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패러독스 1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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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상의 출판된 책의 절반만 팔리고 팔린 책의 절반만 읽히고 읽힌 책의 절반만 이해되고 이해된 책의 절반만이 소화되어 지식으로 남는다는 말은 책의 운명에 대한 가장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일생 동안 얼마나 많은 책을 읽는가? 아니 얼마나 책을 읽지 않는가? 책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현존하는 인류의 절반 이상은 글자를 알지도 못할뿐더러 책을 읽지도 않는다. 1년에 한 권 이상의 책을 읽는 사람은 전 인류의 몇 퍼센트나 될까 궁금하다. 책을 읽는 것과 읽지 않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오늘날과 같은 문명의 발달은 지식의 축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책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의 과학 기술은 책보다 훨씬 효과적인 방법으로 지식을 생산, 축적하고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도 더 빨리 더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책의 미래와 운명은 어떠한가?

  끝없는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책의 효용에 대해 회의하게 된다. 피에르 바야르는 바로 이 질문들에 대해 책으로 답한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다소 도발적이고 장난스러울 것 같은 제목의 이 책은 진지하고 성찰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책을 썼단 말인가?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책의 노예가 되어 살아왔다. 전통적으로 독서의 중요성을 유교 문화권만큼 강조한 곳도 없을 것이다. 독서가 곧 공부였다. 지식을 얻고 세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책을 통해서였다고 하면 과장된 말일까? 유아나 어린이용 출판시장은 급속히 성장했다. 중, 고등학교생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공부를 하기 위해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성인들도 책을 읽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선택 능력이 부족하고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책을 읽히는 부모가 늘면서 아이들에게 독서는 필수가 되었다. 초등학생용 책에도 ‘논술을 위한~’ 어쩌구 하는 문구가 붙어있는 것을 보면 한심스러울 따름이다.

  그렇게 일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늘 책에 대한 부담과 공포와 죄책감을 경험한다. 책에 대한 콤플렉스는 죽을때까지 계속된다. 특히 꼭 읽어야 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는 장난스런 정의가 어울리는 고전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독서의 양이 곧 교양이 될 수는 없다. 어떤 책을 어떻게 읽었으며 어떻게 활용했는가에 대한 질문에 나름의 소신과 논리로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 오래된 질문들에 대해 자신있고 당당하게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주장한다. 비독서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한다. 책을 전혀 읽지 않은 경우(Unknown Book), 책을 대충 훑어보는 경우(Skimmed Book), 다른 사람들이 하는 책 얘기를 귀동냥한 경우(Heard Book), 책의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Forgotten Book)로 나눈 저자의 분류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다. 여기서 책을 대충 훑어보는 경우와 책의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는 책을 읽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어떤 책을 읽지 않았다는 것은 그 책의 내용을 모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분류법에 따른 SB와 FB는 읽은 책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독서의 방법은 읽는 사람의 목적에 다양하게 전개된다. 저자는 SB와 FB의 경우 ‘정독’을 하지 않은 책으로 분류하는 것이고 우리가 흔히 읽지 않은 책으로 분류하는 것은 UB와 HB로 볼 수 있다. 어쨌든 내면의 독서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모두 읽지 않은 것이다. 저자는 이 책들에 대해 담론 상황에서 자신 있고 당당하게 대하라고 충고한다. 사교 생활이나 선생 앞에서 그리고 작가 앞에서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이 책은 결코 간단하고 만만한 방법들을 전해주지 않는다.

  요약된 대처 요령을 전해준다. 부끄러워하지 말 것, 자신의 생각을 말할 것, 책을 꾸며낼 것, 자기 얘기를 할 것 등 네 가지로 요약된 대처 요령은 이 책의 진수를 보여준다. 과연 책을 왜 읽어야 하며 읽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 책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어떤 목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진지한 고민을 통해 저자와의 대화를 시도해 볼 일이다.

