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1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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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생인 빅토르 위고는 1862년에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을 발표한다. ‘불쌍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상충한다. 기준과 범주에 따라 ‘가난’도 다르다. 프랑스어 ‘misérable’은 형용사와 명사로 불쌍하고 비참한 상태와 사람, 매우 가난한 상태와 사람을 가리킨다. 고전은 대개 역사가 담아내지 못한 현실의 모순을 담아낸다. 무명씨들의 집합이 실제 역사라는 생각은 미시사微時史 연구의 출발이지만 부분이 전체를 담아낼 수 없듯 전체는 부분의 합이 아니다. 조각난 개별적 사실들이 모여 흐름을 이루고 커다란 흐름에는 반드시 미처 확인하지 못한 지류와 흔적들이 남는다. 그것이 비록 주류가 아니더라도 엄연히 존재했던 사람들이며 사실들이다.

1부 팡틴, 2부 코제트, 3부 마리우스, 4부 플뤼메 거리의 서정시와 생 드니 거리의 서사시, 5부 장 발장 중 1부 팡틴을 읽었다. 소설의 시작은 ‘올바른 사람’이다. 빅토르 위고는 미리엘 주교를 올바른 사람의 전형으로 내세운다. 신의 뜻을 실천하는 자, 이상적 종교인을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가톨릭 사제로서 갖춰야 할 삶의 자세와 마음가짐이 새삼스럽지 않다. 태도가 한 인간의 본질을 결정한다. 인간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미리엘 주교는 언행일치를 보여주는 존재로 레 미제라블 중 하나인 장 발장을 자연스레 신에게 인도한다. 설교와 바이블이 아니라 일상적 태도와 진정성으로.

뒤이어 등장하는 1부의 주인공 팡틴은 당대 사회의 비정함을 보여주기 위한 희생양이다. 코제트의 양육자 테나르디에 부부와 자베르는 악인의 전형이 아니다. 그저 모두 레 미제라블이다. 곤궁하면 가난한 이웃을 먼저 물어뜯는다. 갑이 아닌 을, 병, 정들의 난투극은 오랜 역사다.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는 그 자체로 모순된 표현이나 도달하기 어려운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누가 장 발장을 손가락질 할 것인지 묻기 전에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모든 레 미제라블이 오늘을 사는 나의 모습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조르조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란 사람들이 범죄자로 판정한 자를 말한다. 그를 희생물로 바치는 것은 허용되지 않지만 그를 죽이더라도 살인죄로 처벌받지는 않는’ 존재라고 말한다. 팡틴과 같은 희생양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는 없었다. 우리는 그들을 추방(터부)되어야 존재로 인식한다. 사케르Sacer란 건드렸을 경우 자신이나 남을 오염시키는 그런 사람 혹은 사물을 가리킨다. 여기서 ‘신성한’ 또는 (대략 유사하게는) ‘저주받은’이라는 이중적 의미가 유래한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에서 루시 마네트가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 여성의 전형으로 등장했다면 팡틴은 레 미제라블 조차 배제하고 싶었던 호모 사케르의 전형이 아닐까.

아라스는 유서 깊은 곳이다. 국왕 처형을 요구하는 연설을 했던 급진파 로베스피에르가 제3신분 대표로 선출된 곳이다. 장 발장이 아라스로 가지 않기 위한 필연적 이유를 찾는 본능과 인간적 양심 사이에서 고뇌하는 장면이 1권의 압권이다. 마차를 들어올리고 자베르와 대면하고 법정에서 내가 장 발장이라고 외치는 장면은 표면적 서사에 불과하다. 미리엘 주교로 출발한 이야기는 장 발장의 고민으로 절정을 이룬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장소, 공간적 배경은 작가의 의도와 주제를 읽는데 유의미하다. 예를 들어 가짜 장 발장으로 오해받는 샹 마티외 재판이 열리는 법정은 아라스에 있다. 로베스피에르는 이 곳에서 《아라스 국민nation에게 드리는 호소》를 발표했다. 또한 미리엘 주교의 은그릇을 훔친 장 발장의 이야기는 프랑스혁명 당시 제헌의회 의원들은 교회가 소유한 재물을 공격했으며 관련 법령은 ‘예배의 규범 유지’에 꼭 필요하지 않은 모든 은그릇을 처분하라고 규정과 관련해서 어떤 해석이 가능할까.

역사는 현실을 넘어설 수 없고 현실은 역사보다 비극적이다. 빅토르 위고는 역사와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며 “법률과 풍습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문명의 한복판에서 지옥을 만들고 인간적 숙명으로 신성한 운명을 복잡하게 만드는 영원한 사회적 형벌이 존재하는 한, 무산계급에 의한 남성의 추락, 기아에 의한 여성의 타락, 암흑에 의한 어린이의 위축, 이 시대의 이 세 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떤 계급에 사회적 질식이 가능한 한, 다시 말하자면, 그리고 더욱 넓은 견지에서 말하자면, 지상에 무지와 빈곤이 존재하는 한, 이 책 같은 종류의 책들도 무익하지 않으리라.(1862년 1월 1일, 오트빌 하우스에서)”라는 말로 소설을 시작한다.

2부의 주인공 코제트를 내세워 또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지 모르겠으나 숱한 뮤지컬과 영화를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스토리 너머에 숨어 있는 텍스트 사이사이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지루한 장광설과 만연체 문장, 개성적 인물에 대한 아쉬움이 있으나 “도시에는 말 많은 사람은 흔해도 생각 있는 사람은 드물다.”와 같은 경구, 소설 내용과 별 상관없이 빅토르 위고의 속내를 내비치는 문장을 읽는 재미가 긴 호흡의 소설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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