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브라운을 위한 청원과 시민불복종 -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정치평론집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서경주 옮김 / 지에이소프트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법치주의를 외치는 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때때로 입법기관의 기능을 무력화하거나 사법부의 판단에 저항하지 않는가. 오히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선을 넘지 않으며 스스로 한계를 만든다. 철저한 준법정신과 규정을 준수하는 태도가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법이 시민의 권리와 의무를 완벽하게 규정할 수 없고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도덕의 최소한으로서 법은 자본과 권력을 보호하거나 기득권의 이익에 복무하는 경우가 더 많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은 대다수 시민의 이익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우리는 침묵하고 외면하거나 분노하면서도 행동하지 않을까.

사백만 명의 노예는 독립전쟁을 통해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미국인에게 어떤 존재들이었을까. 숨 쉬는 공기처럼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지극히 당연하고 합리적인 제도가 아니었을까. 종교는 신의 이름을 팔아, 자본가들은 산업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정치가들은 상충하는 지역 이기주의에 편승하며 노예제도를 공고히 했던 시절은 불과 160여 년 전 일이다. 노예제도가 상식이던 시대에도 몰상식한 존 브라운이 있었다. 폭력적이고 과격한 방법이 아니면 야만의 시대를 끝낼 수 없다고 판단했던 숭고한 정신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으나 그 무모한 도전은 실패로 끝나지 않고 미국 남북전쟁(1861~1864)의 도화선이 되었다. 급진적 노예제도 폐지론자의 삶은 비현실적이다. 존 브라운은 아들을 포함해서 21명의 추종자들과 하퍼스 페리의 병기고를 급습한다. 병기고에서 탈취한 무기로 노예들을 무장시켜 노예제도를 존치하려는 남부에 대항하려는 시도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반란을 일으키려는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고 결국 1859년 12월 2일 처형됐으나 그가 보여준 용기와 노력은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헨리데이비드 소로는 1859년 10월 30일, 존 브라운을 위한 청원 연설을 통해 10년 전 「시민불복종」(1849)에서 보여준 인간의 존엄성, 시민들의 기본적인 권리와 정부의 역할, 사유하는 힘과 행동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존 브라운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반란의 과정에서 보여준 실천과 태도는 단순히 법을 위반한, 사회 질서를 파괴한 범법자로 규정할 수 없게 만든다. 군주제의 전통과 유교 문화가 관습적 태도로 전해지는 한국인의 관점으로 존 브라운을 바라보면 어떨까. 찬반 투표를 거칠 필요도 없고, 논쟁의 여지가 없을지도 모른다. 정부가 멕시코와의 전쟁 비용 충당을 목적으로 국민에게 인두세를 징수하자 세금납부를 거부하다 체포되어 투옥된 소로는 또 어떤 죄를 다스렸을까. 불순한 의도와 헌법 질서를 문란케 한 죄는 물론 선전선동을 일삼는 불순분자로 몰려 내란음모 내지 국보법 위반으로 중형을 선고받지 않았을까. 시절을 잘못 만났다면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수도 있다. 다행히 친척이 세금을 대답 후 풀려났지만, 소로는 스무 살에 하버드를 졸업하면서 5달러를 내야 졸업장을 준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졸업장을 거부했으니 될성부른 나무였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월든』(1854) 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소로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 정부의 부당한 명령에 저항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보여준 반항의 아이콘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속박을 거부하고 자유롭게 살아가야할 권리가 있으며 이러한 ‘천부적 권리로서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정부와 개인 역시 지배와 복종의 불평등 관계가 아니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소로의 핵심 사상이다. 원주민인 인디언을 정복하고 노예제도를 유지하는 정부에 대해 소로는 소비지상주의, 속물주의, 대중오락, 분별없는 기술의존에 반대했다. 월든 호숫가의 삶은 반문명적 생태주의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누구나 그런 삶을 꿈꾸지만 아무나 실천할 수 있는 삶이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스콧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 실화를 바탕으로 한 미드 ‘맨헌트유나바머’의 주인공 테어도르 카진스키의 『산업사회와 그 미래』 등은 여전히 또 다른 세상, 현실 밖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생각의 곁가지를 마련해준다.

독일 간첩 누명을 쓰고 투옥된 유대인 드레퓌스 대위가 무죄라고 주장하며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 공개선언문을 발표한(1898년) 시기보다 40여 년 앞서 소로는 존 브라운을 위한 청원 연설에 나선 것이다. 물론 이 책의 주인공은 소로가 아니라 존 브라운이다. 빅토르 위고는 이 소식을 듣고 1859년 12월 31일 《런던 뉴스》에 기고하면서 “존 브라운을 죽이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이다. 그로 인해 연방에 잠재되어 있던 균열이 드러날 것이고, 머지않아 대혼란(실제로 ‘남북전쟁’이 터졌다)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먼 훗날 말콤 X 는 “흑인 민권 운동에 같이 참여할 만한 백인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없다. 혹시 존 브라운이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몰라도.”라고 대답했다.

어느 시대나 현실을 앞서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좀 더 멀리 바라보며, 체제에 균열을 일으키고, 변화를 시도했던 그들의 생각과 행동 때문에 인류는 조금씩 나은 세상을 만들어왔다. 존 브라운이 시도한 반란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인상적이고 역사적 사건이었다. 오늘, 이 시대의 존 브라운은 누구인지, 혹시 내 생각과 행동이 존 브라운을 닮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려면 그 목적과 방향 그리고 결국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노랫소리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존 브라운의 숭고한 ‘태도’는 여전히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Glory, Glory, hallelujah

His soul goes marching on

John Brown’s body lies a moldering in the gr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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