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꽃집 창비시선 275
김중일 지음 / 창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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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제 불편한 시가 싫어진다. 그 불편함은 내 마음의 불편함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인지 시의 언어와 이미지가 이성이나 감성을 자극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서걱이는 모래바람처럼 시의 언어들이 모래알처럼 뭉치지지 않고 흩어지는 시는 견디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내게 변화가 오는 것이다. 80년대 해체주의가 유행처럼 버질 무렵 시의 내용과 형태가 완전히 너덜거릴 때까지 콘크리트 벽에 문지르던 시절이 있었다. 의도와 이미지만 남고 시는 사라졌다. 종류는 다르지만 언어의 틈새와 의미의 간극을 짚어내는 건조한 시들이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신선함도 생의 감각이나 통찰도 전해주지 못하고 삐걱이며 겉돌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김중일의 <국경꽃집>은 시간과 사람 그리고 기계 사이를 넘나들며 다양한 변주를 울리고 있다. 상상력의 측면에서는 탁월하지만 생경한 이미지와 혼란스런 시점의 이동이나 황망한 공간이동 현실에서 벗어난 서술들이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데 그치고 있다. 시를 읽는 느낌이야 백인백색이니 물론 주관적인 느낌일 뿐이다. 이성의 어느 지점을 자극하거나 언어의 힘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의도였는지 모르지만 이제, 현실과 동떨어진 거리만큼 마음의 거리도 멀어진다.

1

  잠깐 엎드려서 낮잠을 자고 있었어. 꿈결인가……어느 익숙한 손길이 내 둥글게 구부러진 등과 어깨를, 흐느끼며 거칠게 잡아흔드는 거야. 도대체 뭐지? 눈을 떴을 때, 나는 국경꽃집 카운터에 앉아 있었어.
  - ‘국경꽃집의 일일’중에서

  표제어가 되고 있는 국경꽃집은 시인에게 경계선으로 금기의 선으로 보여진다. 국경은 눈에 보이는 실선이 아니라 마음안에 자리잡고 있는 가상의 선이다. 넘지 못할 금기의 선은 아니겠지만 경계의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분명한 기준이 된다. 모호한 시간과 공간의 경계 속에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꽃이 아니라 꽃을 팔고 있는 사람의 마음의 풍경일 것이다.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환상과 현실의 간극을 메워주는 일이 시인의 몫이다. 김중일은 그 경계선에 서성거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안개처럼 모호한 영상만 가슴에 남는다. 

  봄 밤

이 밤 사장님이
지구 반대편 나스까 고원을 순시하신다

검은 도화지 위에 번진 도시의 불빛,
밤의 지분이 마드는 무정형의 불면

죽은 버드나무에 기대 우는
노파의 동굴같이 캄캄한 입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튀어나오는 박쥐들

또다시 사장님께서 버드나무에게로
멀고 먼 손을 뻗으시어, 철컥, 철컥,
가는 잎 수천수만 개 재개발하시는 봄밤

결재문서 속 검은 셀로 지정된 표를 따라
칸칸이 지나가는 첫 번째 전동차

먼 출장에서
노란 택시를 타고 사장님이 돌아오신다

  사장님의 존재가 화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다. 의미 이전의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다면 할 말이 없으나 현실의 지난함을 신화와 환상의 세계로 표현하는 것들이 때로는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법이다. 시간이 흐른 후에 또다시 접한다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젊은 시인의 생경한 언어들은 ‘철컥, 철컥’ 마음의 문을 잠가 버린다.

  하늘이 푸르고 바람이 시원하니 더 없이 행복하다는 식의 시만을 원하는 독자는 없다. 다람 새로움과 생각의 깊이 다양한 층위의 언어들이 보여주는 놀라움을 기다리는 욕심많은 독자들을 위해 시인들의 고통과 불면의 밤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오늘도 그들을, 그 시간들을, 그렇게 태어난 시들을 기다린다.


