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외롭구나 - 김형태의 청춘 카운슬링
김형태 지음 / 예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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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대단한 용기가 아니라면 타인에 대한 충고는 오만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사람이든 상황이든 문제가 발생하면 사실 모든 해답은 스스로 가지고 있다. 조언과 충고는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다. 몰라서가 아니라 확신을 얻고 싶은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조언이나 충고대로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반드시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생각과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어도 주변에서 들려오는 격려와 덕담, 충고와 조언은 때로 힘이 되지만 잔소리에 불과할 때가 더 많다. 자신의 요구와 필요에 의해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할 때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실타래처럼 엉킨 생각들은 정리되고 자연스럽게 최선의 방법들이 떠오르며 속은 후련해지고 미래는 작은 희망으로 반짝이게 된다. 시간만한 멘토가 없다. 상처와 고통은 세월의 흐름이라는 진통제가 마련해주는 안락함의 세계에 발을 딛게 된다. 다만 구체적인 방법과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할 때 우리는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게 되고 상담을 요청한다.

  다양한 경험과 폭넓은 지식이 밑바탕이 된 사람일지라도 객관적인 상황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상담자를 분석해주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주관적인 판단과 결정으로 강력하게 충고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김형태의 <너, 외롭구나>는 후자의 방법을 선택하고 있는 카운슬링 사례집이다. 이 책은 대상과 주제가 선명하다.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에 이르는 ‘청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상담 내용은 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오는 현재의 상황, 진로에 대한 선택, 자신의 결정에 대한 망설임 등이 주를 이룬다.

  시대가 변해도 미래에 대한 불안은 청춘들에게 영원한 고통일 것이다. 특히 희망 없는 청춘은 얼마나 불안한가. 자신을 진로와 직업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말이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그렇다고 어떤 분야에 뛰어난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닌 경우가 그러하다. 세상 밖으로 눈을 돌리면 경쟁은 지옥을 방불케 하고 자본의 논리는 바늘하나 꽂을 땅을 허용하지 않는 현실은 두렵기만 하다. 그 끝이 어디인지도 모른채 끝없이 다른 사람을 밟고 이겨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논리는 시대정신이 되었고 숭고한 가치가 되었다. <꽃들에게 희망을> 줄 수는 없을까?

  스스로 무규칙이종카운슬러라고 칭하는 김형태의 충고는 대담하기만 하다. 주관적 관점과 논리가 나름대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지독한 가난을 통해 단련된 육체와 영혼은 저자에게 자신감을 주었고 냉정하고 비판적인 판단력을 만들어 준 듯하다. 일면식도 없을 인터넷 상담자들의 사연에 대해 김형태는 그들의 나태함과 안일함, 소극성과 우유부단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껌 좀 씹었던 동네 양아치의 개과천선 프로젝트라고 비유할 만큼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경험한 듯한 저자의 종횡무진 카운슬링은 눈여겨 볼 만한 대목이 많다.

  의뢰인들의 경우 주변 사람들이나 가까운 친구와 부모, 선생님 등 지인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고민들을 자신을 모르는 누군가에게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좀체 드러내고 싶지 않은 환부를 도려내고 싶거나 아픈 충고와 냉정한 질책을 통해 스스로를 확인해보고 싶었을 것이다. 인간이 타인과의 사교를 유지하는 이유가 고독이 두렵기 때문이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은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막상 가장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사람들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나를 위로하고 감싸 안아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야한 하는 사람들의 역설적 모순이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의 두 줄짜리 짧은 시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분명하기만 하다. 그 수많은 섬들에 가려는 사람들의 노력은 오늘도 계속되지만 도착한 사람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세상에 대한 분노와 열정, 미래에 대한 불안과 준비, 박제된 청춘의 날개, 외로움 - 단순하게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모순과 문제점들에 대한 성찰과 비판이 적어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심리적으로 신포도 기제가 작동될 때가 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과 평가 절하 말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그렇게 볼 수 없다. 끝없는 경쟁 논리와 고용 없는 성장이 가시화 되고 있다. 전 지구적 차원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라는 괴물이 살아 숨쉬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갈 길은 멀고도 험하기만 하다.

  주로 경제적인 측면이나 진로와 직업에 관한 현실적인 고민들이 많은 이 책의 주인공들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평범한 청춘들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고 괴로워하는 특권을 누리는 청춘은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이제 모든 국민들이 리얼리스트가 되어 간다는 증거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과 나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은 참담하다.

