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없는 사회
이반 일리히 지음, 심성보 옮김 / 미토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학교제도는 기회를 평등하게 한 것이 아니라 기회의 배분을 독점하고 말았다. - P. 29

시대를 초월해서 냉정하고 정확한 진단과 비판은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는 기분이다. 특별할 것도 없어 보이는 말들이지만 시대와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 보면 결코 만만찮은 선견지명을 느끼게 된다. 이반 일리히의 <학교 없는 사회>는 21세기 더욱 유효한 울림으로 들린다.

세상에 학교를 없애자면 참 많은 사람들이 일단 굶어 죽는다. 학교에 기대거나 기생하는 사람들이 인구의 절반쯤 될까? 잘못 접근하면 일리히의 주장이 반문명론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행복은 자건거를 타고’ 오는 것처럼 ‘학교 없는 사회’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도 있다. 전일제 출석에 의한 획일적인 공교육를 실시하는 학교의 폐지를 주장하는 저자를 과격하게 볼 수도 있으나 이 책에서 조목조목 분석과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는 학교는 할말이 없어 보인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학교에 몸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황당하게 들릴만한 저자의 주장은 뼈아픈 자기 반성이며 현실에 대한 냉정한 판단에 기초한다. 학교가 굴러가는 시스템이나 비효율적 보수적 관리 체계를 논외로 하더라도 학교 교육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새롭게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교육을 ‘인적 자원’의 양성으로 보는 수단적 개념으로 국가가 통제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학교교육의 맹신은 사회화 과정에서 배제와 수용이라는 결정적인 칼자루가 된다. 60년대 실천적 비판 정신으로 무장한 피에르 부르디외가 주창한 아비투스와 더불어 학교교육도 사회의 계급을 확대 재생산하는 역할을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부르디외나 아비투스가 언급되어 있진 않지만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겹침점이 많다. 특히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이라 일컬던 시대에 그 나라에 살던 사람들은 학교교육을 통해 계급 상승을 꿈꾸었겠지만, 그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는 지금과 같다.

저자는 학교의 개혁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전면적인 폐지를 주장한다. 극단적 선언으로 들린다. 현실성이 있느냐의 문제를 떠나서 그가 말하는 비판의 초점을 눈여겨 보고 반성적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개인의 능력과 인간적 본성을 떠나 학벌 위주의 사회가 되어버린 우리의 모습은 비참하기까지 하다.

모든 ''위선적인 공익사업'' 중에서 학교는 가장 교활하다. 고속도로망은 자동차의 수요를 만들어내는 것뿐이었으나, 학교는 스펙트럼의 우측 끝에 몰려 있는 일군의 근대적 제도 전체를 창출해낸다. 고속도로의 필요성을 의심하는 사람에게는 낭만적이라고 일축할 정도로 끝내주는 것이겠지만 학교의 필요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즉시 냉혹하다든지 또는 제국주의자라고 공격받는다. - P. 106

날선 칼날 위에 서서 미래를 조망해 보아야 한다. 대학 진학을 위해 소모되는 사교육비와 전 생애를 통해 학교교육에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따져보자. 공부를 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그에 대한 대안은 이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자. 국가의 존재처럼 학교의 존재는 무소불위의 권능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고 기형적으로 교사의 권위와 역할은 점점 축소되고 있다. 문제와 처방은 다양하게 논의되겠지만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들이 알고 있는 대부분은 우리들이 학교 밖에서 학습한 것이다. 학교 아동은 교사가 없더라도, 아니 오히려 때때로 교사가 있을 때라도 대부분의 학습을 자력으로 행하는 것이다. 대단히 비극적인 일은 대다수의 사라들은 전혀 학교에 다니지 않았는데도 결국 학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
누구나 학교 밖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배우게 된다. 우리들은 교사의 개입 없이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사랑하는 것, 느끼는 것, 노는 것, 저주하는 것, 정치에 관여하는 것 및 일하는 것을 학습하는 것이다. - P. 58

아동들이 학습한 것의 대부분은 결코 교사로부터 얻어진 것이 아니다. - P. 59

어떠한 훌륭한 교사라도 잠재적 교육으로부터 학생을 지킬 수는 없는 것이다. - P. 64


교사의 역할과 한계를 단적으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저자의 지적은 단호하다. 현재 우리의 상황에서 교사의 역할이 축소되는 이유와 저자의 주장과는 거리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학생들이 교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과 배울 수 있는 것에 대한 회의에 공감한다. 책임 회피의 차원이 아니라 극단적인 신뢰도 철저한 불신도 모 위험하다.

