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보다 소중한 우리미술가 33 - 오늘의 한국미술대가와 중진작가 33인을 찾아서
임두빈 지음 / 가람기획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고흐, 피카소, 렘브란트, 샤갈, 마티스, 잭슨폴록, 베르메르, 마그리트, 에셔 등 생각 없이 떠오르는 수많은 서양의 화가들이 있지만 우리의 화가는 김홍도, 신윤복, 장승업, 이중섭, 김환기 등 대표적인 몇 명의 작가를 빼 놓고는 이름을 떠 올리기 힘들다. 우리는 ‘미술’하면 자연스럽게 ‘서양미술사’를 떠 올렸고 대부분의 책들은 서양의 화가들을 다루고 있으며 나 또한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관심을 가졌고 그들이 소개하는 세계를 먼저 알게 되었다. 핑계 아닌 핑계를 대자면 모든 학문과 예술 분야에서 준거 집단은 항상 유럽이다.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인류의 학문과 예술을 이끌어 왔으나 왜 우리 것에는 항상 소홀한 것일까?

  보잘것 없거나 부끄럽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깊은 이해와 연구가 부족하고 대중적으로 소개하려는 노력도 게을리 했을 것이다. 대중들도 현역 작가들에 대한 관심과 전시회를 찾기보다는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대규모 유럽 화가들의 전시회를 즐겨 찾게 된다. 한국화 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 우리 미술사를 이끌어 온 거장들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고 중요하다. 또한 현재 동시대를 고민하는 작가들에 대한 애정은 우리나라 미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제 조건이다.

  잔디 위에 네 개의 돌이 있고 그 사이에 물이 담긴 바가지에 놓여 있는, 정갈한 황규백의 그림이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고흐보다 소중한 우리 미술가 33>은 오늘의 한국 미술 대가와 중진 작가 33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차례를 보며 화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바라보다가 그래도 아는 들어 보았거나 아는 이름 몇이 등장해서 반가웠다. 자세히 알지는 모르지만 여기저기 귀동냥 눈동냥 한 작가들이겠지만 우리 미술가들에 대해서는 참 아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두빈은 그림을 잘 그리면서 글도 잘 쓰는 사람이다. 다양한 수상 경력과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으며 미술평론으로 등단한 경력까지 보태고 있다. 이미 <한국미술사 101가지 장면>으로 독자들을 만났다고 하나 나는 처음 대하는 작가이다. 어쨌든 그 역사를 전공하다가 미술사를 연구한 사람과 달리 그림을 전공한 사람답게 작품을 대하는 안목과 애정이 남다르다. 그러나 그의 글은 장식적인 데가 많고 담백하고 진솔한 맛이 조금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항상 느끼지만 글은 마음의 갈피까지도 세세하게 드러내고 낱낱의 표정과 숨결까지도 드러낸다. 그래서 두렵고 조심스럽다. 더구나 공적인 글쓰기라면 더욱 그러하다. 임두빈은 미술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차고 넘친다. 그것을 바라보는 안목이 탁월하고 작품과의 교감이 뛰어나며 개별 작가들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세련되면서도 문안한 글들이 보기 좋은 그림들과 함께 독자들을 우리 미술이 주는 즐거움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설명해 주고 있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그림과 조각을 보면서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개별 작가들을 작업실을 방문하는 길부터 독자들에게 안내한다. 마치 기행문처럼 시작한다. 작업실의 위치와 분위기를 전해주고 사진으로 보여준다. 그곳에 탄생한 작품들을 소개하고 작가의 작품 세계를 안내하기도 하며 인터뷰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기도 한다. 오랜 시간 동안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은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책이다. 가장 대중적인 화가가 되어버린 ‘고흐’와 비교해서 책 제목을 정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 미술가들의 면면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하나의 모래알에 온 우주가 담겨있다는 윌리엄 브레이크의 시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한 명 한 명의 진정한 예술가가 탄생시킨 작품들은 그대로 영혼과 영혼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된다. 그것이 그림이든 조각이든 상관없이 깊은 내면의 울림과 공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임두빈은 이런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수많은 작가들을 직접 방문하고 인터뷰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아쉬움은 지울 수가 없다. 먼저 학력과 수상 경력 위주의 작가 소개를 눈에 걸린다. 서울대 미대 출신 몇 명을 제외하면 홍익대 미대 동문회 소개 자료 같은 느낌이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극소수를 제외하면 모두 저자의 스승, 선후배들이다. 학벌로 연결된 미술계의 풍토를 문제 삼는다는 것은 지나친 해석일 수 있으나 작가 선정 자체에 일정한 기준이 제시되어 있지 않고 주관적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기는 힘들 수도 있다. 대가와 중진이라는 전제를 이해하더라도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작업으로 예술 세계를 펼치고 있는 작가들이 골고루 소개되었다면 더욱 빛났을 것이다.

  또 하나의 아쉬움은 현 미술계나 사이비로 명명된 작가들에 대한 감정적 성토이다. 그들이 누구인지 실체가 무엇인지 독자들은 알 길이 없다. 학생보다 못한 교수 직함을 가진 사이비 예술가들이 많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저자의 진심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명확한 기준과 나름의 분류 방법이라도 제시했다면 더욱 많은 공감을 얻었을 것이다. 지나친 엘리트 의식이나 일방적인 찬사와 경외감은 아무리 좋은 그림이라도 거부감을 갖게 마련이다. 아직 활동 중인 작가들이기 때문에 남은 시간에 대한 기대와 바람을 함께 표현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지울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예술에 대한 관점이다. 철학적 문제이긴 하나 동시대의 미술가들이기 때문에 더욱 궁금해지는 문제이기도 하다. 도대체 예술이란 무엇이며 인간에게 어떤 것인가? 교외의 넓직한 작업실과 몇 백 평 혹은 몇 천 평씩이나 되는 농원이나 전시 공간을 가진 미술가 들은 당연한 대가라고 볼 수도 있으나 그들의 예술 세계는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과 비교된다. 우리와 좀 더 밀착된 혹은 동시대인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는 미술가가 한 사람이라도 33인 속에 뽑혔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대중 속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친숙한 예술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도 미술가들의 임무가 아닐까 싶다. 우리 미술가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보답하는 일은 물론 우리들의 몫이다. 그렇지만 이만한 공력과 노력이 돋보이는 책 한 권이 탄생까지 저자의 부단한 노력과 세심한 노력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서양 미술이 아니라 우리 미술가들에 대해 궁금한 사람에게는 부끄럼 없이 권할 만한 책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다. 자, 이제 그들을 만나러 가보자.


080517-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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