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1997년 12월 3일 국제통화기금(IMF)과 550억 달러의 구제 금융을 받는 합의서를 체결했다. 성장 잠재력 약화, 금융 대외 종속, 양극화 심화로 이어지는 10년 세월의 끝은 잔인하기만 하다. 빚은 다 갚았지만 휴유증으로 인한 증상들은 사회 곳곳에 그리고 서민들의 가슴속에 화인처럼 선명하다. 경제가 무너진다는 사실을 단 한 번도 실감하지 못했던 개발 독재 시대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망했다. 그 원인과 대책을 세우기 전에 쓰나미처럼 우리 생활 전체를 덮쳐 버린 괴물에 경악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라는 생소한 용어를 이제는 초등학생들도 사용한다. 자유 시장 경제는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된다.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의 경제 체제와 제도는 경제학자들에 의해 쉽게 재단될 수도 없고 실험용으로 시도 해 볼 수도 없다. 그래서 서로 다른 이론들이 난무하고 정책을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민들의 삶은 요동친다.

  가진 자를 위한 부자 후보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다면 국민들의 생활과 삶의 질은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다. 개발도상국의 신화를 못잊어 하는 대통령이 과연 현재의 상황에서 우리 모두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을까. ‘경제 대통령’을 표방하는 그의 철학은 무엇인가?

  외부자의 시선으로 한 나라의 경제를 점검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그런 의미에서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경제에 대해 일자무식이지만 우리의 삶이 녹아 있는 문제이니만큼 외면할 수는 없다.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므로 무관심은 죽음을 의미한다. 거시적 관점의 경제 이론들이 우리와 무관하게 느껴지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와 같이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우리는 현실 깊숙이 돈이 아닌 경제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장하준의 <국가의 역할>은 ‘국가’를 중심으로 현재 우리의 경제 상황을 일괄했다. 국가의 개입 여부나 개발도상국의 문제, 공기업의 효율성 그리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에 이르기까지 보다 구체적인 항목들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그에 비해 이번에 새로 나온 <나쁜 사마리안들>은 올 해 몇 안되는 적극 추천 도서 목록에 오를만하다.

 이 책은 경제의 문제를 살펴볼 때 고려해야 하는 지금-우리들의 문제를 적절하게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설득력 있는 예화들과 명료한 문장들은 번역의 짜증스러움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시종일관 신자유주의에 대한 날선 비판은 적절한 비유와 구체적인 경제사를 통해 설득력을 더한다. 정연한 논리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목적 혹은 무비판적 믿음들에 대한 문제제기는 정책적 대안의 제시로 더욱 신뢰감을 준다.

  문외한의 입장에서 ‘세계는 평평하다’는 주장과 ‘기울어진 경기장’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의 주장과 반론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과연 어떤 방향과 가치를 두고 국가가 운영되고 경제 정책이 입안되어야 하는지를 관심있게 지켜봐야 하는 이유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이 책의 제목인 ‘나쁜 사마리아인들’로 지칭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스스로는 ‘나쁜 사마리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 장하준의 논리와 방향에 공감한 것은 바로 마지막 부분 때문이다. 2063년 모잠비크 프롤로그로 시작해서 2037년 상파울로의 상황을 묘사한 에필로그에 이르기까지 지금-이대로 지속된다면 어떤 상황들이 펼쳐질까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다만 그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저자의 지적대로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루었던 나라들의 관료들은 경제학자가 아니었다. 이론과 도표로 설명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가 브라질 축구 대표팀과 여중생들의 게임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 책무가 아니라 먼 안목으로 ‘나쁜 사마리아인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에 귀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말로 설득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나쁜 사마리아인들 같은 정책으로 개인적인 이득을 볼 수 있어서가 아니라 이런 정책이 ‘옳다’고 확신하는 이데올로그들이다. 앞서 언급했듯 독선주의가 이기주의보다 더 고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P. 333

  기막힌 통찰이 아닌가. 이기주의보다 어려운 독선주의! 너는 틀리고 나만 옳다는 오만함이 더 고치기 어렵다. 세상사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이 주장은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의 확신을 뒤집는 통쾌한 역설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요구하는 ‘생각’을 다시 생각해 본다.

생각해보라. 대부분의 정치가들과 신문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으면 될 텐데, 왜 굳이 먼 길을 돌아다니며 ‘불편한 진실’을 찾아다니겠는가?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부정부패와 게으름, 혹은 방탕함 탓으로 돌리면 쉬운데, 왜 굳이 가난한 나라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신경 쓰겠는가? ‘공식적인’ 역사가 자국은 늘 (자유 무역, 창의성, 민주주의, 재정적 건전성 등) 모든 미덕의 원산지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무엇 하러 자국의 역사를 점검하겠다고 가던 길에서 벗어나겠는가? - P. 335


071030-127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팀전 2007-10-31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그룹은 여러층이 있지요.일단 신자유주의에 반대한다고 다같은 방향은 아니겠지요.물론 여러형태의 연대는 가능하겠지만 또 각 그룹간의 근본적인 비판도 가능합니다...장하준의 재벌 경영권을 둘러싼 사회적 대타협론이 그런 예가 되겠지요.장하준의 '자국의 역사'에 대한 나이브함 또는 제도학파 학자로서의 한계가 그런것 아니겠습니까.

sceptic 2007-11-01 12:34   좋아요 0 | URL
옳은 말씀입니다. 박정희에 의한 국가 통제나 밀어부치기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죠. 장하준과 유사한 입장에서도 목소리를 내지 않거나 상황 파악이 안되는 분들이 많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