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를 사랑한 남자 -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를 푸는 심리학 탐험 16장면
조프 롤스 지음, 박윤정 옮김, 이은경 감수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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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외롭기 때문에 사회를 만들었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는 스펜서의 말은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경외심은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직접 확인 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은 그렇게 끝없는 호기심과 의심 속에서 살아왔다. 지식의 발전과 축적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인간 스스로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아직도 확실한 해답을 찾았다고 볼 수도 없다.

  인류가 걸어온 길은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다. 역사나 철학이나 문학이나 모두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지금 축적된 모든 지식이 인간에 대한 연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물질적 존재로서 신체에 대한 학문이 의학이라면 마음에 대한 연구 분야가 심리학이다. 실험 심리학을 확립한 분트나 정신분석학으로 일가를 이룬 프로이트의 역할이 인류의 학문 체계 전반을 뒤흔들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은 뇌 과학의 비약적인 발달로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호기심들이 하나씩 풀리고 있다.

  심리학에 관한 고전적 연구들을 살펴보는 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조프 롤스의 <유모차를 사랑한 남자>라는 유혹적인 제목으로 출간 된 이 책은 심리학에 관한 고전적인 사례 연구라는 하품 나는 원제목을 달고 있다. 하지만 내용은 하품과 거리가 멀다. 이전에 비슷한 내용의 책들이 많았기 때문에 블루 오션을 공략하기 보다는 레드 오션에 발을 담그고 있어 안타깝긴 하지만 가볍운 흥미위주의 책이라고 볼 수는 없다.

  각 학문 분야의 성과들을 책으로 펴내고 지식의 대중화에 성공하고 있는 저자나 책들은 고전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것이 단순하게 아카데미즘이나 저널리즘으로 이분화 할 수는 없지만 양쪽을 아우를 수 있는 책에 나는 늘 관심이 간다. 전문적인 지식의 습득이나 목적 지향적 책읽기가 아니기 때문인지 비전문적인 분야에 대한 폭넓은 호기심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어떤 독서가 맹목적일까 마는 힘들지 않고 걸어도 충분한 이동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기분 좋은 산책처럼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발달 심리학과 행동주의 심리학 혹은 정신 분석학 분야 등 다양한 심리학 분야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거나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16장면을 추렸다. 그간의 연구 성과나 상세한 내용들을 축약하는 과정에서 다소 엉성하게 전달될 수 있는 위험을 잘 극복한 책이다.

  저자의 항변처럼 보편적인 진실만을 발견하는 것이 학문의 역할은 아닐 것이다. 사례 연구를 쉽게 일반화 시킬 수는 없겠지만 보편적 인류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솔로몬이 있는가 하면 영원히 현재 만을 기억하는 남자 헨리도 있다. 책임 분산 효과로 널리 알려진 키티 제노비스 사건을 다룬 이야기는 이제 상식이 되어 버렸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해 보았거나 잘 알고 있는 내용도 있을 것이고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도 많겠지만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지금도 여전히 이렇게 특별한 사람은 존재하고 있으며 예전보다 훨씬 더 흔하게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미디어의 발달로 ‘세상이 이런 일이’나 ‘TV특정 놀라운 세상’의 이야기만 모아도 수십 권의 심리학 사례 연구 보고서가 나올 만하다.

  현대 사회는 미디어의 발달로 특별한 사람들이 더 많이 소개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예전에 연구 대상이었던 사람들이 지금은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사례들은 대부분 지금의 관점에서 보아도 특별하거나 놀랄만한 장면들을 담고 있다. 단순히 심리학 연구 장면들을 기록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심층적인 접근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사례들을 모아 놓은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로버트 드 니로의 ‘숨바꼭질’은 다중인격장애를 다룬 영화로 오래 기억에 남는다. 세 명의 서로 다른 인격으로 살았던 크리스의 사례가 아니었다면 다중인격장애에 관한 높은 관심과 문화적 충격들은 알려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우리는 광고에 노출된 상태로 살아간다. 그 모든 광고 속에 숨어있는 심리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심리학이 돈이 되는 학문이 되었다.

  유모차와 핸드백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성도착증 환자를 책 제목으로 내세웠으나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겪어 보았을 수많은 경우의 수 중, 한 가지 사례가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특별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하지만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는 보편적인 특성들이 아니라 예외적인 요소와 상황들 속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일상생활이 아니라 예외적이고 특별한 환경과 상황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듯이 내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모차를 사랑하는 남자가 있듯이 인형과 구두를 사랑하는 여자도 있다.

  이제는 고전이 되어 버린 심리학의 사례 연구들은 인류의 조상들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며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믿고 있는 혹은 알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과연 그러한가? 그것이 정상인가 혹은 비정상인가? 그것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이며 가능하긴 한 것인가?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특질 보다는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음의 갈피가 아닐까?


08051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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