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
정도상 지음 / 창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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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붉게피는 남쪽나라 내고향
언덕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물고 눈물 젖어져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믿을 사람아,

달뜨는 저녘이면 노래하던 동창생
천리객창 북두성이 서럽습니다
작년봄에 모여앉아 배긴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


  인터넷을 뒤적거려 패티 김과 백난아가 부른 ‘찔레꽃’을 들었다.

엄마의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배고픈 날 하나씩 따먹었다오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밤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하얀 가루 아프게 내려오시네
밤마다 꾸는 꿈은 하얀 엄마꿈
산등성이 나무로 내려오시네

가을밤 외로운 밤 벌레 우는 밤
초가집 뒷산길 어두워질때
엄마품이 그리워 눈물 나오면
마루 끝에 나와 앉아 별만 셉니다.

  이어서, 정하나와 이은미가 부른 ‘찔레꽃’을 들었다.

  정도상의 연작소설 <찔레꽃>은 처음부터 익숙한 찔레꽃의 선율이 떠올랐다. 다만 ‘찔레꽃 붉게피는 북쪽나라 내고향~’이라고 가사를 바꾸어 부른다면 이 소설에 더욱 잘 어울린다. 고향과 어머니는 도시의 삶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도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전해준다. 언젠가 어딘가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있는 사람은 그리움을 안다. 파편화된 삶의 조각들이 또 하나의 퍼즐처럼 연결된 곳에서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최소한 물질적 풍요로움을 누리게 때문이다.

  기본적인 생활 여건으로부터 추방당한 사람들의 신산스러움을 겪어보지 않는 나로서는 공감의 능력만을 최대한 발휘해 볼 뿐이다. 6.25와 1.4후퇴를 기억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후세대의 잘못은 아니다. 다만 동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외면은 조금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분단 50년 세월이 훌쩍 지났지만 남과 북의 관계는 지구상의 어느 곳보다 첨예한 대립을 유지하고 있다. 도대체 무엇때문인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 정책은 일관성을 잃었고 2008년 9월 현재 북한은 핵연료봉 폐기를 정지한 상태이다. 한반도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의 손을 떠나있고 6자회담이라는 주변국들과의 역학 관계 속에서 풀어낼 수밖에 없다. 미국의 주도권 아래 나머지는 들러리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권은 한 술 더 뜨고 있다. 무조건적 퍼주기를 중단하겠다는 선언과 북한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고 나섰다. 남북관계는 경색국면으로 접어든 지 오래고 평화와 화합의 노력은 중단된 지 오래다. 반목과 질시로 민족의 통일이 가능한지 궁금하다.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생존의 문제가 되어버린 남북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과 태도가 달라져야 하지 않은가. 위정자들이 바라보는 남북관계는 정책의 일관성 없이 5년마다 바뀌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국민들도 모두 동의하고 있는지 먹고 사는 일이 바빠 관심이 없는 것인지.

  황석영의 <바리데기>를 통해 독자들은 무엇을 읽어냈는지 모르겠다. 정도상의 <찔레꽃>은 우리에게 또 어떤 의미를 던져주었는지 알 수 없다. 단순히 탈북 여성 문제를 다룬 이색적인 소설로 비춰지는지 아니면 우리 형제와 부모들이 겪고 있는 진행형의 아픔인지. 단편들이 모여 연작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이 소설은 북한의 주민들이 겪고 있는 삶의 모습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작가의 직간접적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현장감 넘치는 묘사와 생생한 표현들이 소설의 긴장감을 더해준다. 겨울 압록강변에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충심이었다가 메이나였다가 소소였다가 은미로 탈바꿈하는 한 여성을 통해 이 시대의 비극을 극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생존의 문제인 탈북자에게 정치적 이념과 종교적 시혜 문제로 접근하는 모든 주변 상황들을 비웃고 있기도 한 이 소설은 그들이 과연 한국 사회에서 어떤 사람들로 화합하는 지의 문제를 거론하기보다 현재 상황의 심각성과 그들의 과연 우리와 무관한 사람들인지 되묻고 있는 듯하다. 독자 일반의 각성을 촉구하는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조금 더 넓은 시각과 열린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작가의 메시지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소설의 감동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감칠맛 나는 문장으로 전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시대현실을 투명하게 비춰주는 거울의 역할을 할 때가 더 많다. 정도상의 소설은 아프고 쓰린 생채기를 눈앞에 정면으로 드러내고 있어 독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 불편함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부지런히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진정으로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생각한다면 21세기의 유랑민이 되어버린 그들의 삶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 정치적, 군사적 역학 관계는 미국의 패권주의의 들러리에 불과함을 직시해야 한다. 개방과 호혜의 원칙만이 우리 민족이 공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원칙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순진하고 이상적 대안이 아니다.

  반인권적 반평화적 행위를 서슴지 않는 정부와 국가권력이야말로 민족의 화합을 더디게 하며 더불어 함께 공존해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로부터 국민들을 멀어지게 하고 있다. 한 권의 소설로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작가가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우리들 삶의 중요한 부분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함께 고민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그것을 감동적인 소설로 형상화해내는 작업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정권이 바뀐 지 1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모든 분야에서 우려할 만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편향이라 손을 봐야겠단다.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로 살아가는 데도 노동자의 권리나 노동법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비정상적인 나라에서 이제 또 다시 국가 지배이데올로기의 망령이 살아나고 있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의 부활이 멀지 않았다. ‘용비어천가’를 달달 외워 대학에 입학하고 신경림이나 김지하의 작품을 빨갱이의 시로 몰아 문학 교과서에서 삭제하는 날이 머지 않았다. 우리는 가만히 손놓고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저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리라. 오, 필승~ 대.한.민.국!

  10년 후에, 아니 지금 이 시대의 작가들은 도대체 무엇을 쓰고 있으며 이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것이 궁금해졌다. 갑자기.


08092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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