“나는 내가 논해야 하는 책은 절대 읽지 않는다. 너무 많은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 오스카 와일드(228페이지)

  얼마 전 김성동과 김성종을 구분하지 못해 개망신을 당한 대학 교수 문학평론가의 일화가 떠오른다. 차라리 읽지 않았다면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냉정하게 정확한 평가가 가능했을까?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책들의 양에 비교해 본다면, 우리가 일생 동안 읽는 책의 양은 부끄러운 지경이다. 양이 문제가 아니라 질이다!라는 선언이 무색한 읽지 않은 책에 대한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가 방점을 찍고 싶었던 대목은 어떤 책을 읽었는지 여부가 아니라 그 책들을 통해 성찰하고 우리들 삶의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 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읽지 않은 개별적인 책들이 아니라 그 책이 내면의 도서관 전체에서 차지하는 총체적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것이 화면의 책(도서관)이든 내면의 책(도서관)이든 잠재적인 책(도서관)이든 관계없이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롭고 가치 있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며 어떤 태도와 방법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 보자.

  독서는 과연 시간의 낭비에 불과한가?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불완전한 독서와 비독서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정독한 책 건너편에 자리 잡은 모든 책들에 대한 열망과 호기심, 그것들이 가진 가치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자신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책에 대한 진면목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다. 저자는 진짜 비독서가가 아니다. 저자만한 비독서가가 되려면 책을 읽는 것 보다 더 진지한 사색과 총체적인 통찰력이 요구된다.

  단순히 책을 읽지 않고 다른 사람을 현혹시키는 싸구려 기술 습득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며 이 책에서 손을 떼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누구보다도 책에 대한 애정과 관심과 열정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렇게 오만한 책을 쓴 저자의 목적이 어디 있겠는지 잠시만 생각해 봐도 답은 금방 찾을 수 있다. 더불어 이 책의 갈피갈피에 숨어 있는 저자의 의도와 노력들을 만날 수 있다면 책에 대한 또 다른 태도와 방법을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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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를 사랑한 남자 -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를 푸는 심리학 탐험 16장면
조프 롤스 지음, 박윤정 옮김, 이은경 감수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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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간은 외롭기 때문에 사회를 만들었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는 스펜서의 말은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경외심은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직접 확인 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은 그렇게 끝없는 호기심과 의심 속에서 살아왔다. 지식의 발전과 축적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인간 스스로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아직도 확실한 해답을 찾았다고 볼 수도 없다.

  인류가 걸어온 길은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다. 역사나 철학이나 문학이나 모두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지금 축적된 모든 지식이 인간에 대한 연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물질적 존재로서 신체에 대한 학문이 의학이라면 마음에 대한 연구 분야가 심리학이다. 실험 심리학을 확립한 분트나 정신분석학으로 일가를 이룬 프로이트의 역할이 인류의 학문 체계 전반을 뒤흔들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은 뇌 과학의 비약적인 발달로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한 호기심들이 하나씩 풀리고 있다.

  심리학에 관한 고전적 연구들을 살펴보는 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조프 롤스의 <유모차를 사랑한 남자>라는 유혹적인 제목으로 출간 된 이 책은 심리학에 관한 고전적인 사례 연구라는 하품 나는 원제목을 달고 있다. 하지만 내용은 하품과 거리가 멀다. 이전에 비슷한 내용의 책들이 많았기 때문에 블루 오션을 공략하기 보다는 레드 오션에 발을 담그고 있어 안타깝긴 하지만 가볍운 흥미위주의 책이라고 볼 수는 없다.

  각 학문 분야의 성과들을 책으로 펴내고 지식의 대중화에 성공하고 있는 저자나 책들은 고전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것이 단순하게 아카데미즘이나 저널리즘으로 이분화 할 수는 없지만 양쪽을 아우를 수 있는 책에 나는 늘 관심이 간다. 전문적인 지식의 습득이나 목적 지향적 책읽기가 아니기 때문인지 비전문적인 분야에 대한 폭넓은 호기심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어떤 독서가 맹목적일까 마는 힘들지 않고 걸어도 충분한 이동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기분 좋은 산책처럼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발달 심리학과 행동주의 심리학 혹은 정신 분석학 분야 등 다양한 심리학 분야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거나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16장면을 추렸다. 그간의 연구 성과나 상세한 내용들을 축약하는 과정에서 다소 엉성하게 전달될 수 있는 위험을 잘 극복한 책이다.

