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사
알베르 소불 지음, 최갑수 옮김 / 교양인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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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자유여! 그대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범죄가 저질러지는가?”(롤랑 부인) - 87쪽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얼마나 많은 말이 허망해지는가.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약속이 부질없어지는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앞에 ‘자유’를 붙여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얼치기가 날뛰고 준엄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위정자들이 또 얼마나 개인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불철주야 헛된 말들과 약속을 남발하고 있는가.

독학자의 서재를 채우는 귀한 가르침을 만날 때마다 옷깃을 여민다. 알베르 소불의 『프랑스 혁명사』는 대중의 인기와 시류에 영합했던 작가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와 대조되는 위대한 작가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시작하며 필연적으로 만난 책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일처럼 어떤 책과의 인연도 시절과 맥락이 존재한다. 선택이 오롯이 개인의 자유의지가 아니듯 숱한 책을 만나고 읽고 잊는 일도 경험과 나이와 시기에 따라 자연스레 물 흐르듯 밀려왔다가 썰물처럼 빠져 나간다.

알베르 소불은 프랑스 혁명을 계급 충돌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습격 사건으로 상징되는 혁명을 제3신분 부르주아가 헤게모니를 거머쥔 사건으로 규정한다. 대다수 농미노가 장인은 신흥자본가와 이해관계가 다르다. 성직자, 귀족을 위한 앙시앙 레짐의 혁파에는 공감하지만 국가의 질서와 체제에 대해서는 관점이 같을 수 없다. 1792년 8월 10일 혁명이 민주주의 혁명에 가깝다면 그 이후에 벌어진 공포정치와 밀물처럼 밀려왔던 반동과 또 다른 혁명과 좌절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유럽과 프랑스의 역사를 다시 보게 한다. 빅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 2권 ‘워털루 전쟁’에서 장엄하게 묘사했듯 “만약에 1815년 6월 17일과 18일 사이의 밤에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유럽의 미래는 달라졌으리라.” 유럽의 헤게모니를 넘겨준 프랑스는 1830년, 1848년 그리고 1968년에도 계속해서 ‘혁명’의 끈을 놓지 않았다. 마치 혁명의 활화산처럼 폭발하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며 유럽의 역사뿐 아니라 인류의 역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1792년 이후, 유럽의 모든 혁명들은 프랑스혁명에 불과하다. 자유는 프랑스로부터 사방으로 비쳐 간다. 그것이야말로 태양의 행위 같은 것이다. 그것을 보지 못하는 자는 소경이다! 그렇게 말한 것은 보나파르트다.”라는 빅토르 위고의 말이 프랑스 혁명의 중요성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우리에게 각인된 1789년 이전과 이후의 전후 맥락을 상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영국과 프랑스,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역학관계는 하나의 유기체처럼 연동한다. 합스부르크가의 이야기가 여전히 숱한 영화, 드라마로 재생산되며 흥미를 유발하는 건 단순히 지나간 시간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니라 숱한 우연과 필연이 빚어내는 결정적 순간에 대한 아쉬움 혹은 환희가 아닐까.

알베르 소불의 이야기에 파묻혀 3박 4일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혐오, 분노, 좌절, 환희, 안타까움, 희망, 비참, 안도, 허망...... 거대한 파노라마처럼 숱한 감정의 회오리를 경험했다. 여전히 논쟁 중인 혁명에 대한 분석과 해석은 ‘관점’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최갑수가 역자 후기에서 상세히 밝히고 있듯 소불에 대한 다양한 평가는 역사들의 몫이다. 지구 반대편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프랑스 혁명사를 들여다보며 느낀 감회는 남다르다. 문학, 역사, 철학, 사회,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그 빛과 그림자가 여전한 프랑스 혁명의 세세한 기록을 살피는 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1789년 조선은 영조 13년으로 수원 팔달산 화산에 아버지 사도세자를 위해 현륭원을 조성한다. 11살에 뒤주에서 죽어가는 아버지를 목격한 아들의 슬픔이 수원화성으로 빚어질 무렵이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보나파르트의 워털루 패배가 밤새 내린 비와 숱한 우연의 겹침인 것처럼 역사는 때때로 아이러니하게도 ‘가정법’을 허락하지 않는다. 성직자와 귀족의 비율, 그들이 점유한 토지...왕의 절대 권력과 신의 이름을 팔아 교회와 수도원, 성직자들이 누린 특권, 세습 귀족이 가진 부와 명예를 필연적으로 붕괴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이라는 생각은 결과론적 판단이 아니다. 오로지 생존의 극단에서 벌어진 반란과 혁명의 불씨가 횃불로 번진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으며 그 결과는 어떠했을까. 그것이 당대 프랑스와 유럽 그리고 현재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들의 생각과 삶의 태도를 반영한 정치인들의 발언이 단순한 ‘말실수’ 용인되고 친 재벌 정책과 사학재단의 비리에 관대한 시민들의 시선과 태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경제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간극이 메워지지 않는 건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알지 못하는 부족한 현실 인식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와 그냥 민주주의는 어떻게 다른가. 프랑스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끝날 수 없다.

구체제에 위기가 부르주아 혁명과 민중 운동을 초래하고 혁명정부가 들어섰으나 결국 유산자가 지배하는 부르주아 공화국으로 귀결됐다. 알베르 소불은 결론을 덧붙여 혁명과 현대 프랑스를 조망한다. 국민적 통합과 권리의 평등 그리고 혁명의 유산을 살피는 과정은 대한민국의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현대사회는 거대한 인류 공동체로 기능하기 때문에 당연할 수도 있으나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과 미래를 돌아보는 데도 『프랑스 혁명사』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다.

혁명, 그것은 ‘위로부터’ 강제될 수 없다. ‘개혁’이 ‘위로부터’ 주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혁명은 필연적으로 ‘아래로부터’ 강제되는 것이다. 개혁은 사회의 기본 구조를 흔들지 않으며, 오히려 지배적인 사회 범주들의 지속적인 이익을 위해 기존의 구조를 보듬는다. - 혁명이란 무엇인가(‹사상› 제217~218호, 1981년 1월~2월, ‘국가’와 ‘사회’ 특집호), 7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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