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아프리카 - 대자연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우정의 서사시
조세프 케셀 지음, 유정애 옮김 / 서교출판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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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지만 몇 마디 말로 설명하거나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없다. 사회적 지위, 재산, 명예를 얻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고 가족들과의 작은 행복, 사회의 변화, 예술적 성취, 타인에 대한 봉사, 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서도 항상 주위를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힘겨워하기도 한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고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가치 사이에서 망설인다. 사람은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닐까?

  나는 때때로 투명한 유리 큐브 안에 갇힌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돌아본다. 소통의 힘겨움과 언어의 한계 속에서 절망하기도 하고 현실과 이상의 거리만큼이나 허망한 생활들이 고통스럽기도 하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며 즐겁고 행복한 인생을 꿈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사람들은 좀체로 그것을 얻는 방법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방법으로 인생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똑같은 욕망과 경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모든 인간의 욕망은 동일한 것일까? 눈앞에 보이는 현실과 거리가 먼 곳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 Fernweh! 전혜린은 일 년에 몇 달 아니 몇 주쯤 일상에서 벗어나 집시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동경과 기대가 없고 두근거리지 않는 삶을 견디지 못해 자살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의 삶은 어떤 형태로든 상황과 조건에 맞게 적응하게 되어 있다. 어떤 곳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 것인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 미래의 불안한 신비가 찬란하다는 전혜린의 말이 새삼스러운 것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만큼 새로움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는 말일 것이다.

  조금 더 시야를 넓혀보자.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 너머에는 늘 대자연이 우리를 품고 있다. 조금 높은 곳에서 내가 사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상상을 해본다. 다람쥐처럼 돌아가는 일상과 반복되는 생활들 -  그것이 전부다. 자연은 인간의 모든 희노애락애오욕을 품고 묵묵히 바라본다. 오만한 인간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면서.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을 품고 있는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산자락에서 한 소녀가 그들과 교감하고 있다. 조세프 케셀의 『소울 아프리카』는 대자연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우정의 서사시이다. 이 소설은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특별함을 갖고 있다. 문명을 이루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어떠한지 묻고 있는 듯하다. 작가는 색다른 소설의 소재로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뿐 아니라 깊은 감동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킬리만자로 자락에 위치한 ‘암보셀리 국립공원’에서 관리인으로 일하는 아버지와 공원에서 살고 있는 소녀 파트리샤의 이야기다. 우연히 여행 중에 공원에 머물게 된 서술자의 눈에 비친 소녀는 동물들을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영혼의 교감을 나눈다. 마사이족 등 원주민들과 소녀 그리고 다시 문명세계로 소녀를 보내고 싶어하는 엄마가 등장한다. 초원의 왕이 된 사자를 매일 만나는 소녀와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는 문명 사회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전혀 다른 고민과 갈등이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단순히 자연을 배경으로 한 감동 휴먼 드라마가 아니라 잃어버린 인간들의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1950년대의 생생한 자연 풍경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벌써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신비스러운 자연의 모습과 화자의 독특한 목소리가 잔잔한 울림을 전해주기 때문에 독특한 소설로 기억될 것 같다.

  휴가나 여행의 장소로 떠올리는 자연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호흡하는 자연일 수는 없을까. 단 한 번도 땅을 밟지 못하고 매일매일 생활하는 나의 하루를 떠올렸다. 베란다에서 내려다 보이는 초등학교 운동장에도 이제 인조 잔디와 우레탄 트랙이 깔렸다.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고 깨끗하게 정돈된 운동장만큼 흙냄새는 사라졌다.

