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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어 - [할인행사]
존 아미엘 감독, 힐러리 스웽크 출연 / 파라마운트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어릴 때, 자석의 S극 N극이 서로 붙거나 밀어내는 것을 보거나 코팅종이에
정전기를 일으켜 머리카락을 삐죽삐죽 세웠던 일이 참 신기했었다.
직접 전선을 연결하여 꼬마전구에 불을 켰을 때는 너무나 기분이 좋았었다.
지금 우리는 전기, 전류 등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TV, 컴퓨터, 핸드폰, 모든 가전/전자제품들, 전기로 구성된 의학 기기들.
고무, 플라스틱, 유리, 종이 같은 몇몇 것들을 제외하고는 부주의 했을 때
감전사고의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는 시대.
전류가 통하기에 인간의 몸만큼 쉬운게 어딨어. 물덩어리 생물인걸.
이 영화는 이 '전기시대의 생물들이 한 번에 타격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확 까발려 놓았다. 빙글빙글 끝없이 돌고 돌아야 하는 지구의 중노동에 얼마나
감사하고 살아야 하는지, 제발 쓸데없는 짓거리 하지 말라고 인간들의 얄미운
구석을 꼬집어 놓는다.
'아마게돈' '딥임팩트' '인디팬던트 데이' '투모로우' 영화들의 공통점은?
지구의 생명이 달린 엄청난 재난영화이다.
외계인의 침공이든 자연의 이상 변화 때문이든간에 인간은 자신들의 삶과 터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늘 승리한다.
작품성이 있든 유치하든 상관없이 이런 '종말론'을 들추어내는 영화들이 자꾸
나오는 것은 인간들 스스로 '지구를 보호하자'라는 암시를 서로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싶다. 늘 어느 시대나 '계몽운동'은 성공해 왔고 더 나은 시대로 변했다.
이런 류의 영화들은 21세기 전세계적인 계몽운동이라고 봐둘까.
내적으로는, 지구가 더 이상 병들지 않게 인간들이 노력하자
외적으로는, 행성이나 외계의 무언가로부터의 충격이 있을 때를 대비하자 라는 등의?
어쨌든, 어느 쪽으로든 지구의 미래에서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하므로
저런 영화들을 참 재밌게 보았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기도 했었다.
이 영화도 지구의 재난영화이지만 다른 영화들과 조금 다른 것은 지구의 핵이
움직임을 멈추면서 이상 변화가 생기고 모든 생물은 물론이고 지구까지 죽을 수도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타 영화들이 인간들의 본인 의지와 상관없는 거대한
무력과 맞써 싸우는 영웅담이라면, 이 영화에서 잘못한 것은 분명하게 인간이라는 점.
물론, 극소수의 인간들 때문이지만 평생 돌고 돌아야 하는 지구의 움직임을 멈추다니.
지구를 보호해주던 자기장들에 구멍이 나서 걸러지지 않은 태양빛이 모든 것을 녹여버리고,
전기 혹은 자기장, 주파수 등이 통하는 모든 것들 그리고 자연의 흐름 모두가 엉망이 된다.
늘 그렇듯, 지구를 지켜내기 위한 '영웅'들이 구성되고 문제 해결에 나선다.
지구를 관통하여 엄청난 압력과 고열로 가득한 외핵에 가는 것이 지금의 기술로 가능할까?
싶은 심술 궂은 의문을 해보긴 했지만, 결과가 어떻게 될지 뻔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새삼스레 완전 집중해서 영화를 보았다.
싫었던 것이다.
지구가 멈추는 것이. 죽어가는 것이.
자신들의 생명을 기꺼이 바치며 임무를 완수하려던 인물들이 살기를 바랬다.
왠지 모르지만 나는 두려웠다.
저것이 언젠가는 현실이 될 것 같은 기분에.
그래서, 잔잔한 흐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부디, 저 모든 영화들이 그저 인간들의 귀여운 상상력으로만 그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