  저자의 항변처럼 보편적인 진실만을 발견하는 것이 학문의 역할은 아닐 것이다. 사례 연구를 쉽게 일반화 시킬 수는 없겠지만 보편적 인류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솔로몬이 있는가 하면 영원히 현재 만을 기억하는 남자 헨리도 있다. 책임 분산 효과로 널리 알려진 키티 제노비스 사건을 다룬 이야기는 이제 상식이 되어 버렸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해 보았거나 잘 알고 있는 내용도 있을 것이고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도 많겠지만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지금도 여전히 이렇게 특별한 사람은 존재하고 있으며 예전보다 훨씬 더 흔하게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미디어의 발달로 ‘세상이 이런 일이’나 ‘TV특정 놀라운 세상’의 이야기만 모아도 수십 권의 심리학 사례 연구 보고서가 나올 만하다.

  현대 사회는 미디어의 발달로 특별한 사람들이 더 많이 소개되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예전에 연구 대상이었던 사람들이 지금은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 소개된 사례들은 대부분 지금의 관점에서 보아도 특별하거나 놀랄만한 장면들을 담고 있다. 단순히 심리학 연구 장면들을 기록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심층적인 접근이 가능하도록 다양한 사례들을 모아 놓은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로버트 드 니로의 ‘숨바꼭질’은 다중인격장애를 다룬 영화로 오래 기억에 남는다. 세 명의 서로 다른 인격으로 살았던 크리스의 사례가 아니었다면 다중인격장애에 관한 높은 관심과 문화적 충격들은 알려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우리는 광고에 노출된 상태로 살아간다. 그 모든 광고 속에 숨어있는 심리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심리학이 돈이 되는 학문이 되었다.

  유모차와 핸드백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성도착증 환자를 책 제목으로 내세웠으나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겪어 보았을 수많은 경우의 수 중, 한 가지 사례가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특별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들로 가득하지만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는 보편적인 특성들이 아니라 예외적인 요소와 상황들 속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일상생활이 아니라 예외적이고 특별한 환경과 상황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듯이 내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과 사랑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모차를 사랑하는 남자가 있듯이 인형과 구두를 사랑하는 여자도 있다.

  이제는 고전이 되어 버린 심리학의 사례 연구들은 인류의 조상들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며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믿고 있는 혹은 알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과연 그러한가? 그것이 정상인가 혹은 비정상인가? 그것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이며 가능하긴 한 것인가?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특질 보다는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음의 갈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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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내게 말을 걸다 - 이욱연의 중국 문화기행
이욱연 지음 / 창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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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  일본이 ‘가깝고도 먼 나라’로 표현된다면 중국은 멀고도 가까운 나라가 아닌가 싶다. 공간적인 거리만큼이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국가와 민족은 달랐지만 지근거리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국의 문화는 우리의 문화와 얼마나 큰 차이가 있으며 어떻게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가. 최근의 한류 열풍으로 중국에 한국의 연예인이나 영화, 드라마가 붐을 이루고 있다고 하지만 문화는 그렇게 쉽게 전파되거나 흡수되지 않는다. 우리의 변화만큼 중국도 달라졌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받아들인 90년대 이후의 중국은 오히려 한국과 점점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욱연의 <중국이 내게 말을 걸다>는 중국 기행문이다. 그러니까 중국이 내게 말을 건 것이 아니라 저자가 끊임없이 중국에게 말을 걸고 있다. 각 성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에 마주쳤던 음식과 공간을 중심으로 꾸며진 책이다. 여행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문화’라는 코드로 중국과 접속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영화’를 전제로 한다. 말하자면 영화를 통해서 바라본 중국과 현실 속의 중국을 비교 체험하는 기행문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뻬이징, 상하이, 홍콩, 충칭, 톈진, 시안, 꽝저우, 항저우, 샨뚱, 허뻬이, 난징, 후난으로 이어지는 멀고 먼 여행길에서 저자가 만난 것은 중국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이다. 단순히 오래된 역사를 전제로 현재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또 하나의 편견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과거를 모르고 현재를 알 수는 없는 법이다. 지나온 세월과 그들의 풍습은 여전히 현재와 미래를 만들어 가는 토대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광활한 면적에 넓게 분포된 만큼 지역적 특성이 강하고 언어마저 다를 정도로 다양한 문화를 가지고 있으니 여행객의 입장에서는 중국을 쉽게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겠다. 토양이 다르니 음식도 다르고 지역색이 강하다. 단순화시키거나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 책을 선택할 필요는 없다. 이 책은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 혹은 중국을 여행하고 싶은 사람 모두에게 읽을 만하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중국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가 아주 깊다. 외부자의 시선으로 동경하거나 경외감을 바라보지도 않고 호기심과 색다른 문화 체험 수준의 이야기도 아니다. 먼저 하나의 도시를 소개하며 음식과 특징을 보여준다. 그리고 한 두 편의 영화에 깃든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물론 방문의 목적과 글은 영화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붉은 수수밭’의 배경인 샨뚱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패왕별희’를 앞세워 뻬이징을 찾아가는 방식이나 영화를 안 본 사람은 부분적으로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소회나 타향에서의 감회를 감상적으로 적어간 기행문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에 새로운 정보의 습득 차원에서 혹은 영화에 깊은 이해를 위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북경 자전거, 색․계, 중경삼림, 첨밀밀, 스틸라이프, 영웅, 황비홍, 청사, 부용진 은 기억 속에 아련하거나 최근에 재밌게 봤던 영화들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감회가 새로웠다. 중경삼림의 ‘캘리포니아 드림’이 들리기도 하고 진시황의 10보 앞으로 다가간 이연걸이 떠오르기도 했다. 영화가 만들어진 본고장을 둘러보는 형식의 글들이지만 단정하고 사색적인 문장들이 결코 지루하거나 따분하지 않다. 맹목적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기본적인 애정을 숨기지는 않는다. 중국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지만 그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접근이 필요하다.