  지속가능한 인간의 삶은 자연에 대한 경외감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대책 없이 이대로 살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소설이 주는 아름다움과 무관한 현실적인 고민이다. 여유있는 삶, 조화로운 삶이 우리에게 주어진 미래 사회의 희망은 아닐까? 청소년들에게 권할 만한 감동적인 소설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보고서로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09112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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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함정 - 무엇이 우리의 판단을 지배하는가
자카리 쇼어 지음, 임옥희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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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아이디는 ‘cognize’이다. 인지하다, 인식하다는 의미를 가진 영어단어 ‘cognize’는 온라인에서 나의 지향점과 욕망을 드러낸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거나 또 다른 자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반영하는 사람들의 아이디는 첫인상을 좌우한다. 아이디를 통해 우리는 직업, 나이, 성격, 취미, 꿈 등을 유추할 수 있다. 나의 아이디는 어떤 대상, 즉 사물이나 사건, 상황을 인식한다는 뜻인데 단순하게 안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다양한 관점,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판단,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유는 그 자체로도 어렵지만 실천으로 이어지기는 더욱 어렵다.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분명한 지향점이 있다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실제 상황, 즉 일상생활이나 업무, 대인관계 등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특별한 통찰력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오히려 독특한 사고 방식, 남들과 다른 인식체계로 인해 갈등을 유발하거나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미덕을 해치게 된다. 자기 검열이 심해지거나 두 번, 세 번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조용히 외면하기도 하고 나서지 않고 중립을 지키며,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려는 타협을 시도하게 된다면 세상을 잘 살아간다고 볼 수 있을까?

  더 위험한 것은 잘못된 생각의 함정에 빠져 신념이 되는 경우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여론 조사와 여야 합의에 의해 법제화된 세종시도 뜯어고칠 수 있으며 22조 5천억을 쏟아부어도 죽지도 않은 4대강을 살리겠다는 신념은 정말 무섭다. 우리는 누구나 인지함정에 빠질 수 있다. 정태적인 집착으로 실책을 이끄는 사고의 틀은 이와 같이 완고하고 타협없는 밀어붙이기 정책을 양산한다. 독재자의 정보독점이나 정보회피는 개인이 아니라 한 국가의 운명을 뒤바꿀 수도 있기 때문에 위험스럽고 무서운 일이다.

  자카리 쇼어의 <생각의 함정 BLUNDER:Why Smart People Make Bad Decisions>은 똑똑한 사람들이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리는 이유와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선택’의 순간에 우리의 마음 속에는 보이지 않는 결정 기준이 충돌한다. 저자 자카리 쇼어는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이 아니라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다. 다른 심리학 책과 구별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역사로 남아 있는 사건들의 판단 기저에는 무엇이 숨어 있을까? 최근 세계적인 분쟁 지역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통해 사람들은 어떤 말을 했고 어떤 일들이 벌어졌으며 그 결과가 어떠한지 찬찬히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실수mistake는 부정확한 데이터로 인해 발생한 단순한 오류지만 실책blunder은 문제 해결을 시도하기 전보다 시도한 후에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실수가 아니라 실책이 바로 이 책의 주제다. 살다보면 의도하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배우고 성장한다. 하지만 실수와 실책은 조금 성격이 다르다.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올바른 판단이라고 믿었지만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그런 경우에도 실책을 인정하지 않으면 대책이 없다. 우리는 모두 실수도 할 수 있고 실책도 할 수 있지만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각기 다르다. 생각의 함정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실책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된다.

  저자는 선택과 판단의 순간에 범하기 쉬운 인지함정 일곱가지를 제시한다. 노출불안, 원인혼란, 평면적인 관점, 만병통치주의, 정보집착증, 거울이미지가 그것이다. 인지 함정은 토마스 키다의 <생각의 오류>에서 설명됐던 판단과 선택의 착오와 유사하다. 하지만 단순한 착각이나 실수와 다른 신중하고 정확한 판단이라고 생각하는 함정에 빠지면 자신의 믿음으로 변한다. 결과는 참혹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실수와 실책은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인지함정은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지만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원인은 감정이입과 상상력의 결핍 두 가지다. 상상력은 우리가 세계를 다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나와 타인의 삶이 어떻게 서로 다를 수 있는지를 고려할 수 있게 하고, 자신과 타인의 행동이나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배려할 수 있게 해준다. 상상력이 마음에 깃드는 것이라면 감정이입은 가슴에 깃드는 것이다. 감정이입은 타인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다른 사람의 감정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내면 깊은 곳의 반응을 경험하는 것이다. - P. 103

