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착각 - 뇌는 어떻게 인간의 정체성을 발명하는가
그레고리 번스 지음, 홍우진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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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함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안목과 신체적 능력을 표현한다. 보통 사람에게 발견할 수 없는 예민함과 날카로움 혹은 지적 상상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철학은 이제 뇌과학이나 신경과학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한 걸까. 주체성, 자유의지, 자아의 문제까지 다양한 주제가 ‘과학’의 영역과 중첩된다. 인공지능이나 챗GPT에게 내줄 수 없는 고유한 인간의 영토가 점점 줄어든다면 최후의 순간까지 ‘나’를 나라고 주장할 수 있는 ‘나’는 무엇일까.

스스로 생각하고 분석하며 자아라고 믿는 대상이 망상에 불과하다는 도발적인 발언은 심리학자, 신경과학자, 정신과 의사인 저자의 탁월한 분석일까. ‘나’는 과거의 서사에 바탕을 둔 기억의 집합일 뿐이다. 그것도 수많은 사건 중에서 특정 부분을 편집하고 맥락을 이어 붙인 ‘나에 대한 편집된 이야기’. 그러면 끊임없이 현재를 살며 이야기를 만들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상황에 대처하고 일상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나’는 누구일까. 연속선상에서 과거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추론은 가능하지만 지금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같을 리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순간도 시간 위에 머물지 않으며 변화, 발전, 성장하거나 후퇴하고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유동하는 자아에 대한 확신은 용감한 오해가 아닐까.

내가 너를 잘 안다는 착각보다 내가 나를 잘 안다는 믿음이 더 위험해 보인다. 기억나지 않는 장면이나 모호한 기억 속에서 내가 그랬을 리 없다는 확신,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지만 사실 나는 다른 존재라는 주장, 그보다 너는 너를 잘 몰라도 오래 너를 지켜본 내가 너를 잘 안다는 생각들이 모두 ‘망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의 이면을 들여다보라. 자아가 뇌의 발명품이라면 믿음과 확신은 사전적 의미가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닐까.

수만은 다중인격에 관한 드라마와 영화들이 떠올랐다. 서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한다면 편집된 자아에 불과한 나는 누구일까. 진화는 개인주의를 싫어하기 때문에 나의 선택이라는 착각이 만들어진다. 만들어진 ‘신’을 주장하는 리처드 도킨스보다 만들어진 ‘나’를 주장하는 그레고리 번스의 주장이 낯설다. 하지만 이 주장의 이면에는 ‘내가 원하는 나’와 ‘내가 믿는 나’ 사이의 간극에 대한 고민이 놓여 있다. 우리가 가진 몸은 분명한 실체가 있으나 그 안에 깃든 자아는 불안정하며 다양한 면을 갖는다. 자아 정체성이라는 개념이 뇌가 만들어낸 허구라면 ‘나’라고 말할 수 있는 무엇은 실체가 없다. 무수히 많은 자아가 내 안에 숨어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라고 노래하던 가수의 노랫말이 떠올랐다. 분명하고 구체적인 ‘나’ 하나로 규정할 수 있는 ‘나’는 착각과 망상에 불과하다면 진짜 나의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보다 지금, 이 순간에 나에 집중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무엇을 선택하든 그 결과의 총량이 각자의 인생이다.

결국 이러한 노력은 후회를 줄이고 변화를 지향하며 미래를 준비하기 위함이다. 저자가 안내하는 우리의 마음, 생각, 뇌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는 강박과 불안, 후회와 갈등에서 조금 자유롭기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했다. 정답 없는 문제집을 푼 적이 없는 학창 시절을 거치고 세상에 나가면 단 하나의 정답도 찾을 수 없는 순간들,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선택지들이 만기가 도래한 어음처럼 우리를 기다린다. 내가 해봐서 안다는 충고도 도움이 되지 않고, 고전과 철학에게 물어도 답이 없으니 현대인의 혼란과 번뇌는 계속된다. 각자 정답을 외치는 세상에서 목소리 큰 사람이나 쉽고 빠른 비법을 파는 사람에게 속기도 쉽다. 자연과학이나 예술 분야의 책이 진정한 자기계발서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건 뇌가 착각한 ‘나’처럼 인생의 의미나 성공한 삶에 대한 망상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책은 책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현실로 고개를 돌리면 또 다시 책 속에서 길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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