  가장 대중적인 장르인 영화를 깊이 읽는 것은 한 국가와 민족을 이해하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적당히 가볍게 무겁지 않고 경쾌하게 읽어나갈 수 있어 좋다. 영화와 음식과 그들의 생활과 현재가 결합되어 하나의 ‘문화 기행’으로서 손색이 없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중국을 여행하기 전에 혹은 영화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읽기에 적절한 책이다.

  루쉰의 소설을 인용하거나 적당한 크기의 사진들이 삽입되어 상상력을 자극하고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르도록 배려한 구성도 간결하고 깔끔하다. 중국 영화를 좋아하거나 중국 여행을 앞둔 사람에게 선물해도 좋을 만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내다볼 때 우리 입장에서 가장 신경 써야 하는 나라가 중국과 일본이다. 세계사의 흐름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들을 이해하는 일은 오늘의 우리를 이해하기 위한 객관적 조건이기도 하다. 그들과 우리는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분강개와 절치부심만이 과거사를 정리하는 옳은 방법이 아니라면 좀 더 깊고 넓게 그들을 이해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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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ung 2008-05-09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경삼림이라면... 마마스앤파파스의 캘리포니아드림을 갖다가 착각하신게 아닐지 싶으면서...

sceptic 2008-05-09 22:30   좋아요 0 | URL
허거덕이네요...맞습니다. 시카고의 호텔 캘리포니아가 아니라 마마스앤파파스의 캘리포니아드림입니다. 감사합니다.

sophung 2008-05-10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카고라니요... 아 자꾸... 이글스잖아요 아놔..

sceptic 2008-05-10 22:48   좋아요 0 | URL
-_-...1994년 공연 실황 DVD 다시 한 번 돌려봤습니다. <메멘토 모리>도 다시 볼까 생각중입니다...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 나이의 문제인것 같네요...ㅠ.ㅠ
 
봉섭이 가라사대
손홍규 지음 / 창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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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은 여전히 유효하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러하며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문학의 종말을 외쳤던 가리타니 고진의 비명의 뜻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문학은 위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처럼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도 많지만 문학의 그 다양한 장르 중에 여전히 소설이 대표선수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삶의 진정성 때문이다. 과장되고 왜곡된 모습일지라도 당대를 살아가는 혹은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성찰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우리는 그런 소설을 찾아 읽어야 할 이유가 분명한 이유가 있다.

