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무표정한 커피색으로 산 전체가 헐벗은 채 미동도 없이 겨울을 견디는 모습을 창밖으로 바라본다. 어떤 형태로든 봄은 바람을 앞세우고 땅 밑으로 온다. 발 딛고 선 이 땅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색의 향연이 아니라 다만 생명의 꿈틀거림을 볼 수 있다면 인간의 오만함을 버리고 자연 앞에 겸허하게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햇볕을 품에 안고 따뜻한 바람을 온몸에 감싼 채 파란 싹을 피워 올리기 시작하는 산은 축제처럼 진달래와 개나리를 준비한다. 진분홍 진달래 빛가루처럼 아름답게 혹은 슬프게 김훈의 <남한산성>이 내게로 왔다.

 이 소설은 꽃이 피고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하는 계절에 읽어야 할 소설이다. 겨울을 참고 견뎌낸 4월의 잔인함을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소설이다. 내용의 완결성과 구성의 완고함을 넘어선 자리에 흔들리며 피는 꽃처럼 연민과 안타까움으로 김훈의 소설을 읽었다.

  소설을 시작하면서 작가는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라고 말했지만 내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과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공간에 대한 괴리감으로 고통은 너무 먼 안타까움으로만 읽혔다. 임금과 신하를 나누고 다시 백성을 나누어 작가가 누구의 입장에서 어떻게 역사를 해석하고 이야기하는 것인지 분석하고 싶지 않은 듯하다. 할 일 없이 자전거를 타고 남한산성을 누비는 작가의 모습과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여행하는 작가는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이 소설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이 전 작품인 <현의 노래>에서 보여주었던, 우리들 피 속에 흐르는 유전자의 과거를 돌아보는 연작으로 볼 수 있다. 무심한 듯 스쳐지나가는 억겁의 세월 속에서 작은 단서를 발견하고 상상력을 증폭시키고 역사적 사실들을 떠올리는 방식은 소설과 역사의 적절한 만남이나 역사의 소설적 해설이나 여타 화려한 수식을 넘어 켜켜이 먼지 묻은 살아온 시간에 대한 내력을 쓰다듬는 애정 어린 손길이다.

  1636년 병자년 겨울, 12월 14일부터 이듬해 1637년 을축년 봄, 2월 2일까지의 인조를 비롯한 조선의 비참한 일상들을 마치 일기를 적어나가듯 보여주고 있는 이 소설은 김훈의 유려한 문장과 더불어 사실이나 스토리의 흐름보다 먼저 가슴에 와 닿는다. 남한산성의 겨울에서 봄으로 이어지는 시간은 신산스런 민중의 삶을 닮아내지 못한다는 비판도 어렵고 임금을 중심으로 지배 권력의 모순을 그려낸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것은 이 소설이 지닌 아름다움이자 유일한 단점이다. 늘 반복하는 말이지만 하나의 소설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원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잘 쓴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가자, 나는 인간이므로, 나는 살아 있으므로, 나는 살아 있는 인간이므로 성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삶 안에 죽음이 있듯, 죽음 안에도 삶은 있다. - P. 40

사물은 몸에 깃들고 마음은 일에 깃든다. 마음은 몸의 터전이고 몸은 마음의 집이니, 일과 몸과 마음은 더불어 사귀며 다투지 않는다…… - P. 121


  소설 속에는 항상 인간의 삶이 있다. 당연한 이 진술 속에는 항상 죽음도 깃들어 있다. 성 안에서 청군을 맞아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일상과 운명들이 아프게 새겨져 있다.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삶을 견뎌내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바라보며 위정자들의 잘잘못이나 백성들의 민심을 들먹이거나 중세의 봉건적 사회제도나 정치를 논할 게재가 아니다. 이 소설은 그냥 남한산성에 관한 아름다운 산문일 뿐이다.

  일과 몸과 마음이 하나인 사람들이 있고 하늘과 중국의 명을 받드는 사람들의 괴리감을 논하는 소설이 아니다. 모두 각자의 상황과 입장에서 삶을 꾸려 나간다. 성안에 갇혀 안에서 열 것인가 밖으로부터 열릴 것인가를 가늠하는 일촉즉발의 상황보다 중요하게 이야기되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길’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임금부터 노비에 이르기까지 그 길을 만드는 방법도 그 길을 걷는 방법도 각자 다르다.

  하지만 결국 그 길은 삶의 길로 모아지고 모진 추위와 치욕을 견뎌내고 새로운 삶의 길을 택한다. 어떤 형태로든 열릴 길을 결국 가장 비참하고 모욕적인 방법으로 열어버린 인조와 조선의 신하들에게 백성들은 참 많은 것을 묻고 싶었을 것이다. 당신들이 말하는 그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이냐고.

밝음과 어둠이 꿰맨 자리 없이 포개지고 갈라져서 날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 - P. 179

  김훈의 문장은 여전히 아름답다. 시간의 흐름을 이렇게 표현하는 소설가를 만난다는 것은 축복이다. 문장의 유려함이나 잔재주가 사뜩함으로 비춰질 정도다. 화장이 지나쳐 본 바탕의 얼굴이나 옷 매무시까지 가려버릴 정도다. 차고 넘치는 문장과 내용의 산뜻함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것 같지는 않다. 아름다움이 지나쳐 그 쪽으로 읽어야 한다. 뻔한 상황과 맥락을 읽을 바에야 삼전도의 치욕을 되새겨 무엇을 할 것인가. 진달래 산 벚꽃이 피어나는 계절에 꼭 읽을 만하다.


