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꽃집 창비시선 275
김중일 지음 / 창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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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제 불편한 시가 싫어진다. 그 불편함은 내 마음의 불편함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인지 시의 언어와 이미지가 이성이나 감성을 자극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서걱이는 모래바람처럼 시의 언어들이 모래알처럼 뭉치지지 않고 흩어지는 시는 견디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내게 변화가 오는 것이다. 80년대 해체주의가 유행처럼 버질 무렵 시의 내용과 형태가 완전히 너덜거릴 때까지 콘크리트 벽에 문지르던 시절이 있었다. 의도와 이미지만 남고 시는 사라졌다. 종류는 다르지만 언어의 틈새와 의미의 간극을 짚어내는 건조한 시들이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신선함도 생의 감각이나 통찰도 전해주지 못하고 삐걱이며 겉돌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김중일의 <국경꽃집>은 시간과 사람 그리고 기계 사이를 넘나들며 다양한 변주를 울리고 있다. 상상력의 측면에서는 탁월하지만 생경한 이미지와 혼란스런 시점의 이동이나 황망한 공간이동 현실에서 벗어난 서술들이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데 그치고 있다. 시를 읽는 느낌이야 백인백색이니 물론 주관적인 느낌일 뿐이다. 이성의 어느 지점을 자극하거나 언어의 힘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의도였는지 모르지만 이제, 현실과 동떨어진 거리만큼 마음의 거리도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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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깐 엎드려서 낮잠을 자고 있었어. 꿈결인가……어느 익숙한 손길이 내 둥글게 구부러진 등과 어깨를, 흐느끼며 거칠게 잡아흔드는 거야. 도대체 뭐지? 눈을 떴을 때, 나는 국경꽃집 카운터에 앉아 있었어.
  - ‘국경꽃집의 일일’중에서

  표제어가 되고 있는 국경꽃집은 시인에게 경계선으로 금기의 선으로 보여진다. 국경은 눈에 보이는 실선이 아니라 마음안에 자리잡고 있는 가상의 선이다. 넘지 못할 금기의 선은 아니겠지만 경계의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분명한 기준이 된다. 모호한 시간과 공간의 경계 속에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꽃이 아니라 꽃을 팔고 있는 사람의 마음의 풍경일 것이다.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 속에서 환상과 현실의 간극을 메워주는 일이 시인의 몫이다. 김중일은 그 경계선에 서성거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안개처럼 모호한 영상만 가슴에 남는다. 

  봄 밤

이 밤 사장님이
지구 반대편 나스까 고원을 순시하신다

검은 도화지 위에 번진 도시의 불빛,
밤의 지분이 마드는 무정형의 불면

죽은 버드나무에 기대 우는
노파의 동굴같이 캄캄한 입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튀어나오는 박쥐들

또다시 사장님께서 버드나무에게로
멀고 먼 손을 뻗으시어, 철컥, 철컥,
가는 잎 수천수만 개 재개발하시는 봄밤

결재문서 속 검은 셀로 지정된 표를 따라
칸칸이 지나가는 첫 번째 전동차

먼 출장에서
노란 택시를 타고 사장님이 돌아오신다

  사장님의 존재가 화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다. 의미 이전의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다면 할 말이 없으나 현실의 지난함을 신화와 환상의 세계로 표현하는 것들이 때로는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법이다. 시간이 흐른 후에 또다시 접한다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젊은 시인의 생경한 언어들은 ‘철컥, 철컥’ 마음의 문을 잠가 버린다.

  하늘이 푸르고 바람이 시원하니 더 없이 행복하다는 식의 시만을 원하는 독자는 없다. 다람 새로움과 생각의 깊이 다양한 층위의 언어들이 보여주는 놀라움을 기다리는 욕심많은 독자들을 위해 시인들의 고통과 불면의 밤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오늘도 그들을, 그 시간들을, 그렇게 태어난 시들을 기다린다.


070601-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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