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아프리카 - 대자연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우정의 서사시
조세프 케셀 지음, 유정애 옮김 / 서교출판사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지만 몇 마디 말로 설명하거나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없다. 사회적 지위, 재산, 명예를 얻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고 가족들과의 작은 행복, 사회의 변화, 예술적 성취, 타인에 대한 봉사, 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서도 항상 주위를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며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힘겨워하기도 한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고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가치 사이에서 망설인다. 사람은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닐까?

  나는 때때로 투명한 유리 큐브 안에 갇힌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사람과의 관계를 돌아본다. 소통의 힘겨움과 언어의 한계 속에서 절망하기도 하고 현실과 이상의 거리만큼이나 허망한 생활들이 고통스럽기도 하다.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며 즐겁고 행복한 인생을 꿈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사람들은 좀체로 그것을 얻는 방법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방법으로 인생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똑같은 욕망과 경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미시적인 관점에서 모든 인간의 욕망은 동일한 것일까? 눈앞에 보이는 현실과 거리가 먼 곳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 - Fernweh! 전혜린은 일 년에 몇 달 아니 몇 주쯤 일상에서 벗어나 집시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동경과 기대가 없고 두근거리지 않는 삶을 견디지 못해 자살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의 삶은 어떤 형태로든 상황과 조건에 맞게 적응하게 되어 있다. 어떤 곳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 것인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 아닐 수도 있다. 미래의 불안한 신비가 찬란하다는 전혜린의 말이 새삼스러운 것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만큼 새로움에 대한 기대가 더 크다는 말일 것이다.

  조금 더 시야를 넓혀보자.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 너머에는 늘 대자연이 우리를 품고 있다. 조금 높은 곳에서 내가 사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상상을 해본다. 다람쥐처럼 돌아가는 일상과 반복되는 생활들 -  그것이 전부다. 자연은 인간의 모든 희노애락애오욕을 품고 묵묵히 바라본다. 오만한 인간에게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면서.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을 품고 있는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산자락에서 한 소녀가 그들과 교감하고 있다. 조세프 케셀의 『소울 아프리카』는 대자연에서 펼쳐지는 사랑과 우정의 서사시이다. 이 소설은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특별함을 갖고 있다. 문명을 이루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어떠한지 묻고 있는 듯하다. 작가는 색다른 소설의 소재로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뿐 아니라 깊은 감동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킬리만자로 자락에 위치한 ‘암보셀리 국립공원’에서 관리인으로 일하는 아버지와 공원에서 살고 있는 소녀 파트리샤의 이야기다. 우연히 여행 중에 공원에 머물게 된 서술자의 눈에 비친 소녀는 동물들을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영혼의 교감을 나눈다. 마사이족 등 원주민들과 소녀 그리고 다시 문명세계로 소녀를 보내고 싶어하는 엄마가 등장한다. 초원의 왕이 된 사자를 매일 만나는 소녀와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는 문명 사회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전혀 다른 고민과 갈등이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단순히 자연을 배경으로 한 감동 휴먼 드라마가 아니라 잃어버린 인간들의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1950년대의 생생한 자연 풍경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벌써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신비스러운 자연의 모습과 화자의 독특한 목소리가 잔잔한 울림을 전해주기 때문에 독특한 소설로 기억될 것 같다.

  휴가나 여행의 장소로 떠올리는 자연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호흡하는 자연일 수는 없을까. 단 한 번도 땅을 밟지 못하고 매일매일 생활하는 나의 하루를 떠올렸다. 베란다에서 내려다 보이는 초등학교 운동장에도 이제 인조 잔디와 우레탄 트랙이 깔렸다.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고 깨끗하게 정돈된 운동장만큼 흙냄새는 사라졌다.

  지속가능한 인간의 삶은 자연에 대한 경외감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대책 없이 이대로 살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소설이 주는 아름다움과 무관한 현실적인 고민이다. 여유있는 삶, 조화로운 삶이 우리에게 주어진 미래 사회의 희망은 아닐까? 청소년들에게 권할 만한 감동적인 소설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보고서로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09112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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