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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 -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ㅣ 이다의 이유 7
체사레 베카리아 지음, 김용준 옮김, 볼테르 해설 / 이다북스 / 2022년 4월
평점 :
품절
738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26세 때인 1764년 『범죄와 형벌』을 세상에 내놓는다. 이 책은 억측과 예단, 종교적 편견으로 뒤덮인 야만적인 행형제도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기념비적 저서로 남아 있다. 한마디로 전근대적인 범죄와 형벌에 대한 전근대적 시스템 자체를 뒤흔들고 사회계약설에 의한 국가형벌권, 죄형법정주의를 확립했다. 자연스럽게 고문과 사형과 같은 잔혹한 형벌 제도를 비판했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체사레 베카리아는 한 사람의 용기와 첫걸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듯하다.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의 중요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유럽은 계몽주의, 즉 이성의 찬란한 빛을 찾아 먼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법은 사회적 합의를 지속하는 조건이며, 형벌은 범죄를 억제하고 예방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생각은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설』(1762)의 이론을 전폭적으로 수용한 결과로 보인다. 종교적 의미의 원죄 의식과 절대왕정의 핍박에 시달리던 중세적 개념의 전근대적 범죄와 형벌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 된 이 책의 의미는 현대 사법 체계와 형법에도 그 영향이 남아 있다.
특히 고문에 의한 자백은 진실을 밝히지 못하며 부당하다고 강조한다. 체사레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에서 주장한 내용은 250년이 지난 1980년대까지 대한민국에서 지켜지지 않았다. 영화 『1987』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박정희 군사 독재 시절에서 전두환 쿠데타 정권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자행되던 야만적인 고문과 비인간적 수사 관행이 사라진 건 오래전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는 지금도 믿기 힘든 일들이 벌어졌고, 여전히 그 시절에 향수를 느끼거나 그 시절에 뿌리를 둔 정권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은 현실은 더욱 놀랍다. 베카리아는 절대왕정 시기에 이 같은 목소리를 높였으니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인 동시에 출간 즉시 교황청에 의해 금서로 지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베카리아 자신도 이 책의 반향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으니 실명이 아닌 익명으로 출간했다.
근대 형법의 토대를 마련한 베카리아의 용기는 현실에 대한 과격한 저항이었으며 합리적 이성을 향한 인류의 매우 중요한 진보였음을 역사가 증명한다. 시대를 앞선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대체로 기득권의 탄압과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승인한 이후에야 실명으로 책을 출판했던 당대 유럽은 그래도 동양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한 시대가 아니었을까. 18세기 유럽의 지성사와 사회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관용론』(1763)의 저자 볼테르는 이 책을 계몽주의 시대 가장 중요한 저서라고 평가했으며 직접 해설을 썼을 만큼 깊은 애정을 보였다. 베카리아의 본문 분량만큼 기나긴 볼테르의 해설은 또 단순한 설명이 아닌 또 하나의 사회론이다.
무죄추정의 원칙과 죄형법정주의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원고와 피고에 따라 관점과 태도가 전혀 다를 수밖에 없으나 지지하는 정당과 정치적 신념이 다르다고 해서 원칙이 달라진다면 법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이며 범죄와 형벌 사이에 놓인 생각의 차이는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20대 청년, 체사레 베카리아 생각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현실적 문제와 고민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18세기 중반 유럽의 정치, 경제 상황에 대한 이해는 프랑스혁명으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대적 개인이 이성에 눈을 뜬 계몽의 시대에 절대왕정과 신의 권능의 자리는 위태롭기만 하다. 종교개혁과 인쇄술의 발달이 가져온 지식의 대중화는 왕과 성직자, 귀족들이 오랫동안 거머쥔 헤게모니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된다. 체사레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1764)과 볼테르의 해설(1766년)은 인류문명을 진일보를 위한 기폭제라 할 것이다. 개인과 국가의 관계 설정에 따라 범죄와 형벌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형벌의 기원부터 법률의 해석, 범죄의 구분, 형벌의 목적, 고문, 명예훼손, 사형, 자살, 파산, 사면에 이르기까지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익숙하고 현실에서도 논쟁이 되는 대목이 많다. 그래서 놀랍다. 26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이성의 힘, 아니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고민의 흔적은 시대와 무관하게 계속돼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공공의 이익, 인간애, 참된 종교를 열망하는 한 사람이 쓴, 죄 없는 여성들의 결백을 옹호하는 글에 따르면, 기독교 종교 재판에서 10만 명이 넘는 마녀가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이 합법적인 대학살에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희생된 이단자들을 더한다면 지구상에서 유럽은 판사, 경비대,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형집행자와 희생자로 꽉 찬 거대한 처형대처럼 보일 것이다. - 볼테르 해설, 221쪽
1761년 10월, 툴루즈의 평범한 상인 장 칼라스의 아들 마크 앙투안이 집에서 자살한 사건이 벌어진다. 가톨릭 신자들은 개신교 신자인 장 칼라스가 가톨릭으로 개종하려는 아들을 살해했다고 모함했다. 칼라스 가족이 모두 체포되어 신문을 받았고 자살이 심각한 범죄였던 당대의 법 때문에 가족들은 앙투안이 살해됐다고 진술했다. 결국 아버지 장 칼라스는 살인 혐의로 수레바퀴에 묶여 사지가 찢기는 참혹한 죽음을 맞는다. 종교의 이름으로 규정된 범죄와 형벌은 이루 헤아릴 수도 없다. 유럽의 역사는 잔인한 종교 전쟁의 역사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볼테르는 이 소식을 듣고 구명운동에 나서 재판정에서 앙투안은 도박 빚 때문에 자살했으며 장 칼라스는 반가톨릭 광신자가 아니라고 항변했다. 결국 1764년 프랑스 황제 루이 15세는 사형을 선고한 재판관을 파면하고 칼라스의 무죄를 선고했다.
베카리아의 이 책은 같은 해에 출간됐으니 볼테르의 슬픔과 분노가 길고 긴 해설에 자세히 나타나 있음은 물론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저질러진 만행들, 이를테면 마녀사냥 같은 구체적인 사건과 비이성적이고 무도한 처벌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볼테르는 베카리아의 주장에 힘을 싣는다. 볼테르의 해설은 이단과 신성모독 등 종교의 이름으로 규정되는 범죄와 형벌에 대한 비판과 정치와 사회 관련 형벌과 집행에 대해 베카리아의 논의를 보충하고 현상적 분석을 가한다. ‘이성은 정념의 노예’라 일갈했던 데이비드 흄은 인간의 지식과 이성의 한계를 지적하며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이 칸트의 관념론으로 정리되는 듯했으나 존재론과 인식론, 합리론과 경험론은 이후에도 숱한 철학적 난제를 남겼다. 베카리아는 법과 사회, 아니 국가와 개인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던진 철학자가 아니었을까 싶어진다. 단순히 역사와 전통에 따라 시대정신이 반영된 지금, 여기의 법이 존재하며 그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판단하는 사람들과 주권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느냐에 따라 정치와 경제 그리고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모습이 결정된다는 중요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는 여전히 헌법정신에 반영된 권력의 주체와 위임과정 그리고 대의 민주주의가 양산하는 문제해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