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의 겉과 속 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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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드라마를 보지 않는 이유는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재미가 없어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거실에 TV를 치우고 붙박이 책장으로 채워버렸다. 끊임없이 쌓여가는 책들이 비좁게 서서 칼잠을 자고 있지만 공간은 여전히 부족하다. TV대신 책을 보는 것이 뭐 그리 나을 것은 없겠지만 적어도 시간을 소모하고 있다는 자괴감을 갖지는 않는다.

  텔레비전이든 책이든 많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 내린 문화 현상들은 순간적인 유행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문화라고 부른다. 계층과 계급에 따라 향유하고 즐기는 문화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한 사회의 혹은 특정 민족이나 국가의 문화로정착하게 된다. 이에 비해 대중문화라는 말은 우리가 일상에서 일반 대중들의 소비적 문화 현상으로 이해한다. 상대적으로 고급문화라는 말이 성립된다면 대중문화는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거나 깊은 사색과 통찰을 거쳐 얻을 수 있는 문화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즉흥적이고 일회적이며 소모적인 현상일 수도 있고 가볍게 접근하고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특징도 갖는 것이 대중문화이다. 2005년에 나온 <대중문화의 겉과 속 3>은 가장 최근에 벌어졌던 문화 현상들에 대한 보고서이다. 김찬호의 <문화의 발견>이 실제 현장 중심의 다양한 문화 현상들을 몇 가지 키워드로 풀어냈다면 강준만의 <대중문화의 겉과 속 3>은 문화 현상을 이루는 매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텔레비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텔레비전이 없었던 시절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 싶을 정도이다. 방송문화와 연예문화 그리고 인터넷 문화와 디지털기술 ․ 산업, 휴대전화 문화와 생활 ․ 소비 ․ 일상문화 등 여섯 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 3권은 이론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시켜 나간 2권과 다르게 다시 1권처럼 현상 중심으로 초점을 바꾸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열광했던 사람들의 심리, 삼순이 역할을 맡았던 ‘김선아’의 이미지, 주인공 ‘김삼순’의 행동과 대사를 살펴보는 것으로 이 책은 흥미롭게 접근한다. 하나의 문화 현상이 벌어지게 되는 것은 그것이 파괴력이 어디에서 출발하든 공감대와 내재적 폭발력을 지니게 된다. 확대 재생산 되는 과정을 거쳐 유행이 되고 하나의 현상이 되며 사람들의 생각이나 생활까지도 변화시킨다. 이것이 문화의 힘이다. 이름도 생소했던 파티쉐를 선호하는 청소년이 늘기도 했고 당돌하고 대찬 30대 솔로 여성들이 함께 울고 웃기도 했다.

  이른바 유행이라는 것은 일시적이고 소모적인 현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당대의 시대정신이나 사회 현상을 잘 드러내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최근 ‘텔미댄스’의 열풍을 보면 알 수 있다. 가볍고 경쾌한 몸짓과 반복적이고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리듬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 국민을 열광시켰다. 순진하고 귀여워 보이는 소녀들의 표정과 몸짓속에 순수함과 섹시함을 교묘하게 결합시켜 놓은 박진영의 솜씨 또한 놀랍다. 하나의 현상은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즐거움과 쉽게 결합한다.

  일본과 중국을 뒤흔들었던 한류 현상에 대한 분석과 인디 문화에 대한 고찰들은 지나간 이슈라기보다 진행되고 있는 우리들의 과제이기도 하다. 블로그나 포털 저널리즘은 유행을 넘어 댓글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소통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 온라인 게임의 강국인 대한민국의 원인과 현상들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고 MP3 산업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 여전히 지속되는 대중문화의 핵심적 요소들을 다양한 시선과 이면에 대해 고민해 보는 일은 현재를 고민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제공한다.