070601-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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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극복의 이정표들 - 우리시대 한국문학의 안팎
유희석 지음 / 창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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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개념과 기점에 대한 논의는 여러 학문 분야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시대정신(Zeitgeist)이 중요한 이유는 어떤 사회적 논리나 현상에 대한 시각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근대는 중세를 넘어서면서 비롯된 다양성에 대한 반성이자 인류의 진보를 위한 교두보 역할을 했던 과정 속에서 찾아야 한다. 이제는 탈근대에 관한 논의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근대에 관한 이야기들은 여전히 여러 분야에서 관심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우리가 근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탈근대의 문제가 시기상조라고 여기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아직도 전근대적 이데올로기와 사회적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태라고 하면 지나친 발상일까? 그렇지 않다. 정치와 사회 그리고 경제적 현상이나 이론들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 보이지 않는 공간들은 우리들 의식의 영역이다. 이러한 의식이 반영되어 눈에 보이는 현상들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예술이고 문학이다.

  유희석의 <근대 극복의 이정표들>은 문학 평론집이다. 수잔 손택은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에 가하는 복수다’라고 선언했다. 이후 비평에 대한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다양한 논란이 벌어졌지만 여전히 비평은 이루어지고 있다. 문학 작품에 대한 평가는 그 권위와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들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학문적 관점에서 그들만의 리그가 벌어진다면 독자와의 거리는 그만큼 멀어져만 갈 것이다.

  간만에 펼쳐든 평론집에 대한 생각과 느낌은 복합적이다. 개인적으로 김현 선생이 떠나고난 후에는 거의 평론집에 손을 대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몰입했거나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지만 그의 글들을 읽으면서 비평의 기능에 대해 다시 생각했던 기억이 아득하다. 김현의 글은 또 다른 종류의 문학으로 읽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단 이성적인 설득과 논리적인 타당성 저편에 감동을 줄 수 있는 문장들이 큰 역할을 했다. 평론과 무관하지만 그의 <행복한 책읽기>는 지금도 가끔 꺼내 뒤적거려본다.

  비평의 시대가 가버렸어도 여전히 유효한 비평의 기능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유희석의 <근대 극복의 이정표들>은 문학을 통해 시대 정신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정치한 논리와 예민한 감수성은 평론가가 지녀야할 덕목이다. 유희석은 이 책에서 이상과 김수영, 기형도와 고은의 시를 통해 근대 극복의 이정표를 제시하려는 시도를 한다. 80년대 이후 등장한 소설가와 통일 시대를 중심으로 한 소설에 대한 이야기들은 우리 문학의 풍토와 환경들을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개별 작품들을 통해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간격들을 메워줄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내가 읽어낸 징후들은 근대의 극복의지가 아니라 시대 정신을 앞서간 흔적들이다. 현실을 뛰어넘는, 시공을 초월한 환타지가 아니라 미래의 가치와 현실을 뒤엎는 부정정신만이 살 길이다. 영문학자답게 보들레르와 근대, 근대성, 모더니즘, 리얼리즘에 관한 폭넓은 성찰과 비판적 글쓰기는 저자의 왕성한 활동과 더불어 현재의 상황들을 다시 한 번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 서양문학과 근대 극복의 지평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4부의 경우 현실 극복의 의지가 아니라 서양문학의 극복과 근대의 극복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찾고 있다. 하늘에 떠 있는 별빛만을 쫓던 시대의 문학가들은 행복했다고 말하는 어느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다양성과 복잡성의 혼돈 속에서 문학의 지향점은 멀고 험하기만 하다. 뚜렷한 목적과 분명한 목소리가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겠다.

  폭넓은 시야와 다양한 목소리들은 언제든 우리의 사고의 폭을 넓혀 준다. 개별 작품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중요하지만 시대나 상황을 통찰할 수 있는 흐름들을 읽어내는 것 또한 중요하다. 다시 그의 평론집을 읽게 될지 알 수 없으나, 해석에 반대하나, 근대 극복의 이정표들을 어렴풋하게 읽어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는 책으로 기억할 것이다.


