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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극복의 이정표들 - 우리시대 한국문학의 안팎
유희석 지음 / 창비 / 2007년 4월
평점 :
근대의 개념과 기점에 대한 논의는 여러 학문 분야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시대정신(Zeitgeist)이 중요한 이유는 어떤 사회적 논리나 현상에 대한 시각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근대는 중세를 넘어서면서 비롯된 다양성에 대한 반성이자 인류의 진보를 위한 교두보 역할을 했던 과정 속에서 찾아야 한다. 이제는 탈근대에 관한 논의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근대에 관한 이야기들은 여전히 여러 분야에서 관심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우리가 근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탈근대의 문제가 시기상조라고 여기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아직도 전근대적 이데올로기와 사회적 시스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태라고 하면 지나친 발상일까? 그렇지 않다. 정치와 사회 그리고 경제적 현상이나 이론들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 보이지 않는 공간들은 우리들 의식의 영역이다. 이러한 의식이 반영되어 눈에 보이는 현상들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예술이고 문학이다.
유희석의 <근대 극복의 이정표들>은 문학 평론집이다. 수잔 손택은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해석은 지식인이 예술에 가하는 복수다’라고 선언했다. 이후 비평에 대한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다양한 논란이 벌어졌지만 여전히 비평은 이루어지고 있다. 문학 작품에 대한 평가는 그 권위와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들만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학문적 관점에서 그들만의 리그가 벌어진다면 독자와의 거리는 그만큼 멀어져만 갈 것이다.
간만에 펼쳐든 평론집에 대한 생각과 느낌은 복합적이다. 개인적으로 김현 선생이 떠나고난 후에는 거의 평론집에 손을 대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몰입했거나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이 없지만 그의 글들을 읽으면서 비평의 기능에 대해 다시 생각했던 기억이 아득하다. 김현의 글은 또 다른 종류의 문학으로 읽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단 이성적인 설득과 논리적인 타당성 저편에 감동을 줄 수 있는 문장들이 큰 역할을 했다. 평론과 무관하지만 그의 <행복한 책읽기>는 지금도 가끔 꺼내 뒤적거려본다.
비평의 시대가 가버렸어도 여전히 유효한 비평의 기능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유희석의 <근대 극복의 이정표들>은 문학을 통해 시대 정신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정치한 논리와 예민한 감수성은 평론가가 지녀야할 덕목이다. 유희석은 이 책에서 이상과 김수영, 기형도와 고은의 시를 통해 근대 극복의 이정표를 제시하려는 시도를 한다. 80년대 이후 등장한 소설가와 통일 시대를 중심으로 한 소설에 대한 이야기들은 우리 문학의 풍토와 환경들을 통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개별 작품들을 통해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간격들을 메워줄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내가 읽어낸 징후들은 근대의 극복의지가 아니라 시대 정신을 앞서간 흔적들이다. 현실을 뛰어넘는, 시공을 초월한 환타지가 아니라 미래의 가치와 현실을 뒤엎는 부정정신만이 살 길이다. 영문학자답게 보들레르와 근대, 근대성, 모더니즘, 리얼리즘에 관한 폭넓은 성찰과 비판적 글쓰기는 저자의 왕성한 활동과 더불어 현재의 상황들을 다시 한 번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 서양문학과 근대 극복의 지평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4부의 경우 현실 극복의 의지가 아니라 서양문학의 극복과 근대의 극복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찾고 있다. 하늘에 떠 있는 별빛만을 쫓던 시대의 문학가들은 행복했다고 말하는 어느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다양성과 복잡성의 혼돈 속에서 문학의 지향점은 멀고 험하기만 하다. 뚜렷한 목적과 분명한 목소리가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겠다.
폭넓은 시야와 다양한 목소리들은 언제든 우리의 사고의 폭을 넓혀 준다. 개별 작품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중요하지만 시대나 상황을 통찰할 수 있는 흐름들을 읽어내는 것 또한 중요하다. 다시 그의 평론집을 읽게 될지 알 수 없으나, 해석에 반대하나, 근대 극복의 이정표들을 어렴풋하게 읽어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는 책으로 기억할 것이다.
070530-0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