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사회학적 읽기 - 우리는 왜 그 작품에 끌릴까
최샛별.김수정 지음 / 동녘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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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탄생은 우연이다. 우주적 필연이나 숙명 따위는 없다. 부모를 선택할 수도 없고, 원하는 자식을 낳을 수도 없다. 주어진 양육환경과 교육을 통한 사회화 과정을 거쳐 공동체에 적응한 성인으로 거듭날 뿐이다. 유전적 요소를 무시할 수도 없으며 부모의 문화자본과 상징자본을 수용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지금 현재 당신의 삶의 목표, 인생관이나 가치관, 문화적 취향까지 자유 의지에 의한 고민과 선택의 결과물이라고 하기 어렵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고야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를 선택한 사람의 지적이고 고급 취향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중간계층이 선호하는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문안하며, 하층 계급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두 자매》를 선택했다고 해서 부끄러할 필요도 없다. 인터넷에 떠도는 각종 심리테스트와 달리 예술적 상상력과 개인의 취향에는 사회 계급의 문화, 상징 자본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유디트’를 해석한 다양한 작품들을 살펴보는 일은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사회학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한다. 단순히 배경지식과 역사적 맥락, 즉 작품 외적 요소를 통해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할 이유는 없다. 지극히 사적인 영역인 개인의 미적 감각과 세계를 이해하는 맥락에 대한 구조적 이해가 작품 감상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허나, 그림 뿐 아니라 공연, 전시, 음악, 무용, 문학에 이르기까지 예술작품의 탄생부터 감상에 이르는 과정은 총체적이고 집합적인 형태를 이룬다. 이것이 예술과 사회를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충분한 이유가 아닐까.

세상은 인간 사회보다 더욱더 촘촘하고 세밀한 그물망으로 짜여 있다. 네트워크 시대의 사회는 온, 오프라인을 넘어 빈틈없고 복잡한 구조를 이룬다. 그러니 죽음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의 차이를 살피는 건 현대사회의 복잡성에 비하면 매우 단순한 감상법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1793)과 보드리의 〈샤틀로트 코르데>(1860)는 시대적 거리만큼 남녀 예술가의 ‘관점’의 차이가 분명하게 극명하게 드러난다. 사회적 사건에 대한 해석이 아니라 ‘마라’의 인물에 대한 평가, 죽음 자체가 가진 미학적 선정성을 독자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사회학의 시선으로 예술을 읽는다. 기본적인 틀은 「보완된 문화의 다이아몬드」다. 문화 다이아몬드cultural diamond는 미국의 문화사회학자 웬디 그리스올드Wendy Griswold 가 처음 고안하고, 빅토리아 알렉산더Victoria Alexander에 의해 보완됐다. 문학 비평의 기본 구조인 표현론, 반영론, 수용론, 절대론처럼 시대를 거듭하며 작품을 둘러싼 해석의 주체와 방법에 무게가 달라진다. 두 사회학자는 철저하게 선행 이론에 근거해서 예술을 바라보는 사회학적 시선을 정리하고 개별 작품에 적용하며 구체적인 방법을 보여준다.

하지만 대학교 교양과목으로 흥미진진한 이론과 지식수준, 문화 다이몬드의 틀에 대한 해석에 머물고 있어 마지막에 추가된 대한민국의 문화양상에 대한 분석은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소쉬르의 ‘랑그와 빠롤’, 레비스트로스의 ‘양자 대립 구조’, 즉 구조주의로 이해하는 ‘007 시리즈’를 설명하는 움베르토 에코 – 선과 악의 영원한 갈등 구조 등은 다양한 인문학적 개념과 예술작품을 환기하는 즐거움이 있다. 아도르노는 “우리를 늘 깨어 있게 하는 음악”인 불편하고 기괴한 무조음악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 친숙한 멜로디와 화음이 아름다운 스트라빈스키의 〈불새〉를 들어보자.

책을 입체적으로 읽는 방법은 다양하겠으나 저자가 소개하는 그림과 음악을 직접 감상하며 개별 독자가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현대인의 예술 감상 태도다. 아도르노의 평가와 무관하게, 구조주의와 같은 이론적 토대를 이해하지 못해도 좋다. 우선 각자의 문화자본의 총량, 상징자본의 크기가 경제 자본과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 발생하는 문제는 심각하다. 삶의 목적과 방향과 태도를 포함한 한 인간의 성숙도는 단기간에 길러지기 어렵고 경제 자본으로 일시에 거머쥘 수 있는 물적 토대와 조금 다른 양상이다. 각자의 삶에 가중치, 무게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가 바뀌고 취향이나 교양이 달라진다. 애들 손잡고 억지로 호퍼 전시장에 달려간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지만 트로트만 듣는 귀를 가진 채 성인이 되는 환경 또한 권할 만한 일은 아니다. 사회학의 관점으로 예술을 읽는다는 건 단순히 ‘안다’ 혹은 ‘보았다’와 ‘들었다’를 가로질러 인류의 역사와 전통,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이해와 공감 그리고 현재와 미래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늘 그러하듯 조각을 모으는 일도 중요하지만 전체를 조망하며 구조와 시스템을 파악하는 거시적 안목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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