  또한 저자는 인지함정의 원인을 감정이입과 상상력의 결핍으로 요약하고 있다. 물론 이 두 가지를 갖춘다고 해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감정이입과 상상력이 결합되어 열린 마음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통찰력을 키우는 것은 어떤 방법에 의해 가능할까? 폭넓은 독서와 다양한 문화적 경험,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 정확한 상황 판단 능력 등이 요구되지만 이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더구나 정책 결정 과정이나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경우 단순하게 전문적 지식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전문가의 견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견해는 대부분의 경우 지식의 바탕으로 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판단이 아닐 수 있다는 경고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이 책은 다양한 분야에서 벌어지는 실책들을 점검하고 또한 그 누구나 범할 수 있는 실책을 극복해 낸 역사적 사건들을 사례로 삼고 있다.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생각의 함정을 다루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언론법 개정, 4대강 사업, 세종시 추진, 이라크 재파병 문제의 결정과정이나 찬반의 논리들을 따져보자. 과연 인지함정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너도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자주 경험하게 된다.

상황에서 한걸음 물러나서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곰곰이 성찰해보라. 우리들은 모두 쉽고 명쾌한 해답을 원한다. 이것이 인지함정으로 유도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이를 인식하고 있다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이해하는 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다. - P. 301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다. 나의 기준과 생각을 정해놓고 틀에 맞추는 것은 아닌지, 항상 쉽고 명쾌한 답을 원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본다. 인지함정에 빠지지 않고 유연한 사고를 통해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우리들의 ‘생각’에 있다. 산을 옮기는 것보다 어렵다는 생각을 바꿔보자. 아니 최소한 인지함정에 빠지지는 말자.


091118-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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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함정 - 무엇이 우리의 판단을 지배하는가
자카리 쇼어 지음, 임옥희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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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불안은 신중한 토론, 현명한 충고, 민주적 수단,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한 가지 요소로 인해 억제되었다. 바로 ‘상상력’이다. 한 주제, 한 범주 안에 속한 대상들 간의 다양한 차이를 식별해낼 수 있는 상상력, 이것이 바로 가장 중요한 마지막 요소였다. - P. 33

노출불안의 희생자는 오류를 인정하고 시정하는 것이 나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힘의 표시라는 점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현실 세계에서는 우를 범한 경우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사람이 정직하고 책임감 있고 현명한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다. - P. 41

인과관계의 혼란, 즉 원인혼란이란 복잡한 사건의 원인을 오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인혼란은 종종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과도한 단순화로 나가게 하는 인지함정으로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우리는 종종 사건들 사이의 인과성과 연관관계를 혼동한다. 특정한 경과를 산출하는 사건의 연결고리를 착각한다는 말이다. - P. 48

원인혼란의 인지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닫힌 마음은 지성의 한계를 보여주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 P. 88

인지함정은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지만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원인은 감정이입과 상상력의 결핍 두 가지다. 상상력은 우리가 세계를 다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나와 타인의 삶이 어떻게 서로 다를 수 있는지를 고려할 수 있게 하고, 자신과 타인의 행동이나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배려할 수 있게 해준다. 상상력이 마음에 깃드는 것이라면 감정이입은 가슴에 깃드는 것이다. 감정이입은 타인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다른 사람의 감정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내면 깊은 곳의 반응을 경험하는 것이다. - P. 103

평면적인 관점의 함정은 상상력에 제한을 가하고 감정이입 능력을 박탈하여 편협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문제를 흑백논리적인 사고방식으로 접근하도록 몰아간다. 우리는 세계를 동지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으로 단순화한다. 그리고 자신의 관점에 동조하지 않거나 혹은 상반된 행동을 보여주는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면 그들을 분류하는 데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 P. 109

