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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와 마녀와 옷장 ㅣ 나니아 나라 이야기 (네버랜드 클래식) 2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폴린 베인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니아 나라 이야기를 읽기로 결심한 것은 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읽고 나서였다. 그 책을 통해 판타지 소설을 처음 경험하게 되었고 그 경험은 판타지 문학뿐만 아니라 소설에 대한 나의 생각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나는 소설을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이유는 소설은 '허구'이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도 알아가기 빠듯한데 허구 세계까지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 지나친 욕심이자 일종의 시간 낭비라고 여겼다. 또한 다치바나 다카시가 이야기했듯이 현실이 소설보다 훨씬 재밌는 세계라고 늘 생각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판타지 소설이 내 주의를 끈 것은 인간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것들이 마치 현실처럼 나타나는 제2의 세계 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꿈꾸는 책들의 도시의 부흐하임이나 반지의 제왕에서의 중간계(The Middle Earth), 나니아 나라 이야기의 나니아처럼 판타지는 또 다른 세계가 등장한다. 그리고 내가 보기엔 그 또 다른 세계가 인간과 세상의 모습을 더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는 듯했다.
판타지가 완전한 허구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나는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읽고 판타지 문학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판타지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 속에 실존하는 세계이다." 그것은 르귄이 "판타지는 사실이 아니다. 그러나 진실이다."라고 판타지의 본질에 대해 말한 것과 비슷한 의미일 것이다. 판타지 문학은 인간의 정신과 마음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존재들의 가치를 인식해서 나타내주는 일종의 내면적 가치를 향해 열려져 있는 눈이다. 따라서 나는 3대 판타지 문학 중 하나인 C.S.루이스의 나니아 나라 이야기를 통해 세상과 인간의 진정한 본질을 보고 싶었다.
나니아 나라 이야기의 두번째인 '사자와 마녀와 옷장'은 C.S.루이스가 처음으로 쓴 나니아 이야기이다. 옷장을 통해 나니아에 들어간 피터, 수잔, 에드먼드, 루시의 모험담을 그리고 있다. 나니아의 창조자는 사자 아슬란이었지만 네 아이가 나니아에 이르렀을 때 그 곳은 하얀 마녀의 지배를 받아 끝도 없는 겨울을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아슬란이 돌아왔고 그의 죽음을 통해 에드먼드의 생명을 구하고 네 아이는 예언대로 나니아의 왕이 된다.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읽기 전에 이 책은 루이스가 기독교 교리를 잘 설명하기 위해서 쓴 책이라는 이야기를 귀따갑게 들어왔던 터라 줄거리는 대충 짐작이 갔다. 아마 기독교나 성경을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이 읽게 되면 상당히 독창적인 구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기독교인인 내가 보기에는 루이스가 다소 억지로 끼워 맞춘 부분이 있지 않나 싶은 부분도 꽤 있었다. 그러나, 나니아 나라 이야기를 소개하는 책의 앞부분에서 루이스가 나니아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가장 잘 전달하기 위해서라고 말한 적이 있다는 부분을 읽고서 다시 생각했다. 그는 기독교를 소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동화책을 지은 것이다.
루이스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성경의 가장 상위 단계의 내러티브이다. 즉, 루이스는 창조, 인간의 타락, 죄의 능력과 그 대가, 구원의 필요성, 그리스도의 희생이라는 성경의 가장 큰 흐름을 그의 책에 반영하고 싶었던 것이다. 세세한 이야기들은 풍유나 비유로서의 의미를 가진다기보다 단지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한 소도구에 불과한 듯 하다. 따라서, 각각의 세부적인 내용을 기독교 교리에 연결시켜보려고 했던 것은 나의 실수였다. 나이 50이 넘어서 저명한 영문학자가 아이들을 비롯한 모든 이들에게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 책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단지 기독교를 설명하기 위한 전도용이라고 여기고 던져버리기 전에 무신론자였던 그가 알게 된 진리의 힘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다가서야 할 필요성이 있다. 순전한 기독교를 비롯한 주옥같은 기독교 변증서를 펴 내던 그가 다소 유치해 보이는 동화책을 펴낸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볼 때 그것은 그가 알게 된 진리에 대한 강한 긍정이다. 변증하고 논증하고 합리적인 근거를 찾아서 변호해야 할 진리가 아닌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그대로의 진리를 그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누가 동화책의 내용을 따지고 들 수 있는가? 단지 읽던가, 읽지 않던가 둘 중에 하나일 뿐이다.