  4권, 5권으로 이 책은 계속해서 나올 수 있다. 현재의 관점에서 문화 현상들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의 삶을 담아냈던 박태원의 소설들처럼 시대의 이 책들은 훗날 기록 필름과 같은 역할을 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기록도 기록자의 가치가 반영된다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이것은 강준만의 눈에 비친 사회 현상들이다. 얼마나 객관적으로 - 객관적이라는 말이 성립할 수 있다면 - 분석하고 기록하느냐의 문제는 저자 뿐 아니라 독자들의 비판적 시각도 필요하다.

  하나의 사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내듯 수많은 사람들이 현재 우리의 모습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로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이것은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미래의 아젠다를 만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확고하게 자리잡은 휴대전화 문화는 눈여겨 볼만했다. 메시지에 열광하는 사람들과 생활이 되어버린 아이들, 카메라폰이 바꾸어 버린 세상의 모습은 심각하게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디지털 치매 현상에 대한 분석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공감했다. 그 당사자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고 하지만 그만큼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가고 있다. ‘지식in’이 백과사전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식에 정의와 태도마저 바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아무리 걱정하거나 경계해도 시대는 변하고 세대는 바뀌며 그것을 따라 대중문화가 형성된다. 다양한 이념들과 삶의 가치들이 부딪히고 조화를 이루면서 이 사회는 유지되고 지탱되어 간다. 하지만 대중들은 그 모든 현상들의 주체로서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며 이끌어 간다고 볼 수 없다. 그 현상들의 이면에 숨겨진 자본의 논리와 왜곡된 사실, 추악한 음모들을 가만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럴 수 없다면 우리는 눈 뜬 장님으로 혹은 무비판적 소비재로 활용될 수도 있다.

  안다고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 내 삶 속에 물들어가는 모습에 대한 반성과 작은 실천은 대중문화 현상들 속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자세이다. 그것이 어디쯤에 멈출 것인지, 어떤 태도와 반응을 보일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내가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 각자의 몫이다. 책임 회피가 아니라 주체적 자각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08032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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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읽기의 혁명 - 개정판
손석춘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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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07년에 6개월간 한겨레 신문 독자 모니터링을 했다. PDF파일 형식의 편집 상태 신문이 전송되면 신문을 보듯이 클릭해서 관심있는 기사를 보면 된다. 내가 클릭하는 순서와 기사의 내용이 모니터링 되는 것이다. 신문사에서는 어떤 편집에 따라 독자들의 기사 선호도와 관심 정도가 달라졌는지 확인했을 것이다. 때로는 같은 내용을 따른 편집으로 보여줄 때도 있었다. 먼저 클릭하는 기사의 내용이 달라지고 관심도도 조금 변하게 된다. 이것이 편집이다. 같은 기사 내용에 가치가 개입되어 현실이 재단되며 표제에 따라 여론이 춤을 춘다.

  내가 처음 본 신문은 동아일보였다. 물론 부모님의 선택이었고 신문과 뉴스 내용이 내겐 세상의 전부였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지금도 아이들은 부모님이 보는 신문과 TV의 뉴스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것이 어떤 내용이든 의심 없이, 마치 종교의 경전처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굳게 믿는다. 그것이 내가 세상을 배운 방식이고 아이들이 세상을 배워나가는 기준이다. 물론 지금은 인터넷 매체의 발달로 예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신문과 TV 뉴스의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조선일보를 본 기억은 없고 이후 중앙일보와 한국일보 그리고 최근에 매일경제를 보시는 부모님의 성향은 일반적인 보수성향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일보만은 안 된다고 외쳐서 그런지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경향신문이나 한겨레를 권하는 것은 무리인 듯싶다. 어떤 신문을 보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아니, 어떤 성향의 신문을 보느냐가 중요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신문의 성향과 논조대로 세상을 바라본다. 자신도 모른채 무슨 색이 들어간 안경인 줄도 모르고 투명하게 바라본다고 믿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신문은 다 똑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관연 그럴까? 손석촌의 <신문 읽기의 혁명>은 세상 읽기의 혁명이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책보다 실감나게 읽힌다. 게다가 기자의 글솜씨가 아닌가. 가독성이 극대화되어 어렵고 비판적인 이야기도 술술 넘어간다. 사실 어려운 이야기는 없다. 신문을 둘러싸고 있는 권력과 자본의 먹이 사슬에 관한 냄새나고 지저분한 역학 관계에 대한 새로울 것도 없는 분석이다.

