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자세히 보라. 인생은 도처에 형벌을 느끼도록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 285쪽
긴 터널을 통과하는 것처럼 빛과 그림자가 수없이 교차했다.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질끈 감았던 눈을 뜨면 주변의 사물이 보이고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정기수 번역본(민음사) 『레 미제라블』 5권은 2,556쪽이다. ‘위대한 작가’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빅토르 위고는 이 글을 통해 자신의 생애와 사상을 모두 담았다. 단순히 장편소설이라고 분류하기 어려운 긴 글이다. 팡틴, 코제트, 마리우스, 장 발장 등 주요 인물이 등장하고 자베르, 테나르디에 등 조연과 엑스트라까지 수백 명이 출연하지만 소설의 형식을 빌린 당대의 역사이며 철학이고 사회사에 해당한다. 재미있는 스토리를 넘어 신을 향한 질문과 고민, 인간이 사는 사회에 관한 성찰, 인간의 욕망과 본능에 대한 고뇌가 담긴 이 긴 텍스트를 읽는 이유는 독자마다 다를 터. 터널 안에 스치는 불빛과 명멸하는 그림자를 뒤로 하며 달리는 자동차는 저 멀리 희미한 빛을 향해 질주한다. 동전만큼 아주 작은 크기의 희미한 빛을 우리는 ‘희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체 5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1부 팡틴, 2부 코제트, 3부 마리우스, 제4부 플뤼메 거리의 서정시와 생 드니 거리의 서사시, 5부 장 발장으로 나뉜다. 유일하게 사람을 앞세우지 않은 4부는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사랑 그리고 1832년 6월 혁명을 설명한다. 서정시와 서사시가 교차하는 건 비단 4부뿐만이 아니다. 1부에서 미리엘 주교를 등장시켜 종교적 삶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성찰을 요구하며 출발한 작가는 2부에서는 워털루 답사를 통해 역사적 의미를 묻고 3부에서는 질노르망을 통해 왕당파의 입장을 전한다. 4부와 5부에서는 바리케이드로 상징되는 혁명의 역사와 시가전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소설 너머 작가의 현실 인식을 직,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현대 소설의 문법에 전혀 맞지 않는 4부 7장 ‘곁말’의 등장처럼 빅토르 위고는 이 거대한 텍스트를 마치 자기 삶의 비망록처럼 다루고 있는 느낌이다. 1802년생인 작가가 간접 경험한 1815년 워털루, 혁명에 한복판에 서 있었던 1832년 6월이 서사의 중심축이다. 주인공이자 신의 현신, 고뇌하는 작가의 페르소나로 등장하는 장 발장은 1815년에 출소한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돼 장 발장이 죽음에 이르는 10여 년에 불과하지만, 시작은 1789년 7월 14일이며 글을 쓰고 있는 1861년 현재 시점으로 직접 등장하기도 한다. 당대의 시론時論 혹은 시평時評에 해당하는 내용이 서사의 흐름 사이사이에 등장하며 독자를 괴롭힌다.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신은 우리에게 무엇이냐고. 지금은 어떤 시대며 우리에게 혁명은 무엇이냐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는 이 소설에도 적절하게 등장하며 기막힌 우연과 비현실적 문제해결로 주인공들은 숱한 위기를 넘긴다. 기본적인 서사와 스토리는 진부하나, 성경 다음으로 프랑스에서 많이 읽힐 만큼 주목받았던 이유는 자명하다. 빅토르 위고의 문체와 주제 의식이다. 인간의 삶에 대한 현실적 고뇌가 주인공을 통해 생생하게 드러나며 세밀화처럼 기막힌 묘사는 당대 소설로는 넘사벽이었을 듯싶다. 2023년에도 전혀 낡은 느낌이 들지 않는 문장의 힘이 남다르다. 결국 좋은 글은 작가의 고민의 깊이와 넓이 그리고 진정성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부와 5부의 중심인 1832년 6월은 작가의 나이 서른이었다. 직접 목격하고 고민했을 장면들을 통해 프랑스의 기나긴 혁명사, 아니 유럽과 인류 전체에 미친 그 영향은 여전히 유효한 현재 진행형의 역사다. 그래서 이 소설은 지나간 옛이야기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생생하게 전달되는 고민과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코제트와 에포닌의 사랑은 왜 다른가. 마리우스가 왕당파 할아버지와 달리 워털루에 참전한 공화주의자 혹은 민주주의자 아버지 사이에서 마리우스가 흘린 눈물은 얼마나 많은가.