  그래도 희망은 청춘에게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저자도 돈이 안 되는 이 짓을 하고 책으로까지 묶어냈을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그들에게서 나온다. 개인적인 고민들이 모여 우리 사회의 고민이 되고 그것을 해결하고 극복하는 과정이 이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이 될 것이다. 이기적인 욕망과 개인적인 고민이 때로는 국가적 차원의 문제보다 훨씬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이다. 저자가 충고하는 것처럼 벌떡 일어나 주먹 쥐고 뛰면서 생각할 일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념을 잃지 않고 생활하는 하루하루가 당신의 미래가 된다. 나는 지금 어떤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지 돌아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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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4-07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에 실제로 그렇게 좌충우돌했었는지 생각해봤어요.
남자들은 그렇게 흔들렸는지 몰라도, 여학생들은 그러지 않았던것 같거든요.
그래도 지나고보니 대학 초반에 그렇게 열심히 데모를 하고 고민을 거듭했기에 조금 나은 사회를 이루게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해요.

sceptic 2008-04-08 23:16   좋아요 0 | URL
그게 남녀의 차이는 아닐텐데요...^^

암튼...길고 긴 암흑의 터널을 통과할 때가 행복했노라고 말하고 싶네요...
 
글쓰기 생각쓰기
윌리엄 진서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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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에 미친 사람들은 읽는 것만 좋아하는 것일까? 나는 때로 다른 사람들의 독서 습관과 독후 활동이 궁금하다. 암중 모색기를 거쳐 독자가 아닌 작가로 때어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을 쓸 것인가, 왜 써야 하는가, 글을 쓸 능력은 있는가 하는 원론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고민은 깊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글의 종류에 대해서 문학적인 글인지 실용적인 글인지 결정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고 싶은지 다양한 종류의 실용적인 글을 쓰는 작가가 될 것인지 자신의 능력과 취향 그리고 목적과 방향을 결정하면 고민은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물론 두 영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도 있고 어느 정도의 글쓰기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어떤 글이든 가능 할 수도 있다.

  글을 읽는 것과 쓰는 것은 음식에 대해 혀의 반응을 밝히고 맛을 품평하는 것과 음식을 만드는 일 만큼이나 큰 차이가 있다. 맛있는 음식은 누구나 먹을 수 있듯이 독서는 누구나 가능하다. 물론 문식성은 단순히 어휘의 의미를 이해하는 수준부터 재해석하고 논리적인 비판에 이르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긴 하다. 책의 수준과 영역도 차이가 많다. 그래도 글을 쓰는 일보다는 쉽다. 글쓰기는 그만큼 어려운 작업이고 지적 능력의 종착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그래서 누구나 글을 쓰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그것이 직장에서 쓰는 기획안이나 연애편지, 일기나 메일, 숙제와 보고서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글쓰기의 형태가 필요하지만 학교에서는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고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어떻게 할 것인가? 독학만이 살 길인가?

  서점에 가면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넘쳐난다. 그만큼 중요하면서도 실전에 적용할 만한 충고나 적용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는 책을 고르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글을 쓰는 목적과 방법은 개인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나에게 맞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는 그런 면에서 독자들의 욕구를 골고루 충족시켜주고 있다.

  오랫동안 읽히고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는 사실로 책의 내용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켜왔다는 안전장치는 믿을 만하다. 저자는 글쓰기에 대해 조심해야 할 것들에 대해 실전 경험을 통해 정확하고도 직접적으로 위험신호를 보낸다. 몇 페이지 분량의 짧은 글들은 하나의 주제와 충고로 집약되어 있고 그것은 실전에서 필요한 요소로 가득하다.

  나를 발견하는, 간소한, 군더기를 다 버린, 나만의 것만 담은, 나를 위한 글쓰기가 좋은 글이라는 충고로 이 책은 시작된다. 스물 네 가지 작은 원칙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많다. 문장의 시작과 끝, 통일성에 대한 원칙을 제시한 후 문학, 인터뷰, 여행기, 회고록, 과학과 기술, 비즈니스, 비평, 유며 등의 종류의 구분해서 일상에서 우리가 써야하는 수많은 종류의 글들을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에 제시된 단어와 용법 등은 영어 글쓰기를 위한 조언이기 때문에 편집과정에서 생략해도 좋을 법했다. 책을 읽어가면서 번역자의 고충이 곳곳에 배어있음을 발견한다. 굴절어인 영어와 교착어인 우리말의 차이는 예문을 번역하거나 사례를 인용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후기에서 밝혔듯 일부 오류가 지적되더라도 영어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충고라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감안해야 한다.