  이 책은 청소년들에게 권할 만하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부모들이 보는 신문이나 자기가 접하고 있는 세계가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는 청소년들에게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 줄 수 있겠다. 현상과 본질의 차이에 대해 아무리 설명을 듣고 책상머리에서 고민해보아도 쉽게 답은 찾아지지 않는다. 직접 부딪히고 경험해 보아야 한다. 한계가 있다면 간접 경험을 통해 그것이 가능하겠다. 신문만큼 좋은 간접 경험은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널리 읽혔겠지만 지속적으로 재개정판이 나오고 후속편도 나왔으면 좋겠다.

  이 책의 초점은 한 곳에 집중되어 있다. 바로 ‘편집’이다. 기사의 내용과 취재 과정 그리고 취재원이나 기사문 작성과 같은 표면적인 이야기들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쉽게 말해 내용면에서 기사문의 형식과 글쓰기에 관한 정보를 접하려는 독자는 큰 코 다치겠다. 이 책은 철저하게 기사 작성 너머의 풍경을 조망하고 있다. 취재가 아닌 편집의 중요성과 절대성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이다. 기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편집을 알아야 비로소 기사가 보인다는 것이다. 좋은 기사가 나와야 하고 신문은 기본은 취재에서 출발한다고 믿는 많은 독자들에게 이 책은 신문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다.

  손석춘은 그 명백한 증거들을 실제 신문 기사와 조선, 동아, 중앙, 한겨레를 통해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97년에 나온 초판에 비해 2003년에 나온 개정판은 사료로서의 가치가 존중되고 시대에 뒤떨어진 기사들은 교체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신문 기사처럼 시대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에 허망함을 느끼는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매일 지나간 과거를 써나가는 기자들의 고통과 애환 그리고 치열함을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는 점도 현직 기자가 출신의 저자가 쓴 이 책의 장점이다.

  책의 구성은 네 부분으로 간단하게 나누어져 있다. 신문의 편집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지면은 평면이 아니라 입체라는 것, 사설을 읽어야 편집이 보인다는 것, 신문 지면은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순서대로 보여주고 있다. 제목처럼 신문 읽기의 혁명이 아니라 신문의 제작과정과 편집과정을 제대로 알고 읽으라고 기자의 안타까운 외침이다. 그래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유효한 책이다. 내 생각의 절반을 내가 보는 신문에게 빚지고 있다면 얼른 이 책을 뒤적여 봐야할 것이다.

독자 자신이 주체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며 읽어야 한다. 독자 개개인의 입장에서 신문을 재편집할 때 지면 읽기란 신문 편집자와 한 판 장기를 두는 것과 같다. 상대방이 둔 수를 보며 그 의중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 P. 280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의도는 쉽게 짐작된다. 한겨레 노조위원장을 거친 저자의 이력이 말해주듯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재벌 신문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눈뜬  장님으로 살아가거나 그것이 자신의 계급의식이나 삶의 형태와 상관없이 신문사의 의도대로 세뇌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울리는 경종이다.

