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보다 남북정상 만남이 먼저다
부시 핵협상 매듭 뒤 북한과 수교설 ‘솔솔’, 그것은 ‘두개의 한국’ 고착화 염두에 둔 것
이에 맞서 우린 평화를 통일로 바꿔나가야, 그 구심점 확보하는 길이 남북정상회담이다
한겨레
» 지난 1일 베를린 접촉과 ‘2.13합의’ 이후 북한과 미국의 접근 움직임이 속도를 더하고, 이에 따라 남북한과 한반도 주변 정세까지 급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미 간의 이런 접근에는 김정일(왼쪽) 북한 국방위원장과 조지 부시(오른쪽) 미국 대통령의 결단이 중요한 구실을 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가운데)에 이어 가능성을 보였다가 무산된 북-미 정상회담이 연출되는 극적인 장면까지도 예상되는 급격한 해빙 분위기 속에서 남북 관계의 중요성이 어느 떄보다 부각되고 있다.
안과 밖 / ‘2.13 합의’ 이후 한반도

‘2.13 합의’ 이후 한반도 정세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북미관계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북한과 미국간에 수교가 이루어지고 한반도에서 정전체제가 종식된다면 동북아 질서의 새판짜기도 불가피해질 것이다.

‘2.13 합의’는 미국과 북한 그리고 한국내 협상파들의 승리다. 북한을 벼랑끝으로 몰고 간 미국의 강경파들, 이들 네오콘들의 대북강경론에 동조해온 한국의 보수세력들과 일본의 우익들, 핵무장만이 북한의 살길이라고 주장해온 군부를 중심으로 한 북한의 군사보험주의자들의 책동과 방해를 이겨내고 얻은 결과다.

한국의 보수세력들은 갑작스런 ‘날벼락’에 큰 충격을 받아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한나라당은 대북정책 기조를 수정하겠다고 나섰다. 한미동맹을 성역처럼 여겨온 보수 언론들의 글에서는 ‘반미감정’마저 느끼게 한다. 이들은 ‘미국의 배신’을 탓하며 한국의 핵무장까지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를 용인하는 비밀협상을 한 것처럼 허황된 소설까지 써대고 있다.

미국 네오콘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해온 한국의 보수세력들이 미국의 정책 변화와 국제정세에 얼마나 둔감한지가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이들은 얼마 전에도 미국의 정책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반대해 미국에 ‘불충’을 저지른 바 있다.

‘2.13 합의’와 북미관계 급변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부시 대통령의 전략적 결단이 큰 몫을 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핵무기를 조기에 포기하는 대신 미국과 수교를 통해 체제안전을 확보한다는 전략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북한이 ‘2.13 합의’를 통해 얻은 에너지 보상은 ‘제네바합의’에 비하면 매우 미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제네바합의문’보다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인 것은 김정일이 단기 승부수를 두고 있음을 뜻한다. ‘제네바합의문’처럼 수년을 끄는 이행기간이 아니라 1년 정도의 단기간에 핵무기를 포기하고 미국과 수교를 마무리 짓겠다는 계산이다.

북한 붕괴론의 비현실성 깨달아

이는 부시 행정부 이후 미국의 다음 정권과 협상을 하려던 당초 생각을 바꿔 부시 행정부와 담판을 짓기로 북한이 전략을 수정했음을 의미한다. 미국의 차기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정책 방향을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부시가 대북 적대정책을 변경할 의지를 보여준다면 부시 행정부와 협상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북한은 중간선거 후 미국의 정책 변화 가능성을 읽은 것이다.

이런 변화의 직접적인 추동력은 두말할 나위 없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다. 미국의 정책 변화에는 부시 대통령의 의지가 실려 있다. 강온파간의 다툼에서 협상파의 손을 들러 준 것이다. 부시는 대북 강경정책을 접고 북한과 양자협상을 통해 북한핵문제를 해결한다는 전략적 결정을 내린 듯하다. 부시의 입장에서는 이라크와 이란문제가 조기에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핵문제라도 풀어 외교적 성과를 내야 할 형편이다. 네오콘의 퇴조와 북미 양자협상을 주장해온 민주당의 의회 장악이 한 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미국의 정책 변화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부시 행정부가 줄곧 대북강경정책을 추진해온 배경은 중국견제와 일방주의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위협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소멸되고 북한과 수교를 하게 된다면, 이런 ‘북한위협론’이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설명이 있어야 한다.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는 ‘네오콘식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정책으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견제’라는 미국의 전략 목표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지만, 그 방법이 현실주의적으로 바뀐 것이다. 또 ‘북한붕괴론’이 비현실적임을 깨달은 것이다. MD(미사일방어)체제가 상당부분 진척됨에 따라 중요한 명분이었던 ‘북한위협론’에 매달릴 동기도 그만큼 약해졌다. 게다가 대북강경정책이 가져온 부정적 결과도 충분히 목격했다. 북한에 대한 압박은 북한의 중국에 대한 의존성과 중국의 대북 영향력 강화를 가져올 뿐임을 인식했다.

