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재구성 - 제28회 신동엽창작상 수상작 창비시선 306
안현미 지음 / 창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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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들

침묵에 대하여 묻는 아이에게 가장 아름다운 대답은 침묵이다
시간에 대하여도 그렇다

태백산으로 말라죽은 나무들을 보러 갔던 여름이 있었지요

그때 앞서 걷던 당신의 뒷모습을 보면서 당신만큼 나이가 들면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하였습니다

이제 내가 그 나이만큼 되어 시간은 내게 당신 같은 사람이 되었냐고 묻고 있습니다. 나는 대답을 할 수 없어 말라죽은 나무 옆에서 말라죽어가는 나무를 쳐다보기만 합니다

그러는 사이 바람은 안개를 부려놓았고 열일곱 걸음을 걸어가도 당신은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의 시간을 따라갔으나 나의 시간은 그곳에 당도하지 못하였습니다

당신은, 당신은 수수께끼 당신에 대해여 묻는 내게 가장 아름다운 대답인 당신을 침묵과 함께 놓아두고 죽은 시간

열일곱 걸음을 더 걸어와 다시 말라죽은 나무들을 보러 태백에 왔습니다 한때 간곡하게 나이기를 바랐던 사랑은 인간의 일이었지만 그 사랑이 죽어서도 나무인 것은 시간들의 일이었습니다

  엄숙함과 경건함을 느낀다. 세상을 얼마나 살아왔느냐에 따라 시간에 대한 생각도 달라진다. 시간 앞에서 겸손함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것은 이제 나이를 조금 먹었다는 증거일까. 시를 읽으면서도 지나온 세월 살아갈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하루, 한달 혹은 일년이라는 시간은 짧고도 멀기만 하다. 분절되지 않는 시간을 인간들을 인위적으로 구분해 놓고 계획하고 측정한다. 사람이 산다는 일이 마치 시간에 배를 띄워 물 흐르듯 그렇게 흘러가는 것은 아닌가 싶어진다. 안현미의 <이별의 재구성>은 모든 것들과의 만남과 이별이 유리벽처럼 차고 단단한 의식 속에 고정되어 있는 듯하다.

  사물과 사건에 대한 시선과 인식 태도가 개성적이다. 지극히 주관적 정서에 매몰되기 쉬운 시와 독자들이 소통할 수 있는 최소한의 통로를 열어 두어야 하는 것은 시인의 몫이다. 독자의 바람일 수 있겠지만 불가해한 언어의 세계 속에 침잠하거나 안개같은 모호함만으로 견고한 집을 짓는 시인의 시가 이제는 더 이상 읽히지 않는다.

  안현미의 시는 그 중간을 서성인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것들에서 시작해서 추상적인 개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시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나는 안현미의 시를 읽으면서 가볍고 상쾌한 우울함을 느꼈다. 무색무취의 물맛 같기도 하고 담백한 가을 단풍의 냄새가 나기도 하는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감상일지도 모르겠지만.

안개를 찍으러

양수리로 갔다
사냥을 준비하는 어둠이 낮게 깔리고 있었다
밤새, 몸을 숨기고
무한대로의 거리조절을 마친 조리개
새벽은 포그필터처럼 밝아오고
오염된 강물로 그물을 던지는 사람들
그물 가득 안개를 낚고 있다
       f:8s:1/15
       찰칵찰칵
안개를 포획하는 카메라
단 한 컷의 사진을 위해
수없이 소비되는 필름처럼
       착각착각
자본의 욕망을 위해
수없이 소비되는 나를 본다


  기형도의 ‘안개’를 떠올렸고,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생각났다. 자연이 주는 관습적 이미지를 떨쳐버리기 어렵다. 안개가 가진 기본적인 속성과 양수리의 두물머리 풍경이 겹쳐진다. 카메라의 셔터소리를 ‘찰칵’이 아니라 ‘착각’으로 들을 수 있는 자본의 욕망! 수없이 소비되는 자신을 보아야 현실은 견고한 시멘트 벽이다. 그래도 어깨로 밀어보고 손으로 눌러보고 두발을 굳게 딛고 버티지 않는다면 사방은 깜깜한 절벽이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

  보이지 않는 것을 찍으려는 헛된 카메라의 욕망에서 시인은 자신의 욕망을 확인한다. 생경하고 엉뚱한 것들이 조합되지만 의식의 흐름은 굳이 논리를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안개와 카메라와 자본의 욕망은 그렇게 한 편의 시 안에서 소비된다.

모계

당신이 내 절망의 이유이던 때가 있었다
당신이 내 희망의 전부이던 때가 있었다
그 이전 이전엔 당신이 내 아무것도 아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 이전 이전에도 당신은 당신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이후에도 당신은 당신일 것이다

시시해서 미치겠는 사랑!

멀리에선 수련꽃 피는 여름이 오고
덩굴식물의 눈[目]을 들여다본다
네 눈이 네 길을 가게 한다

소문도 없이 낳아 기른
아이가 묻는다
“내가 왜 엄마를 아빠라고 불렀지?”

  태아의 잠을 그리워하는 인간의 본능. 죽음의 그림자를 확인하는 과정이 삶의 희망인 이유. 사랑과 절망 사이에는 늘 위태로운 사랑이 놓여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저 당신은 당신일 것이다. 나는 나일 것이고.

  결국 모든 사람은 각자의 눈으로 각자의 길을 가게 한다. 그것을 우리는 숙명이라 부른다. 조금 느린 호흡과 편안한 마음으로 찰나를 생각해보자. 순간, 문득, 그 혹은 그녀가 떠오르거나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그려진다. 내가 걸어온 길과 걸어갈 길을 확인하는 것은 결국 당신과 나를 확인하는 일이다. 네 길이 아닌 내 길을 걸어야겠다는 시시한 사랑법!


09111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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