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지나다 어떤 남자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갔는데.
바나나향이 났다.
그가 바나나를 먹어서 나는 쌩 바나나 냄새가 아니라,
마치 향수처럼 가공을 해서 부드러운
바나나향이었다.
어쩌면 그는 바나나향의 향수를 쓰던가,
바나나 비누를 쓰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누군가한테서 묻혀 왔던가.
느낌이 좋았다.
코를 콱 찍어대는 진한 향수의 냄새가 아니었기에 -
나는 천성적으로 향에 약하다.
그래서 공기 청정제, 방향제, 심지어 모기를 없애는 살충제까지도
다 나의 적이다.
그런 내가 가끔씩은 약한 향수를 뿌리곤 하는데.
내 옷에 베인 담배 냄새가 싫을 때이다.
초여름이면 근처 공원의 자귀나무에서 부채꽃이 핀다.
그러면 항상 복숭아향이 나는데.
나는 일부러 그 달콤한 향을 맡기 위해 나무 주위를 서성이곤 한다.
나는 원래 체취가 없다.
난다면, 방금 전 먹은 음식 냄새일 것이고,
난다면, 스트레스 때문에 주구장창 피워댄 담배 냄새일 것이고,
난다면, 샤워하고 난 후의 여운이 남은 비누나 세정제 냄새일 것이다.
만약, 자연스레 나는 체취 냄새로 무엇을 고르겠니?
하고 물어봐준다면,
나는 망설임없이 달콤한 복숭아 향이라고 답하겠다.
나는 복숭아.
껍질은 종이 마냥 얇은 주제에
강한 척 하려고 솜털을 잔뜩 뿜고 있지.
너무 가까이 오지마, 나에겐 무수히 많은 까칠한 솜털이 있다구!
부드러운 살 속에 딱딱한 씨를 숨기고 있는
나는
향이라도 부드러워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