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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일 베를린 접촉과 ‘2.13합의’ 이후 북한과 미국의 접근 움직임이 속도를 더하고, 이에 따라 남북한과 한반도 주변 정세까지 급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북-미 간의 이런 접근에는 김정일(왼쪽) 북한 국방위원장과 조지 부시(오른쪽) 미국 대통령의 결단이 중요한 구실을 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가운데)에 이어 가능성을 보였다가 무산된 북-미 정상회담이 연출되는 극적인 장면까지도 예상되는 급격한 해빙 분위기 속에서 남북 관계의 중요성이 어느 떄보다 부각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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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밖 / ‘2.13 합의’ 이후 한반도
‘2.13 합의’ 이후 한반도 정세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북미관계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북한과 미국간에 수교가 이루어지고 한반도에서 정전체제가 종식된다면 동북아 질서의 새판짜기도 불가피해질 것이다.
‘2.13 합의’는 미국과 북한 그리고 한국내 협상파들의 승리다. 북한을 벼랑끝으로 몰고 간 미국의 강경파들, 이들 네오콘들의 대북강경론에 동조해온 한국의 보수세력들과 일본의 우익들, 핵무장만이 북한의 살길이라고 주장해온 군부를 중심으로 한 북한의 군사보험주의자들의 책동과 방해를 이겨내고 얻은 결과다.
한국의 보수세력들은 갑작스런 ‘날벼락’에 큰 충격을 받아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한나라당은 대북정책 기조를 수정하겠다고 나섰다. 한미동맹을 성역처럼 여겨온 보수 언론들의 글에서는 ‘반미감정’마저 느끼게 한다. 이들은 ‘미국의 배신’을 탓하며 한국의 핵무장까지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를 용인하는 비밀협상을 한 것처럼 허황된 소설까지 써대고 있다.
미국 네오콘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해온 한국의 보수세력들이 미국의 정책 변화와 국제정세에 얼마나 둔감한지가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이들은 얼마 전에도 미국의 정책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반대해 미국에 ‘불충’을 저지른 바 있다.
‘2.13 합의’와 북미관계 급변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부시 대통령의 전략적 결단이 큰 몫을 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핵무기를 조기에 포기하는 대신 미국과 수교를 통해 체제안전을 확보한다는 전략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북한이 ‘2.13 합의’를 통해 얻은 에너지 보상은 ‘제네바합의’에 비하면 매우 미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제네바합의문’보다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인 것은 김정일이 단기 승부수를 두고 있음을 뜻한다. ‘제네바합의문’처럼 수년을 끄는 이행기간이 아니라 1년 정도의 단기간에 핵무기를 포기하고 미국과 수교를 마무리 짓겠다는 계산이다.
북한 붕괴론의 비현실성 깨달아
이는 부시 행정부 이후 미국의 다음 정권과 협상을 하려던 당초 생각을 바꿔 부시 행정부와 담판을 짓기로 북한이 전략을 수정했음을 의미한다. 미국의 차기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정책 방향을 쉽게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부시가 대북 적대정책을 변경할 의지를 보여준다면 부시 행정부와 협상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북한은 중간선거 후 미국의 정책 변화 가능성을 읽은 것이다.
이런 변화의 직접적인 추동력은 두말할 나위 없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다. 미국의 정책 변화에는 부시 대통령의 의지가 실려 있다. 강온파간의 다툼에서 협상파의 손을 들러 준 것이다. 부시는 대북 강경정책을 접고 북한과 양자협상을 통해 북한핵문제를 해결한다는 전략적 결정을 내린 듯하다. 부시의 입장에서는 이라크와 이란문제가 조기에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핵문제라도 풀어 외교적 성과를 내야 할 형편이다. 네오콘의 퇴조와 북미 양자협상을 주장해온 민주당의 의회 장악이 한 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미국의 정책 변화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부시 행정부가 줄곧 대북강경정책을 추진해온 배경은 중국견제와 일방주의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위협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소멸되고 북한과 수교를 하게 된다면, 이런 ‘북한위협론’이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설명이 있어야 한다.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는 ‘네오콘식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정책으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국견제’라는 미국의 전략 목표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지만, 그 방법이 현실주의적으로 바뀐 것이다. 또 ‘북한붕괴론’이 비현실적임을 깨달은 것이다. MD(미사일방어)체제가 상당부분 진척됨에 따라 중요한 명분이었던 ‘북한위협론’에 매달릴 동기도 그만큼 약해졌다. 게다가 대북강경정책이 가져온 부정적 결과도 충분히 목격했다. 북한에 대한 압박은 북한의 중국에 대한 의존성과 중국의 대북 영향력 강화를 가져올 뿐임을 인식했다.