미국으로서는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 변화에 대비한 장기적 포석이 필요하다. ‘북한붕괴론’에 매달리는 미국의 비현실적인 한반도정책은 미국의 고립과 영향력 감소를 자초할 뿐이다. 한국은 점차 미국으로부터 ‘독립적인 국가’가 돼 갈 것이다. 따라서 북한과의 수교는 오히려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떼어놓는데도 유리하다. 북미수교가 이루어진다면 미국의 영향력이 북한지역에까지 미치게 된다.

‘북-미’ 더 깊숙한 합의 했을 수도

주한미군의 존재는 북미관계 정상화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이미 90년대 초부터 북한에 적대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주한미군의 주둔을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추진에 따라, 이런 조건은 더욱 충족될 수 있게 되었다.

부시는 2008년 초까지 핵협상을 마무리짓고 자신의 임기내 북한과 수교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과 미국은 양국관계 정상화를 위한 밑그림과 일정에 대해, 외부에 알려진 것 이상으로 이미 상당히 깊숙한 수준까지 합의했을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우리 눈앞에 놀라운 장면들이 펼쳐질지 모른다. 부시 대통령이 극적으로 북한을 방문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과 같은 국제회의에 김정일을 초청해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 4개국 정상이 한자리에서 손을 맞잡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통일 지향적 평화로 발전시켜야

이에 앞서 초기 이행조치가 마무리되는 4월 중순 이후,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고, 6자회담 참가국 외무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장면이 목격될 것이다.

이처럼 한반도에 큰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북미수교는 다른 한편으로 한반도에서 냉전체제의 종식을 가져올 것이다. 정전협정을 대신하는 평화협정이 체결돼, 반세기 이상 지속돼온 정전체제가 막을 내리게 된다. 이는 갈등과 대립을 반복해온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또 한반도 냉전 해체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 질서의 새판짜기로 이어질 것이다. 한반도의 안보지형이 변하면, 동북아의 세력구도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불가피 하다.

그런데 문제는 냉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이 바로 통일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북미관계정상화는 미국의 ‘두 개의 코리아’정책을 강화시킬 수도 있다. 미국의 한반도정책 기조가 남북의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현상유지정책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변국들의 향후 동북아 질서에 대한 생각은 각기 동상이몽이다. 자국 중심의 패권질서를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잘못하면 남북한은 이런 주변 강대국들의 패권경쟁과 편가르기에 말려들 수 있다. 신냉전체제의 희생물이 돼 분단고착화로 갈 수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큰 과제가 주어진다. 평화의 변수를 통일의 변수로 변화시켜야 하는 과제다. 분단체제의 존속을 전제로 한 ‘현상유지적 평화’가 아니라, 항구적인 평화를 전제로 한 ‘통일지향적 평화’로 발전시켜야 한다.

» 이철기/동국대 교수, 국제관계학
이처럼 평화를 통일로 전환시키고 평화와 통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추동력은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이다. 외재적 변수들의 원심력을 압도할 수 있는 남북관계의 구심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남북정상회담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남북의 정상이 먼저 만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민족의 장래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야 한다.

화해와 협력을 통해 남북을 ‘평화공동체’와 ‘경제공동체’로 발전시키고, 국제사회에 남북의 통일을 기정사실화해야 한다. ‘6.15 공동선언’에서 합의 했듯이, 빠른 시일내에 남북관계를 적어도 ‘국가연합’ 단계나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발전시켜야 한다. ‘평화를 희생한 통일’도 안 되지만, ‘통일을 희생한 평화’도 우리 민족에게는 의미가 없다. 이철기/동국대 교수·국제관계학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농부의 밥상 - 유기농 대표농부 10집의 밥상을 찾아서
안혜령 지음, 김성철 사진 / 소나무 / 200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업시간에 교수가 서양철학을 얘기하던 중 뜬금없이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이라는 책을 소개한 적이 있다. 밥도 제대로 못 챙겨먹고 듣던 배 고픈 수업시간, 그것도 철학얘기에 웬 밥상얘기를 꺼내나 싶었다. 자연으로 귀의한 스콧 니어링과 헬렌 니어링에 대한 나의 지식은 거의 무지해 지금까지도 자세히 알지 못하나, 오늘 책장을 덮은 "농부의 밥상"(안혜령 글, 소나무)을 읽고 어렴풋하게나마 철학과 밥상이 관계지어짐을 뒤늦게나마 깨쳤으니 사람은 역시 배우고 볼 일이다.