  결국, 글쓰기는 자신을 위해 자신의 생각을 가장 솔직하고 간결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요약될 수 있다. 책 한 권을 한마디로 정리하는 것은 의미가 없겠지만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결과물들은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함께 나눌 만한 글이 된다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기 때문에 이 책은 그런 대로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다.

  내가 저자의 의도를 읽어냈다면 이 책은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에게 큰 방향과 글을 쓰는 자세를 가다듬기 위한 책으로 적당할 것이다.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사항들에 대해 충고하는 책도 많이 있으니 실전 연습용 책으로는 적당하지 않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지 않다는 핑계로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권할 만하다. 누구나 글을 쓰고 생각을 쓴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글이든 말이다.

  산다는 일이 온몸으로 생의 의미를 써 나가는 일이라면 굳이 화려한 수사와 기막힌 솜씨로 장식할 필요가 없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열정적인 자세를 지니고 있다면 일단 준비는 끝난 상태이다. 무엇을 왜 써야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어떻게 언제까지 쓸 것인가를 결정하면 되는 일이다. 글을 쓰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지만 누구나 해야 하는 일이다. 자, 이제 쓰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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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를 ‘후배’라고 부를 때는,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사람들’, ‘같은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아우르는 말이다. 때로 그 ‘같은 꿈’ 때문에 ‘같은 상처’를 입는 경험을 나누어 갖기도 해서 동질감은 더욱 짙어진다. - P. 73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지금은 희망을 키워갈 때이다. - P. 145

나는 항상 부끄러움을 통해서 배운다. - P. 166

“자신이 알고 있는 제한된 지식만을 반복적으로 사용할 것을 강요받는 삶, 그것이 노동자의 가장 큰 비극입니다.” - P. 180

가족이 아닌 사람을 위해 묵묵히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길을 선택하는 모습은 그것이 비록 ‘작은’ 희생일지라도 가족을 위한 ‘큰’ 희생 못지않게 감동적이다.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부당한 권력과 자본에 의한 피해가 뻔히 예상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 P. 217

그토록 어려운 처지의 장애인도 훌륭하게 성공했으니, 그보다 더 어렵지도 않은 조건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불성실하거나 게으르기 때문이라는 은근한 조장이 그 글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의 모순된 억압 구조를 개인의 불성실로 은폐하고 싶어하는 불순한 시도가 글쓴이도 모르는 사이에 그 글 속에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 P. 220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노종조합이란 단어가 자신의 인생과 바늘 끝만큼이라도 관계를 맺게 될 것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들 앞에 나가 설 때마다 막막함과 무력감이 나를 짓눌러 똑바로 서 있기조차 버겁다. - P. 249

최소한 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다른 많은 경험들과 함께 ‘톨스토이 예술론’을 통해 내가 깨달은 최저값이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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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 - 우리 시대와 나눈 삶, 노동, 희망
하종강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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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고대 멸종 언어처럼 기억이 가물거리는 영어 문장 하나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오래전 어느 영문법 책에서 보았겠지만 경험으로 체득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글을 쓴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의사소통 과정이며 내밀한 고백의 시간이다. 작가의 고백을 듣고 독자는 자신의 경험과 더하여 또 따른 의미망을 직조해 낸다. 책은 그렇게 큰 울림으로 독자에게 다가갈 때 전체로 완성된다.

  ‘책은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다’라고 말한다면 그 또한 모순이다. 언어 기호의 분석이 가능한 일차적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 일이 책읽기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단 읽는다는 행위 속에 전제된 능력과 기능들을 논하지 않는다면 책의 내용은 책의 전부일 것이다. 책을 읽고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생각이 달라지고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영역에 속한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하다.

  한 권의 책을 통해 내가 변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렇게 조금씩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책읽기는 고통스런 시간 때우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책상물림들의 한가한 소일거리로 비춰질 수 있는 행위 속에 현실의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접하게 되면 독자들은 당황하게 된다. 저널리즘의 의무와 역할은 이 중간쯤에 위치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하종강의 글이 내게 주는 충격파는 만만치가 않다. <아직 희망을 버릴 때가 아니다>는 쉽게 감동하지만 절대로 눈물 흘리지 않는 내 눈을 적신 몇 안되는 책 중의 하나이다. 하종강의 책이 처음은 아니다. 한겨레에서 매년 봄 특강을 진행하지만 매년 책으로만 만나고 있다. <7인 7색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21세기에는 지켜야 할 자존심> 등의 책과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이라는 책을 통해서 만난 하종강의 모습이 이 책을 통해 갑자기 달라진 건 아니다.