070530-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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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어떻게 즐길까 살림지식총서 260
김준철 지음 / 살림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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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을 어떻게 즐겨야하느냐는 질문은 우습다. 모든 음식은 그냥 맛있게 먹으면 된다. 그럼 이런 종류의 책은 어떤 목적으로 쓰여진 걸까? 당연한 말이지만 인간의 호기심 때문이다. 내가 먹는 음식이 쉽게 만들 수 있거나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더더욱 알고 싶어진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자주 먹거나 전통적인 음식이 아닌 경우에는 더욱 궁금하다.

  최근 들어 술에 대한 기호와 취향도 고급화되어 가고 있다. 폭음과 과음이 미덕이었던 시절도 가고 목적과 상황에 맞는 주류를 선택하고 음미하는 사람들이 늘어간다. 그 중에 와인은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술로 인식되어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술의 종류와 맛이 그만큼 다양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미감은 사용할수록 발달하고 미세한 맛의 차이가 술의 품질과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에 알고 마시는 것도 모르고 마시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거의 맛의 차이가 없는 소주나 맥주와는 차이가 많다.

  와인은 포도주를 발효시킨 술이다. 맛은 물론이고 향이 어우러져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보통 포도 산지를 기준으로 와인을 부르는데 그만큼 와인의 원료인 포도의 산지가 중요하다. 식사와 함께 하는 술인 와인은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스파클링 와인과 디저트 와인, 드라이 와인과 스위트 와인, 영 와인과 올드 와인으로 구분한다. 술에 관한 전문가인 저자 김준철은 이러한 와인의 특징을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와인은 격식보다 지식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와인에 붙어 있는 라벨을 제대로 읽을 수 있으면 와인에 관한 지식은 충분하다. 그만큼 어렵고 복잡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와인의 원산지 명칭이다. 수확년도와 브랜드도 중요하다. 와인 공부의 최종 단계라고 하는 라벨 읽기는 많이 마셔보고 관심을 가져야 읽혀질 것이다. 시험공부 하듯 암기하거나 단순한 관심만으로는 읽혀지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깊은 애정과 진심어린 관심만이 상대를 파악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와인을 만드는 포도의 종류도 다양하다. 우리가 흔히 먹는 포도나 주스는 미국식으로 유럽의 와인용 포도와 구별된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필록세라라고 하는 벌레 때문에 유럽의 와인 산업이 거의 맛이 갔을 당시 미국식 포도의 뿌리와 접목해서 극복한 역사는 포도의 종류를 헷갈리게 한다. 잡종 포도의 맛과 향도 이전의 포도와 비슷했을지 궁금하다. 풍부한 일조량과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에서 잘 자라는 포도는 결국 자연의 선물이다. 포도 농사가 잘 지어진 수확년도에 따라 맛과 향이 결정되고 결국 와인의 품질을 결정한다. 그렇게 자연이 준 선물을 가지고 인간의 정성과 노력이 빚어낸 술이 와인이다.

  프랑스에서는 철저한 품질 관리를 위해 테루아르마다 등급을 매긴다. 포도를 수확하는 토양과 기후 등 관계 시설 전반을 통칭하는 테루아르는 지역별로 조합을 만들거나 품질에 책임제를 도입하여 와인 명산지로서의 자부심과 명성을 유지해 간다. FTA의 영향으로 최근에는 칠레의 와인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하는데 앞으로는 미국 와인 시장을 점령할 것이다.

  독일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 와인에 대한 관심과 품질 개선으로 프랑스를 따라 잡고 있지만 여전히 종주국 프랑스 와인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보졸레 누보라는 와인이 매년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발매되곤 한다. 오크통에서 숙성시키지 않고 당해에 생산한 와인을 숙성시켜 가장 맛있을 때 병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특성에 맞는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끝임없는 경쟁과 새로운 맛과 향에 대한 도전은 인간의 미감을 위한 축복이다.

  그저 술의 한 종류일 뿐인 와인이지만 포도의 종류와 생산지의 기후와 특성, 생산 방식, 맛과 향의 특성 등을 알고 있는 만큼 맛이 달라지기도 할 것 같다. 저자는 일단 즐겁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음식에 어울리는 와인을 맛있게 즐기면 된다고 말한다. 와인을 감정하는 것이 아니라 마시는 자리라면 지나친 격식과 예절보다는 와인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오히려 와인을 즐기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말에 십분 동의한다.

