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자아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나 할 듯한 고민을 나이 들어가면서 문득문득 떠올리는 것은 왜일까. 수많은 책을 접하면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일이 많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 장삼이사의 일화, 세상을 뒤흔들만한 역사적 사건 들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올 때가 있다. 사회적 존재가 아니라 한 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가 했던 내밀한 고민과 일상적인 삶에서 오는 갈등이 느껴질 때 ‘나는 누구인가’를 다시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무얼 하고 있는지,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는지 말이다.

20세기 초반 세계사의 급격한 변화를 온몸으로 겪은 작가의 글들은 많은 울림을 준다. 작가 조지오웰은 영국의 명문 사립 이튼스쿨을 졸업하고 유일하게 식민지 경찰에 자원한다. 5년간의 인도 경찰 생활 후 귀국해서 부랑자 생활을 하며 글을 쓰기 시작하는 작가를 다시 돌아본다. 권력과 부를 거머쥘 수도 있는 상황의 반전과 그가 남긴 작품들 사이의 거리를 돌이켜 생각해 보게 하는 『나는 왜 쓰는가』를 읽는 내내 책에 빠져들었다.

『동물농장』, 『1984』로만 기억되는 조지 오웰은 다양한 글과 소설들을 남겼다. 이한중은 그의 에세이 중에서 가려 뽑아 번역한 책을 묶어 그의 대표적인 에세이를 책 제목으로 삼았다. 선택한 글들이 읽을 만 했고 번역도 어색하지 않아 작가의 내면을 읽어내는데 손색이 없었다. 두툼한 분량임에도 막힘없이 읽힌 것은 당대 현실에 대한 조지 오웰의 솔직한 내면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군국주의와 파시즘이 판치던 시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인도와 영국, 러시아 혁명과 스페인 내전까지 소용돌이치는 세계사의 흐름에 대한 작가의 대응방식이 흥미롭다.

우리 시대에는 '정치와 거리를 두는' 일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모든 문제가 정치 문제이며, 정치란 본래 거짓과 얼버무리기, 어리석음, 반목, 정신분열증의 집합체인 것이다. 그러니 전반적인 분위기가 좋지 않을 경우 언어는 수난을 당하게 된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271쪽

이런 이야기는 시대를 넘어 현재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 아닌가. 시대의 한복판에서 가장 첨예한 문제들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그것을 해석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형상화하는 일이 작가의 의무가 아닌가. 조지오웰은 신랄한 풍자와 뛰어난 상상력으로 소설을 썼다. 명성을 얻기 전까지 20여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글을 쓸 때 주의할 점이나 헌책방에서의 경험, 부랑자 생활, 간디에 대한 생각 등을 발표했다. 그의 글들은 재치 있고 발랄한 풍자가 돋보인다. 비극적이고 부정적인 인식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조롱과 비꼬는 솜씨가 일품이다.

어느 시대를 살았던 작가든 마찬가지겠지만 그 시기의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갖기란 쉽지 않다. 조지오웰은 백인 영국인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부랑자를 바라보고, 인도에서의 경찰 생활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부족한 점, 간디에 대한 평가에서 엿볼 수 있는 작가의 태도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기도 한다.

우리가 작가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든 작가가 그 시대에 어떻게 반응하든 ‘글’은 오래 기억되고 읽히고 해석되고 영향을 미친다. 독자들은 작가의 글을 통해 시대를 들여다보고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고 작품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조지오웰과 그의 소설들을 재인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지난 10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이었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성을, 곧 불의를 감지하는 데서부터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297쪽

