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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읽기의 혁명 - 개정판
손석춘 지음 / 개마고원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2007년에 6개월간 한겨레 신문 독자 모니터링을 했다. PDF파일 형식의 편집 상태 신문이 전송되면 신문을 보듯이 클릭해서 관심있는 기사를 보면 된다. 내가 클릭하는 순서와 기사의 내용이 모니터링 되는 것이다. 신문사에서는 어떤 편집에 따라 독자들의 기사 선호도와 관심 정도가 달라졌는지 확인했을 것이다. 때로는 같은 내용을 따른 편집으로 보여줄 때도 있었다. 먼저 클릭하는 기사의 내용이 달라지고 관심도도 조금 변하게 된다. 이것이 편집이다. 같은 기사 내용에 가치가 개입되어 현실이 재단되며 표제에 따라 여론이 춤을 춘다.
내가 처음 본 신문은 동아일보였다. 물론 부모님의 선택이었고 신문과 뉴스 내용이 내겐 세상의 전부였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지금도 아이들은 부모님이 보는 신문과 TV의 뉴스를 통해 세상을 바라본다. 그것이 어떤 내용이든 의심 없이, 마치 종교의 경전처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굳게 믿는다. 그것이 내가 세상을 배운 방식이고 아이들이 세상을 배워나가는 기준이다. 물론 지금은 인터넷 매체의 발달로 예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신문과 TV 뉴스의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조선일보를 본 기억은 없고 이후 중앙일보와 한국일보 그리고 최근에 매일경제를 보시는 부모님의 성향은 일반적인 보수성향이라고 볼 수 있다. 조선일보만은 안 된다고 외쳐서 그런지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경향신문이나 한겨레를 권하는 것은 무리인 듯싶다. 어떤 신문을 보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아니, 어떤 성향의 신문을 보느냐가 중요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신문의 성향과 논조대로 세상을 바라본다. 자신도 모른채 무슨 색이 들어간 안경인 줄도 모르고 투명하게 바라본다고 믿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신문은 다 똑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관연 그럴까? 손석촌의 <신문 읽기의 혁명>은 세상 읽기의 혁명이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종류의 책보다 실감나게 읽힌다. 게다가 기자의 글솜씨가 아닌가. 가독성이 극대화되어 어렵고 비판적인 이야기도 술술 넘어간다. 사실 어려운 이야기는 없다. 신문을 둘러싸고 있는 권력과 자본의 먹이 사슬에 관한 냄새나고 지저분한 역학 관계에 대한 새로울 것도 없는 분석이다.
이 책은 청소년들에게 권할 만하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부모들이 보는 신문이나 자기가 접하고 있는 세계가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는 청소년들에게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 줄 수 있겠다. 현상과 본질의 차이에 대해 아무리 설명을 듣고 책상머리에서 고민해보아도 쉽게 답은 찾아지지 않는다. 직접 부딪히고 경험해 보아야 한다. 한계가 있다면 간접 경험을 통해 그것이 가능하겠다. 신문만큼 좋은 간접 경험은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널리 읽혔겠지만 지속적으로 재개정판이 나오고 후속편도 나왔으면 좋겠다.
이 책의 초점은 한 곳에 집중되어 있다. 바로 ‘편집’이다. 기사의 내용과 취재 과정 그리고 취재원이나 기사문 작성과 같은 표면적인 이야기들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쉽게 말해 내용면에서 기사문의 형식과 글쓰기에 관한 정보를 접하려는 독자는 큰 코 다치겠다. 이 책은 철저하게 기사 작성 너머의 풍경을 조망하고 있다. 취재가 아닌 편집의 중요성과 절대성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이다. 기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편집을 알아야 비로소 기사가 보인다는 것이다. 좋은 기사가 나와야 하고 신문은 기본은 취재에서 출발한다고 믿는 많은 독자들에게 이 책은 신문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한다.
손석춘은 그 명백한 증거들을 실제 신문 기사와 조선, 동아, 중앙, 한겨레를 통해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97년에 나온 초판에 비해 2003년에 나온 개정판은 사료로서의 가치가 존중되고 시대에 뒤떨어진 기사들은 교체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신문 기사처럼 시대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에 허망함을 느끼는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매일 지나간 과거를 써나가는 기자들의 고통과 애환 그리고 치열함을 충분히 읽어낼 수 있다는 점도 현직 기자가 출신의 저자가 쓴 이 책의 장점이다.
책의 구성은 네 부분으로 간단하게 나누어져 있다. 신문의 편집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지면은 평면이 아니라 입체라는 것, 사설을 읽어야 편집이 보인다는 것, 신문 지면은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순서대로 보여주고 있다. 제목처럼 신문 읽기의 혁명이 아니라 신문의 제작과정과 편집과정을 제대로 알고 읽으라고 기자의 안타까운 외침이다. 그래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유효한 책이다. 내 생각의 절반을 내가 보는 신문에게 빚지고 있다면 얼른 이 책을 뒤적여 봐야할 것이다.
독자 자신이 주체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며 읽어야 한다. 독자 개개인의 입장에서 신문을 재편집할 때 지면 읽기란 신문 편집자와 한 판 장기를 두는 것과 같다. 상대방이 둔 수를 보며 그 의중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 P. 280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의도는 쉽게 짐작된다. 한겨레 노조위원장을 거친 저자의 이력이 말해주듯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재벌 신문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책이기도 하다. 눈뜬 장님으로 살아가거나 그것이 자신의 계급의식이나 삶의 형태와 상관없이 신문사의 의도대로 세뇌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울리는 경종이다.
하나의 사물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관점들을 가지고 대립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상대방을 인정할 줄 모르는 태도일 것이다. 동일한 사건을 두고 표제를 뽑는 방식도 의도도 다르다. 사설부터 기사의 배치에 이르기까지 의도적이고 계획된 편집들은 여전히 자본의 논리와 사주의 이익에 철저하게 복무하고 있으며 재벌 광고주의 이익과 권력 앞에 비참한 모습으로 무릎 꿇고 있다. 현대사의 굴곡에 따라 변신로봇처럼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각 신문들의 실체를 우리는 여전히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포탈 사이트나 인터넷 신문 매체로 인해 종이 신문의 발행부수나 위력은 전에 없이 약화되었다. 하지만 매체가 달라졌을 뿐,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의 모습과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에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신문 읽기의 혁명 뿐만 아니라 매체 읽기의 혁명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080319-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