두 가지 정보집착증(정보독점과 정보회피)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강박증을 드러낸다. 양자 사이의 공통점 중 한 가지는 타인의 지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보독점자들은 정보를 혼자 움켜쥐고 있는 것이 자신의 입장을 방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독점하고 있는 정보가 결과적으로 자신이 의도하는 목적을 침해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 P. 209

거울 이미지는 상대가 자신과 같이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라고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가정하게 되는 인지함정의 일종으로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지각하는 방식과 남들이 그것을 지각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기란 본능적으로 어렵다. - P. 217

신이 있어 우리에게 선물을 준다면 오죽 좋으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보는 것처럼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 재능을 부여해준다면!
그랬더라면 우리가 저지르는 무수한 실책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 로버트 번스

정태적 집착은 변화하는 세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방해하는 인지함정이다. 이는 대상이나 현상에 폭넓은 시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우리의 상상력이 작동하지 않게 만든다. 정태적 집착에 빠진 사람은 세계가 근본적으로 유동적이라는 점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주변의 변화에 진지하게 접근하고 적응하는 대신 변화에 저항한다. - P. 244

상황에서 한걸음 물러나서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곰곰이 성찰해보라. 우리들은 모두 쉽고 명쾌한 해답을 원한다. 이것이 인지함정으로 유도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이를 인식하고 있다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이해하는 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다. - P.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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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본 다이어리 2015
새시 로이드 지음, 고정아 옮김 / 살림Friends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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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순간도 숨을 쉬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무도 공기의 고마움을 모른다.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이면서도 값을 지불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우리는 살아있는 모든 순간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 어렵다. 그것은 끝없는 인간의 욕망 때문이다. 물과 공기, 비와 바람, 태양과 대지, 바다와 나무 등 자연 앞에 겸손할 줄 모르는 인간은 언제까지 그 오만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모르겠다.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 채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언제까지나 지구가 인간을 위해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문명을 이루고 살아가는 인간들은 매일매일 자연을 오염시킨다. 이반 일리히는 이미 오래 전에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고 설파했고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은 <조화로운 삶>을 실천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그들이 말하는 생활을 꿈꾸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은 인간의 삶을 보다 편리하게 바꿔 놓았지만 그만큼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1997년 12월 일본 교토에서 개최된 기후변화협약에서 채택된 지구 온난화 규제 및 방지를 위한 국제협약인 ‘교토의정서’는 구체적으로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규정했다. 지구 오존층에 대한 경고와 위협은 끊임없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지만 우리는 먼 나라 이야기로 치부해 버린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문학적 상상력은 때때로 우리의 삶을 아주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미래를 보여준다. 공상 과학 소설의 전통을 잇고 있는 듯하고 환경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환경 소설이기도 한 새시 로이드의 <카본 다이어리 2015>는 부정하고 싶은 우리의 미래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로라 브라운이라는 열여섯 살 여학생이 2015년 한 해 동안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일기형식의 소설이다.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매일매일 벌어지는 일상적인 일들을 기록한 10대 소녀의 일기는 ‘안네의 일기’만큼 사실적이다.

  영국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탄소 사용 규제 프로그램은 끔찍한 지구의 대재앙을 예고한다. 1인당 탄소 배급제가 실시되면서 영국은 원시 사회로 돌아간다. 비행기를 타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자동차, TV, MP3 사용도 철저하게 개인 탄소 카드를 통해 규제를 받는다. 마치 공산주의 사회를 연상시키는 하루하루가 실제 상황으로 생생하게 펼쳐진다. 3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게 아니라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하루하루의 일상을 적어나가고 있기 때문에 현실감은 배가된다.

