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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미치게 하는 정원이지만, 괜찮아
윌리엄 알렉산더 지음, 황정하 옮김 / 바다출판사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수필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딱히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취향이 아니다.
그런 내가 [나를 미치게 하는 정원이지만 괜찮아]를 읽게 된 것은
하이드님의 정말 멋진 리뷰 때문이다.
덧붙여 나 역시 언젠가-아마 나이가 들면?-마당 딸린 집에 살면서
정원에 감나무와 앵두나무, 대추나무를 심고 고추나 상추, 토마토 같은 야채를 키워보고픈
로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완벽한 정원을 꿈꾸는 한 남자가 흙에서 벌인 유쾌한 시트콤'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그리고 정말 말 그대로 유쾌한 시트콤이다.
만약에 이 책을 그대로 시트콤으로 만든다고 해도 난 놀라지 않을 거다.
다만 그때는 사슴에 대한 과격한 표현 때문에
동물보호협회에서 항의를 할 수도 있겠다. 하하.
저자는 무려 200평방미터의 땅을 정원으로 일구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그걸 달성하기 위해 몇 년 동안 온갖 착오와 시련을 거친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다(아래 참조) 결국 잡초수정주의로 노선을 변경하고
"캘리포니아에 사는 작은 농장주의 경우, 잡초를 그대로 방치했다가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서부 레스토랑에 유기농 채소로 공급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사실 아주 매력적인 방법이었다. 다시 봄이 되자 나는 우선 20평방미터쯤 되는 옥수수밭에
이 방법을 시범 적용해 보았다. 그랬더니....아, 정말 재난이었다!
밭 전체에서 속이 꽉 찬 옥수수라곤 하나도 찾을 수 없었고,
한여름이 되자 값비싼 최음제 향기의 기름진 흙은 대단히 탐욕스럽게 들불처럼 번져 나가는
수많은 잡초 더미로 완전히 뒤덮여 버렸다.
마치 원시림으로 돌아가려는 몸부림 같았다.
아, 캘리포니아와는 상황이 다른 모양이었다.(제기랄!)"
아버지의 유기농 사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다 결국 농약에 굴복한다.(아래 참조)
"나의 절망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애그웨이에서 구입한 사계절용 과수 농약병을 돌려 따는 순간,
그 특유의 냄새에 깜짝 놀랐다. 너무나 익숙한 냄새였건 것이다.(중략)
바로 어린 시절 항상 익숙하게 맡았던 그 냄새였다!
제기랄, 이 냄새를 잘 알아! 언제나 이 냄새를 맡으며 자랐다고!
아버지의 유기농 사과만을 너무 낭만적으로 기억한 나머지 무의식중에 살충제에 대한 기억은
지워 버렸던 것일까? 아니면 아버지는 내가 잠은 밤마다 몰래 말라티온을
뿌려 댔던 것일가?
대단한 충격이었더. 혼란과 환멸이 밀려왔다. 모든 거짓말은 다 드러났다. 결국 존재하지도 않는
환상을 좇고 있었던 것이다.(중략)
미국 북동부에 유기농 사과 따위는 없다."
저자의 노고를 생각하면 웃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 모든 과정이 독자에게는
정말 참을 수 없이 코믹하다.
그리고 내 로망을 조금 수정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_-;
뭐, 내가 생각한 야채밭이란 건 토마토 2~3포기에 상추 조금, 고추 2포기 정도의
가로세로 3미터 정도의 공간이었지만 말이다.
사실 저자가 200평방미터의 밭을 일구겠다는 욕심을 부렸기에 이렇게 고생했고
또 독자에겐 코믹한 상황이 벌어졌지만 작은 텃밭이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내 기억 속 할머니의 텃밭은 가로세로 3미터도 되지 않았지만
제법 많은 먹거리들이 밥상에 올라왔다.
누구나 약간은 가지고 있을 내가 키운 먹거리에 대한 환상을 살짝 깨주면서도
그래도 나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이상한 도전의식을 심어준다.
정원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