현대의 학교를 기초로 하여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은 역설적이다. 학교의 교사가 재판관, 이데올로기스트 및 의사의 기능을 한 몸에 다 갖추어 가질 수 있?때 사회의 기본적인 양식은 원래 인생을 위한 준비과정 자체에 의해 왜곡되게 된다. - P. 62

어떠한 제도도 학교만큼 능숙하게 참가자들에게 현대 세계에 있어 사회의 원리와 사회의 현실 사이에 있는 깊은 모순을 은폐할 수 있는 장치는 없을 것이다. 학교는 세속적이며 과학적이고 또 죽음을 부정하고 있다. 따라서 현대의 어떤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합세하고 있다. - P. 80


비판을 위한 비판, 대안 없는 비판에 대해 우리는 냉정할 필요가 있다. 현실에서 학교를 폐지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렇다면 매년 수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는 현실과 끊임없이 대안학교나 홈스쿨링에 대한 방법들이 학교교육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현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백년대계인 교육에 관한한 모두가 전문가이다. 그렇다면 학교 자체에 대한 비판과 관심은 당연하지 않은가. 국가 수준의 교육의 목적과 개인의 행복과 유리된 현실의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접근은 보다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문제제기를 통해 개선될 것인지 아니면 경쟁과 이기적 욕심으로 버텨 볼 것인가는 우리 모두의 결정에 달려있다. 단순한 시선과 지엽적인 해결책으로 한방에 풀어낼 수 없더라도 현실적인 대안들을 내놓아야 할 시기는 벌써 지나쳤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오늘도 아이들은 학교를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06122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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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2-20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획기적이네요.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아이가 적응을 못하고 겉돌때마다 제가 생각했던 내용들이 들어있어요.
우리 애한테 과연 학교나 선생님이 필요한지 끊임없이 생각해왔고
과감히 학교를 벗어나기를 바라지만 아이는 학교에 안가면 큰일나는줄 알아요.
그런 사회에서 저도 살아왔기에 아이의 두려움을 잘 알지요.

짱꿀라 2006-12-21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학교 자체와 선생님은 필요하다고 보여지는데........
아이들이 가정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도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집단생활이라고 할까요.

드팀전 2007-03-26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익숙하여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는..학교.
학교라는게 선구적 비판자들에 의해 기존 체제를 안정화 시키고 반란의 싹을 가라앉히고 순응하는 자들의 홈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또한 계급의 재생산 역할까지...오늘 한겨레 신문에도 농촌 아버지와 강남 아버지의 학력 비교기사가 실렸지요.새삼스러울 것이 없을 정도로 익숙해져 버린 내용인지라...
딜레마가 좀 있어요.학교가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라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무정부주의적 방식으로 교육제도를 거부하기 힘들다는 점이지요.좀 더 자유로운 세계를 위해 결국 공교육이 개선되야하는데 그것도 결국은 국가 기구의 양보를 담보해야하고 양보라는 형태로 또 다른 포섭이 이어지는 것이니까...

sceptic 2006-12-21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래 집단과의 사회화나 교사의 역할 모델도 중요하긴 하지만 전일제 출석을 요구하는 집단적 학교교육에 대해 일리히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타협과 양보라고 할 순 없지만 지금 학교교육 제도 자체를 폐지하자는 것은 불가능한 주장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반성적 성찰은 모두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오늘 아침 한겨레에서 이 관련 기사를 봤습니다. 학교교육을 통한 계급의 고착화가 가장 큰 문제기 때문에 어떻게든 제도 변화를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드팀전 2006-12-21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얽힌 실타래입니다.교육문제는.
(<미국민중사>를 읽다보니 이반 일리치의 <디스쿨링 소사이어티>.위의 책이 언급되더군요.70년대 교육계에서 시도된 탈제도화 논의 중 한권으로..)
^^ 그냥 웃는 이야기인데 '제도 변화를 통해 해법을 찾자'는 -표현은 다르지만 이와 유사한-말을 저 역시 도망갈 때 없으면 생활 현장에서 가끔 쓰는데...쓰면서도 참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님의 말씀이 틀렸다거나 이상하다는게 아니라..그 표현을 제가 가끔 쓰면서 혼자 속으로만 '결국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단 이야기군' 하며 꿀꿀해 하던 제 모습이 떠올라서 이야기해봤습니다.

sceptic 2006-12-22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자고 하신 이야기지만 웃을 수 만은 없는 지적 맞습니다...^^ 무책임해 보이지만 개인의 능력에 한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모두의 노력들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공감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현실적 대안을 찾고 온몸으로 모든 문제들을 실천할 수 없는 것은 적당한 핑게가 아니라 모두가 안고 있는 서민들의 한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유사한 문제가 터지거나 작은 참여나 실천의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고 의견을 보이는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