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낮에, 밥을 먹으면서 우연히 돌려본 케이블 채널에서 오리지날 영화를 보았다.
1939년 제작, [오즈의 마법사]
어릴 때 너무나 감동적으로 본 영화라서, '다시 보자' 하는 향수 같은 기분과 함께 채널 고정.
늘~ 느끼는 것이지만, 그 당시에 만들어진 판타지 영화 치고는 꽤 공을 들여 만든 것 보면
'저 시대에 저렇게까지 했다니, 대단한걸~' 하고 칭찬과 감탄을 하다가도,
'윽, 저 어설프고 어색한 세트/설정 좀 봐' 하고 내가 제작한 것인 마냥 민망해지기도 한다.
이런, '향수 어린 감동'과 '민망함'의 교차점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이 영화 뿐만은 아니지만서도.
한 때, 내게 '오즈'라는 단어가 대단히 특별한 단어로 존재할 정도로 영향을 미쳤던 영화인지라
그 민망함은 어느 때 보다도 배가 되었지만, 보는 내내 즐거웠다.
분명...저 노란길 끝 부분 부터는..뒷 배경 그림일텐데..거침없이 계속 걸어가는 도로시를 보면서
벽에 부딪힐까봐...가슴이 조마조마했다...-_-
'무조건 노란 벽돌길을 따라가야 해' 라는 것이 너무나 재밌어서, 어릴 때 도로에 그려진 노란 선만
밟고 다닌 적이 있었다. 물론, '뒤는 절대 돌아보면 안돼' 라는 규칙이 무서워서 앞만 보고 가다가
길을 잃을 뻔한 적도 있지만.(웃음)
어릴 때는 그저, '재밌다!' 하는 느낌으로만 봤다면, 철이 든 지금의 내 시각으로 본
[오즈의 마법사]는 3가지 단어를 콕콕 상기시켜 주었다.
똑똑해지고 싶어 두뇌를 가지고 싶어하는 짚 허수아비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두 가지를 암시한 게 아닌가 싶다.
하나는, 겉모습만 번지르르 하고 머리에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사람들 비꼰 것이거나
하나는, 중요한 것은 뛰어난 두뇌의 소유가 아니라는 점.
허수아비 아저씨는 인간들처럼 두뇌가 없었어도 충분히 똑똑했으며 사려 깊었고 상황에 따른
대처 능력도 아주 훌륭했으니까.^^
모두를 사랑할 수 있는 따뜻한 심장을 가지고 싶어하는 양철 나뭇꾼 아저씨의 이야기도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하나, 모든게 완벽하지만 마음이 없는 사람을 풍자한 것이거나
또 하나, 실체의 심장이 없어도 친구를 위해 자신의 바램은 어찌해도 좋으니 친구를 돕겠다는
다정한 마음씨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니까.
'위대한 오즈의 마법사'가 그에게 해준 말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가가 아니고, 얼마나 많이 사랑받는 것입니다."
솔직히, 나는 거꾸로 이야기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하고 아쉽긴 했지만,
심장이 있어야만 세상을 사랑할 수 있어~ 라고 생각하는 양철 나뭇꾼에게는 적절한 지적이 아니었나 싶다.
밀림의 왕이어야 할 사자는 너무나 겁쟁이라서 용기를 가지고 싶어했다.
마녀와 싸울 때 벌벌 떨면서도 끝까지 친구들과 함께 한 사자 아저씨, 그 정도면 이미 충분히 용기를
가지고 있는건 아닌지... 어쩌면 사회에서, 어른들이 강요하는 용기란 너무나 판에 박힌 것이 아닌가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었다. 세상 모두가 나를 모실 정도의 강력한 파워가 용기가 아니고,
친구를 위해 위험에 맞설 수 있는 것이 용기 아닌가 하는 그런.
언젠가 우연히, 어떤 영화에서 누군가 던진 멋진 대사가 떠오른다. 그도 명언에서 인용한 것이지만.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다. 두려우면서도 공포에 맞서는 것이다"
집에 돌아가야겠다는 일념 하에 오즈의 마법사를 찾은 도로시 덕에 3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시나리오가 좋은 어린이 영화다.
보면서 재밌었던 보너스 팁은, 도로시가 신었던 빨간 구두가 내심~ 탐이 났으면서도,
'에엥? 왜 빨간 구두 신은 아가씨가 떠오르지?' 하는 것이었고(웃음),
그런데..정말, 도로시, 빨간 구두에 회색 양말은 아니잖아? ㅡ.,ㅡ
서쪽 마녀를 보면서, '세상에...저렇게 못생기고 거부감 일으키는 마녀는 처음 본다..' 였다. -_-
마치 [헨델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녀와 닮은 듯.
아, 정말이지 헨델과 그레텔을 살찌워 먹으려던 그 마녀가 얼마나 싫었던지.
그런데 왜..마녀는 물에 맞고 녹아버렸을까? 도대체 성분이 뭐길래? ㅡ.,ㅡ (긁적)
어쩌면, 이 세상에서 저 3가지는 꼭 필요한지도 모른다.
영특한 머리, 따뜻한 마음, 진정한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