   레드 와인이든 화이트 와인이든 즐길만한 마음의 여유와 같이 있어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즐거울 것이고 음식과 상황에 따라 적당하게 즐길 수 있을 정도와 지식과 돈이 있다면 충분히 행복한 시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자주 선물을 주고받고 마실 기회가 늘어가지만 도대체 뭘 모르고 있는 건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때 한번쯤 가볍게 읽어 볼만한 책이다. 관심은 아는 데서부터 시작될 테니까 말이다. 신이 인간에 준 최고의 술이라는 플라톤의 말은 지나치지 않을 지도 모르니까.

070528-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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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증의 기술 -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쓰기의 모든 것
앤서니 웨스턴 지음, 이보경 옮김 / 필맥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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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아가는 동안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글쓰기이다. 기능적 측면에서 살펴볼 수도 있고 좀더 광범위하게는 전략적 측면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글쓰기는 어떤 측면에서 접근하든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사람들은 통상 글쓰기라고 하면 시나 소설 혹은 수필이나 일기 등 문학적인 글로 받아들인다. 학교를 다니면서 국어 시간에 배운 글쓰기는 대략 문예와 관련된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살아가면서 쓰게 되는 모든 글들은 대부분 문학적인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다. 가령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레포트를 쓰거나 취업을 하기위해 자기 소개서를 쓰는 것부터 시작해서 잡다한 글쓰기가 문학적인 글과는 무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실용적인 글쓰기와 구별지어 생각할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또 하나의 글쓰기가 바로 논증적인 글쓰기이다. 최근 논술의 열풍과 더불어 글쓰기는 일반인들에게까지 들불처럼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다양한 종류의 글쓰기와 관련된 책들이 팔리고 누구나 글을 쓰며 살아간다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전문가들의 설자리가 그만큼 좁아졌다. 숨은 대가들의 솜씨는 그것을 엮어내는 힘이 조금 부족할 뿐, 전문적인 영역에서 일상사에 이르기까지 그 폭과 깊이를 더해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많은 글들 속에 숨어 있는 논리적 오류와 모순들이다. 제대로 설득력 있는 글을 쓴다는 것은 실용적인 글쓰기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이다.

  논증은 논리적인 증명의 한자어이다. 우리가 국어시간에 배운 논설문이라고 한정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좁아지거나 형식이 뚜렷하게 고정될 것 같아 역자는 논증적인 글이라고 번역한 것 같다. 앤서니 웨스턴의 <논증의 기술>은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쓰기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 훌륭한 책이다. 신문의 칼럼이나 대학 입학을 위한 논술에 이르기까지 논증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런 교육을 받을 기회도 가르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비판이라는 용어 자체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과 군사 정권과 유교 문화권에서 순종적이고 무비판적인 생활태도와 문화적 관습들도 한 몫 거들었기 때문이다. 비판과 비난은 다르다. 비판은 가치중립적인 용어이다. 그러나 우리는 비판과 비난이라는 어휘에 대한 개념을 가까운 거리에 두고 해석한다. 말 많으면 공산당이었던 어두웠던 과거 때문이다. 논리적인 비약이 아니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비판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이성적 기능임에도 불구하고 탐탁치 않은 눈길을 먼저 받게 된다.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와 같은 현상과 인식들은 사고력을 기르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창조적인 제안과 논의들이 활발하게 살아 숨쉴 수 있는 숨구멍을 막아 버린다. 최근들어 대학에서도 글쓰기나 작문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지식의 축적과 새로운 연구, 생각을 드러내고 창조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는 과정이 어떤 형태로든 대부분 글쓰기를 통해 이루어지고 정리된다. 어려서부터 훈련받지 못한 사람들은 쉽지 않은 일들과 부딪힌다. 바로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는 것이 그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여러번 고개를 끄덕이고 속이 시원했던 이유는 우리 사회나 교육 풍토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개인적인 판단 때문이다. 마치 사전이나 실전에 활용할 수 있는 야전 교범처럼 치밀하고 간략하게 정확하고 분명하게 쓰여진 책이다. ‘논증’을 다룰 자격이 충분할 만큼 논리적인 책이다. 머리말과 들어가는 글에서는 논증의 목적과 논증적인 글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1장부터 6장까지는 논증의 규칙을 다루고 있다. 논증이 무엇인지 논증의 규칙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30가지의 원칙을 설명한다. 그리고 7장부터 9장까지는 글쓰기의 규칙을 설명한다. 논증을 실제 글쓰기에 적용할 때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끝으로 10장에서는 ‘오류’에 대해 설명한다. 일상적인 대화나 논쟁, 글쓰기 과정에서 범하기 쉬운 오류들에 대해 점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인터넷을 비롯한 TV 토론 프로에 출연하는 패널들의 오류까지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많은 것들이 떠오를 것이다. 부록에는 ‘정의’에 대한 설명이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다.

