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 - 미국의 식민지 대한민국, 10 vs 90의 소통할 수 없는 현실
지승호 지음, 박노자 외 / 시대의창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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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는 것은 불온하다. 세상을 긍정적, 낙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행복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많은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은 인식의 폭을 넓혀 주지만 현실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회를 보는 관점이 래디컬하다. 강유원은 이 말을 참 좋아한다고 했다. 현실 인식은 사람마다 다르고 대응 방식도 다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세상과 현실에 대해 혹은 사람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무지와 편견이다. 뭣도 모르면서 아는 척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아집과 독선이 문제이다.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 둘째는 자신의 계급과 이익에 반하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 것이다. 빌헬름 라이히의 표현한 대로 ‘파시즘의 대중심리’는 상상을 초월한다. 조선일보를 자신의 생각이라고 굳게 믿는 노동자의 경우를 일컫는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왜, 어떤 방식으로 나에게, 우리에게 이익이 되는지 모르지만, 이라크에 파병하면 어떻게 이익이 되는지 모르지만 ‘국익’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국익’과 ‘10% 부자’를 구별하지 못하는 대다수 국민들을 위한 세상 바로알기 캠페인이라도 벌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박노자, 홍세화, 김규항, 한홍구, 심상정, 진중권, 손석춘 - 심상정을 제외하고는 여러권의 책을 통해 끊임없이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인터뷰어 지승호는 이번에‘도’ 이들을 선택했다. ‘신자유주의와 자본 파시즘에 맞선’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나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누구 말마따나 읽을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이들의 책을 읽고 이들의 인터뷰집을 읽는다. 매년 봄 한겨레 특강을 통해서나 프레시안 특강을 묶은 <여럿이함께>라는 책을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은 왼쪽에 가슴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적어도 그들의 말에 공감하거나 들어볼 마음의 자세를 가진 사람들은 사실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이제 지승호의 책은 살펴보지 않고 사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신뢰가 간다. 한 인터뷰어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은 그간 그가 보여준 성실함과 끈기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 때문이다.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이라는 제목으로 묶어낸 그의 책은 일곱 명의 시각으로 바라본 21세기를 여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지는 현실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은 별개일 수밖에 없다. 가진 것이 다르고 지켜야 할 것이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삶에 대처하고 있으며 미래를 바라보고 있을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현실인식은 지극히 암울해진다. 시니컬하고 래디컬한 성향을 벗어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람됨’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적어도 내겐 ‘사람됨’으로 채워지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고 믿는다. 홍세화가 인터뷰 중에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한다.

생존 수단이 존재 이유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 P. 77

  한 참 동안이나 이 말을 들여다보았다. 고아처럼 자라며 오늘 저녁 한 끼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아이들이 있다. 먹고 사는 일 자체가 생존의 목적인 사람들이 있다. 자본의 힘은 블랙홀처럼 인간의 존재 이유를 빨아들인다. 망각의 힘은 생존 수단으로부터 시작된다. 주변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지만, 그들만의 리그는 오늘도 계속된다.

  미국의 ‘자발적 식민지’가 된 나라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공화국’의 가치를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을 알아야 한다. ‘자본 파시즘’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한 번도 거울을 보지 않으면 내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머리 까만 미국인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 한국 사람인지 머리 까만 미국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삼성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머리 까만 미국인과 함께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우리들의 자화상은 비참하기만 하다. 개혁이 아니라 혁명이 필요하다.

  생각해 보자. 브라질의 룰라나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에 대해서, 그들의 선택에 대해서. 김규항은 인터뷰 도중에 이런 말을 한다.

사람들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게 되어 있어요. - P. 300

  어떤 식으로든 대중이 움직여야 현실이 달라진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우선이겠고 그 다음은 움직여야 한다. 이기적 욕망과 무임승차에 대한 간사함을 이겨낼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은 시민 사회 단체의 몫이나 활동가들이 책임져야할 일이 아니다. 나 혼자 꿈을 꾸면 공상이 되지만, 다함께 같은 꿈을 꾸면 현실이 된다.