  폭풍과 해일까지 겹쳐 홍수가 발생하며 런던 전역이 물에 잠기고 콜레가 발생하는 등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이 소설의 말미를 장식한다. 관광학과 교수로 일하는 주인공의 아버지는 예상대로 금방 실직한다. 평화로운 중산층 가정의 일상이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주인공의 친구들과 학교 록밴드는 이 소설에서의 또 다른 재미를 준다.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언니를 통해 각각의 삶에서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고 결국 가족에 대한 사랑과 행복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이 사소하지만 위대한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서 우리는 미래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일까.

  록 밴드 음악을 통해 사회 비판 의식을 담아내지만 탄소 배급제를 지겨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평범한 10대 소녀의 의식을 반영한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환경의 중요성을 공감하고 일상생활에서 조금씩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실천의 괴로움 앞에서는 금방 나약해진다. 그것을 개인들이 혹은 국가와 세계적 차원에서 감당해내지 못한다면 이 소설은 먼 미래에 벌어질 수도 있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될 지도 모른다. 끔찍하지만 이런 상상은 바로 지금 우리들의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암울한 미래 전망의 디스토피아 소설로 치부하기에는 우리들의 현실이 심각하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015년에 정점에 이른다는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의 2007년 보고서는 지구의 온도 상승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다. 중요한 것은 ‘희망’이다. 고통스런 현실을 피할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 소설을 무겁게 쓰지 않았다. 청소년 소설답게 개성적인 주인공을 내세워 10대 특유의 ‘짜증’과 일상들이 뒤섞여 발랄하면서도 역동적으로 그려진다.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가 아니라 주인공의 사랑과 질투, 실연 등을 일기의 한 축으로 삼고 짜증나는 가족들을 한 축으로 삼아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이 소설은 독특한 형식과 내용을 담고 있는 청소년 소설로만 볼 수는 없다. 우리 시대의 ‘불편한 진실’을 통해 환경에 대해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고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일상생활에서 생각 없이 낭비하는 물과 전기, 게으른 몸을 위한 자동차와 냉난방 설비 등 다시 한 번 돌아볼 것들이 너무 많다. 너무 편리하고 게으르기만 나는 내일부터 실천에 옮길 수 있을까 모르겠다.


091115-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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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재구성 - 제28회 신동엽창작상 수상작 창비시선 306
안현미 지음 / 창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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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들

침묵에 대하여 묻는 아이에게 가장 아름다운 대답은 침묵이다
시간에 대하여도 그렇다

태백산으로 말라죽은 나무들을 보러 갔던 여름이 있었지요

그때 앞서 걷던 당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당신만큼 나이가 들면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하였습니다

이제 내가 그 나이만큼 되어 시간은 내게 당신 같은 사람이 되었냐고 묻고 있습니다.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어 말라죽은 나무 옆에서 말라죽어가는 나무를 쳐다보기만 합니다

그러는 사이 바람은 안개를 부려놓았고 열일곱 걸음을 걸어가도 당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의 시간을 따라갔으나 나의 시간은 그곳에 당도하지 못하였습니다

당신은, 당신은 수수께끼 당신에 대해여 묻는 내게 가장 아름다운 대답인 당신을 침묵과 함께 놓아두고 죽은 시간

열일곱 걸음을 더 걸어와 다시 말라죽은 나무들을 보러 태백에 왔습니다 한때 간곡하게 나이기를 바랐던 사랑은 인간의 일이었지만 그 사랑이 죽어서도 나무인 것은 시간들의 일이었습니다

  엄숙함과 경건함을 느낀다. 세상을 얼마나 살아왔느냐에 따라 시간에 대한 생각도 달라진다. 시간 앞에서 겸손함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제 나이를 조금 먹었다는 증거일까. 시를 읽으면서도 지나온 세월 살아갈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하루, 한달 혹은 일년이라는 시간은 짧고도 멀기만 하다. 분절되지 않는 시간을 인간들을 인위적으로 구분해 놓고 계획하고 측정한다. 사람이 산다는 일이 마치 시간에 배를 띄워 물 흐르듯 그렇게 흘러가는 것은 아닌가 싶어진다. 안현미의 <이별의 재구성>은 모든 것들과의 만남과 이별이 유리벽처럼 차고 단단한 의식 속에 고정되어 있는 듯하다.