  2004년에 번역된 책의 8쇄를 사서 읽었다. 시간이 흘러도 여러 사람에게 권한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실용적인,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도구적 목적을 가진 책들은 전자제품의 매뉴얼처럼 식상해지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폐지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논증에 관한 여러 책들 중에서도 군더더기 없이 탄력적이고 상쾌한 스텝을 밟는 쉐도우 복서처럼 빠르고 정확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읽었으면 써야한다. 생각을 하거나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에서 이성적인 접근이 가능하도록 써야 한다. 상대를 설득하기 전에 스스로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예상될 반론의 근거까지 짚어내는 개방적이고 탄력적인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알지 못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가장 큰 불행이다. 칼날처럼 예리한 비판과 논리적인 토론이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 더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 용기 있는 사람은 겁이 없는 게 아니라 겁이 나도 행동하는 사람이다.


070524-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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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뫼 2007-05-25 0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논증. 아, 어려운 부분입니다. ^^;; 저같은 사람에게 필요한 책이네요.
서평 잘 읽습니다.

sceptic 2007-05-27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꾸준한 관심과 노력과 연습이 필요합니다. 누구에게나 필요하니까요...^^
 
양주 이야기 살림지식총서 134
김준철 지음 / 살림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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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래된 친구를 만났을 때, 그 반가움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한 잔 술이 아니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10대 후반의 사춘기 소년들이 흔히 겪을 법한 숱한 흔적과 상처와 기억들이 혼돈으로 박제되어 있다.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를 10여년 만에 만났다. 풋풋했던 시절의 모습을 세월과 함께 간직한 채 오랜 공백 기간이 있었지만 형언하기 힘든 느낌으로 다가오는 친구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고 두고두고 떠오르고 오래 소식 전하지 않아도 어제 만난 듯 반갑게 만날 수 있는 친구를 되찾았다는 것은 표현하기 힘든 기쁨이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변해도 씨익 웃고 한 잔 부딪칠 수 있는 친구.

  그 친구와 소주, 맥주, 압생트, 시바스 리갈을 마셨다. 며칠 전, 동생이 귀국하면서 시바스 리갈 18년산을 한 병 사왔다. 서점에 갔다가 <양주 이야기>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생각해 보니 자주는 아니지만 주변에서 양주를 자주 접하면서 궁금했던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떠올랐고 호기심에 책을 샀다. 책을 통해 그것들을 전부 확인하거나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불현듯 밀려드는 갈증을 해소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술은 많은 사람들에게 일시적인 희망과 용기를 준다. 한 잔 술은 시름을 달래고 현실의 고통을 위로해주는 역할을 하며 항상 우리 곁에 함께 해 온 친구와 같다. 홀로 마셔도 좋고 좋은 사람들과 마시면 더욱 좋다. 술 한 잔의 추억과 에피소드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우리가 걸어온 길과 쌓여온 세월들 속에 술은 적당한 윤활유의 역할을 해 준다. 그것이 지나쳐 1인당 술 소비량 1위 국가의 명예를 차지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맞는 주량을 측정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비틀거리지 않을 정도 혹은 평소와 다른 말과 행동을 하지 않을 정도를 말한다. 하지만 흔히 필름이 끊겼다고 말할 정도가 아니라면 술자리는 즐겁고 유쾌하게 끝나는 것이 좋다. 근심 걱정 가득한 얼굴로 친구와 마주하거나 세상의 유일한 친구로서 술을 대할 때는 술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어떤 술을 얼마만큼 마실 수 있느냐는 문제는 개인의 취향일 뿐이다. 각 나라마다 민족이나 인종마다 특별한 문화가 있듯이 음식 문화의 일종인 술도 마찬가지이다.

