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1
이시다 이라 지음, 김성기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 지난 리뷰 옮기기 >

    작성일 : 2007년 11월 29일

 

 

    글쎄, 7,8년전이었나.
    한 무리가 있었다. 10대들. 중,고등학생 혹은 중퇴자의 소년,소녀들이 있었다.
    그 중에서 싸움을 잘 하고 리더십이 있으면서도 조용하게 카리스마를 풍기는 19살 소년이 있었다.
    그 애가 그 무리의 '짱'이었었다.
    그 무리들은 여러 학교 출신들로 소위 그 동네에서 '잘 나가는' 패거리였었다.

    내가 그들을 알게 된 것은 우연히 음악과 댄스를 통해서였고,
    그 '짱'이라는 아이와 어떤 계기로 친했졌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 소년은 늘 나에게 깎듯하게 대했고 나한테만큼은 '짱'다운 무게감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럴것이 나는 그 무리에서 유일하게 20대였으며 (20대 초반이었어도) 제일 연장자였다.
    '짱'이 늘 예의를 갖고 대하는 사람이다 보니 자연스레 그 밑의 아이들도 나를 어려워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보다 100만배 까칠하고 무뚝뚝한 내 성격탓에 그들의 눈에 내가 '뭔가 있어보이는' 사람쯤으로
    비춰졌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싸구려 담배를 피웠었고, 나는 당시 말보로를 피웠었다.
    그들은 그 별것 아닌 브렌드 담배를 호기심에 피우고 싶어했다.
    그 무리들 중에서도 꽤 위치가 높은 녀석들이 다른(자신보다 아래인) 녀석을 통해 나에게 담배를
    빌리러 오면 나는 목소리 좌악 깔며 말하곤 했었다.

    " 본인보고 직접 오라고 해."

    다른 패거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든 아니든간에 내 눈엔 그저 '어린 동생들'이었고 그런 유치한 계급놀이는
    내게 통하지 않았었으니까 그들은 나중에 나를 잘 따르게 되었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그들 뒤에서 '거리의 소년들'을 구경하는 관람자였지 참여자는 아니었었다.
    그들 눈에 나란 존재는 가끔가다 얼굴을 비춰 같이 놀아주거나, 춤을 추거나, 밥이나 술을 사주거나,
    한 겨울에 눈 맞으며 미친듯이 농구를 하거나 하는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그들의 생활, 행동에 일절 관섭을 하지는 않았었다. 그들은 그런 내가 편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때 당시 나는 그들의 밤거리에서 '일말의 자유' 냄새를 맡고 싶어 두리번거리는 들고양이였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마코토는 겁없는 거리의 아이들이 크고 작은 사건들을 일으키는 이케부쿠로에서 중립자의
    역할을 지키며 아주 열정적인 참여자로 나온다.
    친한 친구를 살해한 범인을 잡는 것처럼 개인적인 일에서 시작하여 칼과 파이프를 든 수백명의 아이들이
    라이벌 패거리를 향해 전쟁을 벌이는 것을 평화롭게 해결하는 공적인 일에까지.
    물론, 세상 모든 거리의 아이들이 이 책에 나오는 이들처럼 양심적이지도 신사적이지도 인정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문제아, 불량아, 썩을놈들' 이라는 시선을 받는 사회적 이미지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아니 적어도 내가 직접 경험한 것들만 나열한다 해도,

    " 이봐 어른들, 너무 색안경 쓰고 보지마. 당신들보다 훨씬 나은 녀석들이 거리에 있어. "  라고 외칠 수 있다.

    어른들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 머리속에 '망각'이라는 악세서리를 착용하고 사는지,
    거짓말은 숨 쉬는 것 만큼 쉽게 하고, 학교에서 배운 기본적인 도덕들도 아무데나 버려버리는데다,
    서로 못 잡아 먹아 먹어 안달이 난 기생충처럼 헐뜯고 비방하고 모함을 해댄다.
    그런 그들이,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한 그 어른들이 이 소년들보다 나을 것은 없다고 본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흔한 에피소드이겠지만 당시 나에게는 신선한 사건으로 기억되었던 것이다.
    무리중 '말단'에 가까운 한 아이가 다른 이의 핸드폰을 '빌려' 가서 수십만원이 넘게 전화통화를 했다고.
    그것도 모자라 다른 패거리들에게 자신 패거리 정보를 주는가 하면, 뒤에서 '짱'을 헐뜯기까지.
    그래도 자신들의 무리중 일원이라고 처음에는 좋게좋게 처리하려고 했었던 것 같은데 문제의 아이가 받아들이지 않은
    시점에서 결국 불이 확 지펴지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은 2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이 그 '싸가지 없는' 아이를 찾아내었고, '짱'의 발길질에 무참히 혼나게 되었다.
    그들은 돈을 뺏기 위해, 쓸데없는 힘을 과시하기 위해 다른 아이를 때린 것이 아니다.
    거짓말을 하고, 동료를 속이고 헐뜯고, 배신을 하는 행위들 - 기본적인 도덕이 결여되어 있는 것을 문제 삼아
    어른 대신 혼을 내주었다.  처음에는 무리들이 그 아이 부모한테 사정을 이야기했었다.
    어른이 대신 나서서 혼을 내주면 좋게 넘어가려고 했던 의도였던 듯. 그러나 당연히 그래야 할 어른은 그러지 않았고
    결국 거리의 아이들이 도덕 교육을 다시 시키고 만 것이다.

    아무것도 모를 것이라고,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들로만 거리의 아이들을 평가하는 어른들은 왜 못보고 있는 것일까.
    거리의 아이들의 눈에 비친 외로움, 방황, 가난, 관심에 대한 갈망, 자신을 똑바로 잡아줄 이를 기다리는 희망.
    그리고 멋대로 살 것 같은 그 거리에도 엄연히 지켜야 할 규칙과 도덕과 위.아래가 있는 -
    제법 사회적인 곳이라는 것을.

 

    이 책의 무리들 이름이나, 가게 이름들, 작전명이 전부 영어로 지어지는 겉멋의 유치함은 있지만
    다소 지루한 전개라든가, 현실감 없이 세상일이 '호락호락하게' 해결된다거나 하는 설정이 좀 우숩긴 하지만,
    자신들의 터전을 평화로운 방법으로 스스로 지켜내려고 애를 쓰는 거리의 아이들을 만날 수는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내고, 또 새삼스레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던 것 같다, 나에게.

  

 

 

    * 책 표지가 바뀌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노란색 표지에 귀여운 그림이라고! (09.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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