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ep doing what you are doing

 

 

모든 일은 순식간에 닥친다. 그것도 한꺼번에 연달아. 아버지가 말기 암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고 회사에서는 잘리고 아내와는 극도로 사이가 나빠져 이혼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똑같지는 아닐지라도 이와 비슷한 일은 어느 가정에나 일어난다.

 

사람은 외부 상황에 민감하다. 평소 경험하지 못한 일을 당했을 때는 더더욱 당황한다. 아무리 준비를 했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문제는 패닉상태에 빠지면 빠질수록 문제는 수렁으로 깊숙이 빠져든다. 엎친데 덮치는 격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일상의 회복이다. 곧 평소 하던 행동을 그대로 하는 것이다. 물론 힘들다. 나도 그랬으니까.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니니까.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그건 마음의 문제지 시간이 부족해서는 아니다. 예를 들어 가족 중 상을 당해 삼일동안 장례식장에 있었다. 다들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이었다. 나는 잠깐 짬을 내어 식장 근처를 30분쯤 걷듯이 뛰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저녁식사후에 매일 하던 습관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슬픔을 가누지 못해 정신줄을 놓았다면 나는 내 역할을 잘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라고 나는 확신한다.

 

실제로 평소의 습관을 유지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아차피 내게 닥친 일은 당장 스스로 해결하기가 어려운 반면 일상의 행동은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무리 밤을 새고 일을 했다고 해도 일주일에 한번 가는 등산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이상 쓸 소재도 없고 글을 쓸 마음도 들지 않지만 책상앞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커서가 껌뻑이는 것이라도 봐야 한다. 이 모든 일상은 두렵고 괴로운 상황에서 벗어나는 나만의 필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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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0월 6일. 그날 나는 회사에서 파견나와 대학로 한 편집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붉고 노랗게 물든 나무들이 보이는 거리는 로맨틱했다. 오후 늦게 잠깐 숨도 돌릴겸 머신에서 커피를 뽑아 건물 테라스에 앉아 밀린 전화 문자를 확인했다. 김광석 죽은 거 아세요? 그녀는 일 때문에 만난 사이였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건만 때때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업무가 아니라면 내가 먼저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티가 너무 나서 내가 도리어 미안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날은 달랐다. 짤막한 글귀에도 슬픔이 가득 베어 있었다. 그녀만큼의 충격은 아니었지만 나 또한 한동안 우울했다.

 

김광석이 다시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극장에 들렀을 때 그의 이름을 단 다큐영화를 상영하고 있어 의아했다. 게다가 감독은 이상호 피디. 왠지 어울리지 않았다. 그의 음악을 다룬 것으로 오해했기 때문이다. 실체는 전혀 달랐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였다.

 

고 김광석은 일찍 죽었기 때문에 오래오래 남을 자격을 갖춘 가수다. 흔히 천재 예술가들이 그러하듯이 요절은 신비감을 불어넣는다. 게다가 자살이라면 더욱 더. 그런데 새로 밝혀진 사실은 그에게 딸이 있었고 그 딸이 죽었다는 사실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는 전처가 있고, 그녀는 여전히(?) 잘 살고 있다. 김광석의 위엄을 받들며. 벌써 스토리가 꽉 짜인 느낌이 들지 않는가? 결과가 어떻게 밝혀지든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수순으로는 진행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 결과 우상화는 더욱 강화되고 우리 세대가 다 죽은 다음에는 신화로 우뚝 솟을 것이다. 음악적 업적과는 별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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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를 즐겨 듣는다. 특히 저녁식사를 하고 산책을 하거나 일주일에 한번 오르는 산에서는 귀에서 이어폰을 떼지 않는다. 주로 즐기는 방송은 그 때 그 때 다르다. 음악 프로그램을 듣다가 뉴스로 바꿨다 배철수의 음악 캠프를 듣는 식이다. 아주 가끔 뜻밖의 채널에서 놀랄만한 내용을 접할 때가 있는데, 지난주 일요일 밤이 그랬다. 주인공은 <케이비에스 무대>. 제목만 들으면 무슨 트롯가용방송 같지만 사실은 라디오 드라마다. 세상에나 아직까지 이런 방송이 있다니? 인터넷을 찾아보니 첫방송이 1957년이었다니 정말 천연기념물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내용은 최근 트랜들를 그대로 쫓고 있었다. 남과 식사를 같이 하거나 산보를 해주며 그 대가로 돈을 받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왠지 황당하면서도 그럴싸해서 1시간 가량 내내 듣고 말았다. 수시공모도 한다니 드라마 글쓰기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도전해볼만하다고 생각한다. 뭐 떨어져봤자 밑져야 본전이니까?