  양주는 서양의 술이라는 말이다. 우리 고유의 민속주에 반대되는 개념의 말로 해방 이후 주로 미국에서 유입된 술을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전통적인 증류주인 소주가 있다. 원료와 제조 공정과 가공 방법에 따라 천양지차의 맛이 나는 것이 술이다. 김준철의 <양주 이야기>는 서양 술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돕는 책이다. 살림지식총서의 편집 방향과 의도, 제한된 분량이 말해주듯이 깊은 지식과 폭넓은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다. 간략하게 브리핑하듯 핵심적인 사항들을 소개하는 정도로 그친다.

  그래서 이 책은 주변에 널려 있는 양주병의 암호들을 해독하고 스카치와 브랜디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상식을 키울 수 있다. 스카치위스키의 경우 영국에서 발달하기 시작해서 그 원료와 증류 방법 숙성 과정에 따라 다양한 브랜드의 술들이 지금까지도 전통을 잇고 있다. 와인의 나라 프랑스는 샴페인과 꼬냑으로도 유명하다. 샹파뉴와 꼬냑 지방의 술로 지역명이 술의 대명사가 되었다는 사실도 재미있지만 꼬냑이 포도주를 다시 증류한 술이라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단순한 정보 차원에서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 많다.

  박정희가 김재규에게 총 맞는 자리에서 역사의 현장을 묵묵히 지켜보았을 시바스 리갈과 한국인들에게 유독 인기가 높은 발렌타인 등은 독특한 향과 맛 때문인지 아니면 옷처럼 브랜드 파워가 후광효과를 발휘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J & B나 조니워커, 글렌피딕 등의 술의 기원과 역사를 안다고 해서 양주의 맛이 달라지는건 아니지만 술에 관한 이야기를 술 안주로 삼아도 재미있을 것 같다.

  꼬냑의 경우 최상품에 나폴레옹이라는 상표를 내세운다. 헤네시와 로얄 살루트, 까뮈 등의 술병에 X O 혹은 V.S.O.P와 같은 암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고 오크통이 단순히 술을 숙성시키는 저장고가 아니라 술의 일부라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세상은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공감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만큼 이해할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양주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와 잡다한 상식을 넓힐 수 있는 책으로 손색이 없다.

  또한 진과 보드카, 럼과 칵테일, 테킬라, 칵테일, 스피릿, 리큐르 등 다양한 술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돕는다. 간략하지만 궁금증만 해소하는 차원에서는 적당하다. 좀 더 깊이 있는 내용과 상세한 역사를 알고 싶다면 당연히 다른 책을 참고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 이 책은 그저 웰빙과 음주 문화의 관점에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주에 관한 상식 수준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개인적으로 품었던 호기심이 많이 해소되었고 다른 관점에서 쓴 책이 있다면 몇 권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오래된 친구와 술 마시러 가는 동안 혹은 선물로 주고받은 양주의 내력이 궁금하다면 한 두시간을 투자해서 이 책을 읽어봐도 좋겠다. 날씨에 따라 기분에 따라 술의 종류를 선택하기도 한다. 흐린 봄날 저녁에 어울리는 술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술 이야기를 하다보니 또 다시 오래된 그 녀석이 생각난다.


070523-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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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5-24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은 관계를 느슨하게 해주고 가깝게 해주지요.
꼬냑이라하면 프라하의 봄에서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소리나지 않게 입으로만 이야기하던 장면이 떠올라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sceptic 2007-05-24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소리 가득한 밤입니다. 님도 행복한 시간들로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와인 한 잔의 여유가 생각나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