시가전은 바리케이드 이쪽과 저쪽을 모두 담진 못했다. 객관적 역사 서술과 달리 소설가는 인물을 통해 혁명의 당위성과 의미를 담아낼 뿐이다. 그 장엄하고 숭고한 장면들을 통해 ‘진보는 국민들의 영원한 생명’이라는 작가의 목소리를 전달하면 그뿐이다. 해석과 평가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전멸한 시민군을 통해 혁명, 즉 폭동과 반란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했다는 평가는 지나치게 협소한 해석일 것이다. 빅토르 위고는 역사적 ‘진보’의 힘을 믿었다.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사상과 관념은 낭만주의와 계몽주의가 아니라 사랑과 우정, 혁명과 진보, 용서와 화해 그리고 속죄 의식이다.
악인으로 등장해 소설 전체를 지배하는 자베르와 테나르디에는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자베르가 자신의 신념과 고뇌를 통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데 비해 테나르디에는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끝까지 악역을 감당한다. 에포닌과 가브로슈가 묘한 인연의 연결고리로 소설 곳곳에 등장하지만 결국 코제트와 마리우스 그리고 장 발장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ABC의 벗들’이나 파리의 부랑자들이 다수 등장하며 이야기는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려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본질적인 문제에 천착하면서도 다양한 인간의 욕망과 선택의 고뇌를 보여주려는 작가의 노력은 조금 지루하고 사색적인 문장과 숨 가쁘고 긴박한 호흡의 적절한 배치로 빛난다. 다만 소설의 마무리는 못내 아쉽다. 결국 장 발장의 긴 행로가 상속을 위한 것이었을까. 마리우스와 코제트의 행복을 위해 전한 60만 프랑을 어떻게 벌었는지 설명하며 그것이 정당한 돈임을 역설하는 장면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500프랑을 남겼다는 설명은 신의 아바타 역할을 해온 장 발장의 캐릭터에 균열을 일으킨다. 그것이 설령 당대 부르주아의 일반적 상식과 서민들의 소망이었다 할지라도 소설은 세습과 상속, 불로 소득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미리엘 주교의 삶을 묘사하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5부 장 발장은 시가전과 마리우스를 살려내는 장 발장의 초인적 노력을 보여준다. 특히 파리의 하수구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이후 해피엔딩을 향한 스토리의 수습과 얽힌 실타래를 풀어가는 과정은 반전 없이 진행된다. 장 발장으로 대표되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반의 프랑스가 궁금해서 지금 이 소설을 읽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고전을 읽는 이유가 대개 그러하듯이 변치 않는 인간의 보편성, 당대 사회와 역사의 단면이 보여주는 특수성 그리고 그 숱한 알레고리가 오늘 우리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놀라운 기시감 때문이 아닐까.
빅토르 위고는 이 소설을 1845년부터 1862년까지 17년간 집필했다. 1815년 6월 워털루 전투, 왕정복고, 1832년 6월 혁명은 물론 수도원 생활, 파리의 부랑자들, 시가지의 모습과 하수도 등 당대의 역사이며 풍속화인 이 소설은 그 어떤 작품과 비교 불가능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작품을 작가는 이렇게 겸손하다. “지상에 무지와 빈곤이 존재하는 한, 이 책 같은 종류의 책들도 무익하지는 않으리라.”
시적 서정성과 거대 담론을 오가며 서사의 힘을 보여주는 빅토르 위고는 미움받는 자를 사랑하고 타락한 자를 구원하는 종교철학을 보여주기 위해 긴 시간 고민하지는 않았으리라. 이 세상에는 절대 악이란 존재하지 않고 모든 인간 속에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 역사는 진보를 거듭하며 혁명을 통해 한발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겪는 평범한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이 곳곳에 배치되어 이 길고 긴 텍스트가 남긴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도스토옙스키『죄와 벌』이나 톨스토이가『부활』보다 먼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신과 인간의 문제를 역사적 진보와 혁명으로 다룬 이 소설에 더 애정이 가는 건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지만 『레 미제라블』은 내게 ‘사랑과 혁명’에 대해 조금 더 깊이 고민하는 시간을 주었다. “인류의 일반적인 생활을 ‘진보’라 부른다. 인류의 집단적인 걸음걸이를 ‘진보’라고 부른다. 진보는 전진한다. 그것은 천국적이고 신적인 것을 향해 지상적이고 인간적인 대여행을 한다.”라는 말에 공감했고, “혁명은 사고에서가 아니라 필연에서 나온다. 하나의 혁명은 인위에서 실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혁명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므로 존재한다.”라는 문장에 숙연해졌다. 나로부터의 혁명, 자기 안에 사랑이 먼저다. 어쩌면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사랑하는 것 또는 사랑한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런 다음엔 아무것도 원하지 마라. 인생의 어두운 주름살 속에서 찾아낼 진주는 그밖에 없다. 사랑하는 것은 하나의 완성이다. - 352쪽
미완의 인생이면 어떤가. 그 또한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