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뿐이랴. 이들 보기에 사람은 "탐욕으로 가득한 존재"인즉, 불가의 가르침으로 보자면 스스로 번뇌를 끌어안고 사는 셈이다. 그러므로 이 부부는 무수한 욕망을 다 떨구어 몸과 마음이 비면 참으로 자유로운 삶이라 여긴다. 마음이 이러할진대 이들 사는 모양새가 번듯할 리가 없다. 이들 보기에는 세상에 따로 "더러운 게 없다". "원리를 따지면 근본이 다 같은데" 집이고 옷이고 굳이 빛내고 치장하려 애면글면 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요란한 바깥세상 훔쳐보고 싶은 마음도 없어 구식 텔레비젼 하나 있으되 안테나를 달지 않고 있다. 라디오 한 대면 족한 것을.-20p쪽
주위를 둘러보면 "참 우리가 제일 편하게 살고 있다"고 느낀다. 자유롭고 마음 편하여 이즈음 이들은 "사는 맛"이 난다. 이제, 그 맛의 마지막 경지, "죽음을 가깝게 맞을 준비"를 생각한다. 애당초 내 것이 아닌 농장, 자식에게 물려줄 일도 없고 남길 것도 없으되, 행여 아직도 비워내지 못하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을지 모를 삶의 흔적들을 "깨끗이 훌훌 털고 죽음을 맞는 길"을 새겨본다. 간결하게, 단순하게.-34p쪽
농사라는 글자를 보자. '농農'은 별 신辰 자에 노래 곡曲 자가 합쳐진 말이다. 글자 그대로 보자면 별의 노래라는 뜻인데, 별의 노래가 무엇일까. 그는 하늘의 기운, 전 우주의 기라고 본다. 곧 농사란 하늘의 기운에 따르는 일이라는 것이다. 농사에 대한 이런 생각은 동서양이 차이가 없는 듯하다. 그가 쓰는 바이오다이내믹 농법, 곧 생명역동농법은 독일 사람이 만든 농법으로 해마다 천체를 관측한 결과를 바탕으로 농사력을 만들어 쓰는 것인데, 우리 조상들이 쓰던 농사력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65p쪽
그 생명을 키우는 사람, 농부는 또한 평화를 짓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평화의 '화'라는 글자는, 벼 화禾 자에 입 구口 자로 이루어져 있으니, 쌀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그는 이 쌀이 아무렇게나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 입에 고루 들어가는 것이라고 본다. 밥을 고루 나눠먹는 것이 평화라는 말이니, 새겨볼수록 진리임이 사무친다.-66p쪽
강대인 씨가 벼를 대하는 지극한 마음과 다르지 않을 터, 기는 하늘과 땅과 벼 사이에만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두루 영향을 미치니, 사람을 살리는 농법은 사람을 사리는 밥상으로 이어진다. 몸이 안 좋거나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할 때 만든 음식이 맛이 없다는 것은 음식 해 본 사람은 누구라도 경험한 바가 있을 것이니, 그이는 나아가 식구들 몸과 마음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음식을 할 때면 늘 밝은 마음을 가진다. 부엌 또한 늘 밝아야 한다고 집 동쪽에 자리잡게 하는 것도 그런 이치에서다.-77p쪽
유기농업을 한다는 것은 삶의 근본을 바로잡는 일인즉, 농사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이철희 씨가 먹을거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소를 기르면서였다. 요즘에야 으레 인공수정하기 십상이지만 풀어놓고 기르는 소들은 암소가 발정날 때 황소를 넣어주면 그만이다. 몇 년이라도 황소가 힘이 있는 한 끄떡없다. 그런데 축사 안에 붙잡아 매놓고 사료를 먹이는 소는 생식 능력이 몇 차례면 끝난다. 또 그런 암소는 새끼를 계속 낳지 못한다. 사료에 들어가는 항생제 때문이다. 소도 안됐거니와, 사람의 입장에서도 답답한 것이 사람이 먹는 게 그 고기뿐이더냐. 그걸 보면서 "지금 사람 먹고 사는 게 참 한심하다"고 한탄한다.-139p쪽
임락경 씨는 발효의 원리란 "곰팡이를 먹는 것"이라 한다. 메주를 띄울 때 피는 곰팡이는 메주가 어느 정도 숙성되었는지를 알려 주는 신호다. 흔히 곰팡이는 네 종류로 나뉘는데, 흰 공팡이가 해독제로서 가장 좋다. 메주에 노랑 곰팡이가 피었다면 이는 "메주가 춥다"는 뜻이다. 즉, 메주 띄우는 방 온도가 좀 낮다는 신호로 방 온도를 조금 높여 준다. 파랑은 "메주가 감기기가 있다"는 신호다. 썩 좋지 않다는 것인데, 다만 이게 흰 곰팡이와 섞이면 해독이 된다고 한다. 까만 곰팡이는 "독"이다. 메주가 썩은 것이다. 이건 버려야 한다.-170p쪽
어느 나라든 발효식품이 있다. 서양인들의 주식인 빵이 발효식품이며 치즈와 포도주 또한 그렇다. 우리는 주식인 밥이 발효식품이 아니기 때문에 반찬으로 "여러 가지 발효식품을 동원한다". 김치가 그렇고, 된장, 간장, 고추장이 그렇고, 말린 나물들이 그렇고 말린 생선이 그렇다. 떡은 꿀이나 조청을 찍어 먹고, 고구마는 배추김치나 김칫국을 곁들여 먹고, 고기는 미리 재어 놓았다가 먹는 것이 다 발효의 원리를 밥상에서 실현하는 것이다.-173p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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