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인들이 아니면 성인이 야구를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기껏해야 상대와 던지고 받는 캐치볼이나 할 수 있을까? 나도 어릴 적 맨손으로 테니스공 들고 친구들과 야구도 했고,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그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부러워해 봤을 각 구단의 '어린이 야구단' 유니폼도 곁눈질로 쳐다보았고, 껌 씹으면서 경기하는 선수들을 희안하게 바라보면서 롯데구단은 롯데껌 씹고, 해태구단은 해태껌 씹는지 궁금도 했었지만...

머리가 커지면서 80년대 군부독재 시절 국민의 혼을 빼놓던 3S(지역연고의 프로야구, 애마부인으로 대표되는 한국애로영화, 뭐가 대표적인지 모르겠으나 여하튼 性산업) 정책을 알게되니 야구가 야구로 보이지 않았고, 자연스레 학교에 붙잡혀 야구보는 시간이 없어지다보니... Out of sight, Out of Mind. 야구는 아주 어린시절 선린상고, 천안북일, 광주일고 등의 고교야구를 거쳐, 우연히 보게 된 83년 프로야구 개막전 MBC청룡의 이종도의 만루홈런, 롯데의 전성기를 이끈 김용희, 김용철, 최동원을 끝으로 자연히 내게서 멀어졌다.

그러던 2년 전 어느날.

살아남은 두 개의 프로야구 원년멤버 중 하나인 롯데자이언츠는 맨날 리그 꼴지를 해서 '꼴데'로 불리던 시절에 할일없이 집구석에서 야구를 보다...그 긴장감 넘치는 경기에 나는 그만 회가 동해 버렸다. 앗! 야구닷!

롯데자이언츠 응원을 본 사람들은 유달리 그들의 응원에 생뚱맞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야구를 보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그들의 응원 때문이기도 하다. 신문지 쥐어 뜯어 흔들어대는 '신문지 응원'과 어느날 갑자기 생긴 주황색 쓰레기 봉투 뒤집어 쓴 응원에, 어김없이 나오는 응원가 '부산갈매기'가 긴장 넘치는 상황이면 봐줄 수 있겠는데, 맨날 그러했듯 경기가 어김없이 지고있는 상황에도 8회쯤 되면...

"지~금은 그 어디서 내 생각 잊었는가
 꽃처럼 어여쁜 그 이름도 고왔던 순~이 순~이야

 파도 치는 부둣가에 지나간 일들이 가슴에 남았는데
 부~산갈매기 부~산갈매기 너는 정녕 나를 잊었나..."
가 흘러나온다.

아~ 이 놈들은 이기는 야구보다 즐기는 야구를 하고 있구나...

뻑가는 응원은 이것 말고도 많다.
파울볼이 날아들면 어김없이 외쳐댄다. "아 주라! 아 주라!"
이 얼마나 미래지향적인 응원인가? 전자회사가 가장 최고로 꼽는 아이템 중의 하나가 게임기이다. 브랜드 이미지를 어릴 때부터 머리에 박아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엔 아주 보편화되어 파울볼만 날아들면 공잡은 어른은 바로 주변에 공 줄 어린이를 찾는다. 애들한테 공 주기 전에는 죽어라고 "아 주라!"를 외친다. 작년에는 야구장에서 유니폼 등짝 이름에 "아주라"가 적힌 롯데팬도 발견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한때 잘 나가다 롯데가 맛이 가기 시작했을 무렵, 두 명의 롯데팬이 현수막을 앞뒤로 들고 야구장을 빙빙돌며 시위하고 있었다. "가을에도 야구하자" 이것은 전무후무한, 대단히 함축적이면서도 선수와 구단에게는 한줄기 비수처럼 꽂힐 충격적인 문구 그 자체였다. 4강에도 들지못해 코리안 시리즈에서 롯데를 본 지가 얼마나 오래되었으면... 그 뒤로 언론에서도 이 문장은 자주 인용한다. 내가 본 최고의 선동적인 문장이다.

   

그 뒤로 롯데가 더 맛이 가기 시작했을 때 부산 사직구장에는, 구단주가 보면 충격을 넘어 쇼크사를 일으킬만한 걸게가 걸렸다.

"느그가 응원해라. 우리가 야구하께!"

