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의 작가론 - 디테일이 생명이다
작가 황석영이 출연한 제이티비씨의 <차이나는 클래스>를 보았다. 총 2편에 걸친 강연에서 1부는 광주항쟁, 2부는 방북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는 내내 눈물이 나는 장면이 많았다. 특히 광주의 한을 영상과 곁들여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한동안 먹먹한 기분에 젖었다. 역시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2부 말미에는 작가론을 다루었다. 그는 감옥에 있을 때 이러다가는 출소후에도 글을 쓰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고 토로했다. 하루종일 거의 혼자서 지내야하는 외로움은 말과 글을 잃어버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런 상황이야말로 작가에게는 천혜의 조건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유일한 대화상대가 되어 몇년을 보내는 것은 관념의 세계에 빠져드는 지름길이다. 곧 추상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다 섣부른 깨달음을 얻은 척하게 된다. 감옥에서 나와 마치 모든 세상 이치를 다 알게 된 듯 생활한복을 입고 산속에 들어가는 사람이 그런 예이다. 그리곤 뜬금없이 자연을 예찬하는 글들을 써댄다. 황성역은 그 위험성을 바로 깨달았다. 해결방법은 일상의 복원이었다. 잡범들과 어울리고 모래바닥에 떨어진 철조각을 주워 열흘이 넘게 갈고 닦아 과일깎는 칼을 만들며 구체성을 잃지 않으려 기를 쓰고 노력했다.
실제로 비록 감옥안은 아니지만 작가들은 스스로를 유폐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글 또한 자폐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소설가들은 이러한 경향이 강하다. 서양처럼 다양한 직업을 경험한 후 자신의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나이 40이 넘어 글을 쓰는 전업 작가가 드물기 때문이다. 대부분 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 출신으로 아주 젊었을 때부터 일상에서 벗어나 글만 써대니 죄다 독백만 하게 된다. 그 결과 어떤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렇다고 모든 걸 죄다 경험할 수는 없는 일. 방법은 글쓰기외의 일상을 발굴하고 개척해야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하루 평균 10킬로미터를 뛰고 김영하가 요리에 집중하고 색칠하기에 빠져드는 이유는 단지 소설쓰기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잃어버린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이다.
자기만의 방에 갇혀 각혈을 하며 호롱불아래에서 글을 쓰는 낭만주의 작가 시대는 이미 지난지 오래다. 도리어 건강한 신체를 바탕으로 수도승같은 규칙적인 생활만이 질좋은 글을 오래 쓸 수 있는 바탕이 된다. 밤새 술마신 다음날 미친듯이 영감을 받아 손이 가는대로 글이 써지는 환상에서 벗어나야민 소설가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