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함정 - 무엇이 우리의 판단을 지배하는가
자카리 쇼어 지음, 임옥희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아이디는 ‘cognize’이다. 인지하다, 인식하다는 의미를 가진 영어단어 ‘cognize’는 온라인에서 나의 지향점과 욕망을 드러낸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거나 또 다른 자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반영하는 사람들의 아이디는 첫인상을 좌우한다. 아이디를 통해 우리는 직업, 나이, 성격, 취미, 꿈 등을 유추할 수 있다. 나의 아이디는 어떤 대상, 즉 사물이나 사건, 상황을 인식한다는 뜻인데 단순하게 안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 다양한 관점, 비판적이고 객관적인 판단,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유는 그 자체로도 어렵지만 실천으로 이어지기는 더욱 어렵다.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분명한 지향점이 있다는 것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실제 상황, 즉 일상생활이나 업무, 대인관계 등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특별한 통찰력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오히려 독특한 사고 방식, 남들과 다른 인식체계로 인해 갈등을 유발하거나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미덕을 해치게 된다. 자기 검열이 심해지거나 두 번, 세 번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조용히 외면하기도 하고 나서지 않고 중립을 지키며,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려는 타협을 시도하게 된다면 세상을 잘 살아간다고 볼 수 있을까?

  더 위험한 것은 잘못된 생각의 함정에 빠져 신념이 되는 경우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여론 조사와 여야 합의에 의해 법제화된 세종시도 뜯어고칠 수 있으며 22조 5천억을 쏟아부어도 죽지도 않은 4대강을 살리겠다는 신념은 정말 무섭다. 우리는 누구나 인지함정에 빠질 수 있다. 정태적인 집착으로 실책을 이끄는 사고의 틀은 이와 같이 완고하고 타협없는 밀어붙이기 정책을 양산한다. 독재자의 정보독점이나 정보회피는 개인이 아니라 한 국가의 운명을 뒤바꿀 수도 있기 때문에 위험스럽고 무서운 일이다.

  자카리 쇼어의 <생각의 함정 BLUNDER:Why Smart People Make Bad Decisions>은 똑똑한 사람들이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리는 이유와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선택’의 순간에 우리의 마음 속에는 보이지 않는 결정 기준이 충돌한다. 저자 자카리 쇼어는 정신분석학이나 심리학이 아니라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다. 다른 심리학 책과 구별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역사로 남아 있는 사건들의 판단 기저에는 무엇이 숨어 있을까? 최근 세계적인 분쟁 지역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통해 사람들은 어떤 말을 했고 어떤 일들이 벌어졌으며 그 결과가 어떠한지 찬찬히 살펴보고 있는 책이다.

  실수mistake는 부정확한 데이터로 인해 발생한 단순한 오류지만 실책blunder은 문제 해결을 시도하기 전보다 시도한 후에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실수가 아니라 실책이 바로 이 책의 주제다. 살다보면 의도하지 않은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배우고 성장한다. 하지만 실수와 실책은 조금 성격이 다르다.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올바른 판단이라고 믿었지만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그런 경우에도 실책을 인정하지 않으면 대책이 없다. 우리는 모두 실수도 할 수 있고 실책도 할 수 있지만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각기 다르다. 생각의 함정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실책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된다.

  저자는 선택과 판단의 순간에 범하기 쉬운 인지함정 일곱가지를 제시한다. 노출불안, 원인혼란, 평면적인 관점, 만병통치주의, 정보집착증, 거울이미지가 그것이다. 인지 함정은 토마스 키다의 <생각의 오류>에서 설명됐던 판단과 선택의 착오와 유사하다. 하지만 단순한 착각이나 실수와 다른 신중하고 정확한 판단이라고 생각하는 함정에 빠지면 자신의 믿음으로 변한다. 결과는 참혹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실수와 실책은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인지함정은 다양한 이유로 발생하지만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원인은 감정이입과 상상력의 결핍 두 가지다. 상상력은 우리가 세계를 다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해준다. 나와 타인의 삶이 어떻게 서로 다를 수 있는지를 고려할 수 있게 하고, 자신과 타인의 행동이나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배려할 수 있게 해준다. 상상력이 마음에 깃드는 것이라면 감정이입은 가슴에 깃드는 것이다. 감정이입은 타인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다른 사람의 감정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내면 깊은 곳의 반응을 경험하는 것이다. - P. 103

  또한 저자는 인지함정의 원인을 감정이입과 상상력의 결핍으로 요약하고 있다. 물론 이 두 가지를 갖춘다고 해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감정이입과 상상력이 결합되어 열린 마음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통찰력을 키우는 것은 어떤 방법에 의해 가능할까? 폭넓은 독서와 다양한 문화적 경험, 타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 정확한 상황 판단 능력 등이 요구되지만 이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더구나 정책 결정 과정이나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경우 단순하게 전문적 지식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전문가의 견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견해는 대부분의 경우 지식의 바탕으로 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판단이 아닐 수 있다는 경고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이 책은 다양한 분야에서 벌어지는 실책들을 점검하고 또한 그 누구나 범할 수 있는 실책을 극복해 낸 역사적 사건들을 사례로 삼고 있다.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생각의 함정을 다루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언론법 개정, 4대강 사업, 세종시 추진, 이라크 재파병 문제의 결정과정이나 찬반의 논리들을 따져보자. 과연 인지함정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너도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열린 마음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자주 경험하게 된다.

상황에서 한걸음 물러나서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곰곰이 성찰해보라. 우리들은 모두 쉽고 명쾌한 해답을 원한다. 이것이 인지함정으로 유도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이를 인식하고 있다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이해하는 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다. - P. 301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다. 나의 기준과 생각을 정해놓고 틀에 맞추는 것은 아닌지, 항상 쉽고 명쾌한 답을 원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본다. 인지함정에 빠지지 않고 유연한 사고를 통해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우리들의 ‘생각’에 있다. 산을 옮기는 것보다 어렵다는 생각을 바꿔보자. 아니 최소한 인지함정에 빠지지는 말자.


091118-10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