가령 이런 고백들은 그의 소설을 이해하는 좋은 문장이다. 그것이 소설로 어떻게 실현되었고 독자들의 평가가 어떠하든 작가의 솔직한 고백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그의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을 통해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조지오웰이라는 작가의 내면 풍경과 그가 살아냈던 시대를 그의 눈을 통해서 바라본다는 점이다. 표현론적 측면에서 작가의 생애와 사상을 통해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좋지 않은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풍부한 배경지식과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있는 시공간적 무대가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고 작품에 대한 해석을 보다 다양하게 이끌어 낼 수도 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지금 여기에 적용될 수 있는, 현재적 유용성 측면에서 우리의 현실을 성찰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많다. 진지하고 엄숙한 시대 비판이 아니라 비틀고 냉소하는 태도는 당대 현실을 넘어 현실을 성찰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의 소설들이, 그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것은 이렇게 다양한 사회를 살아내야 하는 우리들에게 또 하나의 시선을 제공한다. 케케묵은 이념의 시대를 지나왔지만, 우리 사회의 거시적인 방향성과 미래를 고민하는 데도 그의 글들은 여전히 재미있게 읽힌다. 이렇게,

좌파 정부는 거의 예외 없이 지지자들을 실망시킨다. 왜냐하면 그들이 약속했던 번영이 달성 가능한 것이라 해도, 국민에게 진작에 말해준 적이 거의 없는 불편한 이행 기간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442쪽

이 책을 통틀어 가장 통렬하게 다가온 글은 ‘어느 서평자의 고백’이다. 책을 만들고 유통시키는 모든 사람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재미있는 글이다. 더구나 대가없이 미친 듯 읽고 써대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그러하다. 공짜 책은 없다! ‘서평단’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공짜책 서평이벤트와 서평 관련 잡지들과 기자들 그의 표현대로 ‘꾼’들에게 날리는 카운터 펀치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인상적인 문장 몇 개를 옮겨둔다.

아무리 지겨워한다 해도 서평자는 책에 대한 관심이 각별한 사람이며, 매년 수천 권씩 쏟아지는 책 중에 쉰 권이나 백 권쯤에 댛서는 기꺼이 서평을 쓰고 싶어 한다. 업게 최고 수준인 사람이라면 열 권에서 스무 권 정도를 택할 것이며, 두 세권만 꼽을 수도 있다. 그 나머지 일은 아무리 양심적으로 칭찬을 하든 욕을 하든, 본질적으로 사기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286쪽

모든 책이 서평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당연시하는 한, 어떤 문제도 해결되기 어렵다.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서평을 하다보면 대부분의 책에 대해 과찬하지 않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책과 일종의 직업적인 관계를 맺고 보면 대부분의 책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지를 알게 된다. 객관적이고 참된 비평은 열에 아홉은 '이 책은 쓸모없다'일 것이며, 서평자의 본심은 '나는 이 책에 아무 흥미도 못 느끼기에 돈 때문이 아니면 이 책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일 것이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287쪽

내가 보기에 최선의 방법은 대부분의 책은 그냥 무시해버리고 중요해 보이는 소수의 책에 아주 긴(최소한 1000단어는 되게) 서평을 쓰도록 하는 것이다. - 조지오웰, <나는 왜 쓰는가>, 287쪽


1102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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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과학 - 잘못된 과학 정보를 바로 가려내는 20가지 방법
셰리 시세일러 지음, 이충호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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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에 아주 조심해야 한다. 한번 들어간 것은 다시 꺼낼 수 없을 테니까. - 토머서 울지(Thomas Wolsey, 1471~1530)

책은 우리에게 지식과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지 확인시켜 줄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뭔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과 새로운 호기심, 끊임없는 질문이 책을 읽는 사람들의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셰리 시세일러의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과학』은 최소한 객관적 지식이라고 믿으며 살고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흔히 밥을 먹거나 술자리에서 어떤 대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와 달리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목소리가 높아지거나 모두가 동의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게 믿었던 것들 예를 들면 ‘폭력 범죄 발생 건수 증가 추세’나 ‘교통사고 사망 건수 감소’ 등의 뉴스는 일시적인 통계 수치일 수 있지만 그것이 의미 있는 변화인지 확인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날 수 있는 ‘과학’에 속지 말라고 경고한다.