07092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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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영길 후보와 함께 하는 블로거 간담회에 초대합니다.
    from 태터앤미디어 공식블로그 : 블로그 미디어 & 마케팅 2007-10-08 17:13 
    안녕하세요. 태터앤미디어팀 정윤호입니다. 17대 대선을 맞아 블로고스피어에서도 대선과 관련하여 다양한 이야기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태터앤미디어에서는 대선후보들과 블로거들이 한자리에 모여 평소 후보에게 궁금했던 점이나 대선공약 등에 대해 직접 질문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사상 그리고 언론사상 초유의 실험이라고 평해주셔서 더욱 열심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 오는 10월 15일 월요일에는 대선 후보 릴레이 간담회 두번째로 민주..
 
 
2007-09-27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28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7-09-28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을 그 수준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에게 공을 다 넘기는 것은 아닐까요?

sceptic 2007-09-28 14:36   좋아요 0 | URL
원인을 하나로 집어낼 순 없지 않을까요? 어떤 노력으로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늘 면죄부만 주는 것은 아닐까요? 누군가의 몫으로, 혹은 타인의 탓으로만 돌리는 책임 회피는 온당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거 아닌가요?

2007-09-28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28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28 1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9-28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7-09-28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중'의 자발적 동의 내지는 그 수준을 이야기하려면 이를 강제하고 조정해내는 또다른 축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하지 않을까요..그게 없는 '수준론'은 '거대한 또다른 축'에 대한 면죄부와 '허무주의'의 블랜딩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혁명(가능이나 한지 모르겠습니다만)이 단순히 '의식혁명'을 뜻하지 않는다면 말이지요.

sceptic 2007-09-28 20:51   좋아요 0 | URL
'수준론'이 단순히 '대중'을 비하하기 위한 목적이 아님을 드팀전이 모르실리 없지요? 김규항의 말이 현실에 대한 '허무주의'나 '면죄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을 찾거나 해야겠는데 자발적으로 혹은 선동적으로라도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의 답답함을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책의 내용과 생각의 표현이 적절하게 나타나지 않았나 봅니다.

혁명...불가능하기 때문에 꿈꾸어야 한다는 말은 말장난일까요? 의식혁명도 행동의 변화가 없이는 헛된 공상에 불과하지 않나 싶습니다.

가끔 달아주시는 댓글로 또 다른 생각을 이어갑니다. 댓글 봉사 감사드립니다.

드팀전 2007-09-28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규항도 그런 뜻이었겠지요..그러니까 잘해보자고.
최근에 제가 들었던 '패배주의적 수준론'때문에 자꾸 그렇게 보이나봅니다.

sceptic 2007-10-02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패배주의적 수준론'은 당연히 경계해야 겠지만 대책없는 희망도 이젠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적정선을 찾기 힘들지만...다들 잘해보자는 얘기지만 방법들이 워낙 많이 다르네요...
 
강조해야 할 것
수잔 손택 지음, 김유경 옮김 / 이후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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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에서 만나는 수많은 글들을 통해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 인식의 힘은 실천으로 옮겨져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온몸으로 보여준 작가 중의 한 사람인 수전 손택은 그녀가 떠난 이후에도 많은 이야기를 건네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면 말하지 않아도 향기가 나고 목소리 높여 이야기하지 않아도 전달된다. 현장 운동을 통해 사회 변혁을 꿈꾸었던 사람은 물론이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진보적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때때로 현실과 타협하고 싶은 순간이 있고, 자신의 신념을 의심하기도 한다. 이기적 욕망이 꿈틀거리는 순간도 있었을 것이고, 미래를 향한 전망은 어둡기만 한 시간들을 견뎠을 것이다. 한 사람의 작가를 사회적 현상과 관계 속에서만 파악하는 것은 잘못된 평가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져야 하며, 모든 생이 어쩌면 작품 해석을 위한 도구적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작가와 작품 그리고 현실의 관계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강조해야 할 것>이라는 책은 그녀의 에세이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1부에서는 ‘내가 본 것들’을, 2부에서는 ‘내가 읽은 것들’을, 3부에서는 ‘그곳과 이곳’이라는 주제로 묶었다. 본 것은 물론 영화과 연극 무용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음악을 제외한 모든 예술은 시각을 통해 구현된다. 기술 복제의 시대로 명명되는 20세기의 예술은 영화로 대표된다. 현실을 이야기하는 다양한 방식중의 하나로 영화를 선택한 켄 로치 같은 감독은 영화의 역할과 의미를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지난 세기의 가장 큰 특징을 ‘영화’라고 해도 그리 틀리지 않은 말이 될 것이다. 영화든 그림이든 관객과 애호가의 입장에서 그것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다면 작가와 소통할 수 없고, 작가는 작품 속에 갇혀 고립된다.