아... 이쯤되면 감독이든 선수든 어디 무서워서 야구하겠나?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져도 박수쳐 주고, 어이없어도 부산갈매기 불러주고, 이기면 미친듯이 응원하는 그들을 보면 나이살 꽤나 먹는 나도 신이나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경쟁하고 이기는데 미쳐있는 시절이지만, 올해 못 이기면 내년에 이기면 된다는 느긋한 심산으로 이때까지 기다려준 부산갈매기들 덕에 올해 야구는 왠지...땡긴다. 강자보다는 꼴찌를 위한 박수! 딱 내 스타일이다.

 

덧글.....

얼마나 가을에 야구하고 싶었으면...  부산은행에 아래와 같은 상품이 생겼다. 정말 눈물나는 상품이다. 모델은 당근 한국최고타자 이대호다. 주변에 부산은행이라도 있으면 나도 들겠구만...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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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박현승의 '비범한' 2007년
기대 이상의 활약으로 롯데 3번타자 고민 해결
    양형석(utopia697) 기자   

 

시즌 개막 전 롯데 자이언츠의 가장 큰 고민은 '3번 타자'였다.

'트리플 크라운' 이대호와 '검은 갈매기' 펠릭스 호세로 이어지는 4,5번은 믿음직스럽지만 정교한 타격으로 이대호와 호세를 보좌할 선수는 눈에 띄지 않았다.

상무에서 제대한 좌타 외야수 이인구와 1번 타자 못지않은 도루 능력을 갖춘 김주찬 등이 물망에 올랐고, 호세를 3번으로 올리고 '공수 겸장 포수'로 부쩍 성장한 강민호를 5번에 배치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모두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나 개막 한 달이 다가오는 지금, 3번 타자는 더는 롯데의 고민이 아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노장 내야수 박현승이 그 자리를 완벽히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파란만장한 '거인 군단'의 평범한 선수, 박현승

▲ 프로 13년차 박현승은 그동안 별로 내세울 만한 특징이 없는 평범한 선수였다.
ⓒ 롯데 자이언츠
어느 팀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롯데는 유난히 사연이 특별한 선수들이 많은 팀이다.

1984년 한국 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챙겼던 '무쇠팔' 최동원과 7차전 극적인 홈런 한 방으로 '반전 드라마'를 쓴 유두열부터 10대의 나이로 완벽한 투구를 펼치다가 오랜 기간 부상에 시달려야 했던 염종석과 주형광까지.

얼마 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박동희와 7년이 넘도록 깨어나지 못한 임수혁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파란만장한 롯데 선수들 사이에서 박현승은 너무나 평범한 선수다.


1995년 프로에 뛰어든 박현승은 13년째 롯데 유니폼을 입고 '매우 조용히'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경남고와 동아대 시절에는 청소년 대표와 국가대표를 거쳤지만 '엘리트'만 모여 있는 프로 세계에서 박현승은 그다지 돋보이는 선수가 되지 못했다.

연말 시상식에서 폼나게 정장을 입고 개인 타이틀을 수상한 적도 없고, 모두가 감동할 만한 '투혼의 드라마'를 쓴 적도 없다. 입단 3년째였던 1997년에는 타율 .301 19홈런 12도루로 전성기를 보냈지만 3할 타율도, 두 자릿수 홈런도 1997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게다가 박현승의 포지션이던 2루수와 3루수 자리에는 '근성의 양대 산맥'이었던 박정태와 공필성이 버티고 있어 박현승은 본의 아니게 '부산 야구의 영웅'과 주전 자리를 다투기도 했다.

2루수와 3루수, 그리고 1루수를 오가며 롯데 내야진의 빈자리를 채웠고, 때로는 젊은 유망주들에게 자리를 내주며 보냈던 시간이 벌써 13년이다.

박현승은 작년 시즌이 끝나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었지만 '대어급 선수'가 아니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없는 프로야구 제도의 모순 때문에 'FA 선언'도 하지 못했다.

'폭주' 박현승, 14경기 연속 득점 신기록 수립

▲ 박현승의 초반 활약은 팬들의 기대를 훌쩍 뛰어 넘는 것이다.
ⓒ 롯데 자이언츠
성적만 보면 크게 대단할 게 없지만 박현승을 '그저 그런 선수'로 취급하는 것은 커다란 실례다.