‘과학 논문 ⇨ 보도 자료 ⇨ 신문 기사 ⇨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 ⇨ 라디오 청취자나 텔레비전 시청자’ 과학이나 건강에 관한 정보는 이렇게 다양한 경로를 거치게 된다. 원래 정보의 출처는 사라지고 가공되거나 왜곡되거나 일부만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한술 더 떠 우리는 들은 것을 부정확하게 추측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객관적 사실은 존재하고 과학적 지식과 이론들이 새롭게 발견되거나 만들어진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태도와 자세가 문제라고 본다. 저자는 과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한 열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1. 과학은 어떤 과정을 거쳐 발전하며, 왜 과학자들의 의견이 가끔 엇갈리는지 이해한다.
2. 어떤 쟁점에 이해가 걸린 사람들이 누구이며, 그들의 입장은 어떤 것인지 알아본다.
3. 어떤 결정에 대한 장점과 단점을 모두 자세히 파헤쳐 본다.
4. 트레이드오프를 평가하기 위해 적절한 맥락에 대안을 대입해 본다.
5. 인과관계와 우연의 일치를 구분한다.
6. 어떤 연구에서 얻은 결론을 얼마나 넓게 적용할 수 있는지 파악한다.
7. 숫자의 마술을 꿰뚫어본다.
8. 과학과 정책 사이의 관계를 구분한다.
9. 논리를 비켜 가기 위해 만든 계략들을 돌파한다.
10.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 위해 정보를 찾고 분석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전문 서적이 아닌 경우 통상적으로 몇 가지 단계나 원칙들을 소개하는 책들이 많다. 이 책도 유사한 방법을 제시하지만 뻔한 자기계발서 종류의 원칙들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례 중심으로 우리들이 쉽게 저지르는 실수를 지적하고 그것이 왜 잘못된 판단인가를 비판적으로 지적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심리학과 결합된 이야기도 종종 등장한다. 예를 들면,

확증 편향은 아주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즉, 자신의 견해와 일치하는 정보에는 큰 관심을 보이는 반면, 어긋나는 증거는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확증 편향은 완고한 것과는 다르며, 사람들이 확고한 의견을 갖고 있는 문제에만 국한해 나타나지도 않는다. - P. 17

『거짓말의 진화』라는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었던 이야기 중의 하나를 이 책에서 다시 만나다. 결국 과학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새빨간 거짓말을 만들어 내는 과학적 진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자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과학을 이용해서 거짓말을 하든 우리 스스로가 자기 최면에 걸리듯 확증 편향을 갖고 잘못된 과학 상식을 길러가든 그것은 모두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열 가지 방법으로 모든 거짓말이 밝혀지거나 오해하고 잘못 해석된 사실들이 바로잡혀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일상생활에서 어떤 대상이나 현상에 대한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비판적 안목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그것은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마찬가지다. 맹목적인 믿음이나 일방적인 관점으로는 다양한 사유 방식으로 신선하고 창조적인 생각을 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관점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과 발상의 전환을 위한 사유 방식의 훈련을 위해서도 저자의 이야기는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실증적인 사례는 우리 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만한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는 잘못된 상식과 새빨간 거짓말에 속으며 하루를 보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일이 그러할 수 있을까? 사람 혹은 사건?


11013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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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8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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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달인을 보면 가히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같은 일을 수없이 반복하는 동안 생긴 노하우와 속도가 평범한 사람들을 질리게 할 정도다. 마치 기계처럼 능숙하게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정확하고 민첩하게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우물을 판 결과일 뿐 특별한 비법 같은 건 없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도 비슷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다보면 말콤 글래드웰의 말대로 1만 시간의 법칙이 작동되면 누구나 한 분야의 ‘아웃라이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 일이 어떤 일이냐의 문제가 남겠지만.

그렇다면 ‘돈’은 어떤가. 우리는 누구나 ‘돈’의 달인이 되고 싶어한다. 바꾸어 말하면 ‘돈’을 잘 벌고 많이 벌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돈에 대한 욕망만큼 소비의 욕망도 크다. 버는 돈과 쓰는 돈이 균형을 유지하지 못하면 문제가 생긴다. 많이 벌고 적게 써도 문제고 적게 벌고 많이 써도 문제다. 이때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와 향락을 위한 이기적인 욕망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하지만 단순히 돈이면 다 된다는 믿음이나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라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부의 축적 자체가 행복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왜 일하는지 생각해 봐야하지 않을까?

