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작품을 쓰는 내내 우울했다.

조정래의 『허수아비 춤』은 이렇게 시작된다. ‘작가의 말’을 앞세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우울했다. 조정래의 2007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삼성 비자금’ 사건은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촉발되었다. 삼성공화국 권력의 심장부에 있던 그의 발언은 차라리 동화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이야기였다. 상식을 가진 대한민국 사람들은 ‘설마’라고 생각하며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우리시대의 우울한 자화상이었다. 2010년 2월에 출간되면서 또다시 세상을 뜨겁게 달군 책이 바로 『삼성을 생각한다』이다. 『허수아비 춤』은 『삼성을 생각한다』의 소설판으로 읽혔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은 잊었고 삼성그룹과 이건희 일가를 동일시하는 법의 정서는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었으며 상속문제는 말끔하게 해결됐고 이건희는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그리고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대한민국은 고요하기만하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 일들이 벌어졌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국민들은 법의 심판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소설같은 이야기가 진짜 소설이 되어 나타났다.

피의 대가를 치러 얻은 민주주의는 ‘자본’앞에 무기력하다. 정치적인 민주주의와 달리 경제민주화는 동의를 얻기가 쉽지 않다. 정치는 멀지만 경제는 가깝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한다. 그리고 부자를 부러워하면서도 존경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돈이 권력이고 힘이며 삶의 목표가 되어버린 천박한 자본주의의 실상이 바로 대한민국의 자화상이 되어버렸다. 새해 인사로 ‘부자 되세요’보다 좋은 덕담은 없는 듯하다. 어느 카드 회사의 광고 문구가 이제는 모든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덕담이 되어버렸으며, 그보다 더 명쾌하고 적확한 욕망을 표현한 문장을 만나기 힘들게 되었다.

이 소설은 단순한 사건 중심도 아니고 세태 비판 소설로 보기도 어렵다. 현실은 언제나 문학에 무한한 상상력과 자양분을 제공한다. 단순한 허구의 세계의 아니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삶을 들추고 세계의 본질을 해석하는 것이 소설의 의무라면 이 소설은 그에 값하는 의미를 지닌다. 자본주의의 이면과 한국형 재벌가의 모순을 파헤치면서 그것이 과연 우리에게 그리고 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짚어보는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더 나은 경제제도를 창출하기 전까지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운영하는 방법과 인간들의 태도가 문제이다. 삶의 지향점과 가치가 무엇인가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어 인생을 낭비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것에 도달하는 방법이 다양하지만 누구도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인간의 모든 욕망이 돈으로 환산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는 대다수 사회구성원들과 더불어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보다 나은 삶과 인간다운 가치를 창출하기 힘들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대한민국의 로얄 패밀리와 골든 패밀리의 삶을 조망한다. 모든 사람이 그들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그들과 똑같은 욕망을 추구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냉혹하게 돈에 휘둘린다. 그런 사회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재와 미래는 자라는 아이들에게 있다. 그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다. 직업을 선택하고 자신의 꿈을 가꾸는 과정에서 최대의 가치가 돈이 된다면 결코 행복한 삶을 꿈꾸기 어렵다. 현실을 외면하자는 말이 아니라 최소한 정상적인 사회에서 공정하게 경쟁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법과 질서, 나눔과 배려 같은 정의로운 삶을 가르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아닐까?

소설의 의미를 따져 묻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문학’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쉬움도 많이 남는 작품이다. 알지 못하는 추악한 현실을 폭로하고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비판적 성찰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작가의 의무라는 측면에서는 조정래의 이 소설을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문학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모방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현상들이 초래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한숨까지도 담아내야 한다. 일명 재벌 총수를 위시한 골든 패밀리들의 혐오스런 작태를 폭로하는 데 그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행태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고민이 아쉽다.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삶을 가꾸어가는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심정 그리고 그곳이 일터인 사람들의 태도까지 살펴볼 수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섬세하고 탄탄한 문장으로 조금 더 냉정하고 차가운 시선으로 그들을 묘사했다면 보다 폭넓은 방식으로 이 문제들을 생각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미뤄두었던 소설로 시작하는 한 해가 불편하다. 앞으로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본주의의 생리를 몸에 익히고 자본을 욕망하며 타인과의 경쟁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갈 것이다. 다만, 그것이 공정하고 건전한 경쟁이어야 하며, 그 결과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누릴 수 있는 행복이라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유한한 인생, 지속가능한 사회 그리고 여전히 세상의 모든 진실들을 고민하는 소설들이 읽혀지기를 희망해 본다.


110106-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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