흔히들 철학하는 사람에게 '철학이 밥 멕여주냐?'고 놀리지만, Well-being에 미친 시대에 철학없는 밥상에 Technique만 알려준들 근본이 갖춰지지 않았는데 무슨 Well-being이 되겠냐싶다. 근본이 되어 다른 학문을 끌어주고 받쳐주는 철학처럼, 농사짓고 밥상차리는데 밑바탕으로 자리잡은 우직한 유기농 농부들의 '철학'은, 거칠어진 손발처럼 이쁘고 멋지지는 않으나 소박한 그들의 삶을 건강하게 살찌우는 첫번째 요소임에 틀림없다.
 
"농부의 밥상"은 유기농을 고집하는 대표농부(?) 10분의 집을 철따라 방문하여 그 분들이 집에서 차려주어 얻어먹은 조촐한 밥상을 소재로, 그들의 삶과 농사, 음식얘기로 채워놓은 글이다. 쌀이 쌀나무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 외에는 농사일을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그리고 스팸 굽고 라면이나 끓일 줄밖에 모르는 나에게 이 책은 거의 전문서적(!)에 가깝다. 그렇다고 따분한 유기농에 대한 하염없는 칭찬이나,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요리책이 아닌 것은 그분들의 삶이 간편하고 단촐한 탓에 그런 사치를 부릴 게재가 아니기 때문이지도 모른다. 글 또한 뭇 농부의 말처럼 담백하며 소박하다.

소개된 열 분의 면면이 공동체를 통해 유기농을 실현하는 분도 있고, 화학농법을 통해 깨친바가 있어 홀로 유기농을 고집하는 분들도 있으나, 모두가 한결같은 것은 자연섭리를 거스르지 않으며, 나 잘 살자고 땅과 한낱 미물들을 해하지 않는 기본 바탕은 모두 똑같다. 그 분들의 음식이라는 것이 지방마다 틀리고 자연환경마다 틀리지만, 결코 낭비하거나 과욕을 부리지 않으며, 하늘이 철마다 내려주는 지천에 널린 것들을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밥상차림의 기본이었다. 결국 자연의 섭리를 따라 오랜 세월 삶의 지혜로서 과거 방식들을, 깡그리 뒤집어 엎어버린 현대화의 미덕이 되레 그 분들 앞에서는 미개할 따름이다. 인위적인 삶과 음식에 길들여져 있는 것이 오히려 무안하다.

몸이 안 좋거나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할 때 만든 음식이 맛이 없다는 것은 음식 해 본 사람은 누구라도 경험한 바가 있을 것이니, 그이는 나아가 식구들 몸과 마음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음식을 할 때면 늘 밝은 마음을 가진다. 부엌 또한 늘 밝아야 한다고 집 동쪽에 자리잡게 하는 것도 그런 이치에서다. (77p)

그러하기에 그 분들에게는 밥은 평화요, 보약이요, 나눔이요, 똥인 것이다. 서울에서 사는 동안 어느 식당의 뭐가 맛있다는 소문만 나도 문전성시에 난리인데, 소위 맛집멋집 찾아다니는 것을 취미삼아 즐기는 나에게도 정작 부모님들 맛있는 것 드시게 한다고 모시고 가면 영~ 반응이 시원찮던 경험들이 많다. 너른 앞마당을 두고 마루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제철에 나는 나물과 풋고추에 된장, 김치 하나만 걸쳐도 식은 밥이 따뜻하게 느껴짐은 무위자연과 간소함에서 오는 마음의 풍성함에서 오는지도 모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농부의 밥상 - 유기농 대표농부 10집의 밥상을 찾아서
안혜령 지음, 김성철 사진 / 소나무 / 2007년 2월
장바구니담기


음식뿐이랴. 이들 보기에 사람은 "탐욕으로 가득한 존재"인즉, 불가의 가르침으로 보자면 스스로 번뇌를 끌어안고 사는 셈이다. 그러므로 이 부부는 무수한 욕망을 다 떨구어 몸과 마음이 비면 참으로 자유로운 삶이라 여긴다. 마음이 이러할진대 이들 사는 모양새가 번듯할 리가 없다. 이들 보기에는 세상에 따로 "더러운 게 없다". "원리를 따지면 근본이 다 같은데" 집이고 옷이고 굳이 빛내고 치장하려 애면글면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요란한 바깥세상 훔쳐보고 싶은 마음도 없어 구식 텔레비젼 하나 있으되 안테나를 달지 않고 있다. 라디오 한 대면 족한 것을.-20p쪽

