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 - 한국 인문학의 왜곡된 추상주의 비판, 비평정신 1
박홍규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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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은 기본적으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와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을 읽기 위한 안내다. - P. 19

  나라 안에서 고도의 자율성을 갖는 지역사회와 집단이 존재해야 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지킬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유와 자치의 인간이 존재해야 하고, 그 인간들로 자유와 자치를 추구하는 사회가 구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자유와 자치의 인간과 사회는 자연 속에서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야 한다. - P. 491


  첫 번째 문장과 책의 마지막 문단이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저자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첫 문장을 시작한다.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나 목적을 분명히 밝히기도 하고 가장 기초적인 전제를 제시하기도 한다. 책의 마지막에서는 전체를 마무리하기도 하고 마지막 장의 정리이기도 하다. 어쨌든 첫 문장과 마지막 문단의 인상과 중요성은 책 전체를 일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박홍규의 <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전에 박홍규의 사상적 배경을 알고 있거나 다른 저서를 읽어온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더구나 이상 열풍처럼 우리에게 아렌트가 전해지고 그녀의 책을 접한 사람이라면 놓칠 수 없는 책이다. 나는 첫 문장에서 제시한 두 권의 책을 읽어보지 못했다. 순서대로 읽어야 할지 박홍규의 안내서로 만족할 지 망설이고 있지만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은 인연으로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170여 년 전에 출판된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와 50여 년 전에 출판된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이 어떻게 묶일 수 있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현실 정치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저자는 이 두 사람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두 저서에 나타난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본질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역사적 관점에서 그들이 살았던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그들의 계급적 위치와 사상적 배경을 살펴봄으로써 두 권의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이해하고 해석하며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고 점검하는 책이다.

  들불처럼 타올랐던 광화문의 촛불이 ‘자유와 자치의 민주주의’로 어떻게 꽃 필 수 있어야 하는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바라볼 수 있는지 반성적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시대를 보는 안목과 정치를 바라보는 눈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 아니다. 시민 혹은 국민으로 명명되어온 사람들의 생각과 삶의 양식은 권력자의 생각과 다를 수밖에 없었고 조작된 욕망과 가치는 세상을 미혹케 한다.

  이 책은 내게 2008년의 대한민국을 위한 망원렌즈와 같은 역할을 했다. 현실의 한 복판에서 개인이 서 있는 정치 지형도를 점검하고 정치와 경제, 사회를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은 그 기준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전망과 성찰이라는 관점에서 박홍규의 주장과 논의는 보다 활성화되고 다양한 비판과 쟁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박홍규는 아렌트를 번역, 소개한 이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거침없이 비판하며 그들의 모호하고 추상적인 태도에 일격을 가한다. 한국 인문학의 왜곡된 자화상에 대한 도전이며 당찬 주장들이 여과없이 전개된다. 조금은 위험스러워 보이는 표현들이 특유의 논리와 일관된 주장으로 펼쳐진다. 그 모든 저자의 주장이 진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에 토크빌과 아렌트가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또 그들을 어떻게 읽어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로는 충분한 깊이와 반성의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토크빌의 사상이 아렌트에게 얼마큼 영향을 미쳤는지 점검하고 있으며 아렌트의 보수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두 사람의 공통점이 우리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동일한 정치체제로 인식하고 있는 우매함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미래 사회의 모습을 상상해 보기 위해서도 적절한 논의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두 사람의 생애와 사상은 물론 그들의 저서를 꼼꼼하게 읽어나가며 인용하고 비판하고 해석하며 이전의 논의들에 대한 비판을 빼놓지 않고 있다. 또한 각 장은 두 사람의 주요 저서와 핵심 개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저자의 개인적인 독법과 두 사람의 주저에 대한 평가 그리고 현실 정치에 대한 적용 문제는 주관에 치우친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나에게는 존경하는 인문학자의 용기로 비춰졌다.

