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고래
김형경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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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 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 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 앉았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지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조그만 예쁜 고래 한마리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우리들 사랑이 깨진다 해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는다 해도
우리들 가슴속에는 뚜렷이 남는
한마리 예쁜 고래 하나가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잡으러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잡으러


  소설의 제목을 보는 순간 최인호의 <고래사냥>과 송창식의 <고래사냥>이 떠올랐다. 당연한 반응인지 조건 반사인지 모르겠지만 ‘고래’라는 단어가 내게 주는 느낌은 아득한 꿈이고 동경이며 신화이다. 그래서 반복되는 ‘신화처럼 숨을 쉬는’이 주는 느낌은 여전히 생생한 감동과 울렁거림으로 남아있다. 아련한 기억과 추억 속의 노래가 되어버린 ‘고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두근거림으로 남아 있다. 이 노래를 들으면 당장 경춘선을 타거나 동해안으로 달려가야 할 것 같다. 이제는 시간이 흘렀고 세대가 달라졌으니 공감할 수 있는 폭이 줄어들었지만 ‘고래’가 주는 상징은 여전하다고 믿는다.

  김형경의 소설 <꽃피는 고래>는 장르가 모호하다. 니은이라는 여자 아이를 내세운 성장 소설로 볼 수 있겠지만 정작 주인공은 장포수 할아버지와 왕고래집 할머니로 볼 수도 있다. 소설의 구성이나 전달 방식은 형식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형식을 떠난 내용은 상상할 수 없고 내용을 고려하지 않은 형식 또한 무의미하다. 색다른 시도나 파격적인 형식의 소설이 아니라 내면의 흐름을 따라가는 고백적인 소설이기 때문에 다소 지루하거나 롤러코스터의 즐거움은 없다.

  첨예한 갈등과 긴장감으로 독자들을 몰아붙이는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비슷한 감성 가졌거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야 이 소설에 몰입할 수 있겠다. 그 진폭을 넓히는 것은 물론 작가의 몫이겠지만 쓰고 싶은 소설의 내용과 바탕을 폭넓게 아우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소설은 세대를 넘어서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은 없다. 다만 인생을 이제 막 시작하려는 소녀의 입장에서 황혼기를 맞은 노인들의 삶과 인생을 들여다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세대 간에 고민의 흔적이 겹치고 결국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장포수 할아버지의 고래잡이 배는 한 시대를 대표하고 한 사람의 인생을 상징한다. 왕고래집 할머니의 한글 익히기와 짧은 글들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생의 의미를 확인하게 한다. 단순하면서도 인물들 간의 심리와 내면의 풍경들이 잘 묘사되어 있고 한 옥타브 낮은 목소리로 읖조리듯 풀어나가는 니은이의 이야기도 들을 만하다.

“글을 쓰다보니 마음이 이상해지더라. 그냥 글자만 쓰는 거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더라. 마음을 깊이 뒤집어 밭을 가는 것도 같고 맘속에서 찌개를 끓이는 것도 같고.” - P. 137

  한글을 배워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할머니는 마음 밭의 고랑들이 깊기만 하다. 처용포라고 하는 가상의 공간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잔잔한 이야기들은 읽는 사람의 마음에 깊이 새겨진다. 그림으로 치자면 맑고 투명한 수채화를 닮았다. 순수하고 깨끗한 느낌의 소설이라는 말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과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감동을 의미한다.

  김형경의 소설을 처음 읽었다. <천 개의 공감>과 같은 책을 통해 만날 때와 색다르다. 산문으로 먼저 그녀를 만났지만 소설도 나쁘지 않았다. 정이현의 소설처럼 감각적이고 공지영의 소설처럼 감칠맛이 나고 은희경의 소설처럼 몰입하게 하는 소설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저 잔잔한 바다의 수면 위로 눈부시게 솟아오르는 고래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럼 이제 동해로 가야하나? 고민에 빠진다.


080614-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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