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 내려온 천상의 미 - 보살, 여신 그리고 비천의 세계 아시아의 미 (Asian beauty) 3
강희정 지음 / 서해문집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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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없는 사람들이라도 불교는 친숙하다. 가까운 산에 가면 어디서나 절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만큼 익숙하지는 않다. 아무리 크리스도교에 무관심해도 예수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리라. 성탄절은 또 어떻고?

 

기독교가 범세계적인 종교가 된 까닭은 단순성에 있다. 하나님, 예수님, 그리고 성모 마리아만 알면 바로 천상에 다가갈 수 있다. 그리스신처럼 복잡다양하지도 않고 이슬람교같이 계율이 세세하지도 않다.

 

불교가 우리 곁에 늘 있으면서도 다소 낯선 이유는 바로 종교의 복잡성 때문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단 부처는 신이 아니다. 깨달은 자를 뜻하는 명사다. 곧 부처는 한 명이 아니라 여럿이다. 또한 부처는 스스로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그를 수행하는 아난이 부처의 말과 행동을 받아 적었을 뿐이다. 여러 해석이 나오게 마련이다. 게다가 불교의 발생지에서조차 배척받았다.

 

그럼에도 불교가 아시아권에서 활성화된 것은 토착종교와의 결합덕이 크다. 곧 불교의 교리를 강요하지 않고 상황에 맞춰 융합하였다. 민중의 갈망을 반영한 결과다. 보살은 대중에게 가장 인기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옥에서도 끝까지 염화미소를 거두지 않고 건져주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신이 천상에서 유유자적할 때 친히 지상에 내려와 함께 고통과 슬픔을 어루만져 준다.

 

<지상에 내려운 천상의 미>는 보살의 다양한 매력을 알려주고 있다. 나라마다 다른 보살의 버라이어티한 모습에 빠져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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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사랑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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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골수 팬에게 뤼팽은 눈엣가시다. 어디로 들어 보지도 못한, 이른바 듣보잡이 등장하여 셜록을 유롱하지 말이다. 아무리 따져봐도 뤼팽은 셜록의 상대조차 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래서일까? 결록을 사랑하는 이들은 뤼팽이 주인공인 책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나도 그랬다. 내게 유일한 영웅은 오로지 셜록이었다.

 

뤼팽을 다시 접하게 된 건 어른이 되서였다. 기대가 크지는 않았다. 역시 별로였다. 에잇 별로야 하고 책을 집어던지고 한참을 잊고 지내던 어느날 교육방송에서 <기암성>을 낭독하는 것을 들었다. 달리 할 일이 없어 그저 귀는 열어두고 눈을 감고 쉬는 기분으로 들었는데 세상에나 금세 작품에 빠져들고 마는게 아닌가? 아니 내가 읽은 책이 이런 내용이었나?

 

뤼팽의 이야기는 셜록과 달리 스스로가 주인공이다. 곧 셜록이 조수인 왓슨이 그의 활약상을 펼치는 관찰자 시각이었다면 뤼팽은 자신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아하 알았다. 왜 뤼팰이 이상하게 느껴졌는지. 셜록에 익숙해있건 내게는 왠지 낯선 접근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사랑>은 제목 그대로 뤼팽 최후의 작품이다. 시간이 한참 지나 발견된 유고라 이전 작품들과 달리 얼개가 촘촘하지 못하고 필력도 왠지 처진다. 그러나 뤼팽이 어디 가겠는가? 끝까지 자존감을 내세우는 뤼팽을 보며 역시 그답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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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의 진화론 강의 - 생명의 역사, 그 모든 의문에 답하다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정은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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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본래 뜻을 모르고 습관적으로 쓰는 경우가 있다. 진화도 그 중 하나다. 뭔가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 간다는 의미로 사용하는데 사실은 전혀 다르다. 진화란 자연법칙의 하나로 생명체가 시간이 지나며 주변환경에 맞춰 개체를 변화시키는 것을 뜻한다. 곧 반드시 올바른 것만은 아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 과학자다. 그렇다고 업적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자신의 전공을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사람 처지에서는 부럽기 짝이 없다. 

