딛고 훔쳐보게 된다. 그러나 보통 그렇게 보고 난 후엔 '아... 저거 별거 아닌데 왜 이렇게 사람이 모여있었지'라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리곤 한다.
이 책의 내용은 특별한 것이 없다. 예상대로... 재밌으면 짧아서 아쉬운 느낌이 들텐데 그렇지도 않다.우화 속에 엄청난 비유가 숨겨져 있지도 않다. 함축적이고 예리한 풍자도 없다. 우화라기 보다는 우화의 탈을 쓴 교훈서 정도라고 하면 될 것 같다. 저자의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단순하다. 치즈는 옮겨지게 마련이고 그것을 준비하고 그것에 따라서 움직여야 한다. 즉, 변화에 민감하고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아마, 다른 주제를 골라내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 책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려고 했으면 낭패다. 실상 독서란 지식을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럴 때도 많이 있지만... 궁극적인 독서의 목적은 내적 성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성경에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는 말이 있다. 지식이 교만하게 한다면 더 많은 지식을 쌓는 것은 더 위험한 일이다. 지식은 구원을 베풀 수 없다. 아는 것이 힘이기는 하지만 아는 것 자체만으로는 부족하다.
20세기 위대한 설교자,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독서는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 해야한다고 했다. 세계적인 석학 피터 드러커는 똑똑하고 지식이 많은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용감한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책이다. 생각하게 하고 행동을 촉구하는 책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책의 가치를 단지 눈에 보이는 이야기 그 자체로 매겨서는 안 될 것이다. 친절하게 3장에서는 토론하는 예시까지 보여주었는데, 바로 저자의 목적은 이 우화를 머릿속에 그림으로 그려놓고 그대로 실천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제목은 잘못 지어졌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는 누가 치즈를 옮겼는지 나와 있지 않다. 제목만 보면 그 '누구'가 나올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그리고, 왜 치즈를 찾아야 하는지도 안 나와 있다. 단지, 누군가 치즈를 옮겼고, 우리에겐 치즈가 필요하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어 있다. 혹시 물음표가 없이 'Who moved my cheese.(누군가가 내 치즈를 옮겼다.)' 이렇게 나왔으면 낫지 않았을까? 그러면 분명 치즈를 가져간 존재에 대한 관심보다는 개인의 반응에 초점을 맞추기 쉬웠을 것 같다. 아마도 저자 나름대로의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무래도 오해를 받기 쉬운 제목이라서 한 번 생각해보았다.
여튼 각자에겐 저마다의 치즈가 있을 것이다. 돈일수도 있고, 물질적이지 않은 것도 많을 것이다. 치즈를 찾아다니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세상에는 무소유를 주장하며 세상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이 물위에 떠있는 나뭇잎처럼 그냥 유유자적 흘러다니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나름대로 멋있기는 하지만, 별로 사는 재미가 없을 것 같다. 물론, 끊임없는 소유욕은 사람을 병들게 할 수 있지만, 뭔가 나만의 치즈를 찾으러 열심히 돌아다니는 사람이 더 멋있어 보인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새로운 치즈를 찾아 떠나는 '허'와 함께 빈 창고에 주저앉아버린 '햄'을 머릿속에 남겨두면 유익할 것이다. 그리고, 변화가 두려울 때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너, 햄이구나'
아마, 십중 팔구는 햄의 자리에서 박차고 나올 것이다. 뭐, 분명 "그래 나 햄이야" 이러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내가 그럴 것 같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나에게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나오는 예언자가 한 말을 할 것이다. 이렇게...
"You can cho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