주위를 둘러보면 "참 우리가 제일 편하게 살고 있다"고 느낀다. 자유롭고 마음 편하여 이즈음 이들은 "사는 맛"이 난다. 이제, 그 맛의 마지막 경지, "죽음을 가깝게 맞을 준비"를 생각한다. 애당초 내 것이 아닌 농장, 자식에게 물려줄 일도 없고 남길 것도 없으되, 행여 아직도 비워내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을지 모를 삶의 흔적들을 "깨끗이 훌훌 털고 죽음을 맞는 길"을 새겨본다. 간결하게, 단순하게.-34p쪽

농사라는 글자를 보자. '농農'은 별 신辰 자에 노래 곡曲 자가 합쳐진 말이다. 글자 그대로 보자면 별의 노래라는 뜻인데, 별의 노래가 무엇일까. 그는 하늘의 기운, 전 우주의 기라고 본다. 곧 농사란 하늘의 기운에 따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농사에 대한 이런 생각은 동서양이 차이가 없는 듯하다. 그가 쓰는 바이오다이내믹 농법, 곧 생명역동농법은 독일 사람이 만든 농법으로 해마다 천체를 관측한 결과를 바탕으로 농사력을 만들어 쓰는 것인데, 우리 조상들이 쓰던 농사력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65p쪽

그 생명을 키우는 사람, 농부는 또한 평화를 짓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평화의 '화'라는 글자는, 벼 화禾 자에 입 구口 자로 이루어져 있으니, 쌀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그는 이 쌀이 아무렇게나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 입에 고루 들어가는 것이라고 본다. 밥을 고루 나눠먹는 것이 평화라는 말이니, 새겨볼수록 진리임이 사무친다.-66p쪽

강대인 씨가 벼를 대하는 지극한 마음과 다르지 않을 터, 기는 하늘과 땅과 벼 사이에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두루 영향을 미치니, 사람을 살리는 농법은 사람을 사리는 밥상으로 이어진다. 몸이 안 좋거나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할 때 만든 음식이 맛이 없다는 것은 음식 해 본 사람은 누구라도 경험한 바가 있을 것이니, 그이는 나아가 식구들 몸과 마음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음식을 할 때면 늘 밝은 마음을 가진다. 부엌 또한 늘 밝아야 한다고 집 동쪽에 자리잡게 하는 것도 그런 이치에서다.-77p쪽

유기농업을 한다는 것은 삶의 근본을 바로잡는 일인즉, 농사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이철희 씨가 먹을거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소를 기르면서였다. 요즘에야 으레 인공수정하기 십상이지만 풀어놓고 기르는 소들은 암소가 발정날 때 황소를 넣어주면 그만이다. 몇 년이라도 황소가 힘이 있는 한 끄떡없다. 그런데 축사 안에 붙잡아 매놓고 사료를 먹이는 소는 생식 능력이 몇 차례면 끝난다. 또 그런 암소는 새끼를 계속 낳지 못한다. 사료에 들어가는 항생제 때문이다. 소도 안됐거니와, 사람의 입장에서도 답답한 것이 사람이 먹는 게 그 고기뿐이더냐. 그걸 보면서 "지금 사람 먹고 사는 게 참 한심하다"고 한탄한다.-139p쪽

임락경 씨는 발효의 원리란 "곰팡이를 먹는 것"이라 한다. 메주를 띄울 때 피는 곰팡이는 메주가 어느 정도 숙성되었는지를 알려 주는 신호다. 흔히 곰팡이는 네 종류로 나뉘는데, 흰 공팡이가 해독제로서 가장 좋다. 메주에 노랑 곰팡이가 피었다면 이는 "메주가 춥다"는 뜻이다. 즉, 메주 띄우는 방 온도가 좀 낮다는 신호로 방 온도를 조금 높여 준다. 파랑은 "메주가 감기기가 있다"는 신호다. 썩 좋지 않다는 것인데, 다만 이게 흰 곰팡이와 섞이면 해독이 된다고 한다. 까만 곰팡이는 "독"이다. 메주가 썩은 것이다. 이건 버려야 한다.-170p쪽