세상 사람들에게 외치는 공허한 울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교훈과 감동을 세트로 안겨야 한다. 공감할 수 없다면 변하지 않고 변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에 불과한 것이 책이다. 지식은 내 삶을 바꾸고 인생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가꿀 줄 아는 데 필요한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조금씩 나아진다고 희망을 주는 책이 좋은 책이 아닌가.

고미숙의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는 돈에 대한 고전 평론가의 사유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고미숙은 근대성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현실을 조금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혜안을 제공해 왔다. 그린비에서 펴낸 인생역전프로젝트 시리즈의 여덟 번째 책으로 ‘돈’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은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의 흐름을 잇고 있다. 공부와 사랑 그리고 마지막으로 돈을 살펴보자.

먼저 돈에 대한 환상과 집착을 깨뜨려야 돈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돈은 피보다 진하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끔찍한 사건, 사고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버린 현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천륜을 거스르는 사건의 중심에는 돈이 놓여있고, 돈 때문에 죽고, 돈 때문에 살기도 한다. 왜 돈을 벌어야 하며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결과 자신의 일과 직업을 결정하고 그 과정에서 제대로 벌고 잘 쓸 수 있는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세상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저자는 먼저 돈의 천태만상을 통해 현실의 모습을 비틀고 풍자한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의 핵심은 돈을 잘 벌고 잘 쓰는 방법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학교에 다니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 마디로 들어본 적이 없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오직 타인을 지배하거나 누르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공부를 하면 그 지식을 돈으로 교환하지 않고서는 살아가기가 힘들다. 그 교환의 궤도를 벗어난 공부, 그것이 곧 삶의 지혜다. 공부가 지혜로 변주되는 곳에선 늘 밥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공부와 밥은 ‘하나’다! - P. 185

밥과 공부가 하나라는 말을 다르게 이해하는 사람들은 보다 높은 학벌과 돈 잘 버는 직업을 연계시킬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공동체’를 제안한다. <수유+너머>에서 밥과 공부와 친구를 해결하며 공동체 안에서 삶을 꾸려가는 저자에게는 당연한 주장이다. 돌고 돌아야 하는 것이 돈이 버는 것보다 쓰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 돈이라는 주장은 명품에 찌들고 아파트 평수에 목숨거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하지만 그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문제에서 비껴날 수가 없다. 가족을 이루고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는 공감을 얻기 어려운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에 대한 개념을 바꾸고 삶을 가꾸는 방법을 새롭게 고민하기 위한 노력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저자는 시원하고 자신 있게 말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삶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해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고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돈이 아니다! 소유로부터 벗어나건 소유의 현장으로 들어가건,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자유다! - 소유에서 자유로! 존재의 무게중심을 이렇게 옮겨 놓을 수 있다면, 그때서야 비로소 순수증여라는 ‘비밀지’에 도전할 수 있다. - P. 194

시혜적 관점의 기부가 아니라 나눔과 배려를 선물과 증여의 개념으로 치환하고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보고 싶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부록으로 ‘44만원 세대 보고서’, ‘정규직 3년차의 20대를 위한 변명’, ‘청년 백수의 촤충우돌 보리기금 운영기’를 통해 현실에서 벗어난 젊음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재미도 크다. 모두가 똑같은 삶을 지향하는 사회는 얼마나 지루한가. 이러한 사회는 바람직하지도 않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관점에서 자신의 삶을 가꾸어가되 어울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방법을 가르치고 싶다. 비노바 바베의 말은 그래서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진정한 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의 곁에서 스스로 배우고 자라게 할 뿐!