  하나의 사물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관점들을 가지고 대립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상대방을 인정할 줄 모르는 태도일 것이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 표제를 뽑는 방식도 의도도 다르다. 사설부터 기사의 배치에 이르기까지 의도적이고 계획된 편집들은 여전히 자본의 논리와 사주의 이익에 철저하게 복무하고 있으며 재벌 광고주의 이익과 권력 앞에 비참한 모습으로 무릎 꿇고 있다. 현대사의 굴곡에 따라 변신로봇처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각 신문들의 실체를 우리는 여전히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포탈 사이트나 인터넷 신문 매체로 인해 종이 신문의 발행부수나 위력은 전에 없이 약화되었다. 하지만 매체가 달라졌을 뿐,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의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신문 읽기의 혁명 뿐만 아니라 매체 읽기의 혁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080319-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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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을 따라 1면 머리기사가 정해지기도 하지만 신문의 머리기사에 따라 여론이 흘러가는 경우가 더 많다는 사실에서 그 의미를 실감할 수 있을 터이다. - P. 16

삶의 현실과 신문 지면 사이에 불가피하게 놓이게 된 여과장치가 바로 편집인 셈이다. - P. 23

가치판단이 빠진 편집이란 애초부터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 P. 24

신문 표제란 제목과 달리 기사를 종합하는 한편 역동적이고 구체적으로 그것을 드러내주어야 한다. - P. 63

사설을, 신문을 ‘비판적 안목’으로 읽을 수 있도록 교육하는 일대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 P. 226

독자 자신이 주체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며 읽어야 한다. 독자 개개인의 입장에서 신문을 재편집할 때 지면 읽기란 신문 편집자와 한 판 장기를 두는 것과 같다. 상대방이 둔 수를 보며 그 의중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 P. 280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은 ‘언론기관’이라는 골리앗 앞에서 대단히 무기력한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신문을 올바르게 읽어 나간다면 독자들은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이 될 수 있다. 신문을 볼 때 편집을 읽어야 한다는 이 책의 주제도 결국 다윗이 골리앗에게 던졌던 돌멩이를 독자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 P. 283

삶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말을 대량으로 양산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에 철저히 예속될 수밖에 없다. - P.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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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사 전(傳) - 한국사에 남겨진 조선의 발자취
김경수 지음 / 수막새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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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속사나 생활사와 같은 미시사가 아니라 왕조 중심의 거시적 안목에서 바라보는 역사는 왠지 허망한 신화나 전설 같은 느낌이 든다. 분명 통탄할 만한 우리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먼 나라의 이야기로 들린다. 21세기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끼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삶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변화의 속도에 어지럼증을 느낄 만큼 세상은 달라지고 있지만  때때로 우리는 부적응의 문제를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먼 미래에 역사가들은 21세기의 시대정신을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조선 왕조 500년을 한 마디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위정자들의 이야기는 인간 본성의 가장 극악한 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김경수의 <조선 왕조사 傳>은 철저하게 왕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傳’이라는 형식이 황제나 영웅의 일대기를 걸출한 문장가가 쓴 것이기 때문에 이 책은 ‘전傳’이 갖추어야할 형식적인 요건을 갖추고 있다.

  1392년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부터 1910년 8월 대한제국이 망해버릴 때까지 마지막 왕이었던 순종에 이르기까지 스물일곱 명의 조선 왕조에 대한 간략한 보고서에 해당하는 책이다. 단 한 명의 왕도 빼놓지 않고 연대기 순으로 재임 기간을 충실하게 적시하고 있다. 종실의 관계와 권력의 암투 과정, 당쟁과 세도 정치 사이에서 풍전등화와 같았던 조선의 왕들은 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동정의 눈길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왕의 지위는 인간과 하늘의 매개자의 위치에 놓여 있다. 일반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왕조시대는 끔찍했을 것이다. 장자라는 이유만으로 한 나라를 책임져야 했고, 가신들의 권력 투쟁 과정에서 독살 되기도 했던 조선의 왕들은 백성들과는 무관한 저 높은 곳의 무소불위의 존재였다.