아무리 많은 영화가 만들어진다 해도, 아무리 좋은 영화가 만들어진다 해도, 영화애호가들이 사라지면 영화도 사라진다. 영화의 부활은 새로운 종류의 영화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 P. 19

그림을 그릴 만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기억 속에 있는 그리고 기억에 의해 변형된 무엇이다. 또한 오랜 시간에 걸친 생각과 수없는 회상이라는 시험을 통과한 것이다. 그림은 수많은 결심과 덧칠, 붓질이 쌓인 결과이다. 어떤 그림은 감정의 정확한 두께를 찾기 위해 몇 년에 걸쳐 그려지기도 한다. - P. 67


  글을 쓰는 작가의 입장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이 중요한 것은 ‘언어’이다. 수전 손택은 동시대인으로서 롤랑 바르트의 글쓰기나 보르헤스의 소설들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말걸기를 시도한다. 선명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타인의 글을 들여다본다. 투명하고 맑은 시선은 깊은 사유와 폭넓은 독서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수전 손택의 글들은 그렇게 명징하고 서늘하게 핵심을 찔러댄다. 하지만 그녀의 글은 단단하고 건조하기보단 부드럽고 따뜻하다.

  선명하게 다가오는 이미지나 분명하고 선언적인 문체가 도드라지기도 하지만 재치있는 언어를 구사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독자들은 편안하지만 분명한 그녀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사라예보에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하면서 그녀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은 <타인의 고통>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현장성을 바탕으로 한 그녀의 글들은 머리보다 가슴으로 다가온다. <해석에 반대한다>로 기억되는 그녀를 보다 다른 관점에서 혹은 다른 글들을 통해서 그녀를 바라보는 것은 독자에게 색다른 경험이다. 에세이의 형식은 편안하고 자유롭다. 분량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작가의 생각과 느낌들을 생생하게 전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소설이든 희곡이든 비평이든 그녀의 존재방식은 글쓰기였다. 글이 무기였고 행동이었다.

언어 외에 새로운 것이란 없다. 강렬한 어휘 선택으로, 뛰어오르는 구두점으로, 쾌활한 문장 리듬으로 인간관계의 고통을 망각하게 하는 것. 더 섬세하고도 게걸스러운 방식의 앎을, 감정이입을, 견제 방식을 고안하는 것. 그것은 형용사의 문제이다. 강조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 P. 230

읽기는 쓰기에 앞선다. 그리고 읽기로 인해 쓰고자 하는 욕망이 촉발된다. 읽기는, 읽기에 대한 사랑은,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꾸게 한다. 그리고 작가가 되어 오랜 시간이 지나도 다른 사람이 쓴 책을 읽거나 과거에 자신이 좋아했던 책을 다시 읽는 것은 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멋진 기분전환이 된다. 기분전환, 위안, 고통, 그리고, 그렇다. 영감이 된다. - P. 361

  표지 날개에 실린 작가의 사진을 본다. 반백 그녀는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그녀가 바라보았던 곳은 어디일까? 현실 너머에 있는 이상적 공간이 아니라 가장 치열한 현실은 아니었을까 싶다. 삶에 대한 열정과 예술에 대한 심미안을 가진 그녀는 늘 실천하는 양심으로 비판적 지성으로 불리었다. 그녀에 대한 평가가, 세간의 관심이 어떠하든 그녀의 내면에 숨어 있던 영혼의 울림은 독자에게 번역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그렇게 그녀를 독자에게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언어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쉽게 읽히지 않는다.

나는 번역하지 않는다. 나는 번역된다. - P. 470


07092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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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창비시선 279
정호승 지음 / 창비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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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틈

살얼음 낀 겨울 논바닥에
기러기 한 마리

떨어져 죽어 있는 것은
하늘에 빈틈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빈 틈이 있다. 가슴 속에 구덩이 하나씩을 파고 있는 것처럼. 그 빈 틈 때문에 정호승을 읽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을까. ‘정호승’은 고교시절 나의 로망이었다. 열일곱에 그의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와 <새벽편지>를 읽으며 시에 눈뜨다.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의 책이 나오면 어김없이 손이 간다. 조희봉처럼 ‘전작주의자’를 꿈꾼 적은 없지만 정호승의 책은 <서울에는 바다가 없다>라는 소설까지 읽었다. <서울의 예수>에 실린 시인의 서늘한 눈빛에 한동안 잠 못 이루던 시절이었다. 사춘기였고 한 시대를 어렴풋하게 감지할 수 있었던 감수성을 지닌 시기였다.

