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패러독스 1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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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출판된 책의 절반만 팔리고 팔린 책의 절반만 읽히고 읽힌 책의 절반만 이해되고 이해된 책의 절반만이 소화되어 지식으로 남는다는 말은 책의 운명에 대한 가장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일생 동안 얼마나 많은 책을 읽는가? 아니 얼마나 책을 읽지 않는가? 책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현존하는 인류의 절반 이상은 글자를 알지도 못할뿐더러 책을 읽지도 않는다. 1년에 한 권 이상의 책을 읽는 사람은 전 인류의 몇 퍼센트나 될까 궁금하다. 책을 읽는 것과 읽지 않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오늘날과 같은 문명의 발달은 지식의 축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책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의 과학 기술은 책보다 훨씬 효과적인 방법으로 지식을 생산, 축적하고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도 더 빨리 더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책의 미래와 운명은 어떠한가?

  끝없는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책의 효용에 대해 회의하게 된다. 피에르 바야르는 바로 이 질문들에 대해 책으로 답한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다소 도발적이고 장난스러울 것 같은 제목의 이 책은 진지하고 성찰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책을 썼단 말인가?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책의 노예가 되어 살아왔다. 전통적으로 독서의 중요성을 유교 문화권만큼 강조한 곳도 없을 것이다. 독서가 곧 공부였다. 지식을 얻고 세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책을 통해서였다고 하면 과장된 말일까? 유아나 어린이용 출판시장은 급속히 성장했다. 중, 고등학교생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공부를 하기 위해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성인들도 책을 읽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선택 능력이 부족하고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책을 읽히는 부모가 늘면서 아이들에게 독서는 필수가 되었다. 초등학생용 책에도 ‘논술을 위한~’ 어쩌구 하는 문구가 붙어있는 것을 보면 한심스러울 따름이다.

  그렇게 일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늘 책에 대한 부담과 공포와 죄책감을 경험한다. 책에 대한 콤플렉스는 죽을때까지 계속된다. 특히 꼭 읽어야 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는 장난스런 정의가 어울리는 고전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독서의 양이 곧 교양이 될 수는 없다. 어떤 책을 어떻게 읽었으며 어떻게 활용했는가에 대한 질문에 나름의 소신과 논리로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 오래된 질문들에 대해 자신있고 당당하게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주장한다. 비독서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한다. 책을 전혀 읽지 않은 경우(Unknown Book), 책을 대충 훑어보는 경우(Skimmed Book), 다른 사람들이 하는 책 얘기를 귀동냥한 경우(Heard Book), 책의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Forgotten Book)로 나눈 저자의 분류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여기서 책을 대충 훑어보는 경우와 책의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는 책을 읽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어떤 책을 읽지 않았다는 것은 그 책의 내용을 모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분류법에 따른 SB와 FB는 읽은 책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독서의 방법은 읽는 사람의 목적에 다양하게 전개된다. 저자는 SB와 FB의 경우 ‘정독’을 하지 않은 책으로 분류하는 것이고 우리가 흔히 읽지 않은 책으로 분류하는 것은 UB와 HB로 볼 수 있다. 어쨌든 내면의 독서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모두 읽지 않은 것이다. 저자는 이 책들에 대해 담론 상황에서 자신 있고 당당하게 대하라고 충고한다. 사교 생활이나 선생 앞에서 그리고 작가 앞에서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이 책은 결코 간단하고 만만한 방법들을 전해주지 않는다.

  요약된 대처 요령을 전해준다. 부끄러워하지 말 것, 자신의 생각을 말할 것, 책을 꾸며낼 것, 자기 얘기를 할 것 등 네 가지로 요약된 대처 요령은 이 책의 진수를 보여준다. 과연 책을 왜 읽어야 하며 읽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 책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어떤 목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진지한 고민을 통해 저자와의 대화를 시도해 볼 일이다.

“나는 내가 논해야 하는 책은 절대 읽지 않는다. 너무 많은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 오스카 와일드(228페이지)

  얼마 전 김성동과 김성종을 구분하지 못해 개망신을 당한 대학 교수 문학평론가의 일화가 떠오른다. 차라리 읽지 않았다면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냉정하게 정확한 평가가 가능했을까?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책들의 양에 비교해 본다면, 우리가 일생 동안 읽는 책의 양은 부끄러운 지경이다. 양이 문제가 아니라 질이다!라는 선언이 무색한 읽지 않은 책에 대한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가 방점을 찍고 싶었던 대목은 어떤 책을 읽었는지 여부가 아니라 그 책들을 통해 성찰하고 우리들 삶의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 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읽지 않은 개별적인 책들이 아니라 그 책이 내면의 도서관 전체에서 차지하는 총체적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것이 화면의 책(도서관)이든 내면의 책(도서관)이든 잠재적인 책(도서관)이든 관계없이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롭고 가치 있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며 어떤 태도와 방법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 보자.

  독서는 과연 시간의 낭비에 불과한가?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불완전한 독서와 비독서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정독한 책 건너편에 자리 잡은 모든 책들에 대한 열망과 호기심, 그것들이 가진 가치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자신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책에 대한 진면목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다. 저자는 진짜 비독서가가 아니다. 저자만한 비독서가가 되려면 책을 읽는 것 보다 더 진지한 사색과 총체적인 통찰력이 요구된다.

  단순히 책을 읽지 않고 다른 사람을 현혹시키는 싸구려 기술 습득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며 이 책에서 손을 떼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누구보다도 책에 대한 애정과 관심과 열정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렇게 오만한 책을 쓴 저자의 목적이 어디 있겠는지 잠시만 생각해 봐도 답은 금방 찾을 수 있다. 더불어 이 책의 갈피갈피에 숨어 있는 저자의 의도와 노력들을 만날 수 있다면 책에 대한 또 다른 태도와 방법을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080513-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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