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병의 계절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7
로리 할스 앤더슨 지음, 김영선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책 표지와 제목만 봐서는 소설의 배경 시대가 1793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가 없다.
    게다가 수줍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새침떼기 같이 생긴 소녀의 얼굴을 보면,
    '소녀,소년들의 그렇고 그런 사랑 이야기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1793년의 황열병' 이라는 원제목을 '열병의 계절'이라고 바꾼 것이 결정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마치, '사랑앓이의 계절'처럼 보이지 않는가)

    '황열병으로 가족과 터전을 잃은 소녀가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라는 뒷표지에
    써있는 내용이 없었다면 절대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무려 217년 전의 배경을 하고 있는 소설의 표지에 저런 현대적인 감각을 느끼게 하는
    표지라니. 센스꽝이잖아. -_- 

    내용은 재밌었다. (그럼에도 별사탕을 2개만 박는 인색함을 보인 것은 나의 뇌를 자극
    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5,000명의 영혼을 거두어 갔지만 그 병을
    이긴 자들이 어떻게 그 악몽같던 시간을 버티어 냈는지 보여주는 소설이다.
    청진기나 체온계도 없던, 의학이 아주 열악했던 시절이었으니 전염병이 어떻게 퍼지는지도
    몰랐던 순진한 사람들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말도 안되는 방법으로 병을 몰아내려고 했었다.
    그 황열병을 옮기는 주범이 '어느 밀림의 암컷 모기'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들은 쉴 새 없이
    자신들 주변을 앵앵거리는 모기들을 피하거나 필사적으로 죽이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어쨌든, 걸리면 엄청난 고열에 시달리다가 검은 피를 토하고 단시간에 죽는 그 무서운 병은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눈다. 자신이 피해볼까봐 다른 사람들을 적대시하고 외면하는 부류와
    위험을 무릎쓰고서라도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돕는 '영웅적인' 부류이다. 

    신종 플루가 기승을 부릴 때, 공공장소에서 누군가 재채기를 하거나 기침을 하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향해 욕을 하거나 지나칠 정도로 뭐라고 했다고 한다. 코가 간지러워서 그랬는지
    비염이라서 그랬는지 다른 이유를 따지기도 전에 '나에게 위협하는 병원균' 취급을 했다.
    목숨과 달려 있는 병이었으니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소설 속, 황열병을 옮길까봐, 필라델피아 사람들이 자신들의 도시로 오는 것에 총을 들고서
    막는 타도시 사람들을 보았을 때는 측은하기도 했다. 

    지금의 인간은 천적이 없다. 유일한 것이라곤 바이러스와 자연재해, 그리고 전쟁이다. 
    지금 세대의 인류 역사를 보면 많은 전염병들과 자연재해들은 생태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인간 솎아내기' 작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자연의 모든 생물은 자기 위치에서
    모두 적당한 개체 수를 유지한다. 천적에 의해서. 인간은 도대체 적당한 선이란 것이 없다.
    개체 수가 너무나 많이 늘어나고 있다. 다른 생물들과 지구에 위협적일 정도로.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그 '솎아내기' 작업은 인류의 의학과 문명을 더욱 더 발전시키는
    동기가 된다.  그리고 인간들 수가 더욱 더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한다.

    전쟁은 인간들 스스로 벌이는 짓이다.
    나는 가끔 이해가 안되곤 했었다. '신은 왜 저렇게 무식한 짓거리에 침묵을 하는가'
    신이 있다면 영토전쟁은 그렇다쳐도 종교전쟁은 도저히 눈뜨고 봐줄만한 일이 아니잖아?
    그건 그것대로 인간의 개체 수 줄이기 작업이 아닌가 싶다.
    상당히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어쩔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어울리지 않게, 재난을 당한 인류에 대한 영화나 책 등을 보면서 '희생적인 몇몇의
    인간들' 덕에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결말을 좋아한다. 그리고 동물이나 자연 등에 헌신하는 인간을
    보면 마구 껴안고 사랑해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그들은 확실히 사랑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이나 지구가 아무리 심하게 '인간 솎아내기' 작업을 한다 해도 나는 침묵을
    지킨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인간종이 더 빨리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을 싫어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하루종일 사고치는 강아지를 심하게 혼내고 나서도 그 귀여운 표정으로 다가오면 어쩔 수 없이
    안아줄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분명, 추하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생물이기도 하다.
    (인간들이 만들어낸 음악, 문학, 예술 등 너무나 많은 작품들을 보고 미워할 자가 어디 있나) 

    소설 속, 14살 소녀'매티'는 죽음과 굶주림을 겪고 나서 더 이상 '어린 여자애'가 아니게 되었다.
    그녀는 이제 혼자 힘으로 가게를 운영하고 하루 하루 힘차고 감사하게 살아가는 성숙한 사람이
    된 모습으로 끝인사를 보내온다.
    지금의 인류는 '어린애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청소년 같은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아니, 나는 그럴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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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1-15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와 책내용이 따로 노는 거군요.
열병의 계절이라는 제목은 에로틱한 분위기를 풍기고 싶었을까요?

L.SHIN 2010-01-15 19:25   좋아요 0 | URL
흠, 표지디자인 하는 사람이 전체적인 내용의 흐름보다는 '한 소녀의 성장기'에만 초점을
맞춘데서 그런 거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