어느 나라든 발효식품이 있다. 서양인들의 주식인 빵이 발효식품이며 치즈와 포도주 또한 그렇다. 우리는 주식인 밥이 발효식품이 아니기 때문에 반찬으로 "여러 가지 발효식품을 동원한다". 김치가 그렇고, 된장, 간장, 고추장이 그렇고, 말린 나물들이 그렇고 말린 생선이 그렇다. 떡은 꿀이나 조청을 찍어 먹고, 고구마는 배추김치나 김칫국을 곁들여 먹고, 고기는 미리 재어 놓았다가 먹는 것이 다 발효의 원리를 밥상에서 실현하는 것이다.-173p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운영의 중국경제산책 탐사와 산책 3
정운영 지음, 조용철 사진 / 생각의나무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중국 출장길에 무얼 읽을까 고민하다 서재에 꽂힌 이 책을 펼쳐 들었다. 살펴보니 5년 전 여름에 읽은 것이었지만, 2002년 여름이면 월드컵에 미쳐있어야 할 때인데도 나는 한가롭게 책을 들고 있었나 싶어 하품이 난다. 그해 가을에 인생에서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던 새로운 공부를 한답시고 대학원을 진학했었으니 이 책도 그 시절에 분명 내게 뭔가를 던져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다시 읽는 즐거움이 분명 있을 것이라 싶었다. 그러나 무심하게도 읽는 내내 새로움을 느꼈으니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이 참 덧없다는 생각이다.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은 참으로 고약하다. 싫은 기억들이 모두 지워진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어디 그런가? 그러하기에 고뇌하는 것이고, 그러하기에 극복하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똑똑한 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수 많은 지표와 지수가 현재를 얘기하고 미래를 예견하며, 기억된 그 인자들로 경제는 서서히 성장하고 쇠퇴한다. 중국의 경제가 지금 빛을 발하는 것 역시 어쩌면 제국주의의 침탈로 피폐해진 늙은 호랑이로 기억되던 세인들의 기억을,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하고 시장을 받아들인 개혁개방의 성과들로 인해 그 기억을 일거에 뒤집어놓았다고 여겨 더 주목을 받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정운영 교수가 중앙일보로 자리를 옮기고 2001년에 중국경제에 대한 취재를 위해 중국 여러 도시들을 돌아보고 온 뒤 쓴 일종의 르뽀이지만, 알다시피 정교수 특유의 해박함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경외심이나 경계심으로 바로 보는 중국을 아주 삐딱한 시선으로, 어떻게든 정부관료들의 정해진 답변이 아닌 뭔가 현실감 있는 얘기들을 파헤치려 나름대로 열심히 취재한 흔적이 가득한 재미있는 중국이야기이다. 중국경제를 알아보고자 이 책을 쥔다면 분명 후회할 것이다. 역사얘기와 정치얘기가 훨씬 많다.

흑묘백묘 조주노서 취시호묘(黑猫白猫  住老鼠 就是好猫)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그게 좋은 고양이다. (鄧, 82p)

영요사회주의적초(寧要社會主義的草)
불요자본주의적묘(不要資本主義的苗)
사회주의의 잡초를 키울지언정 자본주의의 싹을 틔우지 말라. (毛의 鄧 비판, 86p)

현대중국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고양이'인데, 이것 역시도 경제노선을 놓고 벌인 중국 최고지도자들의 정치투쟁의 흔적이다. 이 책을 읽으며 중국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를 가만 생각해 보게 되는데, 앞서 예를 든 정치투쟁의 결과는 고스란히 경제현상으로 드러나며 이는 곧 인민들의 삶으로 직결되는 국가구조에 있다고 생각된다. 결국 그 힘은 13억의 인구도 아니며, 막강해진 군사력도 아니며, 바로 인민들을 이끌고 있는 정치에 있다는 생각이다. 다행스럽게도 이것이 정교수의 생각이었다면 수치와 지표를 들어 교과서적으로 중국경제를 얘기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인 방법을 취한 것일 것이며, 그것이 이 책을 읽는 묘미일 것이다.

다들 중국을 외치는 사이, 이미 중국은 쑁하니 앞으로 달려나가 버렸지만 여전히 그는 의심의 눈으로 중국을 바라본다. 서부대개발, 경제특구의 성공, 계획경제 목표의 초과달성 등 찬사를 들어 마땅한 것들 뒤에 공무원의 부패, 많은 인구와 실업, 국유기업의 부실, 무엇보다 급격해진 소득의 빈부격차 등의 함정을 과연 어찌 극복할 것인지가 그의 관심사이다. 결국 이는 사회주의 국가에 독 같은 자본주의 시장을 들여다 놓고, 시장에서 챙길건 챙기고 생기는 문제는 사회주의적 정치체재로 풀겠다는 심산인데, 아직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두 모순을 동시에 굴려 이를 제대로 실현한 국가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 그러하기에 정교수의 말대로 이는 인류의 1/5를 놓고 벌이는 도박같은 실험인게다.