  스물일곱 명의 왕 중에서 뛰어난 능력과 훌륭한 인격을 겸비한 왕을 우리는 얼마나 손꼽을 수 있을까? 조선 왕조 500년을 통틀어 최고의 르네상스였다고 평가받는 세종과 정조 정도를 제외하면 객관적인 평가 자체가 무의미하다. 물론 개인적인 능력만을 놓고 평가하는 것은 역사적 상황과 맥락을 무시한 바보 같은 짓이다. 하지만 피맺힌 한을 가슴에 담고 위정자들에게 억눌려 살았던, 자신의 운명을 온통 그들에게 내맡겨야 했던 백성들의 한숨과 눈물이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무얼까?

  이 책은 단편적인 역사적 사건들이 머릿속에서 맴도는 사람들에게 구슬을 꿰는 실과 같은 역할을 해 줄 것이다. 구체적이고 자세한 상황들을 모두 설명해 줄 수 없는 한계가 있는 대신 태조부터 순종까지 조선 왕조 전체를 조망하고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저자의 개인적인 견해와 해석, 평가 보다는 객관적인 사실들의 전후 관계와 인과 관계를 연결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특징도 지니고 있다. 한마디로 통시적인 관점에서 조선왕조 전체를 일괄할 수 있는 책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미시사가 각광을 받았다.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다. 구체적인 역사, 생활 속의 역사, 민중들의 역사, 여성의 역사가 우리의 삶이고 과거라는 것은 자명하다. 위정자 중심, 승리자 중심, 왕권 중심의 역사라는 본류를 무시할 수 없지만 진정한 역사의 주인공들이 되외시 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한국생활사박물관>이 그래서 주목을 받았고 최근 이덕일의 저작들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신명호의 <조선 왕비 신록>은 이 책과 좋은 짝이 될 만하다. 남성이 있다면 인류의 절반은 여성이다. 왕이 있으면 왕비가 있다. 당연한 이치지만 왕을 둘러싼 권력의 승계와 암투에는 왕비의 역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간과한 것이 아닐까? ‘조선 왕조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왕비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두 책은 비교해가면서 읽을 수 있는 흥미 있는 관계에 놓여있다. 서로 다른 저자의 책이지만 다른 방식으로 왕조의 역사를 다루고 있어 서로 보완하며 읽을 만하다.

  왕들의 삶은 결코 행복했다고 보기 어렵다. 왕이 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인 세자 책봉에서부터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교육과 권력 투쟁의 소용돌이는 한 인간의 삶이라는 측면에서 결코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왕위에 오르더라도 자신의 뜻과 이상만으로 조선을 통치할 수도 없었고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으나 백성들의 삶과 국가 전체의 운명을 뒤흔들만큼 일사분란하게 영향을 미칠 수도 없었다. 국내외 정세와 정치적인 상황들이 한 개인의 능력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나 절대 고독과 개인적인 고뇌를 느끼며 운명을 달리했던 수많은 조선의 왕들을 하나씩 살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널리 알려진 일반적인 사실들의 나열과 대표적인 사건들 중심의 전개라는 특징 없는 책이라는 아쉬움도 남는 책이다. 그래도 조선왕조와 세계사를 비교한 연표나 당쟁의 출발과 전개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부분들은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한국사에 남겨진 조선 왕조의 뚜렷한 족적들은 결국 근현대사에 어두운 그림자로 이어진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먼 과거의 미래였다. 미래의 과거일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은 그래서 더 조심스러운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 우리의 역사는 대통령과 정부의 역사가 아니라 이 땅에 발 딛고 서 있는 사람들 모두의 역사이다. 21세기의 역사를 우리는 지금 여기에 발로 써 나가고 있는 것이다.