  내가 아닌 ‘너’를 그리고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소설은 읽혀야 한다고 믿는다. 사회를 조망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문학을 통한 방법만큼 ‘진실’에 접근하는 방법도 많지 않다. 허구적 사실을 전제로 한 소설을 통해 문학적, 사회적 진실에 다가가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 혹은 객관적 진실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기나 하는 걸까 생각해 보자.

  한 작가의 주관적 견해와 평가라 할지라도 당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과 방법은 우리의 그것과 일치할 때가 많다. ‘공감’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있고, 소설이 유용성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어떤 측면이든 좋은 소설은 가려진 눈 속의 들보를 치우거나 외면하고 싶었던 현재의 모습, 생의 부조리와 아이러니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깊은 감동과 재미가 전제되어야 한다.

  최근의 소설들 이를테면, <쿨하게 한걸음>, <스타일> 등 이른바 칙릿(Chick-lit)이 주도하는 소설 시장에서 과연 손홍규의 <봉섭이 가라사대>와 같은 책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가 개인적으로 궁금하다. 문학적 주제가 항상 진지하고 사회적 관심을 반영해야 한다는 당위는 없다. 그러나 인간의 문제와 사회적 관심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을 토대로 하지 않은 소설이 과연 무슨 의미인가. 그것은 가벼움과 무거움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과 남성의 문제도 아니다. 소설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문제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즐길만한 문화적 도구는 도처에 널려있다. 굳이 소설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봉섭이 처럼 우리 사회의 주류 바깥에 서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만을 다룬다고 해서 좋은 소설인가에 대해서는 또 다른 논의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나는 손홍규의 <봉섭이 가라사대>를 재미없게 읽었다. 작가의 의도와 소설의 주제들이 적절하게 표현되었고 고민의 흔적들과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분명하게 전달받았으나 말할 수 없는 미진함이 남는 것은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이거나 문학적 감수성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이 소설집에는 열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상식적인 시절’이 책의 머리를 장식하는 것은 소설적 흡인력으로 독자들에게 접근하기 위한 의도라는 것이 쉽게 감지된다. 가볍고 경쾌한 유머, 재치 있는 표현들이 작가의 언어적 감수성을 잘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서 과연 ‘상식’이 있기는 한 것인지 되묻고 있는 반어적 제목도 독자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온다. ‘매혹적인 결말’은 소설가가 되기 위한 두 사람의 눈물 나는 일상사가 코믹하게 그려진다. 생존의 문제 너머에서 항상 삶의 의미를 묻고 있는 인간의 존재 양상을 보여준다. 과연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인간에게 ‘인생’이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이무기 사냥꾼’과 ‘봉섭이 가라사대’, ‘뱀이 눈을 뜬다’, ‘도플 갱어’, ‘푸른 괄호’를 하나의 의미망으로 묶을 수는 없다. 공통점을 찾아내기도 힘들다. ‘붉게 타는 푸른 노을, 달 밝은 비오는 밤도 있지. 노란 적포도주 한잔은 어때. 행복한 가난뱅이, 배고픈 사장님, 모두가 일등이 될 수 있는 나라, 만인을 위한 민주주의, 아름다운 자본주의……’(도플갱어, P. 179)라는 모순된 말장난처럼 세상은 상식과 질서에 의해 모두가 노력한 만큼 댓가를 받고 착하고 바른 사람들이 잘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는 사실만 아프게 확인된다. 그것은 특별히 배후 조정자가 있거나 몇몇 나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러한 생의 아이러니와 부조리에 대해 작가는 아직 진지하게 고민하거나 보다 많은 이야기를 토해내야 할 것 같다.