미국으로서는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 변화에 대비한 장기적 포석이 필요하다. ‘북한붕괴론’에 매달리는 미국의 비현실적인 한반도정책은 미국의 고립과 영향력 감소를 자초할 뿐이다. 한국은 점차 미국으로부터 ‘독립적인 국가’가 돼 갈 것이다. 따라서 북한과의 수교는 오히려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떼어놓는데도 유리하다. 북미수교가 이루어진다면 미국의 영향력이 북한지역에까지 미치게 된다.
‘북-미’ 더 깊숙한 합의 했을 수도
주한미군의 존재는 북미관계 정상화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이미 90년대 초부터 북한에 적대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주한미군의 주둔을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추진에 따라, 이런 조건은 더욱 충족될 수 있게 되었다.
부시는 2008년 초까지 핵협상을 마무리짓고 자신의 임기내 북한과 수교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과 미국은 양국관계 정상화를 위한 밑그림과 일정에 대해, 외부에 알려진 것 이상으로 이미 상당히 깊숙한 수준까지 합의했을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우리 눈앞에 놀라운 장면들이 펼쳐질지 모른다. 부시 대통령이 극적으로 북한을 방문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과 같은 국제회의에 김정일을 초청해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 4개국 정상이 한자리에서 손을 맞잡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통일 지향적 평화로 발전시켜야
이에 앞서 초기 이행조치가 마무리되는 4월 중순 이후,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하고, 6자회담 참가국 외무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장면이 목격될 것이다.
이처럼 한반도에 큰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북미수교는 다른 한편으로 한반도에서 냉전체제의 종식을 가져올 것이다. 정전협정을 대신하는 평화협정이 체결돼, 반세기 이상 지속돼온 정전체제가 막을 내리게 된다. 이는 갈등과 대립을 반복해온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또 한반도 냉전 해체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 질서의 새판짜기로 이어질 것이다. 한반도의 안보지형이 변하면, 동북아의 세력구도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불가피 하다.
그런데 문제는 냉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이 바로 통일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북미관계정상화는 미국의 ‘두 개의 코리아’정책을 강화시킬 수도 있다. 미국의 한반도정책 기조가 남북의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현상유지정책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변국들의 향후 동북아 질서에 대한 생각은 각기 동상이몽이다. 자국 중심의 패권질서를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잘못하면 남북한은 이런 주변 강대국들의 패권경쟁과 편가르기에 말려들 수 있다. 신냉전체제의 희생물이 돼 분단고착화로 갈 수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큰 과제가 주어진다. 평화의 변수를 통일의 변수로 변화시켜야 하는 과제다. 분단체제의 존속을 전제로 한 ‘현상유지적 평화’가 아니라, 항구적인 평화를 전제로 한 ‘통일지향적 평화’로 발전시켜야 한다.
이처럼 평화를 통일로 전환시키고 평화와 통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추동력은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이다. 외재적 변수들의 원심력을 압도할 수 있는 남북관계의 구심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남북정상회담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남북의 정상이 먼저 만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민족의 장래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해야 한다.
화해와 협력을 통해 남북을 ‘평화공동체’와 ‘경제공동체’로 발전시키고, 국제사회에 남북의 통일을 기정사실화해야 한다. ‘6.15 공동선언’에서 합의 했듯이, 빠른 시일내에 남북관계를 적어도 ‘국가연합’ 단계나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발전시켜야 한다. ‘평화를 희생한 통일’도 안 되지만, ‘통일을 희생한 평화’도 우리 민족에게는 의미가 없다. 이철기/동국대 교수·국제관계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