  평등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와 자유를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는 어떻게 다른 것이며 그것이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현실정치에서 실현될 때 무엇이 문제인지, 그것이 우리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겠다. 다양한 사상가들의 예지력과 탁월한 안목을 시대를 넘어 현실의 문제를 점검하는 잣대가 된다. 두 사람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거나 하이예크처럼 민주주의는 자본주의가 낳는 것이고, 세계화에 의해 민주주의는 불가피하게 된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비평정신 총서 1권으로 이 책 뒤에는 이택광과 김영민의 책들이 기다리고 있다. 기다려진다. 세상은 어떤 곳인가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지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그들처럼 계속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080817-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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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세상을 탐하다 - 우리시대 책벌레 29인의 조용하지만 열렬한 책 이야기
장영희.정호승.성석제 외 지음, 전미숙 사진 / 평단(평단문화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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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모닝빵을 밤에 자주 뜯어 먹는다. 아이 주먹만 한 빵 속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 무미건조한 맛이지만 맛이 섞여 있지 않아 우유와 먹기 좋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으나 밤에 책을 읽다 허기질 때 공복을 달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빵보다 뜯어먹기 좋은 것이 책이다. 손이 닿는 곳이면 어디나 책을 놓아두고 무료한 시간이면 언제든 책을 펼쳐든다. 산책을 나가면서도 손에 책 한 권을 들고 나서야 마음이 편하다. 여행을 갈 때는 물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신체의 일부처럼 여분의 책을 몸에 지니고 다녀야 불안하지 않다.

  가끔 스스로 한심하기도 하다. 어디엔가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비웃기도 했지만 문득문득 나에게서 그들의 모습을 본다. 중독 혹은 집착에 가까울 때도 있지만 쉽게 조절할 수가 없다. 그리 나쁜 습관도 아니고 타인을 불편하게 하는 것도 아니며 몸에 해롭지도 않다면 굳이 끊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라고 자위해 본다.

  어쨌든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발명품인 책이 없었다면 나는 참 다른 사람으로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업이나 생활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사상과 영혼의 색깔을 의미한다. 지금도 무언가 배울 것이 있으리라는 얄팍한 기대로 아직도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나를 키운 것 팔할이 책이었다. 물론 공부와 책읽기가 별개일 수 없지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많은 것들을 나는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직접 확인했으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어디를 가든 책장부터 기웃거리고 누구를 만나든 그의 손에 들려있는 책을 확인한다.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나와도 배경으로 서있는 책장의 목록을 확인한다. 심각한 수준인지 알 수 없으나 관심은 온통 한 쪽으로 집중된다. 읽고 또 읽어도 언제나 목마르다. 영혼을 위한 처방전은 백약이 무효하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책 이야기는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책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책, 세상을 탐하다>는 책벌레들의 경험담을 모아놓은 책이다. ‘견딜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견디기 위해 책을 선택했지만 책은 누구에게나 언제나 가장 중요한 물건은 아닐 것이다. 이 책에는 29명의 책벌레가 책에 관한 에피소드를 풀어 놓는다. 개인적인 경험이나 추억들이 재미있고 정겹다.

  때때로 책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과 관심을 갖던 시절부터 책을 읽지 않는 현실에 대한 개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변주된다. 만화가와 코미디언, 시인, 소설가, 출판인, 선생님, 언론인과 NGO에 활동하는 사람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책사랑은 애틋하기만 하다. 책과 함께 생활하며 꿈을 꾸고 늙어가며 사는 모습들이 다채롭게 펼쳐지는 만화경처럼 즐겁기만 하다.

  제한된 분량에 자신의 간단한 경험이나 추억, 책에 관한 생각이나 일화를 소개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읽는 사람은 향좋은 뷔페의 음식을 음미하듯이 그들의 이야기를 편안하고 즐겁게 들어주면 그만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깊은 공감과 긍정의 미소를 보내면 될 것이고 평소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책을 가까이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교과서 이외에는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고 1년을 보내는 학생과 선생님이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많다. 책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책을 읽지 않으면서 준비하거나 꿈꿀 수는 없다. 일단 시작하면 끝이 보이지 않고 욕심을 내자면 한이 없는 책읽기의 진경을 맛본다면 과연 공부도 즐거울 수 있고 읽어야 할 책은 끝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뚜렷한 목적을 위한 책읽기가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재테크, 자기계발서의 열풍이나 칙릿으로 분류되는 가볍고 감각적인 소설에 한정된 독서는 편식보다 정신건강에 해롭다. 의무여서는 안되겠지만 다양하고 폭넓은 분야에 대한 관심과 꾸준한 독서는 정신을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인생관을 바꾸어 준다. 세상에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구별할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주고 사람에 대한 안목을 만들어주며 나의 행동과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에 답을 찾아 줄 수도 있다.