  김지하나 황지우, 오규원이나 김승희, 신경림이나 박노해 등 숱한 시인들을 만났지만 첫사랑을 잊지 못하듯 문학적 감수성 때문이었을 것으로 기억한다. 정호승은 언제나 낮은 목소리로 툭, 툭 내뱉듯 혹은 하늘을 바라보며 독백하듯 이야기한다. 날카롭고 예리한 눈빛만큼이나 사물에 대한 관찰과 시선이 농밀하다. 꼼꼼하고 세심한 시선은 대상에 대한 애정으로부터 비롯된다. 그것이 사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확대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증폭된다.

  정호승의 빈 틈은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는 곳에 있다. 그의 뛰어난 시편들에는 언제나 역설이 숨어있다. 아니듯 그렇고, 그러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들 속에 숨어 있는 무언가를 끄집어 낸다. 진실은 사실에 앞선다. 객관적 정황들에 앞서 그가 보여주는 내면의 진실과 그 언어들은 솔직한 고백의 형태로 때로는 차갑지만 정확한 발언으로 빈 틈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가슴은 고구마를 파는 청년처럼 언제나 군고구마 대신 기다림을 굽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밤의 연못

밤의 연못에 비친 아파트 창 너머로
한 소년이 방바닥에 앉아 혼자 라면을 끓여먹고 있다
나는 그 소년하고 같이 저녁을 먹기 위해
나도 라면을 들고 천천히 밤의 연못 속으로 걸어들어 간다
개구리 두꺼비 소금쟁이 부레옥잠 들이 내 뒤를 따른다
꽃잎을 꼭 다물고 잠자던 수련도 뒤따라와
꽃을 피운다


  그의 시선은 항상 낮은 것에 머물러 있다. 참여, 순수 논쟁이 뜨겁던 시절에 회색으로 몰리기도 했지만 세상이 둘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의 역할과 의미는 시인들마다 제 각기 다르게 해석한다. <슬픔이 기쁨에게> 시절부터 지금까지 줄곧 라면을 끓여먹는 소년에게 관심을 가져왔고 기쁨보다는 슬픔을, 웃음보다는 눈물을 사랑했던 시인이다.

  한 시인의 시적 경향이 다양하게 변모하면서 부침을 거듭하는 것을 볼 때마다 변화 없이 꾸준한 모습만을 보여주는 시인들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다른 목소리를 낸다. 정호승의 목소리에 질릴 때도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시인 지망생이었던 후배 소설가 고원정이 어느 인터뷰에서 ‘정호승 시인이 내가 시를 통해 하고 싶었던 말들을 이미 하고 있기 때문에 시인의 길을 포기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전히 들을 만하다.

유등

등불 하나 강물에 떠나보내지 않고
어찌 강물을 사랑했다 하랴
강물에 등불 하나 흘려보내지 않고
어찌 등불을 사랑했다 하랴
떠나가지 않으면 떠나보내리라
흘러가지 않으면 흘려보내리라
강가의 가난한 사람들이
외로운 술집이 되어 가슴마다 술 마시는 밤
밤하늘을 헤엄치는 푸른 물고기들이
떼지어 강물에 뛰어내려 등불의 길을 따른다
부디 흐르는 강물에 칼을 꽂지 말아다오
누가 무너지는 촉석루를 껴안고 울고 있는가
지나가는 사람은 지나가게 내버려두고
떠나가는 사람은 떠나가게 내버려두고
유등(流燈)이여
그대 별들과 함께 서서 죽는 곳은 어디인가
나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으리라
마지막 남은 등불 하나 바다에비치리라


  정호승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시어들이 있다. 밤, 하늘, 별, 강, 기다림, 사랑, 죽음, 가난 등이 그렇다. 서정시의 정의에 가장 근접해 있는 그의 시가 장수하는 비결이고 대중성을 확보하는 밑거름이다. 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여전히 제 목소리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애정 어린 눈길이거나 진정성 때문이리라.