그가 본 중국은 이미 6년이 지났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현실감이 떨어지지 않는 책이다. 결국 작가와 우리의 관심은 잠자는 호랑이가 깨어났으니 우리는 어쩔 것인가에 귀결될 수 밖에 없지만, 이는 호들갑스러운 경외심과 경계심만으로는 해결될 일이 아닐 것이다.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를 지우고 생산적 에너지로 변환시킨 그들의 힘을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이다. 어찌보면 국가의 운명이나, 경제의 변화나 인간의 삶이나 다 마찬가지라 싶다.

문제는 아픈 몸이 아니라, 아픈 몸을 치유할 건강한 정신인 것이다. 낡은 기억을 버리고 변화하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운영의 중국경제산책 탐사와 산책 3
정운영 지음, 조용철 사진 / 생각의나무 / 2001년 12월
절판


그러나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이 있으니, 천안문에 걸린 대형 마오쩌둥 초상과 주석 기념관에 안치된 시신이 그것이다. (중략) 1980년 덩샤오핑은 "영원히 보존할 것입니다. 비록 毛 주석이 과거의 어느 시기에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그는 결국 중국 공산당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요 창립자입니다. 그의 공적과 과오를 비교할 때 과오는 이차적인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중국 인민들이 겉으로는 4인방을 욕하지만 속으로는 毛까지 합친 5인방을 탓하는 것 아니냐는 가위 불경죄에 해당할 반문에 鄧은 다시 "毛 주석의 착오와 린뱌오나 4인방의 문제의 성질은 다른 것입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즉 毛의 오류는 좌경의 '정치적' 실수였지만, 林과 4인방의 죄행은 '반혁명적' 권력 탈취였다는 식으로 역사를 정리한 것이다.-28p쪽

간쑤성 란저우는 서부 대개발의 '뉴 프런티어'였고, 신공항은 그 가시적 성과였다. 란저우와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의 우루무치를 연결하는 1,000킬로미터의 고속도로 공사가 완공되면 서역으로 통하는 하서회랑(河西回廊)에 현대판 '실크로드'가 개통된다. 란저우에서 상하이까지 중간중간에 잘린 1,500킬로미터 철로가 이어지면 중국판 '오리엔탈 특급' 열차가 달릴 것이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도시 연변은 밤새워 불을 밝히고 길을 뚫는 공사장 소음으로 귀가 먹먹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60-70년대 우리의 개발현장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40p쪽

개발의 망치 소리를 직접 들었다는 점에서 서부 취재는 우리 여행에서 가장 '생산적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서부 대개발을 '정치적' 관점으로 보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댐과 도로와 발전소를 비롯한 사회간접자본(SOC) 건설 계획은 어마어마한데, 그 비용의 큰 몫을 외자에 기대고 있었다. 그러나 시설 투자까지 하며 그 척박한 땅으로 들어갈 외자는 많지 않으리라는 것이 각지에서 만난 경제계 인사들의 평가였다. (중략) 정부 역시 그런 현실을 뻔히 보면서도 소문은 크게 낸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식도 있다. CDMA 사업참여를 바라는 한국 기업들에게 중국 정부는 서부 개발에 돈을 대라는 사실상의 '협박'이었다. 어쩌겠는가? 받아야지!-47p쪽

회족(回族)임을 나타내는 하얀 터번의 노인에게 빌딩 벽에 금색으로 빛나는 '서부 대개발' 간판을 가르켰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시가 아니라면,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반응이리라. 이렇게 '서부 내의 서부'가 또 있었다. (중략) 모두가 가난할 때는 불만이 잘 표출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쪽이 갑자기 잘나가서 다른 한쪽이 뒤처지면 불만이 터지기 마련이다. 그 불만을 어떻게 잠재울 무슨 방안이 있느냐는 나의 질문을 그(정부관리)는 단칼에 잘랐다. : "자신의 일은 자신이 책임지는 것, 그게 시장경제 아닙니까?" 멍청한 녀석한테 한 수 가르쳤다는 흐뭇한 표정이었다.-51p쪽

하나 놀라운 것은 毛와 鄧의 생가가 그야말로 '하꼬방' 수준이라면, 劉의 기념관은 마치 궁궐처럼 꾸며놓았다는 점입니다. 鄧은 친필휘호가 여기저기 붙은 것으로 보아서 그는 劉의 생애와 사상 복원에 대단한 정성을 쏟은 듯합니다. 그것은 불우하게 떠난 동지에게 보내는 저승 선물일 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毛에 맞선 劉를 통해 자신의 처지를 내세우려는 간접 '시위'일지도 모릅니다. 진짜 9단들 아닙니까? 미친 세월이 갈라놓았을 뿐, 毛든 劉든 鄧이든 각기 자신의 방법으로 나라를 사랑했다는데는 이의가 없습니다. 나라 밖의 행객이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63-4p쪽