  하지만 이제 그의 몸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고 시간의 흔적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 먼 미래의 소멸에 대해 이야기한다. 건강이 악화되어 쉬는 동안 준비했다는 이 책의 내용은 그가 살아온 흔적들이다. 쌓여온 세월들이고 이 땅의 노동 현실에 대한 침착한 보고서이며 21세기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자화상이다. 그래서 숙연해지고 마음 아프며 책장을 넘기다 문득문득 하늘을 보게 된다. 고인 눈물 흐르지 않기 위해서.

  감상적이고 문학적인 글이 아닌 철저하게 생활과 현실에 기초한 책의 내용이 전하는 감동은 특별하다. 그것은 하종강이 살아왔고 겪어왔던 이 땅의 노동자들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아직도 ‘노동자’라는 말조차  꺼리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의식이다. 자신이 노동자이면서도 그 용어를 싫어하고 미래에 노동자가 될 예정이면서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우리 사회가 정상은 아니다. 중고등학교에서부터 철저하게 노동 기본권을 배워 익히고 의무적으로 노동법을 가르치는 유럽의 선진국들의 예를 들 필요도 없이 우리 사회의 노사 관계에 대한 인식은 왜곡되어 있고 모순에 가득하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이 당당하게 당선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기업하기 나쁜 나라였다는 말인데 그 말은 사용자의 편이 아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이나 정책들이 노동자의 편이었다는 말인가? 지나가던 견공이 웃을 일이다. 20여 년간 노동자들에게 상담과 강연을 해주며 그들의 함께 울고 웃었던 하종강의 글들은 머리도 가슴도 아닌 발이 썼다. 발로 쓴 책의 감동은 발로 시작되었지만 뜨거운 가슴을 거쳐 차가운 머리에까지 도달한다. 분노와 아픔을 넘어 변혁과 실천의 문제까지 고민하게 만든다.

  단순한 생활인의 주변 이야기가 아니라 대표적 개인으로 볼 수 있는 노동자들의 면면이 가슴 아프게 눈에 밟힌다. 차라리 이 책이 소설이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먼 미래에 이런 시절도 있었노라고 추억할 수 있는 순간이 올 거라는 믿음이 없다면 하종강은 그 긴 세월동안 ‘희망’을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희망을 버릴 때는 아닌 것 같다. 서로 손잡고 함께 걸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와 더 높은 곳을 향해서 앞만 보며 달려가는 사람들로 가득한 현실에서 하종강이나 그가 만난 사람들은 패배자이며 낙오자라고 볼 수 있을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그것은 현실을 견뎌내는 유일한 힘이 ‘희망’인 사람들에게 모욕이다.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과 대책을 세워나가자는 원론적인 감상이 아니라 먼저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들이 누구인지 그들은 저 멀리 있는 ‘노동자’들인지 아니면 우리들 모두인지 알아야 한다. 그래서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이며 내 가족의 문제이고 우리들 모두의 현실이라는 사실을 똑바로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나눈 대화의 기록과도 같은 하종강의 이야기는 삶과 노동 그리고 희망에 대해 따뜻한 시선으로 말을 건네고 있다. 당신은 행복하냐고. ‘부채감’ 때문에 평생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하종강의 말이 과장은 아닐 거라고 믿는다. 우리는 하종강에 대한 부채감 때문이라도 그가 말하는 희망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 보아야 한다.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우리의 생각이 먼저 변해야 한다. 생각이 변하면 행동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면 세상이 바뀐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작은 행동과 실천이 하종강이 말하는 희망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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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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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3년간, 올해 3개월을 포함해서 3년 3개월간 480여 권의 책을 읽었다. 3분의 1쯤이 문학 서적이고 나머지는 인문, 사회, 철학, 역사,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다. 고전은 물론 최근에 발간된 책에 이르기까지 꼼꼼하게 훑어보고 신중하게 선택하고 진지하게 읽어왔다.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의 책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과 열정은 순전히 ‘무목적성’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아무 이유도 목적도 없이 걷는 길은 행복하기만 하다. 책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목적이 있었거나 생계와 직결된 일이었다면 나는 절대로 책을 즐길 수가 없을 것이다. 서늘한 바람이 부는 나무 아래, 따스한 햇볕이 드는 호수가의 그늘진 벤치, 창 밖에 눈 내리는 겨울밤의 따스한 거실, 차창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 버스 창가,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 기차의 구석 자리. 책을 읽는 장소가 중요하지 않겠지만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습관은 고치고 싶지 않다. 주변에 흔한 다독가에 비하면 많은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목적과 방법이 다르겠지만 1년에 300권이 넘는 책을 본다는 사람도 보았기 때문이다.