  책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널려있고 앞으로도 나오겠지만 나는 끊임없이 그들과 공감하며 책 속에서 많은 꿈을 꿀 것이다. 절대 늙지 않는 ‘청년 정신’을 잃지 않게 위해 노력할 것이며 세상이 어떤 곳인지,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기 위해 공부할 것이다. 그것은 목적없이 걷는 산책과 같이 한 세상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며 혹여 그 안에서 새로운 길이 보인다면 주저없이 그 길을 걷고 친구가 생기면 발걸음을 맞춰 볼 것이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은 이미 가을에 대해 속삭였고 이제는 서늘한 바람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책상에 쌓여있는 몇 권의 책이 있고 밝은 불이 있기 때문에 오늘밤도 행복하다. 중요한 시험이나 무더위 따위는 책 속에 묻어 버릴 수 있을 듯하다. 내일이 지나면 이제 홀가분하게 다시 책 속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책벌레들이여, 안녕들 하신가? 각자 제자리에서 열독!


080813-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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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한 과학
토머스 루이스 외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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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어둠 속에서도 불빛 속에서도 변치 않는
사랑을 배웠다 너로 해서

그러나 너의 얼굴은
어둠속에서 불빛으로 넘어가는
그 찰나에 꺼졌다 살아났다
너의 얼굴은 그만큼 불안하다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은

  ‘사랑’이라는 말을 대하면 떠오는 사람, 사물 그리고 감정을 생각해 본다. 지금도 그렇지만 늦은 사춘기를 보내던 시절 읽었던 김수영의 시가 먼저 떠오른다. 김수영에게 ‘너’는 연인일 수도 조국일 수도 있었겠지만 사춘기 소년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 이 시는 ‘어둠’과 ‘불안’으로 기억되었다.

  이성에 대한 사랑이든 가족에 대한 사랑이든 감정을 분석하려는 헛된 욕망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했다. 그러나 이제 그 욕망은 실현 단계에 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사랑을 위한 과학>은 정신분석가, 생물학적 심리치료사의 만남으로 과학의 대상이 되었다. 사랑과 과학의 만남이라니, 일단 뜨악한 표정을 바꾸기 어려웠다. 가능하다는 믿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놀랍다.

  심리학적 접근이나 정신 분석이 절대적인 믿음으로 인식되던 시대도 이제는 옛 추억이 될 수 있겠다. 뇌과학의 발달로 신비스런 인간의 마음이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나는지 왜 변화하는지 밝혀지고 있다. 그렇다면 과학은 진짜 ‘사랑’이 어떤 것인지 왜 그런 ‘사랑’이 생기는지 말해 줄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한 진지한 고민과 방법에 대해 이 책은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다. 불가능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온 정신 영역과 뇌의 역할에 대해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과학이 사랑을 만나서 나누는 이야기는 딱딱하지도 감상적이지도 않다. 우리가 믿어 왔던 사랑에 대해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의 사랑에 대해 과학적으로 말하고 있다.

  사랑은 가슴이 아니라 머릿속에 숨어 있다.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아주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여왔고 방법을 찾아 헤매 왔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별하고 나서는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이 책은 그것에 관해 과학적으로 말하고 있다. 아이에게 어머니는 어떤 존재이며 인간에게 사랑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설명해 주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책장을 덮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부터 삶에 대한 기본적인 회의까지 다양한 질문들만 남겨진다. 결국 과학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이다. 작다는 표현은 의미가 없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어쩔 것인가에 대한 판단과 반응, 행동과 수용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맡겨진다. 다만 그것을 위한 준비단계를 우리는 과학에게 기대야 할 지 모르겠다.

  암흑처럼 어둡고 불안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감정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은 작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알랭 드 보통은 그 만남의 우연성에서 출발하고 있다. 결코 운명이 아니라 복권 당첨보다 작은 우연으로부터 시작되는 사랑이 우리에겐 때로 전부가 되어 버리고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꾸게 만들기도 한다. 그 신산스런 과정이 삶은 아닐런지.

  저자는 정신분석이나 심리학에서 잘못 다루어진 ‘사랑’에 대해 과학의 잣대로 비판하고 정확한 설명을 시도한다. 신피질과 변연계라는 물질이 존재하는 포유류의 '사랑‘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파충류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감정이다. 사랑의 신경 네트워크에 오류가 생겨 파충류의 뇌로 전환하기까지는 인간의 숙명이다. 사랑은.

  ‘A General Theory of Love사랑에 관한 일반 이론'이라는 정내미 떨어지는 원제를 가지고 있지만 오로지 과학의 입장에서 사랑을 논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정신 영역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하며 오히려 이성과 과학이 보여줄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결국 인간에게 사랑은 생명이며 삶의 원천이라는 자명한 이치와 만난다. 그런 감정이 본능적인 것인지, 어디에서 생기는 것인지,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에 대해 사람들은 늘 호기심을 갖고 있다. 이 책은 그 호기심에 대한 충실한 답안지에 해당된다. 상황에 따라 조언과 충고를 해주고 어줍잖은 판단과 분석을 해주는 연애 상담과는 한참 거리가 멀지만 객관적으로 자신의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참고서가 된다.