 

<진화론 강의>는 말 그대로 생명 진화를 알려주는 책이다. 단순하게 해석이 불가능한 진화의 법칙을 차근차근 최대한 친절하게 풀어주고 있다. 물론 아주 쉽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자연의 심오한 세계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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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교육대기획 시험 - 최상위 1% 엘리트들의 충격적이고 생생한 민낯!
EBS <시험> 제작팀 지음 / 북하우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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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앞둔 심정은 마치 페너티 킥을 맞이한 골기퍼의 심정과 다름이 없다. 오죽하면 학교를 벗어나 가장 좋았던 것이 시험에서 해방된 것이라고 하겠는가?

 

그렇다면 왜 시험을 보는 것일까? 첫번째 이유는 평가다. 어떤 형태든 거르거나 합격을 시켜야 하니 시험을 치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위협이다. 시험이라는 제도를 만듦으로써 항상 공포감에 시달리게 만들어 질서를 유지한다. 셋째는 아무 근거가 없다. 그저 맹목적으로 시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합격을 했건 불합격을 당했건 시험과 관련하여 좋은 기억이 없다. 왜? 전적으로 을의 위치게 처하기 때문이다. 곧 내 운명이 상대방에게 달려있다는 상황 자체가 사람을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험은 필요없는 것일까? 아니다. 필요하다. 다만 모두의 개성과 능력을 살리는 방식으로.

 

<시험>은 교육방송에서 제작한 다큐를 바탕으로 한 책이다. 방송을 보면서도 공감이 컸다. 아무 이유없이 시험에 매달리는 상황이 너무 갑갑해서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그렇게 한 공부가 시간이 지나면 씻은 듯이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주인이 되어 주도적으로 공부를 했다면 그런 허망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텐데.

 

만약 시험의 본질을 알았다면 나는 제도권 교육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대체 거의 하루종일 학교에 학생들을 붙들어 놓고 고3이니 어쩔 수 없다라는 식의 발상은 누가 만들어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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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달리는가 - 동물들이 가르쳐준 달리기와 진화에 관한 이야기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정병선 옮김 / 이끼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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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에서 나는 달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몸이 무거워 속도가 나지 않았다. 오늘은 그만 뛸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마음을 가볍게 먹고 천천히 걷듯이 몸을 움직이다 보니 서서히 궤도로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5킬로미터쯤 평삼심을 유지하자 다시 에너지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슬슬 앞질러 볼까. 한 명 두 명 세 명 점점 앞서가는 사람들을 제킬 때마다 희열이 솟구친다. 러너스 하이.흡사 몸이 붕 뜨는 느낌이다. 다리가 마음을 이끈다. 궤도 위를 힘차게 달려가는 전차 바퀴처럼 다리는 한치의 어긋남 없이 착착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자고 일어나니 다리가 뻐근하다. 꿈속에서 너무 달린 탓일까? 아니다, 관악산에 다녀오고 나서 한시간 정도 뛴 후유증탓일거다. 오죽했으면 자면서도 달렸을까? 다리에 기억이 남아서였겠지.

 

<우리는 왜 달리는가>는 생물학자가 쓴 달리기책이다. 단순히 러닝에 관심이 있는게 아니라 전공을 접목하여 달리가와 진화의 관계를 분석하고 있다. 곧 모든 포유류는 달리는 본능을 가지고 있고 움직이기 위해 모든 기관이 진화해왔다는 것이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산업혁명이후 사무실 직업이 늘어나면서 인간의 달리기 본능은 퇴화해버렸다. 문제는 가만히 있는 것이 진화와는 반대 방향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몸은 본래 달리기 위해 만들어져있는데 그러지 못하니 온갖 병이 발생한다. 의자에 묶여 퇴회되어버린 몸이 불쌍하기만 하다. 

 

극복 방법은 단 하나. 달려라. 토 달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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