 

kbs  무대 홈페이지

http://www.kbs.co.kr/radio/scr/stage/aod/aod/index.html

 

 

'KBS 무대'와 늘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극본 집필 형식과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안내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파일 제목: '작품제목(작가이름)' 
  * 제목 형식을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파일제목에 '라디오극본' 혹은 'KBS무대' 등은 기재 금지. 작품제목과 작가이름만 들어가야 합니다.

- 파일 형식 : 한글
- 글자 크기 12, 줄 간격 160%
- 페이지 구성 : 표지 + 작의 및 등장인물 소개 + 본문
- 본문 글자 수(공백제외) : 14,000자 내외 (아래한글/파일/문서정보/문서통계 참조) #일반적으로 표지, 작의 등 제외하고 본문만 19~20페이지 정도가 적당합니다.
- 줄띄우기 : 장면과 장면 전환시 사용 권장
- 효과 및 음악 : 대사와 구별되게 표시(굵은 글씨체, 다른 폰트 등)

- 등장인물과 대사 부분 구별이 선명하게 표기할 것을 권장함.
- 페이지수 반드시 표시.

* 수시 극본 제출 : radiodrama@kbs.co.kr

* 제출자의 연락처(휴대폰) 꼭 기재!

* 제작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 극본의 경우, 별도 연락을 드립니다. (평균 한달 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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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와 500자 원칙

 

헤밍웨이는 작가중의 작가다. 단지 내용이 빼어나서만은 아니다. 글쓰기와 관련한 온갖 기법을 마스터한 장인이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말년에 쓴 <노인과 바다>는 단 500단어만 활용하여 쓴 소설로 유명하다. 얼핏 보면 바다에서 한평생을 보낸 어부의 넋두리쯤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가 갈고 닦은 하드 보일드 문체의 결정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사와 형용사를 최대한 배제하면서도 심오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는 파리에서 신문사 특파원을 하며 하드 보일드 문체를 다듬었다. 장황한 수사와 구질구질한 문장에서 탄출하여 사실적이며 적확한 묘사로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소설 또한 유행을 타는 법. 더이상 특유의 문장이 먹히지 않자 한물간 퇴물 취급을 받기도 했다. <노인과 바다>는 구렁텅이에 빠져있던 헤밍웨이를 구한 구원자였다.

 

그렇다면 어네스트 헤밍웨이는 어떤 원칙을 갖고 글을 썼는가? 얼핏 방탕한 자각의 대명사처럼보이지만 그처럼 규칙적으로 집필을 한 사람도 드물다. 무조건 아침에 썼다. 단어수를 세어가면. 다시 말해 오늘 200자를 쓰겠다고 하면 무슨 수를 써도 분량을 채웠다. 내용이 마음에 들고 안 안들고는 다음 문제였다. 일단 양이 중요하다. 그 다음에는 바깥으로 나갔다. 술을 마시고 바닷가에 뛰어들고 또 친구들과 어울려 떠들었다. 오전에 쓴 글은 단 한번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도 똑같은 일상을 이어갔다. 이른바 자기만의 루틴(좋은 습관>을 이어간 것이다.

