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인들이 아니면 성인이 야구를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기껏해야 상대와 던지고 받는 캐치볼이나 할 수 있을까? 나도 어릴 적 맨손으로 테니스공 들고 친구들과 야구도 했고,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그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부러워해 봤을 각 구단의 '어린이 야구단' 유니폼도 곁눈질로 쳐다보았고, 껌 씹으면서 경기하는 선수들을 희안하게 바라보면서 롯데구단은 롯데껌 씹고, 해태구단은 해태껌 씹는지 궁금도 했었지만...
머리가 커지면서 80년대 군부독재 시절 국민의 혼을 빼놓던 3S(지역연고의 프로야구, 애마부인으로 대표되는 한국애로영화, 뭐가 대표적인지 모르겠으나 여하튼 性산업) 정책을 알게되니 야구가 야구로 보이지 않았고, 자연스레 학교에 붙잡혀 야구보는 시간이 없어지다보니... Out of sight, Out of Mind. 야구는 아주 어린시절 선린상고, 천안북일, 광주일고 등의 고교야구를 거쳐, 우연히 보게 된 83년 프로야구 개막전 MBC청룡의 이종도의 만루홈런, 롯데의 전성기를 이끈 김용희, 김용철, 최동원을 끝으로 자연히 내게서 멀어졌다.
그러던 2년 전 어느날.
살아남은 두 개의 프로야구 원년멤버 중 하나인 롯데자이언츠는 맨날 리그 꼴지를 해서 '꼴데'로 불리던 시절에 할일없이 집구석에서 야구를 보다...그 긴장감 넘치는 경기에 나는 그만 회가 동해 버렸다. 앗! 야구닷!
롯데자이언츠 응원을 본 사람들은 유달리 그들의 응원에 생뚱맞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야구를 보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그들의 응원 때문이기도 하다. 신문지 쥐어 뜯어 흔들어대는 '신문지 응원'과 어느날 갑자기 생긴 주황색 쓰레기 봉투 뒤집어 쓴 응원에, 어김없이 나오는 응원가 '부산갈매기'가 긴장 넘치는 상황이면 봐줄 수 있겠는데, 맨날 그러했듯 경기가 어김없이 지고있는 상황에도 8회쯤 되면...
"지~금은 그 어디서 내 생각 잊었는가
꽃처럼 어여쁜 그 이름도 고왔던 순~이 순~이야
파도 치는 부둣가에 지나간 일들이 가슴에 남았는데
부~산갈매기 부~산갈매기 너는 정녕 나를 잊었나..."가 흘러나온다.
아~ 이 놈들은 이기는 야구보다 즐기는 야구를 하고 있구나...
뻑가는 응원은 이것 말고도 많다.
파울볼이 날아들면 어김없이 외쳐댄다. "아 주라! 아 주라!"
이 얼마나 미래지향적인 응원인가? 전자회사가 가장 최고로 꼽는 아이템 중의 하나가 게임기이다. 브랜드 이미지를 어릴 때부터 머리에 박아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엔 아주 보편화되어 파울볼만 날아들면 공잡은 어른은 바로 주변에 공 줄 어린이를 찾는다. 애들한테 공 주기 전에는 죽어라고 "아 주라!"를 외친다. 작년에는 야구장에서 유니폼 등짝 이름에 "아주라"가 적힌 롯데팬도 발견했다.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한때 잘 나가다 롯데가 맛이 가기 시작했을 무렵, 두 명의 롯데팬이 현수막을 앞뒤로 들고 야구장을 빙빙돌며 시위하고 있었다. "가을에도 야구하자" 이것은 전무후무한, 대단히 함축적이면서도 선수와 구단에게는 한줄기 비수처럼 꽂힐 충격적인 문구 그 자체였다. 4강에도 들지못해 코리안 시리즈에서 롯데를 본 지가 얼마나 오래되었으면... 그 뒤로 언론에서도 이 문장은 자주 인용한다. 내가 본 최고의 선동적인 문장이다.
그 뒤로 롯데가 더 맛이 가기 시작했을 때 부산 사직구장에는, 구단주가 보면 충격을 넘어 쇼크사를 일으킬만한 걸게가 걸렸다.
"느그가 응원해라. 우리가 야구하께!"
아... 이쯤되면 감독이든 선수든 어디 무서워서 야구하겠나?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져도 박수쳐 주고, 어이없어도 부산갈매기 불러주고, 이기면 미친듯이 응원하는 그들을 보면 나이살 꽤나 먹는 나도 신이나고 가슴이 벅차오른다. 경쟁하고 이기는데 미쳐있는 시절이지만, 올해 못 이기면 내년에 이기면 된다는 느긋한 심산으로 이때까지 기다려준 부산갈매기들 덕에 올해 야구는 왠지...땡긴다. 강자보다는 꼴찌를 위한 박수! 딱 내 스타일이다.
덧글.....
얼마나 가을에 야구하고 싶었으면... 부산은행에 아래와 같은 상품이 생겼다. 정말 눈물나는 상품이다. 모델은 당근 한국최고타자 이대호다. 주변에 부산은행이라도 있으면 나도 들겠구만...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