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쿠지로의 여름 - 할인행사
기타노 다케시 감독, 기타노 다케시 외 출연 / 씨넥서스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 지난 리뷰 옮기기 >

    작성일 : 2007년 5월 7일

 

 

    영화 [배틀료얄]에서 냉정하고 잔인한 선생으로 나와 깊은 인상을 주었던 '기타노 다케시'.
    그는 일본 영화계의 대부이자 괴짜에, 특이한 천재에, 때로는 다정하게 때로는 엄격한
    멋진 중년 배우이자 감독이다.
   
   Kitano Takeshi


    워낙에 연예인이나 배우나 가수 등 유명인에 대해 관심도 없고 무지해서 머리속에 기억하는
    이름들이 손으로 꼽을 정도로 없음에도, 나는 절대 이 사람의 이름은 잊어버리지 않는다.
    카리스마가 풀풀~ 나는 얼굴 이면 아래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표정, 그와 닮은 그의 영혼들,
    그리고 밉지 않게 엉뚱한 그의 괴짜스러운 부분이 나는 너무나 좋다.

    그의 수 많은 영화들 중 가장 '기타노 다케시'다운 영화는 바로
    이 [기쿠지로의 여름]이 아닐까 싶다.


    몇년 만에 다시 만난 '기쿠지로'는 여전히 나를 유쾌한 즐거움 속에 살며시 넣어주어서 행복했다.
    사실, 몇년 전에 혼자서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생긴 것이 있는데.
    내 발바닥 어느 한 부위가 이유도 없이 종종 간지럽게 되었었다. 그렇다고 벌레에 물린 자국도 없다.
    다른 피부처럼 그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시침 뚝 떼고 있다가 -
    수시로 간지러워서 긁게 만든다.
    그것이 모기에 물린 것처럼 지독한 간지러움도 아닌, 일시적으로 피부에서 일어나는 가벼운 간지러움도
    아닌 것이 묘한 즐거움을 주는 것에 -
    잔잔하게 웃음을 선사해주었던 '기쿠지로'의 명을 따서 나는 그 부위를 이렇게 부른다.

    '나의 기쿠지로'

    도대체 '기쿠지로'가 뭐길래, 신체 부위에 그런 이름까지 지었을까.

    이야기의 발단은, 영화 인물 중 한명이 말했던 것처럼 '3류 소설에나 나올 법한' 것으로 시작된다.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돈 벌러 나갔다며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표정에 변화 하나 없는
    우울한 소년이 여름방학에 '엄마를 찾아 떠나는 여행' 에 철 없다 못해 어린애보다 더 유치한 중년
    '기쿠지로'가 동행을 하면서 그의 엉뚱한 세계에 사람들을 끌어 놓는다.

   
  


    말도 함부로 하고, 뭐든지 자기 기분 내키는대로 행동하는 철 없는 아저씨 '기쿠지로'는 소년을
    엄마가 살고 있는 곳까지 잘 데려갔다 오라고 동겨녀에게서 받은 용돈 5만엔으로 경륜장으로 직행.
    그는 엄마 찾아 떠나고 싶어하는 소년의 기분은 아랑곳 않고 경륜에 돈 걸기 바쁘다.
    인간은 내기를 좋아하는 동물인가 보다.
    말 경주도 모자라, 사람이 직접 상품이 되는 자전거 경주 도박장이라니.

    우연히 소년이 번호를 맞추어 상금을 타게 되자 본격적으로 돌입하는 '기쿠지로'. 정말 철 없다.
    그러나 세상에 운이란 것이 어찌 그리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었던가.
    한번의 우연적인 성공은 내리 실패라는 쓴 물을 연거푸 퍼서 올려줄 뿐이다.
    세상에 공짜란 없다. 노력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뜻이라구요, 아저씨 !

    어쨌든 '기쿠지로'는 소년과 함께 '엄마 찾아 여행'을 시작하면서 갖은 우여곡절과 헤프닝을 겪어
    관람자로 하여금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가는 길 중간에 묵은 호텔 연못에서 낚시를 하거나, 장식용 배 위에 올라가 앉아 있는 둥.
    호텔 데스크 직원한테 '니 자동차로 태워다 줘' 라고 뗑광부리는 뻔뻔함까지.

   
   


    중간에 얻어 타게 된 차의 주인 젊은 남녀와 평화로운 초원에서 재밌게 놀기도 하고.
    옥수수밭에서 서리를 하고 있기에 먹으려나보다 했더니, 그것을 도로 옆에 놓고 팔고 있는 그의
    웃길 정도로 심한 뻔뻔함과 재치는 정말 사랑스럽다.

    어쨌든, 아저씨와 소년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고 추억도 만들면서 서로 정이 든다.
    무표정하고 항상 우울한 표정, 땅에 시선을 박고 살아가는 소년은 점점 밝은 표정이 되어갔고,
    철 없이 살기만 했던 아저씨는 조금씩 '나'가 아니라 '남'을 배려하는 이쁜 마음이 들기 시작한다.

   
   


   
   


    함께 영화를 본 사람의 표현처럼 -
    두 주인공도, 아름다운 시간을 함께 보낸 다른 인물들도,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깨끗하게 만드는 -
    한 여름의 소나기가 지나가고 난 뒤에 잎사귀들에 맺혀 있는 이슬 방울 같은 영화이다.

    
  


     그들의 엉뚱하고 재밌는 모습들을 보며 크게 웃을 때마다 -
    영화 중간 중간 흘러나오는 맑고 아름다운 OST를 들을 때마다 -
    삶의 회색빛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영혼이 수채화색으로 물들어가는 기분.


    애니메이션계에서 '영혼의 치료사'로 '미야쟈키 하야오'가 있다면 -
    영화계에선 '기타노 다케시'가 아닐까.

    오늘도 나는 나의 '기쿠지로'를 만지작거리며 -
    시덥잖은 것에도 활짝 웃는 , 그리고 사소한 즐거움도 여러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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