조금이라도 기량이 떨어지거나 부상을 당하면 가차없이 트레이드나 방출 대상에 오르는 냉정한 프로 세계에서 '정상급 선수'로 분류할 수 없는 박현승이 13년째 한 팀에서 뛰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그동안 소리 없이 사직 구장을 지켜 온 박현승이 올해는 드디어 힘차게 소리를 내고 있다. 신명철(삼성 라이온즈)의 이적으로 주전 2루수 자리를 꿰찬 박현승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3번 타자 역할까지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다.

2일 경기까지 박현승의 성적은 타율 .350(5위), 최다안타 28개(3위), 출루율 .419(8위). 지난 4년 동안 한 번도 2할5푼 이상의 타율을 기록하지 못했던 그 선수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눈부신 활약이다.

중심 타선에 있으면서 타점이 5개 밖에 되지 않지만 박현승의 득점권 타율은 무려 .412(17타수 7안타)나 되기 때문에 이 역시 '옥에 티'라 할 순 없다. 박현승은 득점권에 주자가 있어도 방망이를 짧게 잡고 이대호, 호세에게 찬스를 이어주는 역할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 달 11일부터 26일까지 14경기 연속 득점 신기록을 세우면서 득점 부문에서 단독 선두(19점)에 올라 있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시즌 초반에 기대 이상으로 맹활약했다가 날이 더워지면서 '변신이 풀리는(?)' 선수들은 매년 등장하기 마련이다. 호세를 제외하고 롯데 야수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박현승 역시 시즌 내내 지금의 상승세를 이어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평범한 노장 선수의 '깜짝 활약'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2007년 프로야구를 더욱 빛나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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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입니다.
매번 이 계절이면 뭔가를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길 정도로 힘이나는 계절입니다. 밖에 어느새 피어버린 꽃들처럼 겨우내 숨겨두었던 비밀스런 마법을 펼칠 시간. 그래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입니다. 다만 항상 그렇듯 봄날은 너무 짧습니다. 연녹색 잎을 피우고, 진초록으로 뽐을 내다, 스스로 제 살을 떨어뜨리고 시린 세월을 견디는 삶. 우리네 인생도 그럴까요? 이제 시간이 없다고 하면 제가 너무 조급한 것인가요? 인생의 봄날. 언제까지입니까?

민예총 수업은 들을만 한가요?

매번 나에게 일 벌인다고 그러더만, 이번엔 아줌마가 선수쳤구만요. 인사동은 한국근대에 사대부들과 고관대작들이 살던 가회동 같은 북촌과 청계천 넘어 일본인들의 거주지하고 하야시패가 주름잡던 혼마치, 지금의 명동의 중간지역으로 조선의 물건을 내놓고 흥정하던 지리적 교차점이라 합니다. 이제는 정태춘 노래처럼 때 빼고 광 내면 다 돈되는 물건들이 널린 거리가 되었지만, 그 면면을 내다보면 한국의 근대가 숨은 곳이 아니겠습니까? 거기서 그 재미없는 서양고전을 훑으신다니... 제가 커리큘럼을 뒤져봤더니 정말 재미없어 보이더이다. 하하..

며칠 전 필름을 정리하다 선조의 몽진길을 따라 올랐던 아카데미 답사사진들을 발견했습니다. 사진만 잔뜩 찍었지 정리는 하나도 안해두어 마음 한켠의 짐이었는데, 아직도 별다른 진전이 없어요. 사진들을 보면서 문득 아줌마와 만난지 벌써 10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충동 아카데미를 처음 찾았던 날을 아직 기억합니다. 건물이 어둡고 우중충했던 아카데미. 그게 벌써 10년 전이라니 믿어집니까? 은행잎 날리는 가을 우체국 앞은 아닙니다만 안암동 학교 앞에서 당신을 기다릴 때의 그 느낌은 그 노래말처럼 생생하게 살아있습니다. 봉사활동 다니신다는 이유로 나를 바람맞힌 그 날. 나빴습니다. 여하튼 우리인생에 아카데미는 봄날 꽃 같던 시절에, 즐거운 놀이터에 제대로 찾아간 듯한 유쾌한 경험입니다.