비노바 바베의 입을 빌려 말하면, “진정한 교사는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 그의 곁에서 스스로 배울 뿐이다. 태양은 누구에게도 자기 빛을 주지 않는다. 다만 만물이 그의 빛을 받아 스스로 자라갈 뿐”(『버리고, 행복하라』, 31쪽)인 것처럼. 지식과 정보 역시 그래야 마땅하다. - P. 216


110107-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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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모 쿵푸스 실사판] 공부는 셀프!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3-30 15:37 
    ─ 공부의 달인 고미숙에게 다른 십대 김해완이 배운 것 공부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 몸으로 하는 공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적절한 계기(혹은 압력?)를 주시곤 한다.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이고(말이 되나 싶죠잉?), ‘달인’을 호로 쓰시는(공부의 달인, 사랑과 연애의 달인♡, 돈의 달인!) 고미숙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부해서 남 주자”고.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근대적 지식은 가시적이고 합리적인 세계만을 앎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가장 ...
 
 
 
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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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쓰는 내내 우울했다.

조정래의 『허수아비 춤』은 이렇게 시작된다. ‘작가의 말’을 앞세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우울했다. 조정래의 2007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삼성 비자금’ 사건은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촉발되었다. 삼성공화국 권력의 심장부에 있던 그의 발언은 차라리 동화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이야기였다. 상식을 가진 대한민국 사람들은 ‘설마’라고 생각하며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우리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이었다. 2010년 2월에 출간되면서 또다시 세상을 뜨겁게 달군 책이 바로 『삼성을 생각한다』이다. 『허수아비 춤』은 『삼성을 생각한다』의 소설판으로 읽혔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은 잊었고 삼성그룹과 이건희 일가를 동일시하는 법의 정서는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었으며 상속문제는 말끔하게 해결됐고 이건희는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대한민국은 고요하기만하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 일들이 벌어졌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국민들은 법의 심판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소설같은 이야기가 진짜 소설이 되어 나타났다.

피의 대가를 치러 얻은 민주주의는 ‘자본’앞에 무기력하다. 정치적인 민주주의와 달리 경제민주화는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다. 정치는 멀지만 경제는 가깝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한다. 그리고 부자를 부러워하면서도 존경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돈이 권력이고 힘이며 삶의 목표가 되어버린 천박한 자본주의의 실상이 바로 대한민국의 자화상이 되어버렸다. 새해 인사로 ‘부자 되세요’보다 좋은 덕담은 없는 듯하다. 어느 카드 회사의 광고 문구가 이제는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덕담이 되어버렸으며, 그보다 더 명쾌하고 적확한 욕망을 표현한 문장을 만나기 힘들게 되었다.

이 소설은 단순한 사건 중심도 아니고 세태 비판 소설로 보기도 어렵다. 현실은 언제나 문학에 무한한 상상력과 자양분을 제공한다. 단순한 허구의 세계의 아니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삶을 들추고 세계의 본질을 해석하는 것이 소설의 의무라면 이 소설은 그에 값하는 의미를 지닌다. 자본주의의 이면과 한국형 재벌가의 모순을 파헤치면서 그것이 과연 우리에게 그리고 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짚어보는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더 나은 경제제도를 창출하기 전까지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운영하는 방법과 인간들의 태도가 문제이다. 삶의 지향점과 가치가 무엇인가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어 인생을 낭비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것에 도달하는 방법이 다양하지만 누구도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인간의 모든 욕망이 돈으로 환산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는 대다수 사회구성원들과 더불어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보다 나은 삶과 인간다운 가치를 창출하기 힘들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대한민국의 로얄 패밀리와 골든 패밀리의 삶을 조망한다. 모든 사람이 그들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그들과 똑같은 욕망을 추구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냉혹하게 돈에 휘둘린다. 그런 사회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재와 미래는 자라는 아이들에게 있다. 그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다. 직업을 선택하고 자신의 꿈을 가꾸는 과정에서 최대의 가치가 돈이 된다면 결코 행복한 삶을 꿈꾸기 어렵다. 현실을 외면하자는 말이 아니라 최소한 정상적인 사회에서 공정하게 경쟁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법과 질서, 나눔과 배려 같은 정의로운 삶을 가르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아닐까?