사실 내게는 다소 뻔한 줄거리보다는 루이스가 묘사하는 아슬란이 나타나기 이전의 나니아의 모습이나 의심하는 에드먼드, 아슬란을 묘사하는 비버의 말 등이 더 인상적이었다. 아슬란이 나타나기 이전 나니아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겨울의 시간 속에 있다. 겉으로 보기엔 아름다워 보이고 정리되어 있는 듯한 모습이지만 생명력이 없는 차가운 모습, 아마도 루이스가 무신론자로서의 삶을 살았을 때 자신의 모습을 반영한 것일 듯 하다. 그리고 어느 쪽이 좋은 편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질문하며 아슬란을 의심하는 에드먼드의 모습 역시 루이스의 모습과 딱 어울린다. 그것은 단지 루이스의 모습일 뿐 만 아니라 진리를 거부하고 진리를 의심하며 진리의 편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은 비버의 말이었다. 나니아 나라의 비버는 아슬란을 만나는 것이 안전하냐는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한다. "안전이라고요? 지금 우리 집사람이 한 말 못 들었나요? 누가 안전하다고 했죠? 당연히 안전하지 않아요. 하지만 좋은 분이세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그 분은 왕이신걸요." 내가 느끼는 진리 혹은 신이 그렇다.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을 갈망하면서도 두려워한다. 가끔 잠자리에 들 때나 어둠 속에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이 내게 가까이 다가설까봐 겁이 난다. 비버의 말에 절대 동감이다. 루이스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하나님이 그에게 다가온 순간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여우는 헤겔주의 숲에서 쫓겨나 이제 빈터에서 세상의 모든 불행을 안고 달리고 있었고, 몸은 흠뻑 젖고 지친 상태이며, 바로 뒤에선 사냥개가 따라왔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이 이제 한패였다." - 예기치 않은 기쁨, C.S.루이스 -
정말 위험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루이스는 그 동안 자신이 쌓아온 모든 지식 체계와 자신이 알고 있던 세계와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을 허물어야 했을 것이다.
'사자와 마녀와 옷장'은 단지 아이들만 읽는 책이라고 하기에는 그 사상이 너무 심오하다. 그러나, 그 심오한 사상을 다 헤아리며 읽을 필요는 없다. 그저 재밌게 읽으면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어린 아이에서부터 어른까지 모두 즐길 수 있는 책이다. 특별히 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어린 나이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마음에 일종의 핵폭탄을 떨어뜨리는 것과 비슷하다. 핵폭탄은 폭발 당시의 위력보다 후폭풍이나 낙진을 통해 더 큰 파괴력을 발휘한다. 이 책을 읽을 당시에는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있다. 단지 재미있다, 재미없다로 끌날 수도 있지만 나중에 후폭풍을 비롯한 영향력은 언제, 어떻게 그 모습을 드러낼지 아무도 모른다. 즉 어린 시절에 읽는 책은 바로 프로이트나 융이 말한 인간의 잠재의식을 형성하는 커다란 한 부분이 될 것이고 그것이 언젠가는 의식의 영역으로 나타날 때가 있을 것이다. 사자와 마녀와 옷장을 비롯한 나니아 나라 이야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야기 중 하나를 역동적이고 재밌게 또한 아주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따라서 나니아 나라 이야기와 같은 양질의 도서로 마음에 폭발을 일으킨다면 두고두고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목에 대해서 한 마디 하려고 한다. 사자와 마녀와 옷장이라... 다소 촌스러운 제목이지만 나는 루이스라면 아무 생각없이 제목을 짓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개의 판타지 소설을 비롯한 소설이 주인공의 성장을 다룬 이야기이지만 나는 나니아 나라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일단 이 책의 주인공은 피터, 수잔, 에드먼드, 루시가 아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의 주인공은 단연코 사자이다. 그리고, 주목해야 할 것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횟수가 적다고 하더라도 항상 책은 주인공의 이야기라는 점이다. 아마, 나니아 나라 이야기의 1권부터 7권까지 모두 읽게 된다면 그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누가 있는지 잘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아슬란이 언젠가 당신을 초대할지도 모른다. 그 때 어리둥절해하지 말고 그가 아슬란인 것과 당신이 초대받은 세계가 자유의 나라 나니아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