 

나도 이 방법을 본 따 글을 쓴 적이 있다. 한시간 일찍 일어나 출근 전까지 쓸 단어수를 정해놓고 글을 썼다. 참고로 한글 워드프로그램에서는 원고지 매수와 글자수를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어떤 날은 더 쓰고 싶기도 하고 또 다른 때는 단 한 글자도 쓰기 싫을 때가 있었다. 심지어는 30분 내내 다음 문장이 떠오르지 않아 커서가 깜박거리는 것만 쳐다보기도 했다. 그 때 깨달았다. 헤밍웨이의 위대함을. 하루에 새로운 이야기로 정한 글자를 채워간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고통을 수반한다는 것을. 완전히 탈진한 그가 제정신으로 어떻게 남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을까?

 

작가는 창조자다.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을 열어젖히는 신이다. 동시에 성실한 일꾼이다. 단 한순간도 놓치면 조화는 어그러지고 등장인물들은 미친듯이 날뛴다. 창조주가 아니고서는 통제가 불가능하다. 다행히 세상은 그런 인간을 자주 지구에 내려보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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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의 작가론 - 디테일이 생명이다

 

 

작가 황석영이 출연한 제이티비씨의 <차이나는 클래스>를 보았다. 총 2편에 걸친 강연에서 1부는 광주항쟁, 2부는 방북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는 내내 눈물이 나는 장면이 많았다. 특히 광주의 한을 영상과 곁들여 소개하는 대목에서는 한동안 먹먹한 기분에 젖었다. 역시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2부 말미에는 작가론을 다루었다. 그는 감옥에 있을 때 이러다가는 출소후에도 글을 쓰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고 토로했다. 하루종일 거의 혼자서 지내야하는 외로움은 말과 글을 잃어버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런 상황이야말로 작가에게는 천혜의 조건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유일한 대화상대가 되어 몇년을 보내는 것은 관념의 세계에 빠져드는 지름길이다. 곧 추상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다 섣부른 깨달음을 얻은 척하게 된다. 감옥에서 나와 마치 모든 세상 이치를 다 알게 된 듯 생활한복을 입고 산속에 들어가는 사람이 그런 예이다. 그리곤 뜬금없이 자연을 예찬하는 글들을 써댄다. 황성역은 그 위험성을 바로 깨달았다. 해결방법은 일상의 복원이었다. 잡범들과 어울리고 모래바닥에 떨어진 철조각을 주워 열흘이 넘게 갈고 닦아 과일깎는 칼을 만들며 구체성을 잃지 않으려 기를 쓰고 노력했다.

 

실제로 비록 감옥안은 아니지만 작가들은 스스로를 유폐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글 또한 자폐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소설가들은 이러한 경향이 강하다. 서양처럼 다양한 직업을 경험한 후 자신의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나이 40이 넘어 글을 쓰는 전업 작가가 드물기 때문이다. 대부분 국문학과나 문예창작과 출신으로 아주 젊었을 때부터 일상에서 벗어나 글만 써대니 죄다 독백만 하게 된다. 그 결과 어떤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렇다고 모든 걸 죄다 경험할 수는 없는 일. 방법은 글쓰기외의 일상을 발굴하고 개척해야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하루 평균 10킬로미터를 뛰고 김영하가 요리에 집중하고 색칠하기에 빠져드는 이유는 단지 소설쓰기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잃어버린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서이다.  

 

자기만의 방에 갇혀 각혈을 하며 호롱불아래에서 글을 쓰는 낭만주의 작가 시대는 이미 지난지 오래다. 도리어 건강한 신체를 바탕으로 수도승같은 규칙적인 생활만이 질좋은 글을 오래 쓸 수 있는 바탕이 된다. 밤새 술마신 다음날 미친듯이 영감을 받아 손이 가는대로 글이 써지는 환상에서 벗어나야민 소설가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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