  언제나 완전한 시적 성취를 이룬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의 시편들에서 읽어내는 완성도는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학적으로 완전한 시는 없다. 독자들에게 전해지는 순간 시들은 전혀 다른 언어로 반응하기도 한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읽는 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기도 하고 주관적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오독(誤讀)이 오히려 감동을 불러올 수도 있다. 독자들은 그만큼 다양하다.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 유희에 그친 듯한 시들보다 정호승의 시가 오래 가슴에 남는 이유는 쉽고 간단하기 때문이다. 진실은 언제나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작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인다. 지나치게 포장하지 않고 편안하고 가볍게 다가온다.

포옹

뼈로 만든 낚시바늘로
고기잡이하며 평화롭게 살았던
신석기 시대의 한 부부가
여수항에서 뱃길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한 섬에서
서로 꼭 껴안은 채 뼈만 남은 몸으로 발굴되었다
그들 부부는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 사진을 찍자
푸른 하늘 아래
뼈만 남은 알몸을 드러내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
수평선 쪽으로 슬며시 모로 돌아눕기도 하고
서로 꼭 껴안은 팔에 더욱더 힘을 주곤 하였으나
사람들은 아무도 그들이 부끄러워하는 줄 알지 못하고
자꾸 사진만 찍고 돌아가고
부부가 손목에 차고 있던 조가비 장신구만 안타까워
바닷가로 달려가
파도에 몸을 적시고 돌아오곤 하였다

  두 사람이 부부이든, 연인이든 그들의 부끄러움을 헤아릴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시인은 말한다. 사랑은 가장 내밀한 언어로 표현되는 가장 아름다운 시라고. 여전히 바다로 달려가고 싶은 수많은 연인들에게 신석기 시대의 꼭 껴안은 남녀의 모습은 시공을 초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화석이 될만큼 사랑했던 그들의 사연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시인은 물고기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너를 사랑한다고”

나는 물고기에게 말한다

그래도 너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을 때
그래도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을 때
그래도 떠날 때는 내 돈을 모두 너에게 주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때
그래도 너에게 단 한푼도 줄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을 때
나는 촛불을 들고 강가로 나가 물고기에게 말한다
물고기는 조용히 지느러미를 흔들며 내 말을 듣고만 있을 뿐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므로

내 산을 모두 밭으로 만들어 너에게 주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때
네 밭을 모두 산으로 만들어 내가 가지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때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이제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을 때
기어이 인간을 버리고 혼자 울고 싶을 때
나는 강가로 나가 물고기의 허리를 껴안고 운다
침묵만이 그들의 언어이므로
침묵 외에는 그 어떠한 말도 하지 않으므로


  파란 가을 하늘만큼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꿈이든 희망이든 좌절이든 절망이든 하늘은 늘 푸르게 감싼다. 시원스레 탁 트인 하늘을 보면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사실 하늘에게 일하지 않았으니 굶겠다거나, 사랑하지 않았으니 굶겠다는 다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인생에는 웃을 수밖에 없는 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냥 하늘 한 번 쳐다보고 웃어버릴 수 없는 일은 없다. ‘나는 언제나 한 마리 짐승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과 사랑에 굶주린 ‘한 마리 인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늘에게

어제 하루 일하지 않았으므로
오늘 하루를 굶겠습니다
어제 하루를 사랑하지 않았으므로
오늘 또 하루를 굶겠습니다

굶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일하지 않았으므로
내일 하루도 굶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사랑하지 않았으므로
내일 하루도 굶겠습니다

인생에는 웃을 수밖에 없는 일이 더 많다고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시지만
나는 언제나 한 마리 짐승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배고픈 한 마리 인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포옹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생각하며 정호승의 ‘포옹’을 들고 가을을 맞아 보는 것은 어떨까? 내게는 얼마나 포옹할 것들이 많은가? 포옹할 수 없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0709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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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1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eptic 2007-09-26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들러 흔적 남기지 않고 글 읽고 갑니다. 무례를 용서하시고 님도 행복한 가을 맞으세요...
 
역사론 현대사상의 모험 10
에릭 홉스봄 지음, 강성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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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가의 눈으로 바라본 현실은 방법론에서 차이가 있더라도 그것을 바꿔나갈 추동력을 얻지는 못한다. 현실은 현실일 뿐이고 방법론이나 인식론은 그것으로 그친다. 20세기가 주목한 역사가로 에릭 홉스봄을 손꼽아 보아도 그의 인식은 한계에 그친다. 한 권의 책으로 그의 사상과 생애를 논할 수는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것은 변화를 이끌어 낼 힘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살아있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인간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의지와 선택에 의해 실행되지 않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 알게된다.

