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철학적 기획’이라는 부제가 붙은 임마누엘 칸트의 『영구 평화론』에 영구는 없다. 현실적으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듯, 평화는 멀고 전쟁은 가깝다. 칸트가 말하는 인류의 영구 평화는 이상적 소망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갈등과 투쟁의 역사가 인류 문명을 이룩하는 데 토대가 되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앞에서 잠시 호흡을 멈춘다. 과연 법과 질서를 준수하는 세계 시민 사회의 평화는 가능할까.
홉스는 자연 상태를 전쟁의 상태로 보았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상태.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도 마찬가지 논리가 성립한다. 국제법이 없는 자연 상태의 세계질서는 상상보다 동물적일 수 있다.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현실은 말할 것도 없고 역사가 이를 충분하고 남을 만큼 증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리적, 철학적 접근을 시도하며 갈등과 전쟁이 아닌 ‘평화’를 위한 칸트의 고민은 높이 살 만하다.
칸트가 말하는 공화정의 세 가지 원리는 법의 지배, 삼권분립, 대의 제도다. 이 조건이 갖춰진 국가가 국가 간 영구 평화를 위한 첫 번째 확정 조건이다. 그렇다면 공화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국가와 공화정을 채택한 국가 간의 전쟁은 피할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또한 영구 평화를 위해 칸트는 국내법, 국제법 그리고 세계 시민법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영원한 평화의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논증하려는 칸트의 노력은 현실 적용 문제에 설득력을 잃는다. 이론적 논문에 불과하다고 치부하기엔 현실이 참혹하고 영구 평화가 가능하다는 주장에 동의하기엔 지나치게 이상적이다. 역사는 인류가 야만 상태에서 국가로, 그리고 세계주의로 점차 진보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과정은 치열한 투쟁과 야만의 시간을 거쳤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정치와 도덕의 관계에서 (1) 행하라. 그리고 변명하라. (2) 만일 당신이 그것을 했거든, 부정하라. (3) 분할하라. 그리고 지배하라. 이 세 가지 원칙은 정치가들이 사용하는 궤변들이다. 권력을 거머쥔 자들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술책이다. 이런 일반적 처세술은 정치에서 도덕이 부재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전혀 도덕적이지 않은 정치인에게 가장 숭고한 가치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개인과 정파적 이익, 기득권 보호를 위한 노력이 뻔히 보여도 눈감고 표를 던지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보다 우선 그러한 현실을 거부하는 태도와 고장 비판적 감시 기능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게 아닐까.
칸트의 영구 평화론은 ‘예비 조항’ 여섯 가지와 ‘확정 조항’ 세 가지를 제시한다. 예비 조항은 “~~를 해서는 안 된다”라는 형식이고, 확정 조항은 “~~를 하여야 한다”라는 형식이다. 금기와 당위는 하나의 거대한 꿈이다. 먼 훗날 제1차 세계대전 후 국제연맹,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연합과 유럽연합의 결성으로 구현되는 칸트의 원대한 이상은 아직 미완성이지만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한 철학적 기초를 정립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칸트가 주장하는 실천 철학의 형식적 원리는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게 할 수 있도록 행위 하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정치는 도덕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것이 영원한 세계 평화의 근본적 토대다. 또한 칸트는 “영원한 평화를 보증해 주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예술가인 자연”이라고 말한다. 이때의 자연은 현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이념으로서의 자연이다. 역자 이한구는 기계론적 자연이 아니라 반성적 판단력의 대상이 되는 유기적 전체로서의 자연이라고 분석한다. 이기적, 감정적 동물인 인간에게 기대가 너무 큰 칸트의 잘못은 아니다. 우리는 어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한 적이 없다. 전쟁과 평화도 마찬가지다. 영구 평화가 아니라 일시적 평화라도 좋다. 평화를 위한 노력 혹은 평화를 향한 발걸음이 중요하다. 변명하고 부정하고 지배하려는 자들의 말과 행동을 걸러내고 일상에서 평화를 위한 노력이 무엇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국가 간의 평화는 국민들의 생각과 태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개인보다 더 위험해 보이는 성찰 없는 정치인과 정부는 전쟁보다 위험하다. 일상을 무너뜨리고 꿈과 희망을 빼앗는 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길고 긴 법 고전 산책이 끝났다. 마무리가 칸트의 영구 평화론이라는 건 아이러니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놓칠 수 없는 희망 고문 같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