지난 세기말까지 생산력을 4배로 늘려 1조 달러의 국내총생산을 이루려는 것이 경제 대장정의 제1차 목표였다. 그 1조 달러를 13억으로 나누면 800달러쯤 되는데, 이것이 鄧이 겨냥한 중진국 수준이었다. 지난해 중국의 인당 국내총생산은 850달러였으니 본래의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중략) 그러나 이런 정도로는 부자 반열에 들 수가 없다. 鄧은 "1958년부터 1978년까지 20년 동안의 경험은 우리에게 빈궁은 사회주의가 아니고, 사회주의는 빈궁을 없애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가난한 공산주의를 가지더라도 부유한 자본주의는 가지지 않겠다"던 문혁의 '오류'를 겨냥해서 그는 "가난한 공산주의 따위는 없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공산주의 사회는 물질이 최대한으로 풍부한 사회이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이 나왔다. (중략) 양대 기본점의 하나는 개혁개방의 실천이고, 다른 하나는 소위 4대 기본원칙의 견지이다. 시장 중심의 경제 건설을 담보할 안전 장치로서 후자는 다시 사회주의 노선의 견지, 인민 민주 독재의 견지, 공산당 영도의 견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毛 사상의 견지를 포괄한다. 까마득한 옛날 1965년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조심스럽게 제창한 농업/공업/국방/과학기술의 4개 현대화 목표를 고집스럽게 재창하면서 鄧은 2050년 15억 인구에 인당 소득 4,000달러를 곱한 국내총생산 6조 달러 달성을 현대화 장정의 목표로 상정했다. 현재의 속도라면 목표의 조기달성, 초과달성이 충분히 가능하다.-72-4p쪽

시장이 이처럼 계속 행운을 선사하는 한 내일도 오늘만 같기를 기도할 뿐이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가 함정이다. 이익이 나면 따르고, 이익이 없으면 버리는 것이 시장의 논리이다. 그렇다면 실직이든 물가 고통이든 그것을 모두 자신의 책임으로 돌려야 하는데, 중국 인민은 아직 그 위험을 모르고 있다. 그러나 鄧은 내다보았으니, 즉 멈출 데서 멈추지 않은 신경제정책의 탈선 말이다. 그는 "신경제정책을 실시했던 레닌의 생각은 비교적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뒤에 소련의 격식은 경화되었습니다."라고 진단했다. 소련이 걸린 그 동맥 경화를 예방하기 위해 鄧은 집체 소유 견지와 빈부 격차 해소를 계속 강조했다.-77-8p쪽

흑묘백묘 조주노서 취시호묘(黑猫白猫 抓住老鼠 就是好猫)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그게 좋은 고양이다. (鄧, 82p)-82p쪽

영요사회주의적초(寧要社會主義的草)
불요자본주의적묘(不要資本主義的苗)
사회주의의 잡초를 키울지언정 자본주의의 싹을 틔우지 말라. (毛의 鄧 비판)-86p쪽

鄧의 고양이 이론을 한마디로 작살낸 것은 고위 정치가도 아니고 저명한 학자도 아니었다. 음식점의 20대 종업원이었다. 毛 주석에게 공과가 있다면 鄧에게도 있을텐데 그의 과오가 무엇이냐는 우리 질문에 그는 "온포(溫飽) 단계를 지나 이제 자동차까지 살 수 있어 흑묘백묘의 총체적 방향은 좋았으나, 관원들이 사상적으로 변한 것 같다"고 거침없이 대답했다. 쥐 잡는 일에만 빠져 고양이의 잘못을 못 본다는 항의일 텐데, 그러면 무엇이 고양이의 잘못이냐고 다시 묻자 그는 "금전의 자극으로 사상이 변질된 공무원의 부패"를 들었다.-89p쪽

1979년 중국 공산당과 인민 정부는 광둥성의 선전, 주하이, 산터우와 푸젠성의 샤먼에서 '수출 특구'를 시험하기로 결정했다. 이듬해 이들은 '경제 특구'로 개칭한 뒤,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경제 특구 조례를 비준했다. 1988년 하이난성을 추가해서 현재 중국의 특구는 모두 5개이다. 특구 발전의 제일 조건은 통제가 아닌 개방이며, 따라서 특구에서의 외국 자본에 일정한 특혜를 부여하고 중국 정부가 내세우는 사회주의 공유제조차 '신축적'으로 운용한다. 1984년 鄧이 피력한 소신에 따르면 '특구는 창구'로서 기술의 창구이고, 관리의 창구이고, 지식의 창구이고, 대외 정책의 창구이다.-97p쪽

