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인한다 1
조르지오 팔레띠 지음, 이승수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 지난 리뷰 옮기기 >

    작성일 : 2008년 1월 17일

 

 

    낯설은 나라, 낯설은 도시, 낯설은 이름들로 가득 찬 이 책의 사건 현장 배경은 모나코 왕국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접경 지역에 위치한, 전체 인구가 겨우 32,000명 조금 넘는(2006년 기준),
    그러나 1인당 소득이 3만달러에 달하는 부국이며 아기자기한 집들이 그 좁은 땅에 빼곡히 들어찬 곳.
    나라의 주 수입원이 카지노, 관광, 모터보트 경기 등이다 보니 늘 사람들과 따뜻한 지중해 기후의 활기로만 가득한 -
    그 어떤 흉악 범죄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나라에서 엽기적인 연쇄 살인이 일어난다는 것, 그리고 그 전개되어지는
    방법이 조금 신선했던 추리물이다.

   

    내가 진작에 이런 사진들을 보면서 책을 먹었다면, 처음에, 낯설은 도시명, 인명, 지명등에 그렇게 곤혹스러워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쩝...

   

    모나코 왕궁의 정문

 

    다정하고 그윽한 목소리와 지적인 분위기로 많은 청취자들을 사로잡은 라디오 DJ '장루 베르디에'가 어느 날 처럼
    늦은 저녁의 방송을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섬뜩한 전화가 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 나는 살인한다..."

    방송국 관계자들은 그저 질이 나쁜 장난 전화로만 생각하지만, 지난 밤 실제로 일어난 살인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피로 쓴 '나는 살인한다' 라는 글귀를 경찰들이 발견하게 되면서 살인범의 그 장난스런 전화는 사건의 실마리가 된다.
    죽은 사람들의 얼굴 가죽을 깨끗하게 벗겨가 버리는 사이코 살인범.
    그의 손에 위해 저 세상으로 날아가 버린 사람들이 열 명, 그 중에서 얼굴 가죽이 벗겨지지 않은 건 단 두 명.
    문득, 영화, <페이스 오브>가 떠올랐었다.
    그 영화를 볼 때, '과연 뜯은 얼굴을 다른 사람의 근육 위에 아무 저항없이 붙이는 것이 가능한가' 싶었지만,
    현재 실제로도 다른 이의 얼굴 피부를 이식해서 성공한 사례가 있으므로 소설 속의 엽기 행각 또한 그다지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물론, 범인은 축제 가면 마냥 죽은 이들의 얼굴을 뒤집어 쓸 용도로 ?어낸 것은 아니지만.

    게다가 얼마 전에 '광기(光氣)냐, 광기(狂氣)냐' 라는 페이퍼를 쓰게 할 정도로 이 섬세하고 교양 있기까지 한 연쇄살인범은
    자신의 살인 행각에 늘 배경 음악을 끼워넣고는 했다.
    자신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경찰들에게 '어디 머리 좀 굴려봐라' 란 듯이 라디오의 예의 그 방송 시간대에 전화를 해서
    살인 예고장을 날리면서 들려주는 음악들을 '어디서 누구를 죽일지'의 단서로 휙 던져주기까지 하는 오만함과 여유로움을
    보여주는데, 실제로 존재한 그 음악들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까지 했었다.

   

    모나코 왕궁 경찰
    소설 속 주인공의 입을 통해, '지상 최고의 치안을 자랑하는 경찰'의 모습치고는 너무 허술해 보여 웃음이 나왔다.

    어쨌든, 처음엔 그렇게도 먹는 속도가 안 나더니 1권을 다 해치우고 2권째부터는 조금 흥미진진해져서 단숨에, 그것도
    아주 맛있게 먹어치울 수 있었다. 나중에 범인이 잡히고 나서 그가 왜 얼굴 가죽을 벗겨갔는지, 왜 그런 정신이상을
    보였는지, 그의 과거에는 어떤 이유가 '나를 이렇게 만든건 이것 때문이야' 라고 범인의 행각을 정당화 시킬 수 있는지
    궁금해 죽겠는데, 아~ 이 눔의 작가는 어찌나 뜸을 들이는지.

    범죄심리학자 '쿠루니' 박사의 개인 생각을 곁들여 범인의 범죄에 대해 설명을 하는 부분에선 여러 생각이 교차했었다.
    실제 범죄심리학 이론들에서 다뤄지는 부분 중, 그는 '환경적 요인'에 해당되었기 때문.
    한편으론, 괴팍했던 아버지의 '유전'을 이어받은 '생물학적 요인'도 해당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설득력이 별로
    없으므로 금방 잊어버렸다.
    책을 다 먹고 나서 반전으로 결말을 맺게 한 범인을 생각하며 책 표지를 한참 뚫어지게 노려보았었다.

   

     범인을 잡겠다던 FBI, 주인공 '프랭크 오또브레'가 열심히 누비고 다녔던 곳 중 하나인 - 몬테카를로
     솔직히, 개인적으로, 프랭크의 이름을 볼 때마다 조그마한 케익 '오또'가 생각나서 자꾸만 달콤한 향기를 느꼈었다.

     왜 그는 굳이 현장에 '나는 살인한다' 라는 글귀를 썼던 것일까? 좀 더 용의주도하고 교활하게 모든 것을 은폐할 순
     없었나? 아니, 소설을 쓰기 위한, 혹은 독자로 하여금 호기심을 유발하게 할 제목으로써 그 부분이 필요했던 것일까.
     그것이 목적이었다면 확실히 성공했다고 말해두고 싶다.
     다시 책 속 세상으로 들어가서, 범인이 완전범죄를 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행동에서 나오는 분노를, 슬픔을
     세상이 읽어주기를 바랬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는 세상속에 동화되고 싶어하면서도, 세상 밖에 있으려고 했던 남자이다.
     그는 모두에게 다정하게 굴면서도, 모두를 증오했던 사람.
     그는 타 생명을 귀하게 여길 줄 알면서도, 동시에 너무 쉽게 꺽어버리는 사람.
     모든 것을 가졌지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 

     라디오에 전화할 때 사용했던 그 음성변조로 통해 중얼거리던 그의 말귀가 유난히 맴돈다.

 

 

     난 하나이자 아무것도 아닌 존재요....

 

 

 

      인간으로써 사는 것이 가끔 공허해지고 무기력해질 때가 있는데,
      그것은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질문이 내 안에서 또 다시 얼굴을 들이밀 때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시작과 끝이 있는 것처럼 산다.

      그저께, 오랜만에 만난 지인에게서 나온 이 말에 나는 '그렇지. 그렇지.' 하고 맞장구를 치었다.

 

     "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알려고 하지 마라. 중요한 건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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