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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겉과 속 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드라마를 보지 않는 이유는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재미가 없어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거실에 TV를 치우고 붙박이 책장으로 채워버렸다. 끊임없이 쌓여가는 책들이 비좁게 서서 칼잠을 자고 있지만 공간은 여전히 부족하다. TV대신 책을 보는 것이 뭐 그리 나을 것은 없겠지만 적어도 시간을 소모하고 있다는 자괴감을 갖지는 않는다.
텔레비전이든 책이든 많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 내린 문화 현상들은 순간적인 유행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문화라고 부른다. 계층과 계급에 따라 향유하고 즐기는 문화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한 사회의 혹은 특정 민족이나 국가의 문화로정착하게 된다. 이에 비해 대중문화라는 말은 우리가 일상에서 일반 대중들의 소비적 문화 현상으로 이해한다. 상대적으로 고급문화라는 말이 성립된다면 대중문화는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거나 깊은 사색과 통찰을 거쳐 얻을 수 있는 문화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즉흥적이고 일회적이며 소모적인 현상일 수도 있고 가볍게 접근하고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특징도 갖는 것이 대중문화이다. 2005년에 나온 <대중문화의 겉과 속 3>은 가장 최근에 벌어졌던 문화 현상들에 대한 보고서이다. 김찬호의 <문화의 발견>이 실제 현장 중심의 다양한 문화 현상들을 몇 가지 키워드로 풀어냈다면 강준만의 <대중문화의 겉과 속 3>은 문화 현상을 이루는 매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텔레비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텔레비전이 없었던 시절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살았을까 싶을 정도이다. 방송문화와 연예문화 그리고 인터넷 문화와 디지털기술 ․ 산업, 휴대전화 문화와 생활 ․ 소비 ․ 일상문화 등 여섯 개의 장으로 구분되어 있는 3권은 이론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시켜 나간 2권과 다르게 다시 1권처럼 현상 중심으로 초점을 바꾸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열광했던 사람들의 심리, 삼순이 역할을 맡았던 ‘김선아’의 이미지, 주인공 ‘김삼순’의 행동과 대사를 살펴보는 것으로 이 책은 흥미롭게 접근한다. 하나의 문화 현상이 벌어지게 되는 것은 그것이 파괴력이 어디에서 출발하든 공감대와 내재적 폭발력을 지니게 된다. 확대 재생산 되는 과정을 거쳐 유행이 되고 하나의 현상이 되며 사람들의 생각이나 생활까지도 변화시킨다. 이것이 문화의 힘이다. 이름도 생소했던 파티쉐를 선호하는 청소년이 늘기도 했고 당돌하고 대찬 30대 솔로 여성들이 함께 울고 웃기도 했다.
이른바 유행이라는 것은 일시적이고 소모적인 현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당대의 시대정신이나 사회 현상을 잘 드러내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최근 ‘텔미댄스’의 열풍을 보면 알 수 있다. 가볍고 경쾌한 몸짓과 반복적이고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리듬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 국민을 열광시켰다. 순진하고 귀여워 보이는 소녀들의 표정과 몸짓속에 순수함과 섹시함을 교묘하게 결합시켜 놓은 박진영의 솜씨 또한 놀랍다. 하나의 현상은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즐거움과 쉽게 결합한다.
일본과 중국을 뒤흔들었던 한류 현상에 대한 분석과 인디 문화에 대한 고찰들은 지나간 이슈라기보다 진행되고 있는 우리들의 과제이기도 하다. 블로그나 포털 저널리즘은 유행을 넘어 댓글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소통의 과정으로 이해하고 접근해야 한다. 온라인 게임의 강국인 대한민국의 원인과 현상들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고 MP3 산업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 여전히 지속되는 대중문화의 핵심적 요소들을 다양한 시선과 이면에 대해 고민해 보는 일은 현재를 고민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제공한다.
4권, 5권으로 이 책은 계속해서 나올 수 있다. 현재의 관점에서 문화 현상들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의 삶을 담아냈던 박태원의 소설들처럼 시대의 이 책들은 훗날 기록 필름과 같은 역할을 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기록도 기록자의 가치가 반영된다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이것은 강준만의 눈에 비친 사회 현상들이다. 얼마나 객관적으로 - 객관적이라는 말이 성립할 수 있다면 - 분석하고 기록하느냐의 문제는 저자 뿐 아니라 독자들의 비판적 시각도 필요하다.
하나의 사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내듯 수많은 사람들이 현재 우리의 모습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로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이것은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거시적 관점에서 미래의 아젠다를 만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확고하게 자리잡은 휴대전화 문화는 눈여겨 볼만했다. 메시지에 열광하는 사람들과 생활이 되어버린 아이들, 카메라폰이 바꾸어 버린 세상의 모습은 심각하게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디지털 치매 현상에 대한 분석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깊이 공감했다. 그 당사자가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고 하지만 그만큼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가고 있다. ‘지식in’이 백과사전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식에 정의와 태도마저 바뀌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아무리 걱정하거나 경계해도 시대는 변하고 세대는 바뀌며 그것을 따라 대중문화가 형성된다. 다양한 이념들과 삶의 가치들이 부딪히고 조화를 이루면서 이 사회는 유지되고 지탱되어 간다. 하지만 대중들은 그 모든 현상들의 주체로서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며 이끌어 간다고 볼 수 없다. 그 현상들의 이면에 숨겨진 자본의 논리와 왜곡된 사실, 추악한 음모들을 가만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럴 수 없다면 우리는 눈 뜬 장님으로 혹은 무비판적 소비재로 활용될 수도 있다.
안다고 세상이 변하지는 않는다. 내 삶 속에 물들어가는 모습에 대한 반성과 작은 실천은 대중문화 현상들 속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자세이다. 그것이 어디쯤에 멈출 것인지, 어떤 태도와 반응을 보일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내가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 각자의 몫이다. 책임 회피가 아니라 주체적 자각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080322-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