  버릇처럼 이야기하지만 질은 양을 담보로 하지만 양이 곧 질이 될 수는 없다. 책에 관한한 스스로 프로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은 마음 가짐을 다시 가다듬는 계기가 되는 책이다. 다소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단순한 활자 해독 수준에서 시작하는 독서는 그 질적 수준이 천차만별일 것이고 한 권의 책에서 건져내거나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과 질적 변화의 과정은 독자들마다 상당한 차이를 보일 것이다.

  같은 책을 읽었지만 기억에 남는 대목이 다르고 이해의 수준과 폭도 다르다. 독자의 반응과 이해의 수준이 그 책이 최종 소비자인 독자에게 의미하는 것은 작가의 그것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책을 읽는 방법에 따라 같은 책이 독자마다 다르게 전달될 수 있다는 말이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면서 쉽게 간과했던 ‘책을 읽는 방법’은 자기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나는 어떻게 책을 읽고 있는가? 왜 책을 읽는가? 지극히 단순하고 당연한 질문에서 출발한다면 이 책은 독자마다 다른 방식으로 다가 갈 것이다.

  히라노 게이치로를 처음 만난 건 <일식>을 통해서였다. 도쿄대 법학부에 재학 중이던 1998년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등장한 괴물 같은 소설가로 기억한다. 무라카미 류와 비교되면서 화려하게 문단에 등단했다. 내가 ‘괴물 같은’이라는 수식어를 쓴 이유는 소설 <일식>에 대한 충격 때문이었다.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썼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해박한 지식과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중세 유럽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몇 권의 소설을 더 읽었지만 처음과 같지 않았고 <장송>은 아직 읽지 못했다.

  말하자면 ‘읽을 읽는 방법’에 대한 그 주관성과 허다한 방법론 속에서 히라노 게이치로라는 이름 때문에 읽은 책이다. 이 책은 몇 마디 충고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문장 하나 하나에서 전해지는 실천과 경험의 충고가 뼈에 사무친다. 매끈한 말솜씨와 화려한 수식으로 현혹시키는 종류의 책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철저하게 개인적인 경험에서 우러나온 실천적 방법론으로 가득하다. 특별한 노하우나 비법을 전수하는 책은 아니지만 저자가 걸어온 길에 대한 실화를 통해 실전에 필요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천천히 읽어라!’로 요약된다. 속독법에 관한 책이나 속독법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겠지만 ‘슬로 리딩’이라 명명된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양의 독서에서 질적인 독서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러다 보면 매력적인 ‘오독’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독(遲讀)’이 곧 ‘지독(知讀)’이라는 말이 히라노 게이치로의 책을 읽는 방법을 요약하고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 푸코의 <성의 역사 1 - 앎의 의지> 등을 예로 들어 슬로 리딩을 어떻게 실천하는 지 직접 보여주는 대목은 많은 사람들에게 책을 제대로 읽는 방법에 대해 많은 공감을 주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이 읽는가에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왜, 어떻게 읽는가에 관심을 두어야 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실용적 목적에 따라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책을 조사하거나 자료를 수집하는 사람들, 단기간에 레포트나 논문을 써야 하는 사람들을 예외로 하더라도 책이 하나가 도구가 되거나 단순히 정보 수집의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이 책은 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 준다. 그렇다면 나에게 책이란 무엇인가? 가끔 떠올려 보는 생각이지만 이 책을 통해 나는 다시 한 번 자기 점검의 시간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사람마다 책을 읽는 목적과 방법이 다르겠지만 서로 곁눈질하고 배워가며 자신의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오늘도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고 흐린 하늘을 쳐다보며 휴일의 아쉬움을 달랬던 나는 화창한 봄날이 와도 책을 찔러 넣고 떠날 것이다. 그곳이 어디든 책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즐거움으로 가득하리라. 그래서, 행복한 여행은 계속된다.


08033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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