  마지막의 단 편 세 개는 연작으로 읽힌다. ‘최후의 테러리스트’, ‘최초의 테러리스트’, ‘테러리스트들’이 그것이다. 경험하지 못한 세대라고 해서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소설가에겐 상상력이라고 하는 무소불위의 칼이 쥐어져 있다. 그것을 어떻게 휘두를 것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한 결과물들을 우리는 책으로 만난다. 손홍규의 소설이 그런 의미에서는 충분히 읽을 만하고 매력적이라는 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다만 깊은 울림이 조금 아쉽다. 개인적인 취향일 수 있으나 지나간 시간에 대한 고통과 좌절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는 오롯이 작가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역사의 트라우마로 남게 된 ‘광주’를 통해 사람들은 참 많은 말들을 해 왔고, 앞으로도 남은 이야기도 많을 것이다. 그것은 언젠가 사라지고 기억의 저편에서 조금씩 밀려나가겠지만 기억하고 보여주고 살아있는 현재와 연결시키는 작업에 나는 개인적으로 갈채를 보낸다. 잊혀져 가는 과거가 아니라 우리가 기억하고 껴안아야 할 미래이기 때문이다. 손홍규의 소설들은 그렇게 현재의 고통들이나 과거의 기억들을 걸러내고 쓰다듬고 오래도록 생각나게 한다. 그만큼의 노력과 힘겨움은 문장의 곳곳에 배어 있다.

  조금 아쉬운 것은 앞서 말했듯이 문장들 사이의 긴장감과 전체를 아우르는 탄력이다. 깊이와 넓이를 요구하는 무뢰한 독자가 많을수록 작가에게 더 큰 고통과 더 나은 차기작을 기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소설의 미덕에 대해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은 그러나 여전히 독자에게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소설을 열심히 읽을 수밖에 없다.

“왜 그랬어?”
“지겨워서.”
“그게 전부야?”
“우리 모두 서로를 지겨워하면서 이 세상을 견디고 있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보다 나은 다른 세상이 있다고 믿으면서. ……사실은 나 자신이 치욕스러웠어. 내게 재능이 없다는 사실도 싫었고 그런 내게 헛된 열망을 품게 한 세상도 싫었어. 모든 게 나를 조롱하는 것만 같았어.”   - 최초의 테러리스트, 본문 271페이지.


08050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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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
김현아 지음, 유순미 사진 / 호미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책을 읽고 나서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나에게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을 물었을 때, 좋은 책은 가슴이 먹먹하도록 울림이 큰 책이라고 말한다. 물론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문학 작품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철학이든 역사든 사회든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카프카의 말대로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의식의 한 부분을 일깨우는 책은 이성의 한 부분을 자극하는 깨달음의 책이 된다. 문학이든 아니든 이성과 감성을 나눌 필요도 없이 오랜 향기와 여운으로 가슴에 남는 책이 좋은 책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김현아의 <그 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는 보기 드물게 머리와 가슴을 모두 어루만지는 책이다.

  이 책은 기행문 형식의 글들을 모았다. 문학적 답사라고 해도 좋겠지만 얄팍한 흥미 위주의 책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해서 머리 아프고 난해하게 이야기를 풀어 놓지도 않는다. 난삽하게 수다스럽지도 않고 부산스럽게 치장하지도 않았지만 그 깊이와 고민들은 단순한 기행과 답사의 결과물로 볼 수만은 없다. 웅숭깊은 흑백의 사진과 더불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현실을 벗어난 초월적 공간을 산책하는 듯하다.

  지나가 버린 시간들에 대한 단순한 경외나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하기 위한 책도 아니다. 그녀들의 삶과 문학은 오롯이 현실이 되었고 수만 가지의 고리들은 인과 과정을 거쳐 현실 속에 살아 숨 쉰다. 다만 우리는 그것들을 쉽게 알아채지 못한다. 멀리 신라의 박제상 부인,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을 거쳐 조선의 허난설헌과 신사임당 그리고 매창을 만나고 20세기의 김일엽과 나혜석과 조우하며 마지막으로 고정희로 마무리 된다.

  그 지난한 세월 속에서 여성의 삶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진지한 고민과 학문적 성찰보다도 오히려 그들이 남긴 자취를 더듬어 보고 현장에 남아 있는 흔적들을 통해 그녀들을 반추하는 일이 우리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인류의 절반인 ‘여성’은 어떤 존재인가 반문해 본다. 미래의 화두로 여성과 환경을 제시한 이윤기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이제 수 천 년을 숨죽여 온 여성성의 재발견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스럽게 거론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이제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경주에는 치술령과 분황사터, 선도산과 여근곡이 있다. 그곳에 가면 박제상의 부인과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을 만날 수 있다. 강릉 초당리와 오죽헌에 가면 허난설헌과 신사임당을 만난다. 부안 채석강과 곰소에 가면 매창을 볼 수 있고 수덕사에 가면 김일엽과 나혜석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해남에 들러 고정희의 시를 읽어본다.

