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모험의 고고학 여행
스티븐 버트먼 지음, 김석희 옮김 / 루비박스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시간의 흐름에 온몸을 맡겨보자. 우리의 생애는 영원 속에서 점으로도 찍힐 수 없을 만큼 짧다. 덧없는 인생이란 말은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다. 사람이 산다는 것에 대해 그렇게 깊은 고민과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어쩌면 생의 유한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한 번은 죽는다. 인생의 종착역이 죽음이라는 대전제에서 출발하면 인생은 그렇게 우울하거나 슬프지 않다. 역설적으로 모두에게 공평한 죽음 앞에서 사람은 누구나 겸손해지고 숙연한 마음으로 자신의 생을 돌아보게 된다.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시간 여행 속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이 순간과도 같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과거를 돌아본다. 역사가 항상 우리에게 정답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고 미래를 예견하기 위한 방법으로 가장 타당한 것일 때가 많다. 특히 상상을 초월하는 시간 여행은 인간에 대한 경외감을 넘어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다.

  고고학은 그저 옛 사람들의 삶에 대한 호기심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결국 어떤 학문이든 그것은 인간의 궁금증에서 출발한다. 지적 호기심은 학문의 발전을 가져왔고 시간에 대한 탐구와 앎에 대한 욕구는 땅을 파게 했다. 역사에 전해지는 시간을 되돌리려는 노력은 어쩌면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그 시간여행을 시도한다. 때때로 그것은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인간의 기록이나 기억보다 더 진실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바로 유물과 유적이다. 그것을 발견하고 찾아내는 노력은 순전히 과거에 대한 동경과 인류 역사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고고학 여행이 절대로 ‘낭만과 모험’으로만 가득할 수는 없다. <인디애나 존스>류의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고 낯선 세계에 대한 열망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 고고학은 지나온 시간에 대한 관찰이고 과거에 대한 경의로움이다. 스티븐 버트먼의 <낭만과 모험의 고고학 여행>은 ‘doorways through time'이라는 훨씬 낭만적인 원제를 가지고 있다. 오히려 평범해져버린 제목이 아쉬움을 남긴다.

  어쨌든 이 책에는 전 세계를 통틀어 눈에 띠는 유물과 유적을 고고학의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 학문적인 관점에서 딱딱하게 이론적으로 풀어내고 있는 책이 아니다. 마치 드라마나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당시 상황을 간략하게 재현하고 발굴과정을 소개하며 놀라운 광경을 자세히 묘사한다. 그 경이로운 순간을 기록한 사람들의 책과 말을 직접 인용하면서 해설을 덧붙이고 있어 짧은 글 속에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있다.

  학문적인 깊이가 있고 전체를 통찰할 수 있는 눈이 있는 전문가가 대중적인 글을 잘 쓸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번역 소개되는 외국 서적 중에서는 그런 종류의 책이 자주 눈에 띤다. 우리에게도 없지 않지만 아쉽고 부러울 때가 많다. 학문의 다양성과 자유로운 관점은 사회적인 분위와 학문적 풍토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우리 현실을 돌아보면 요원한 일인 것 같아 안타깝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마치 눈앞에 펼쳐지듯 서술한 ‘폼페이 최후의 순간들’이다. 초등학교 때 ‘폼페이 최후의 날’이라는 계몽사 세계명작문고에서 읽었던 그 감동이 되살아나는 듯 했다. 생생한 일상의 모습들이 그대로 잿더미에 묻혀 참혹하지만 비장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장면이다. 위대한 자연 앞에 항상 작아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이지만 인류의 역사는 그 모진 역경과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오히려 자연의 대재앙을 만들어내는 오만한 인간의 모습이 두렵다.

  신화 속에만 존재할 것이라 믿었던 트로이의 유적 이야기나 잉카 제국의 이야기는 전쟁의 역사가 곧 인류의 역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한다. 인간의 숙명인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투탕카멘 왕과 진시황제의 무덤은 놀라움을 넘어 분노를 일으킨다. 후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문화유산이고 자랑스러운 역사적 현장이겠지만 그것을 만들었던 민중들의 삶을 생각해 보면 야만의 시절이었고 통곡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늘 꿈을 꾸고 그것을 찾아 어디론가 떠난다. 현실에 발붙이고 살지만 마음은 언제나 허공을 딛고 힘차게 날아오른다. 때로는 몽상이나 환상으로 끝나버리기도 하지만 그런 생각들이 현실이 되고 실제 과거에서 벌어졌던 일일 수도 있다. 꿈은 언제나 현실을 위한 상징이다. 그것은 때대로 환각제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행복을 위한 처방전이 되기도 한다. 지나간 역사가 들려주는 그 수많은 이야기와 묻혀버린 시간 속으로 잠시 여행을 떠나보자. 한 권이 책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 즐거움은 상상이며 공상이고 환상이며 꿈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언제나 처절한 투쟁과 피로 범벅된 참혹한 역사 속에서 꾸었던 꿈이라는 사실만은 잊지 말아야겠다.


080616-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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