생각해보면 당신과 MH와 보냈던 시간이 존재했던 그 시절이 얼마 살지않은 이 인생에서 참 즐거웠던, 참 행복했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MH의 탈선(?)에 인사동에 모여 대책회의하던 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즐거운 추억이요, 둘이서 나를 놀려대던 그 환상적인 언어의 유희도 내겐 즐거움이었습니다. 언제 셋이 다시 만나 같이 술 한 잔 기울일까요. 그리운 시절입니다.

'지적허영' - 이 말에 담긴 쁘띠적이고 소시민적, 소비적 이미지를 오히려 받아들이고 나니 한결 마음이 더 편합니다. 그렇지 않소?

이건 우리의 영원한 모토이니, 어쩌지는 못할 일이지만 당신에게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이렇게 글을 드립니다. 좋은 재능 썩히지 말고 글을 쓰세요. 어찌 알겠습니까? 나중에 형님이 책이라도 내줄지. 내 대학시절에 생각했던 주부들이 내는 책의 모범은 사실 "빵점엄마, 백점일기"였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친구가 알바한다고 함께 찾았던 홍대앞의 'Book' 카페의 주인장이 쓴 책 아닙니까. 사실 책을 내든 안내든 그게 무슨 중요한 일일까마는, 당신의 글로 누군가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편하게 쓰실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오래 전부터 해주고 싶었던 말입니다.

이번에 개인적인 일을 경험하면서, 정서라는 것에 큰 무게를 두게 됩니다. 이성과 지식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그 무게는 믿고 싶지않고 인정하고 싶지않아도 끌리게 되는 마력같은 힘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정서는 개인에게는 삶을 지탱하는 저변에 깔린 힘이자, 삶을 풍족하게 만드는 근원입니다. 또한 이제는 그것을 거스르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리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 정서라는 것을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제가 고마운 것은, 같이 뭘해도 즐거울 수 있었던 '10년지기 친구'가 되어버린 것. 다 당신과 MH 덕분이라는 생각에 히죽히죽 웃으면서 오늘의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쯤되면 MH 불러 올려서라도 날잡고 술한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봄인데, 아.. 뭘 터트리긴 해야 할 봄인데, 아직은 움츠린 개구리마냥 삽니다. 그래도 봄이라 즐겁고 한번씩 당신이 웃겨줘서 즐겁습니다.

요즘에 불현듯 아주 어릴 적 꿈을 꾸었던 내가 살 집. 정확히 얘기하면 한옥을 공부해 볼까합니다. 마당 넓은 곳에 풀들 키울 수 있는 정원에 바람 잘 통하는 한옥이면 됩니다. 아주 늙은이 같은 애였다보니, 어릴 때 집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이런 것 그리고 있었다오... 나도 믿기지 않지만. 하여간 남들보고 지으라고만 할 수 없으니, 공부를 해볼까 합니다. 책도 몇 권 구입했습니다. 담배도 줄이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도 은단 몇개 입에 넣고 자판 두들기고 있지만, 생각보다는 그리 심한 금단은 아닙니다. 그냥 술마실 때는 몇 대 피지 뭐...하는 편한 생각으로 줄이고 있습니다. 잘 살지요?

더불어 나의 친구들도 잘 살기를 바랍니다. 글도 쓰시길 바라고.
가끔씩 심심해지는 저를 불러 술 한잔 사겠다는 10년지기 친구를 그리워하며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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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wa 2007-05-02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내게 몰래 훔쳐보고 있다는 건 어찌 아셨누... 갑자기 관음증 환자가 되어버린 화끈함이... 그리고 자꾸 글쓰라고 그러시는데... 전 아저씨처럼 말랑말랑한 글을 못써서 안돼요... 미사여구를 많이 써야 분량을 늘여서 책을 만드는데 그게 안되잖아요. 근데 궁금하게 하나 있는데 '연녹색 잎을 피우고, 진초록으로 뽐을 내다, 스스로 제 살을 떨어뜨리고 시린 세월을 견디는 삶.' 이런 구절은 어디서 빼겨오는거예요? ㅎㅎㅎ

dalpan 2007-05-02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게 몰래 훔쳐보고 있다는 건 어찌 아셨누..." - 내가 모르는게 있나!
"아저씨처럼 말랑말랑한 글을 못써서" - 왕까칠인 제가 말랑말랑해 보이시오?
"미사여구를 많이 써야 분량을 늘여서 책을 만드는데" - 요즘 글자 큰책 많습디다.
"이런 구절은 어디서 빼겨오는거예요?" - 피나는 면벽수련이면 다 되오. MH한테 물어보시구려. 흐흐흐

글 쓰세요~
아띠...나 며칠째 별보고 들어갑니다. 인제 집에 가야쓰것소. 눈깔이 빠질라그래...
 