소설의 의미를 따져 묻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문학’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도 많이 남는 작품이다. 알지 못하는 추악한 현실을 폭로하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비판적 성찰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라는 측면에서는 조정래의 이 소설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문학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모방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현상들이 초래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한숨까지도 담아내야 한다. 일명 재벌 총수를 위시한 골든 패밀리들의 혐오스런 작태를 폭로하는 데 그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행태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고민이 아쉽다.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가꾸어가는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심정 그리고 그곳이 일터인 사람들의 태도까지 살펴볼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섬세하고 탄탄한 문장으로 조금 더 냉정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그들을 묘사했다면 보다 폭넓은 방식으로 이 문제들을 생각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미뤄두었던 소설로 시작하는 한 해가 불편하다. 앞으로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본주의의 생리를 몸에 익히고 자본을 욕망하며 타인과의 경쟁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갈 것이다. 다만, 그것이 공정하고 건전한 경쟁이어야 하며, 그 결과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누릴 수 있는 행복이라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유한한 인생, 지속가능한 사회 그리고 여전히 세상의 모든 진실들을 고민하는 소설들이 읽혀지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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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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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낸 가장 가혹한 올가미에 불과하다. 단 한 순간도 시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대인에게 분절적인 개념의 시간 단위가 편리한 것만은 아니다. 시간은 자연의 흐름을 불연속적으로 잘라내고 구분짓고 규정한다. 따라서 모든 것은 측정할 수 있는 것이 되고 수량화, 계량화 된다. 우리의 삶도 그럴 수 있을까?

철학의 제문제는 체계를 바탕으로 한다. 모든 것을 분석하고 개념화하는 것이 철학의 임무는 아니지만 세계의 본질과 인간의 삶에 대한 명쾌한 해석이 철학의 임무는 아닐까. 윤리학에서 그것이 옳고 그름을 따지고 선악의 가치 판단을 논하기 전에 인간의 문제를 명료화하려는 노력은 우리가 철학에게 기대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학은 ‘대중성’을 바탕으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읽고 공감할 수 없다면 그것을 위대한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극단적인 예를 들어 단 한 권만 팔린, 가장 훌륭한 문학 작품은 상상하기 어렵다. 예술성과 대중성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래 사랑받는 스테디셀러가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되는 것은 자명한 논리이다.

다니엘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를 모태로 수많은 책들이 확대 재생산되었다. 프랑스의 철학적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은 원작을 뛰어넘을 만한 현대적 의미의 고전으로 꼽을 만하다. 문학의 보편성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비판한다. 또한 인간의 삶에 대한 폭넓은 사유와 세계를 통찰할 수 있는 눈을 제공한다. 철학적 책읽기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의 독서가 될 수 없음을 웅변하는 이 책은 단순히 고전의 재해석이나 현대적 각색이 아니라 풍부한 울림을 주는 정교한 구조물과 같다.

그것은 무인도라고 하는 본질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 사이의 갈등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환경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 자아와 타자의 문제 등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고민에 빠지는 수많은 문제들의 본질을 탐구하는 소설이기 때문에 이 소설은 읽을 만하다. 이 소설은 한 문장의 완결성과 문장과 문장 사이의 긴장감이 일반적 의미의 소설과 차이를 느끼게 한다. 사건 위주의 스토리 전개가 구성의 골격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버지니아호의 좌초로 무인도에서 깨어난 로빈슨의 사유가 이 책의 흐름을 주도하기 때문이다. 정신을 집중하고 작가의 말에 몰입하지 않으면 흐름을 놓치고 망망대해를 표류할 수도 있지만, 천천히 그의 말과 로빈슨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형언할 수 없는 삶의 본질적인 문제들과 만나게 된다. 나는 누구이며 삶이란 무엇인가.