  인생은 불합리하고 공평하지도 않으며 세상은 더욱 더 그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은 역사를 통한 거시적 안목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회와 일상 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진리이다. 20세기를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로 명명했던 영민한 역사가인 에릭 홉스봄은 마르크스 역사관의 철저한 적용자이다. 그의 주저들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역사론>을 읽는 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일 수도 있다. 그의 생애를 정리하는 듯한, 역사에 대한 인식 태도와 방법론을 망라한 이 책은 그의 책들을 읽어나가기 위한 방편일 수도 있겠다.

  특정한 사실과 시대적 사실을 다룬 ‘역사’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논의하는 글들을 모은 책이다. 결코 가볍고 만만치 않은 이론들이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입각한 역사주의 관점이나 아날학파에 대한 날선 비판들은 이 책을 읽기 위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전체 2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앞부분과 뒤 부분에 제시된 이야기들만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결코 가볍지 않으면서도 역사에 관한 에릭 홉스봄의 견해가 잘 피력되어 있고 두고두고 곱씹어 볼만한 수많은 제언들과 통찰들이 빛을 발한다.

  선동적 역사와 이데올로기적 역사는 자기를 정당화하는 신화가 되는 경향을 지닌다. 근대 민족과 민족주의의 역사가 입증해 주는 것처럼, 이것보다 더 위험한 눈가리개는 없다.
  이러한 눈가리개를 없애려고 시도하는 것, 혹은 적어도 눈가리개를 조금 들어올리거나 이따금 들어올리는 것이 역사가의 직무이고, 역사가가 그러한 일을 하는 한 사람들이 배우려 하지 않을지라도 현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어떤 것을 말해 줄 수 있다. - P. 70


  역사를 단순히 지나간 과거에 대한 반성이나 미래를 예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이 책에서도 강조하듯이,

역사가는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에 대해 실제로 어느 정도 이야기할 수 있고,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에 대해서는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다. 역사가의 말은 그리 많이 경청되지 않는다. 그것이 역사의 본질적 속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사가가 실제로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힘을 쏟고 개선한다면, 그리고 조금 더 많이 능력을 알린다면, 사람들은 역사가의 말을 조금 더 들으려고 할 것이다. 역사가는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는 보여줄 수 있다. - P. 98

고 말한다.

  경제학과 관련된 관심은 인간의 정치나 경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홉스봄은 마르크스의 역사관을 통해 상부구조와 하부구조 그리고 토대가 되는 경제학을 역사 안에 담아내기 위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역사에서 분리된 경제학은 키가 없는 배이고, 역사가 없는 경제학자들은 배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P. 174

마르크스의 역사관은 ‘사회학적’인 것이거나 ‘경제학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학적인’ 성격과 ‘경제학적인’ 성격을 모두 지녔다는 점이 본질적인 특징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생산 관계와 재생산 관계(즉 가장 광범한 의미의 사회 조직) 그리고 물질적 생산력은 분리될 수 없다. - P. 248


그가 선언적으로 말하는 역사에 대한 강연과 발표, 언론을 게재된 기고문들은 하나같이 현재의 상황뿐만 아니라 우리가 걸어왔던 과거의 시간들을 돌아보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기록들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역사를 때때로 망원경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러나, 미시적인 관점에서 ‘특수사’만을 다루는 역사가 아니라 거시적인 관점에서 ‘전체사’를 다루는 것이 역사의 임무라고 주장하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하나하나의 관점 속에서 쉽게 그것들을 찾아 조합시킬 수는 없다. 이 책은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또 하나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과거의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는 카Carr의 견해를 우리는 여전히 역사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에 기초한 에릭 홉스봄의 역사에 대한 길잡이와 안내들이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태도가 아닐까 싶다. 역사가 현실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의 문제는 역사가들의 몫이 아니라 당대의 현실을 만들어가는 우리들의 요구 사항이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가들은 자신들의 주제 밖에서 객관적 관찰자와 분석자로 서 있지도 않고 서 있을 수도 없다. 우리가 옛날 텍스트를 편집하는 것 같은, 오늘날의 공공연한 열정과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을 다루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 모두는 우리가 처한 시대와 장소에 대한 가정에 빠져 있다. - P. 442


07091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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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 창비청소년문학 2
루이스 새커 지음, 김영선 옮김 / 창비 / 2007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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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는 하나씩의 구덩이를 파고 있다. 그 구덩이에 무엇인 들어있는지도 모르면서 구덩이에서 뭔가 나올 거라는 희망에 기대어 삽질을 한다. 흔히 우리가 ‘삽질하네’라는 속어는 쓸데없는 짓을 하거나 필요없는 짓을 일컫는 말이다. 생각해 보자. 삽질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우리는 모두 삽질을 하고 있다.