  그러나 책장을 덮고 나서도 ‘사랑’이 무엇인지 말할 수는 없다는 사실은 기억할 것.


080811-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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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에서 20세기 말까지 사랑에 관한 주된 설명에는 생물학이 빠져 있었다. 신경학이 공중에 성을 쌓아 정신병 환자들을 살게 하면, 정신과 의사들이 집세를 걷는다는 말이 유행처럼 돌았다. 그러나 정작 허공에 떠 있는 이론의 성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정신과 의사들과 심리학자들이었다. - P. 15

사랑을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모른다면 마음의 수수께끼를 풀려는 희망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 P. 32

인간의 사고 능력은 신피질에서 생성된다. 그러나 이 능력 때문에 보다 신비스러운 다른 정신 활동들이 쉽게 망각된다. 실제로 인식은 대단히 분명한 현상이라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내 존재는 생각이다>처럼 인식이 전부라는 오류를 낳기도 한다. - P. 52

감성의 재료를 언어로 번역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변형 과정을 요구한다. 그래서 강렬한 느낌을 언어적 표현으로 구속하는 일에는 긴장과 무리가 뒤따른다. - P. 54

우리 사회는 감정의 중요성을 경시한다. 신피질과 굳게 결탁한 우리 문화는 직관보다는 분석을, 감정보다는 논리를 조장한다. 지식은 부를 낳을 수 있다. - P. 57

감정을 반복적으로 침전시키는 가장 일반적인 요소는 인식이다. 사람들은 특정한 사건이 지나간 후에도 그것을 다시 생각하고 그 경험을 환기시키면서 자신의 감정을 다시 자극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실제로 그 사건이 재발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 P. 69

진화의 과정에서 출현한 포유동물은 새로운 종류의 뉴런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다시 말해 사랑을 정신적으로 친밀하게 수용할 줄 아는 생물이었다. - P. 75

두 사람이 한 방에 있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떤 목적도 없이 몇 시간을 함께 보내보라. 그러면 두 사람 사이에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인류가 시작되기 오래전부터 작용했던 힘들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이다. - P. 95

단기적 격리는 항의라는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반면, 장기적인 격리는 절망이라는 생리적 상태를 유발한다. - P. 112

실연 당한 연인이 작성하는 비탄의 편지는 새끼 쥐의 찍찍거림과 동일하다. 그것은 주파수만 조금 낮을 뿐 같은 노래이다. - P. 113

애착 형성이 한 개인을 어떻게 조각하는가를 이해하려면, 기억이라는 것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기억은 뇌가 경험을 통해 구조적인 변화를 겪는 과정이다. 기억은 일직선으로 진행하지 않으며, 인간의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 P. 143

새로운 스캐닝 기술이 개발되어, 인지와 상상이 동일한 뇌 부위를 활성화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우리의 뇌는 경험으로 기록된 것과 마음속에서 지어낸 환상을 확실히 구별하지 못하는 것 같다. - P. 151

기억에 관한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보면, 직관이 이해를 월등히 앞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태양이 강렬한 빛으로 우리의 삶을 비추고 있다. 반복적인 경험에 직면했을 때 우리의 뇌는 무의식적으로 그 기초에 놓인 규칙들을 추출한다. - P.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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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 창비시선 286
문인수 지음 / 창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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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하나의 장면과 인상을 풀어내는 능력, 간결한 언어로 응축시켜내는 힘은 저절로 길러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인수의 시들을 읽으면서 세월의 힘과 삶의 무게, 그것을 바라보는 예리한 시선에 감탄하다. 수천년 아니, 수만년 동안 지속되어 온 인간의 삶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생은 한마디로 정리될 수 없다. 어차피 찰나의 인상에 불과하다. 나는 물론 우리들 모두의 삶은 그렇게 지리멸렬하지만 무엇가를 찾으려는 욕망에서 벗어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모든 것을 손에서 놓아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장면들을 바라보려는 것도 또다른 욕심일까?

  세월의 골을 따라 존재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문인수의 <배꼽>은 만만치 않은 중량감을 느끼게 한다. 가벼움의 시대, 키취 세대를 즐기던 90년대를 넘어 이제는 우리 시대를 무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이념도 실존도 더 이상 시가 되지 않는 시대를 살아가는 건 아닐까? 항상 책 속에서 길을 잃고 끝없는 질문 속에서 허덕인다.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바람부는 날 길가에 떠 다니던 검은 비닐봉지를 바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입구도 출구도 모른 채 바람을 잔뜩 머금고 일방적으로 질주하는 바람의 맹렬함 덕분에 하늘로 날아 오를 수 있었던 비닐봉지에게 묻는다. 우리들은 도대체 무엇을 향해 떠올랐다가 힘없이 가라앉는 것이냐고.