  한반도의 좁은 땅을 뒤져 이 나라의 역사에서 명멸했던 여성들의 삶을 만나는 일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을 돌아보는 일이다. 여성 해방 운동의 선구자로서 대표적인 인물들을 탐방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삶의 주체로서 올곧은 그녀들의 영혼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남성, 그들만의 리그에서 배제되고 소외되었던 여성들의 삶은 그녀들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여성’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그저 한 ‘인간’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시대를 앞서 생각하거나 살아가는 일은 모질고 고통스럽다. 무엇보다도 외로움을 선택해야 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의 시대정신을 미래는 무엇이라고 정의할까 궁금하다. 자본의 욕망이나 경쟁의 논리로 무장한 사람들의 피폐한 삶을 미래는 어떻게 한 줄로 정리할 것인가. 과거의 상식이었을 평범을 거부했거나 소수자였던 그녀들의 삶의 궤적을 쫓는 일은 즐겁고 행복한 산책이 아니었다. 이 책을 읽는 일은 인류의 역사, 아니 우리들의 과거를 아프게 돌아보는 것이고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작은 화두를 발견하는 일이다.

  기획과 출판 의도를 뛰어넘는 저자 김현아의 글과 류의 사진들이 결합하여 이 책은 누구에게나 선물하고 싶고 읽히게 하고 싶은 책이 되었다. 때로는 답사의 과정을 생생하게 묘하하기도 하고 때로는 작은 흔적들을 통해 그녀들의 생을 돌아보는 저자의 감각적인 문장과 사색들을 따라가다 보면 류의 사진을 만나게 되고 사진 안에서 다시 그녀들을 만나게 된다.

  그 곳에 가면 그 여자의 살았던 시대가 있고 그 여자의 삶이 있고 아직도 살아 숨쉬는 그 여자의 영혼과 만나게 된다. 역사는 반복된 미래일 수도 있겠다. 이 책에 소개된 곳에 모두 가보았지만 어렴풋이 역사의 흔적들만 돌아보았다. 아니, 어쩌면 나는 그곳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배낭 속에 책 한 권 집어넣고 사진기 둘러메고 떠나라고 끊임없이 충돌질하는 문장들을 견디기 힘들었다. 이제 ‘그 곳’에 갈 때는 ‘그 여자’를 만나기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 어디서든 볼 수 있겠지만 이 책에 소개된 곳은 특별한 시선으로 돌아보게 될 것이다. 어쩌면 다른 모든 곳에서도 ‘그 여자’를 찾아보라는 저자의 숨은 의도를 발견하지 못할 뻔 했다.

  나무와 숲 사이로 사라져 버린 그 수많은 길들처럼 ‘그 여자’가 사라졌지만 세상은 또 다른 ‘그 여자’들로 가득하다. 우리 모두는 ‘그 여자’를 기억할 것이고 그녀들의 삶을 통해 더 많은 ‘그 여자’를 지금 여기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저기 멀리 서 있는 소외된 타자가 아니라 삶의 주체로서 우뚝 선 ‘그 여자’를 위해 이 책이 쓰여졌다고 믿는다.


08043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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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5-01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해지네요...

sceptic 2008-05-04 18:06   좋아요 0 | URL
문학적 기행문...여성들의 삶에 대한 기억들...을 더듬고 싶을 때, 혹은 여기 소개된 동네에 가시기 전에 한번 읽고 가시면 다른 의미가 전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키도 2008-05-13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혜석의 죽음 뒤에 붙는 불운한 그림자를 걷게 해준 책이지요.
누가 누구의 죽음을 제단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경주와 고정희가 있는 해남.
제 경험속에도 상실과 희망이 교차하는 곳이어서
참, 울림이 컸습니다.

앞으로 님의 서재에 자주 오게 될 것 같네요.^^

sceptic 2008-05-15 13:12   좋아요 0 | URL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이 진하게 배어 있는 책이었습니다.

무이님도 많이 공감하셨다니 이 책은 독자들에게 충분히 생각의 기회를 제공한 듯 하네요.

가끔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