  구덩이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파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이 목을 조른다. 그 불안감은 미래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것인지 타인과 비교해서 내 삶을 바라보는 기준에서 기인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누구나 구덩이를 파고 있다는 사실이다.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의 두 번째 소설로 나온 루이스 쌔커의 <구덩이>는 이현의 <우리들의 스캔들>에서 보여주었던 재미와 감동을 이어가고 있다. 아동출판시장은 많은 출판사들의 관심과 경쟁으로 뜨겁게 달구어져 있지만 청소년을 위한 책들을 살펴보면 사정이 다르다. ‘논술’을 축으로 한국 문학 시리즈나 외국의 고전을 소개하는 시리즈들이 기획되고 있다. 청소년을 위한 창작 소설이나 순수문학은 성장 소설을 중심으로 몇몇 작가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을 뿐이다. 나라말 출판사의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시리즈나 ‘서해 클래식’시리즈 등 출판사들의 기획과 노력 여하에 따라 좋은 책들이 꾸준히 나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같은 맥락에서 ‘창비청소년문학’ 시리즈는 청소년을 위한 문학 작품의 꾸준한 발굴과 작가의 양성에까지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루이스 쌔커의 <구덩이>는 참 재미있는 소설이다. 소설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즐거움이라면 충분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다. 초록 호수 캠프에서 벌어지는 단순한 사건을 중심축으로 과거와 현재가 퍼즐처럼 들어맞는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까지 추리 소설 기법을 사용해서 독자들에게 흥미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한 눈을 팔거나 다른 생각의 여지를 주지 않는 소설은 일단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무엇엔가 몰두 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매력적인 소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성장소설이면서 사회소설, 추리 소설이면서 모험소설의 형식까지 갖추고 있는 이 소설은 하나의 유형으로 규정지을 수 없다. 청소년을 위한 소설이라고 해서 단순하고 교훈적인 내용으로 채워질 거라는 편견은 여지없이 깨진다. 사회적 관점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태도도 점검해 보아야 하고 법의 잣대와 판단으로 청소년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청소년 시기에 겪어야 하는 정신적인 고통과 열악한 현실을 극복하는 과정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누구나 어려움은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 청소년이든 어른이든 고통스런 현실에 묶여있다. 그것을 극복하는 다양한 방식을 안다는 것은 뚜렷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현실 밖에서 얻는 위로와 공감의 시간이 된다. 적극적인 상상력과 그칠 줄 모르는 도전 정신으로 현실을 이겨내려는 주인공 스탠리와 제로의 모험 정신은 나이와 상관없이 즐거운 대리만족의 경험을 선사한다.

  헐리웃 영화에 나옴직한 스펙터클이나 엄청난 상상력은 아니지만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고 현실 상황들이 인과 관계에 의해 정교하게 움직이는 소설은 청소년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지적 호기심을 이끌어 낸다. 어떤 잘못을 했기 때문에 어떤 벌을 받아야하는가에 대한 법과 제도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그들을 이해하는 어른들의 방식과 소외된 아이들에 대한 관심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생각해보고 고민해 볼 수 있는 문제들이 이 소설에는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다.

  현실은 때때로 사막을 건너는 일과 같다. 신기루 속에 희미하게 보이지도 않는 엄지손가락 모양의 산을 찾아 떠나는 제로와 스탠리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고 좌절하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자화상은 아닐까 싶다. 잃어버린 꿈을 찾아 현실의 일탈을 꿈꾸는 어른들에게도 유년시절의 꿈과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구덩이>를 읽고 나니 갑자기 삽을 들고 나가 내 마음의 크기만한 구덩이를 하나 파고 싶어졌다. 나는 얼마나 큰 구덩이에 갇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지.


07091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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