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대학교 교양과목으로 흥미진진한 이론과 지식수준, 문화 다이몬드의 틀에 대한 해석에 머물고 있어 마지막에 추가된 대한민국의 문화양상에 대한 분석은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소쉬르의 ‘랑그와 빠롤’, 레비스트로스의 ‘양자 대립 구조’, 즉 구조주의로 이해하는 ‘007 시리즈’를 설명하는 움베르토 에코 – 선과 악의 영원한 갈등 구조 등은 다양한 인문학적 개념과 예술작품을 환기하는 즐거움이 있다. 아도르노는 “우리를 늘 깨어 있게 하는 음악”인 불편하고 기괴한 무조음악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 친숙한 멜로디와 화음이 아름다운 스트라빈스키의 〈불새〉를 들어보자.
책을 입체적으로 읽는 방법은 다양하겠으나 저자가 소개하는 그림과 음악을 직접 감상하며 개별 독자가 주체적으로 해석하는 방법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현대인의 예술 감상 태도다. 아도르노의 평가와 무관하게, 구조주의와 같은 이론적 토대를 이해하지 못해도 좋다. 우선 각자의 문화자본의 총량, 상징자본의 크기가 경제 자본과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 발생하는 문제는 심각하다. 삶의 목적과 방향과 태도를 포함한 한 인간의 성숙도는 단기간에 길러지기 어렵고 경제 자본으로 일시에 거머쥘 수 있는 물적 토대와 조금 다른 양상이다. 각자의 삶에 가중치, 무게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가 바뀌고 취향이나 교양이 달라진다. 애들 손잡고 억지로 호퍼 전시장에 달려간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지만 트로트만 듣는 귀를 가진 채 성인이 되는 환경 또한 권할 만한 일은 아니다. 사회학의 관점으로 예술을 읽는다는 건 단순히 ‘안다’ 혹은 ‘보았다’와 ‘들었다’를 가로질러 인류의 역사와 전통,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이해와 공감 그리고 현재와 미래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늘 그러하듯 조각을 모으는 일도 중요하지만 전체를 조망하며 구조와 시스템을 파악하는 거시적 안목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