비닐봉지

차들이 검은 비닐봉지 하나를 연신 치고
달아난다. 비닐봉지는 힘없이 떴다 가라앉다 하면서
찢어질 듯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지만 도통
소리가 없다. 연속으로 들이닥치는 무서운 속력 앞에, 뒤에, 두둥실
웬 허공이 저리 너그러운지.

누군가의 발목에서 떨어져나온 그림자, 그늘인 것 같다. 과거지사는 더 이상 다치지 않는다. 이제
적의 멱살도 박치기도 없는 춤, 검은 비닐봉지 하나가 또 잔뜩
바람을 삼킨다. 대단한 소화능력이다. 시장통,
거리의 밥통이다. 금세 홀쭉하다.


  때로는 우연에 기댈 때도 있다. 박태환처럼 뚜렷한 목표와 결승점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물에게 온몸을 내맡기고 전력을 다해 손이 닿는 순간 이제 그는 어디로 가야할까? 경쟁도 없고 확인된 적도 없는 싸움을 계속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은 아닌지. 그래서 거리의 밥통은 금세 홀쭉해지는 것인지.

배꼽

외곽지 야산 버려빈 집에
한 사내가 들어와 매일 출퇴근한다.
전에 없던 길 한가닥이 무슨 탯줄처럼
꿈틀꿈틀 길게 뽑혀나온다.

그 어떤 절망에게도 배꼽이 있구나.
그 어떤 희망에도 말 걸지 않은 세월이 부지기수다.
마당에 나뒹구는 소주병, 그 위를 뒤덮으며 폭우 지나갔다.
풀의 화염이 더 오래 지나간다.
우거진 풀을 베자 뱀허물이 여럿 나왔으나
사내는 아직 웅크린 한 채의 폐가다.

폐가는 이제 낡은 외투처럼 사내를 품는지.
밤새도록 쌈 싸먹은 뒤꼍 토란잎의 빗소리, 삽짝 정낭 지분 위 조롱박이 시퍼렇게 시퍼런 똥자루처럼
힘껏 빠져나오는 아침, 젖은 길이 비리다.


  ‘그 어떤 절망에게도 배꼽’은 있다. 태초에 탄생이 있으니 소멸이 있고 삶이 있으니 그 종착역은 죽음이 될 것이라는 자명한 사실 앞에 우리는 조금 겸손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부리며 산다.

  ‘그 어떤 희망에도 말 걸지 않는 세월’이 얼마나 많은가? 아니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절망의 종착역이 희망은 아니다. 희망을 담보로 절망이 찾아온다면 견딜만 하겠지만 절망은 또 다른 절망으로 치닫고 희망은 그저 생을 유지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신기루에 불과할 때가 더 많다. 헛된 희망 고문으로 환상 속에 현실을 방기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도 그것조차 없다면?

  우리 모두는 도망자가 되는 것이다.

도망자

밤새 눈 내려덮였다.
저 일격이 날 때려눕힌 것일까
세상 모든 길, 길을 풀고 돌아가버렸다.

일생이 전면, 불문에 붙여진 것 같다.
사라진 기억들이 삼엄하다.

누가 또 밖에 나가고 싶으랴,
나가고 싶지 않으랴.

낯선 곳에서 창을 열고 멀리 내다보는
흰 복면의 죄, 말없다.


  사라진 것을 우리는 ‘기억’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라진 기억’은 모순이다. 하지만 삼엄하긴 하다. 하늘은 먼저 가을을 예감한다. 지상의 뜨거운 열기를 비웃듯 뭉게 구름은 한가롭고 푸른 하늘은 여유있다. ‘낯선 곳에서 창을 열고 멀리 내다보는’ 여유를 찾아 헤매는 것이 우리들의 먼 미래의 희망이다. 아닌가? 여전히 말없이 그것을 내다 볼 밖에.

  손에 잡힐 듯이 눈앞에 떠 있는 흰 구름이 소리도 없이 사라지고 다른 모습으로 헤어졌다 다시 만난다. 목적 없이 그렇게 흘러가는 아주 오래된 기억이 배꼽이다. 생의 근원이며 절망의 출발이고 다시 돌아가야 할 침묵의 바다이다. 가만히 내 배꼽을 들여다본다.


080810-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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