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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거짓말 ㅣ 창비시선 512
장석남 지음 / 창비 / 2025년 1월
평점 :
해설에서, “리얼리스트가 아닌 시인은 죽은 시인이다. 그러나 리얼리스트에 불과한 시인 또한 죽은 시인이다”라는 네루다의 말을 다시 만났다. 아주 오래된 기억처럼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이 떠올랐다. 장석남 시인의 시집을 읽을 때마다 제목만으로도 한 통의 편지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서정시를 쓸 수 없는 시절에 대해 브레히트를 인용한다. 현실을 넘어선 시와 소설도 나름의 목적과 가치가 있겠으나 허공에 서서 세상이 아름답다거나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는 시는 더 이상 읽히지 않는다. 그것이 반드시 삶의 본질, 인간적 욕망, 사회적 자아에 관한 성찰이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겠으나, 포장지를 걷어내고 생의 비루함과 현실적 삶을 예리하게 파악하지 못했다면 시가 시로 읽히지 않는다. 더 이상.
표제작 「내가 사랑한 거짓말」은 ‘나’와 ‘사랑’이 모두 ‘거짓말’이라는 선언처럼 들린다. 물론 가식 없는 인생, 거짓 없는 사랑이 어디 있을까마는. 다시, 시를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아니, 그럴 수 있으리라. 누구든. 언제든.
나는 살아왔다 나는 살았다
살고 있고 얼마간 더 살 것이다
거짓말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거짓말
나는 어느 날 사타구니가 뭉개졌고 해골바가지가 깨졌고
어깨가 쪼개졌고 누군가에게 버림받고 누군가에게 구조되었다
거짓말, 사실적인……
그러나 내가 사랑한 거짓말
나는 그렇게 내가 사랑한 거짓말로
자서전을 꾸민다
나는 하나의 정원
한창 보라색 거짓말이 피어 있고
곧 피어날 붉은 거짓말이 봉오리를 맺고 있다
거짓말을 옮기고 물을 준다
새와 구름이 거짓말을 더듬어 오가고
저녁이 하늘에 수수만년 빛을 모아 노래한다
어느 날 거짓말을 들추고 들어가면
나는 끝이다
거짓말
내가 사랑할 거짓말
거짓이 빛나는 치장을 하고 거리를 누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