Mr. 김정일, 차 한 잔 하실까요?
김현경 지음 / 한얼미디어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사 놓고 책장에 그냥 묻어둔지가 꽤 된 느낌이었는데, 책을 다 읽은 후 펴낸 날짜를 보고는 나의 착각에 그만 놀라고 말았다. 초판인쇄 2006년 6월 1일. 얼마되지도 않았네? 하긴 작년 10월에 북한이 핵실험을 했으니, 이 책은 북한의 득을 본 것 보다는 아마 실이 더 컸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하튼 한반도 비핵화라는 큰 대전제에 확실한 금을 그어놨으니 온유하고도 느긋한 눈으로 북한을 보기보다 도끼눈 쳐든 것은 당연하지 않겠나? 그만큼 북한 관련된 일은 부침이 심하다.

북한에 대한 연구자들 사이에 '북한학'이라는 말에 대해 논란이 있을 때가 있다. 흔히 학문으로 인정을 받기위한 연구결과에 있어 기초적인 '자료(Data)'의 존재와 이의 검증이 아주 기본적인 사항인데 북한에 대한 자료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한국이라는 특수 상황이라 자료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 어딜가도 북한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가 없다. 당연히 북한에서 자료를 내놓지 않는 폐쇄적인 국가구조에 그 원인이 있다. 그러하니 일각에서는 김일성이 가짜다. 김정일 정권은 오래가지 못한다 등과 같은 설(說)만 판을 칠 때가 많았다. 그런 시기에 비해 지금은 상당부분 서로의 정보들이 공개되고 교류되는 상황이기도 하지만, 저자와 같은 북한전문기자들도 시인하는 것처럼 예전에는 정보에 상당히 목말라 했을 것이다.

이 책은 아주 가볍게 읽고 싶었던 반면에, 한가지 욕심을 부리자면 기자들의 눈에만 비친 비공식적인 사실들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었는데 아주 다행스럽게도 그런 욕구를 잘 충족시켜 주었다. 저자가 스스로 고백하듯이 한참 시끄러운 시절에 대학 다닐 때 '의식없는 학생'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가는 돈 버는 셈치고 딱 2년만 일하자고 들어온 MBC, 북한전문기자도 친구가 그만두는 바람에 비어버린 자리 대타로 떼우면서 시작했지만, 1994년 영변 핵시설과 한반도 전쟁위기, 지미 카터의 방북과 남북정상회담의 개최예정, 이를 10여일 앞둔 시점에 김일성의 사망이라는 일련의 급박한 상황을 거치면서 저자는 남의 손에 전쟁이 운운되는 한반도의 주인은 과연 누구인지? 북한 제대로 알기라는 복잡한 퍼즐게임에 손발을 쑤-욱 담그고 만다.

북한전문기자로서 북한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직업적 유리함에, 남북을 아우르는 균형잡힌 시선, 투박한 남자들보다 훨씬 섬세한 여성의 시선으로 인해, 북한을 다루는 그 딱딱하고 불리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책은 한결 재밋어진다. 북한전문기자로서의 분석과 전망보다는 가슴으로 만나는 얘기들이 더 많다.

예를 들어, 남북간 도로/철도 연결을 두고 북한의 남침로를 열어주었다는 보수인사들의 우려를 현장을 방문해보니 그럴수도 있겠다고 이해해 주면서도, 오히려 북한의 강경보수세력들은 북침로가 열렸다고 남쪽 보수인사의 호들갑보다 더한 북북갈등이 존재함을 담담히 말해주고, 남쪽은 길만 열었지 땅은 주지 않았지만, 북은 땅을 내놓고 군사시설 옮기고, 장전항과 같은 천혜의 최남단 군사항구마저 금강산 관광 때문에 남쪽에 내어준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얘기한다. 일각에서 얘기하는 퍼주기보다 북으로부터 퍼오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도 주저없이 말한다.