07050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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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훈이 "남한산성"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05 02:35 
    남한산성 - 김훈 지음/학고재 2007년 10월 31일 읽은 책이다. 올해 내가 읽을 책목록으로 11월에 읽으려고 했던 책이었다. 재미가 있어서 빨리 읽게 되어 11월이 아닌 10월에 다 보게 되었다. 총평 김훈이라는 작가의 기존 저서에서 흐르는 공통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다분히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매우 냉정한 어조로 상황을 그려나가고 있다. 소설이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이 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읽었음에도 주전파..
 
 
프레이야 2007-05-02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식의힘님, 이 책을 읽고 혼란스러웠습니다. 김훈이 쓰는 역사 소재의 소설을
어떻게 보아야할지... 뻔한 상황과 맥락을 읽을 바에야 삼전도의 치욕을 되새겨
무엇을 할 것인지, 라는 님의 글이 해답을 조금은 주는 것 같습니다.
저보다 완곡하게 쓰셨고 훨씬 마음에 듭니다.^^

드팀전 2007-05-03 0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까 말까 고민중인데..^^ 제가 역사드라마를 진짜 열심히 본게 초등학교 6학년때 본 한국방송의 '병자호란'..관련드라마였어요.제목은 생각이 안나고...삼전도,임경업,효종 등등 쭈욱 이어지는 이야기였죠.그 드라마를 보고 얼마지나지 않아 여주에 가게되었습니다.여주에는 세종대왕의 영릉도 있고 바로 그옆에 효종의 무덤도 있습니다.당시 안내인이 '이 분이 죽지 않고 북벌을 했다면..꿈을 이루지 못한 비운의 왕입니다' (당시 저도 드라마를 보고 그런 마음이 간절했기에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한겨레21에 실린 <남한산성>의 리뷰를 보았지요.항복문서를 누가 쓸 것인가를 가지고 서로 미룬다고 하더군요.결국 최명길이 쓰기로 한다지요.한겨레 기자는 그 상황을 김훈이 자신의 군부정권때의 상황과 오버랩시킨다고 말합니다.김훈은 스스로도 군부정권의 용비어천가를 자기가 다썻다고 말했습니다.대신 보안사에 끌려가는 후배기자들은 때리지말라고..내가 니들이 쓰라는대로 다 써줄테니...(전 왜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불의에 맞서다 모든 걸 잃은 언론인 분들도 계시는데..설령 어쩔수 없었다면 그저 부끄러워하면 될 일을...)
이 책은 슬퍼 보여서 못보고 있습니다.현시점과도 그대로 이입이 됩니다.남한 산성 밖에서 진을 치고 문을 열라고 하는것이 '야만적 자본주의 체제'라고 본다면 말입니다.그 안에서 이러쿵 저러쿵 말이 많겠지요....님은 " 이 소설은 그냥 남한산성에 관한 아름다운 산문일 뿐이다"라고 말하셨지만,그렇게 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 책 들기가 겁납니다.김훈은 모든 것이 소용없다고- 탈정치화해서- 중요한 것은 '민중의 삶'이고 '고통받는 자들'이라고 말하는 듯 합니다.그런데 전 여기서 잘 감싼 '모순'이 읽힙니다. 이 책에서 처럼 '청나라'가 들어오든 '일제'가 들어오든 '야만적 자본주의'가 들어오든 '민중'의 삶은 그것들로 부터 독립된 것일까요? 그런 외부적 요인으로부터 자유로운게 '민중의 삶'일까요? 이 둘을 분리시켜 버리는게 과연 옳을까요? 일제시대때도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민중들이 전부 독립투쟁하거나 친일한 것은 아니지요.밥을 먹고 논을 갈고 애를 낳고 (도시에서는) 연애를 하고 근대문화를 즐기고...이런 민중의 생활과 일상사의 영역을 인정하는 것과 이것을 규정하고 있는 틀과 그 안의 삶을 분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 아닐까요?
어찌되었든 돌아가고 돌아가여만하는 민중의 삶이란 것이 김훈의 '허무'와 만나면 모순의 칵테일이되는듯 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 선뜻 손에 가질 않습니다...읽지도 않고 쓴다고 웃으시겠네요^^
제생각이 모나서 그런거겠거니 해주시길....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잉크냄새 2007-05-03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식님의 리뷰와 드팀전님의 댓글을 보니 앞으로도 김훈의 이 소설은 다각도로 읽혀질것 같네요.

sceptic 2007-05-03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님, 잉크냄새님도 읽어보시고 나름의 느낌으로 정리하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드팀전님 댓글을 보고 한참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부분 공감하고 동의하고 또 다른 생각의 여지를 남겨주셔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님이 모나서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생각들이고 그 오만가지 생각중에 저는 대체로 그저 문학이라는 관점과 테두리 안에 소설을 한정지으려는 의도된 오류라고 변명하고 싶습니다. 김훈이 걸어온 길이나 정치적 성향, 자본주의와 민중에 대한 생각들에 고개를 끄덕였고 저는 보다 왼쪽에 있지 않나 스스로 점검도 해 보았습니다. 리뷰보다 더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니 오해 마세요. 댓글에 익숙치 않아 조용히 들러 보고 가는 무례도 용서하시고요. 행복한 봄날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