1711년 4년 4개월 만에 태평양의 마스아티에라에서 셀커크가 발견된 후, 다이엘 디포는 1659년 9월 30일부터 1686년까지 28년 2개월 10일 동안 대서양의 카리브 해의 어느 섬에 사는 로빈슨을 탄생시킨다. 이에 비해 투르니에는 1759년 9월 30일부터 1787년까지 28년 2개월 19일 동안 태평양의 스페란차 섬에 로빈슨을 살게 한다. 원작에서 프라이데이가 이 책에서는 주인고으로 전면에 나선다. ‘방드르디’는 금요일이라는 뜻의 ‘프라이데이’의 프랑스어 이름이다. 로빈슨과 방드르디가 살아가는 스페란차의 섬의 실질적인 주인은 로빈슨이라기보다 ‘방드르디’이다. 영국 백인이며 독실한 기독교인 로빈슨에게 섬에 도착한 이후 시간은 오로지 과거만을 의미할 뿐이다.

오직 과거만이 중요한 존재와 가치를 가지는 것이었다. 현재는 추억의 샘, 과거의 생산 공장 정도의 가치밖에 없었다. 산다는 것은 오직 그 값진 과거의 자산을 늘리기 위해서만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고는 마침내 죽음이 오는 것이었다. - 49쪽

무인도가 아니더라도 인간의 삶은 과거의 자산을 늘려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누구에게나 죽음의 순간이 온다. 그렇다면 인간의 삶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단초를 얻을 수 있다. 꿈과 고독 사이의 내밀한 통로를 찾아 헤매는 것이 인간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로빈슨은 피부색이 다른 원주민 방드르디를 극적으로 구해낸다. 죽음의 순간의 생명의 은인을 만난 방드르디는 로빈슨의 노예가 되지만 둘 만의 섬에서 그는 결코 노예가 아니다. 피부색과 종교, 언어와 삶의 방식이 극단적이었던 둘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시선과 해석이 이 책을 읽는 이유이다. 김화영의 해설대로 들뢰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타자의 부재가 로빈슨의 행동, 사고, 지각에 끼치는 영향’이 이 작품의 철학적 주제라고 할 수 있겠다.

로빈슨이 아니라 방드르디가 이 책의 제목이 된 것은 단순히 원작의 전복이 아니라 ‘타자’를 중심에 놓는 방식의 삶에 대한 성찰이다. 주관적이고 배타적인 ‘자아’ 중심의 세계관이 아니라 ‘타자’를 통한 내 삶에 대한 반성을 의미한다. 유연하고 상대적인 처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 방식의 패러다임을 전환을 촉구하는 듯하다.

1장부터 12장까지 각 장들의 내용과 의미는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수수께끼로 던져 두어도 좋으리라. 책 전체의 흐름을 분석해 놓은 김화영의 해설을 꼼꼼하게 읽어보는 것은 이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음미한 후에 할 일이다. 어쨌든 11장에서 ‘화이트버드호’의 등장으로 인해 마지막 반전이 일어난다. 자신의 배가 난파된 후 스페란차에 도착한 후 2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는 인간의 시간을 알게 된 로빈슨의 반응은 선장과 화이트버드호에서 식사를 한 후 느끼는 감정만큼이나 충격적이다.

로빈슨이 볼 때 악(惡)은 그보다 훨씬 더 깊은 데 있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그 사람들 모두가 열에 들뜬 듯이 추구하는 것으로 보이는 여러 가지 목적의 어쩔 수 없는 상대적 성격이 바로 악의 바탕이라 비판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목적을 추구하고 있었고, 그 목적이란 어떤 획득, 어떤 부(富), 어떤 만족 따위였다. - 304쪽

로빈슨과 방드르디의 선택은 반전 영화의 결말처럼 남겨두자. ‘죄디(목요일)’로 거슬러가는 시간의 역행은 무엇을 의미하며 로빈슨의 선택은 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정답은 없다. 다만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던지는 미셸 투르니에의 실존적인 질문들은 긴 여운을 남기며 ‘시간’과 ‘타자’와 ‘삶’의 의미를 성찰하게 한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라고.


10123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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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2-31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전에 준비해두었지만 아직 읽지 못하고 있는 책인데 리뷰를 보니 빨리 읽고 싶어집니다.
2010년의 마지막날이네요. 새해에도 좋은 책 많이 읽으시고 행복하세요.

sceptic 2011-01-06 22:29   좋아요 0 | URL
답이 늦었습니다. 반딧불이님도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지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