(60p) 그렇다면 한 번 거꾸로 생각해보자. 금강산 연결 육로와 개성으로 가는 경의선 육로는 북한의 보수 진영과 군부에게 어떤 의미일까? (중략) 남북이 철도도로 연결에 합의했을 때 북한 군부의 위기감은 남쪽 보수 인사들의 걱정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고 한다. 아무리 하늘 같은 '장군님' 명령이라 해도 개성에서 평양까지 고속도로로 달리면 불과 2시간. 북침 진격로를 열어주는 것이라고 걱정을 했다고 한다. 우회로도 없는 데다 공군력에서도 열세인 만큼 북한 군부의 고민은 더욱 컸다. 서부전선의 군사 작전 계획을 변경하고 포 진지를 이동한 뒤에야 어렵사리 도로를 개통할 수 있었다.

(62p) 금강산도 마찬가지다. 해상 호텔과 해상 골프연습장. 해수욕장과 횟집 등이 들어서 있는 장전항은 북한의 최전방 천혜의 군사항이다. 한 퇴역 군인은 과거 정보부대가 가장 갖고 싶어했던 정보 중 하나가 장전항 사진이라고 했다. 그런 장전항에 남쪽의 배가 무시로 드나들었다. (중략) 최전방 군사항을 내준 북한 해군의 속은 얼마나 쓰렸겠는가? (중략) 앞으로는 내륙 쪽 내금강까지 개방하기로 했으니 북쪽 군부의 걱정은 늘어가고 있다. 남쪽에서 오는 저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누군지, 뭘 하는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69p) 우리가 북한에 퍼주는 돈은 눈에 보이지만 남북관계로 인한 경제적 효과는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중략) 핵문제나 남북관계로 인해 북한만 경제적 효과를 얻는다는 주장은 분명 착각이다. 북한의 한 해 예산은 삼성전자의 1/4분기 매출 정도이다. 이렇게 엄청난 경제규모의 차이로 볼 때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 안정으로 우리가 가져오는 경제적 효과는 북한이 얻는 것과 비교할 수가 없다. 되로 주고 말로 퍼오는 격이다.

(202p) 2000년 8월, 평양 2차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다시 만난 그는 전금진이라는 본명으로 회담에 나왔다. 그는 베이징의 4성급 호텔 일반실이 아닌 북한 최고의 고려호텔 스위트룸에 묵으며 회담을 지휘했다. 대동강 유람선상에서 그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1998년 회담을 진솔하게 회고했다.
"내 그때 조국으로 돌아가며 피눈물을 흘렸소. 남북대화 30년에 회담 탁자를 치며 고함을 치긴 그때가 처음이었소."
무엇이 그를 그토록 슬프고 분하게 했을까? 판문점에서 국회의장들과도 자신만만하게 회담하던 그는 굶주린 주민들을 대표해 베이징에 나와 비료를 얻기 위해 10여일이나 회담에 매달렸다. 회유도 해보고 소리도 쳐봤지만 그도, 그의 조국도 힘은 없었다. 받고자 하는 것은 많았지만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결국 패장이 돼 빈손으로 돌아가는 귀국길에서 그는 없는 자의 설움을 통감했으리라.
서글픈 회상도 잠시, 그는 웃는 낯으로 남쪽 인사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기 S선생이 가장 악질이었소. 그때 다 될 뻔했는데 거기서 트는 바람에 안 된 거요. 그런데 이제 다시 마주앉아 이렇게 웃으며 얘기를 하고 있지 않소."

그런 살아있는 뒷얘기들을 듣다보면, 결국 일이라는 것이 다 사람들이 하는 것인걸 하는 단순한 결론에 이른다. 험한 얘기들이 오가던 남북간 대화나 시시때때로 부침이 심했던 남북간의 상황은 저자의 말대로 뒤돌아보면 분명히 어렵고 험한 산길을 함께 꽤 많이 오른 셈이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소떼방북으로 시작된 세기의 이벤트는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지고, 서해안에서 해전이 일어나고 핵실험이 있어도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들은 끊임없이 이루어지니 쌍방의 신뢰만 지켜지면 앞으로 더 나은 일들이 많을 것이라 믿는다. 이 책은 그런 희망을 얘기하고 그런 꿈을 꾸는데 가볍게 접근하는 좋은 책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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