080316-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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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겉과 속 2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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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가 변해가도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과 비판은 계속될 것이다. 강준만의 책은 그런 의미에서 유행에 대한 추적 조사 보고서가 아니라 비판적 안목을 제시하는 안내서의 역할을 한다. 적절한 시의성을 생명으로 하는 대중문화 들여다보기는 자칫하면 철지난 유행가 따라 부르기가 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대중문화의 겉과 속 1>에서 다양한 매체와 미디어를 중심으로 폭넓은 문화 현상들을 분석했다면 <대중문화의 겉과 속 2>에서는 이론적 접근이 두드러진다. 두 책은 제목만 같을 뿐 별개의 책으로 묶여도 상관없다. 따라서 속편의 개념으로 읽을 필요가 없다. 물론 대중문화라는 공통 분모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접근 방식은 새롭다.

  1권에서는 신문과 방송, 인터넷 등 매체별 특성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문화 현상의 속성들을 뒤집어 보는 데 주력했다. 맥루한의 “미디어가 곧 메시지이다”라는 말을 인용한다면 매체의 속성 자체가 대중문화의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고 볼 수 있었다. 2권에서는 이러한 현상들이 나타나는 원인과 배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머리말에서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미디어를 읽고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리터러시는 ‘문식성’이라는 용어로 번역되어 사용되기도 하는데 미디어에도 적용 가능한 개념으로 확대하고 있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장 보들리야르의 시뮬라시옹 그리고 미셀 푸코의 판옵티콘까지 다양한 개념들을 대중문화와 접목시켜 이해의 잣대로 사용하고 있다. 결국 문화의 확장된 형태 혹은 부분 집합으로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대중문화라고 볼 수 있다.

  소비문화나 마케팅 측면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은 21C가 시작되면서 나타나는 현상들을 다양한 사례들과 더불어 정교하게 분석하고 있다. 행복을 돈 주고 살 수 있고 돈이 곧 민주주의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은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볼 수 없지만 자본이 대중과 결합되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쇼윈도에 비친 우리들의 자화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는 문화현상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정착되어 버린 인터넷에 대한 분석도 지속적으로 시도되고 있다. 인터넷에 나타나는 다중인격이나 사이버 공간의 특성들을 살펴보고 하나의 권력으로 성장한 포털사이트나 경제 구조까지 점검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인터넷과 더불어 휴대폰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인터넷과 휴대폰이 없는 세상이나 생활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세대에게는 그것이 없었던 시절을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에 ‘인터넷과 휴대폰의 경제학’을 통해 디지털 격차와 인터넷 시간에 대해 분석한다. 한국이 왜 두 분야의 강국이 되었는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이야기들을 설명하며 책을 맺는다. 주로 ‘미디어’에 초점을 맞추고 대중문화 전반을 살펴보는 것은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이다. 이것은 사회학이나 정치학으로 확산되고 전반적인 한국 사회를 조망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을 제공한다.

  문화는 결국 우리들 삶의 모습이다. 거미줄처럼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의 모든 현상들을 조망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무의미할 지도 모른다. 1권보다 체계적이고 심도있게 ‘미디어’를 중심으로 대중문화 현상들을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정제되고 집약적인 느낌이다.

  뒤늦게 2003년에 나온 책을 통해 과거의 시점으로 현재를 돌아보는 즐거움도 얻을 수 있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는 당시의 풍속사를 기록한 책으로도 읽힐 만하다. 지금 나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다면 과거 혹은 다른 시대,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좋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줄 수는 없겠지만 지나간 시간들 속에서 변화해 온 현재를 확인할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다.

  이제 2006년에 나온 3권으로 마무리 할 차례다. 책 몇 권으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조망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여러 층위에서 살펴 볼 수 있는 기회는 제공해 줄 것이다. 모르고 휩쓸리고 알면서도 따라가는 것이 여러 사람들의 문화가 되고 사회를 이끌어 간다. 비판적 관점과 올바른 판단력은 아무도 만들어 주지 않는다. 스스로 만들어가며 고쳐 나가는 세상살이의 도구로서, 제 역할을 하기 위한 방패 하나쯤 가지고 싶다. 책이 방패가 될 수 있을지는 늘 의문이지만.


20080314-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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