당시 4개의 경제 특구를 지정하는 과정에 선전은 홍콩의 이웃이고, 주하이는 마카우와 가깝고, 산터우는 동남아에 차오저우 사람이 널렸고, 샤먼은 화교 중에 민난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우선 지리적 여건과 역사적 인연을 고려했었다.-103p쪽

시내를 가로지르는 황푸(黃浦)강과 쑤저우(蘇州)하가 만나는 모서리 강둑에 인민영웅기념비가 섰고,그 뒤에 상하이맨션 호텔이 있다. 지금은 468미터의 둥팡밍주(東方明珠) 탑이나 88층짜리 진마오 빌딩 등의 마천루 그늘에 가렸지만 지난 60여 년의 영화는 누구도 비기지 못할 것이다. (중략) 낮에 갔다가 야간 촬영을 위해 다시 들렀는데 확실히 동부의 불빛이 더 찬란해 보였다. 그 빛의 혜택을 어서 서부까지 펼치는 '상하이판 서부 대개발'이 시급한 과제란다. 중국인들은 양쯔강을 흔히 용에 비유하는데 상하이가 머리, 푸둥은 그 눈에 해당한다. 용의 머리를 두들겨 6300킬로미터 밖의 칭하이성 꼬리까지 요동치게 하려는 작전이 풍수지리로 본 서부 대개발이다.-103-4p쪽

지난 10월 江주석은 대만의 중국통일연맹 대표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깜짝 놀랄 제의를 했다. 국호 문제로 대만에서 불만이 많다니 "중화인민공화국이니 중화민국이니 복잡하게 부를 것 없이 그저 중국으로 쓰면 어떠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이에 왕진핑 연맹 주석은 "江주석의 통 큰 제의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답했다. 대만의 천수이벤 총통은 이 큰일날(!) 얘기를 듣고도 아무 말이 없었단다. 중국의 정치 공세야 어찌되었든 대만의 반응이 아주 흥미롭다. 우리 같으면 단연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걸릴 일들이 천연덕스럽게 벌어지기 때문이다.-120p쪽

중국과 대만의 신판 '국공 합작' 소문이 파다하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대만 기업인이 50만이 넘는다. 최근 자료에 따르면 본토에 대한 대만의 누적 투자가 공식 집계로 최소한 400억 많게는 600억 달러 정도지만, 제3국에서 세탁한 금액까지 합치면 그 2배는 되리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중론이었다. 그렇다고 대만이 일방적으로 퍼주는 것도 아니다. 대만의 대중국 수입은 50억 달러에 불과하나 수출은 255억 달러에 육박한다. 그 매력과 이익을 어찌 정치적 이유로 간단히 버리겠는가?-122p쪽

홍콩과 대만은 중국의 눈으로 보자면 제국주의와 냉전의 산물로서 결코 유쾌한 기억이 아닐 것이다. 명분과 기분이야 어떻든 이제 그들은 중국의 '보물'이 되었다. 홍콩이 개혁/개방 학습의 가정교사였다면, 앞으로 대만은 자본주의 실습에 숙달된 조교로 나설 공산이 크다. 기업이 당장 노리는 것은 영리겠지만, 그 뒤에는 중국의 이익이라는 한층 깊은 계산이 따라붙는다. 민족이란 본시 그래야 하는 법이거늘.... 연방제니 연합제니 그 알량한 명분에 매달려 민족의 대계를 그르치는 청맹과니들에게 일국양제에 담긴 허허실실의 지혜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123p쪽

1980년대 수교조차 없던 중국에 학회 참석을 핑계로 첫발을 내디딘 이래 金 사장(삼성그룹 중국본사 사장)은 오늘까지 중국과 계속 인연을 맺고 있다. "처음 1년쯤 되니까 중국을 다 아는 것 같더라구요. 그러나 그 뒤 점점 멍청해지더니,20여 년이 흐른 지금도 헤매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의 중국 체험담을 들려주었다. 어느 한 면을 보고 그것을 전부로 오해하지 말라는 권고였다. 중국의 도시 몇 개를 둘러보고는 이 글을 쓰는 나도 무척 마음이 켕긴다. 그는 개혁/개방에 대해서도 우리의 경제적 관심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저들의 정치적 계산에 유의하기를 주문했다. 사회 불안의 조짐이 보이면 경제 발전을 잠시 멈추고 그 혼란을 막을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162p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