  사물과 사건에 대한 시선과 인식 태도가 개성적이다. 지극히 주관적 정서에 매몰되기 쉬운 시와 독자들이 소통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통로를 열어 두어야 하는 것은 시인의 몫이다. 독자의 바람일 수 있겠지만 불가해한 언어의 세계 속에 침잠하거나 안개같은 모호함만으로 견고한 집을 짓는 시인의 시가 이제는 더 이상 읽히지 않는다.

  안현미의 시는 그 중간을 서성인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것들에서 시작해서 추상적인 개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시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나는 안현미의 시를 읽으면서 가볍고 상쾌한 우울함을 느꼈다. 무색무취의 물맛 같기도 하고 담백한 가을 단풍의 냄새가 나기도 하는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감상일지도 모르겠지만.

안개를 찍으러

양수리로 갔다
사냥을 준비하는 어둠이 낮게 깔리고 있었다
밤새, 몸을 숨기고
무한대로의 거리조절을 마친 조리개
새벽은 포그필터처럼 밝아오고
오염된 강물로 그물을 던지는 사람들
그물 가득 안개를 낚고 있다
       f:8s:1/15
       찰칵찰칵
안개를 포획하는 카메라
단 한 컷의 사진을 위해
수없이 소비되는 필름처럼
       착각착각
자본의 욕망을 위해
수없이 소비되는 나를 본다


  기형도의 ‘안개’를 떠올렸고,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생각났다. 자연이 주는 관습적 이미지를 떨쳐버리기 어렵다. 안개가 가진 기본적인 속성과 양수리의 두물머리 풍경이 겹쳐진다. 카메라의 셔터소리를 ‘찰칵’이 아니라 ‘착각’으로 들을 수 있는 자본의 욕망! 수없이 소비되는 자신을 보아야 현실은 견고한 시멘트 벽이다. 그래도 어깨로 밀어보고 손으로 눌러보고 두발을 굳게 딛고 버티지 않는다면 사방은 깜깜한 절벽이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

  보이지 않는 것을 찍으려는 헛된 카메라의 욕망에서 시인은 자신의 욕망을 확인한다. 생경하고 엉뚱한 것들이 조합되지만 의식의 흐름은 굳이 논리를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안개와 카메라와 자본의 욕망은 그렇게 한 편의 시 안에서 소비된다.

모계

당신이 내 절망의 이유이던 때가 있었다
당신이 내 희망의 전부이던 때가 있었다
그 이전 이전엔 당신이 내 아무것도 아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 이전 이전에도 당신은 당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이후에도 당신은 당신일 것이다

시시해서 미치겠는 사랑!

멀리에선 수련꽃 피는 여름이 오고
덩굴식물의 눈[目]을 들여다본다
네 눈이 네 길을 가게 한다

소문도 없이 낳아 기른
아이가 묻는다
“내가 왜 엄마를 아빠라고 불렀지?”

  태아의 잠을 그리워하는 인간의 본능. 죽음의 그림자를 확인하는 과정이 삶의 희망인 이유. 사랑과 절망 사이에는 늘 위태로운 사랑이 놓여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저 당신은 당신일 것이다. 나는 나일 것이고.

  결국 모든 사람은 각자의 눈으로 각자의 길을 가게 한다. 그것을 우리는 숙명이라 부른다. 조금 느린 호흡과 편안한 마음으로 찰나를 생각해보자. 순간, 문득, 그 혹은 그녀가 떠오르거나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그려진다. 내가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확인하는 것은 결국 당신과 나를 확인하는 일이다. 네 길이 아닌 내 길을 걸어야겠다는 시시한 사랑법!


09111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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